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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45화 (145/288)

145화

신검(8)

사람의 본성은 선인가 악인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만 바꿔보자.

사람은 선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악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정공과 마공이 이와 같다.

정파의 무공으로 절정에 오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평생을 산에서 정진하는 구대문파의 고수조차 절정에 오르는 확률은 삼분지 일을 넘기기 어렵다.

마공은 사람의 본능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넉넉잡고 삼십년 정도 꾸준히 무공에 집중한다면 절정에 준하는 인급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인급의 마인의 숫자는 중원이 보유한 절정고수의 숫자에 비하면 적다. 그것은 단순히 중원의 인구수가 십만대산과 기련산맥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마인은 오욕과 칠정에 마구 휘둘린다. 그렇기에 무공에 전념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그 말은 최소한 인급 이상에 오른 마인이라면 재능, 혹은 성정 등에 있어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핏물이 흥건한 객잔.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노인이 물었다.

“조가야, 그런 애새끼에게 고작 한 번 데였다고 정말 포기를 할 생각이냐? 그래서야 주련산의 주인이라는 칭호가 아깝구나.”

“어린 애새끼?”

조가라 불린 마인. 주련노괴가 피식 웃었다.

어디 네 놈도 한 번 당해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나 보자라는 웃음이었다. 벌써 그 어린 놈 손에 고혼이 된 인급 마존만 여덟. 불구가 된 자들이 셋이다. 아마 자신도 눈치 빠르게 몸을 돌려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처럼 됐겠지.

“거기.”

“응?”

이제 막 서른 중반 즈음 됐을까?

평이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주련 노괴를 불렀다. 보통이라면 어린 놈이 감히 자신에게 그따위로 불렀다는 것만으로 머리통을 뽑아놓아야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크흠······.”

주련노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그 인생이 얼굴에 새겨진다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그의 인생은 험악 그 자체였음이 분명하다.

마인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모여들었다.

저 흉악한 마두는 저 건방진 사내에게 과연 어떤 짓을 할 것인가.

-꿀꺽

주련노괴는 예순이 넘은 나이까지 생존한 마인이다.

보통 장수하는 마인은 무공이 아주 고강하든지, 아니면 생존본능이 탁월하기 마련인데 주련노괴의 경우는 당연하게도 후자 쪽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존본능이 소리쳤다.

도망쳐!!

문도 필요 없었다.

주련노괴가 손을 휘둘러 가장 가까운 벽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빠르게 몸을 날렸다. 과연 저 노마가 어떤 짓을 벌일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며 벙쪘다. 마치 당장에라도 중년 사내의 목을 똑 부러트릴 것처럼 벌떡 일어난 백발이 성성한 마두가 바로 줄행랑이라니.

주련노괴를 불렀던 중년인도 이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듯 웃었다.

“큭큭큭,”

그의 몸이 솟구쳤다.

평범해보이던 몸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분출됐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마인들 가운데 누구 하나 고수가 아닌 이는 없었다. 아무리 갑급 명단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해도 절정이다. 절정의 고수를 잡으려는 자가 허접할리는 만무하다. 인급의 마존. 혹은 아슬아슬하게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

하지만 중년의 사내는 달랐다. 그는 인급의 마존에게 ‘거기’라고 부를 만한 자격을 갖췄다.

사내의 마기에 천지간의 기운이 고개를 숙인다.

사람의 몸으로 자연을 내리누른다. 완성된 마공을 넘어선 경지. 지급(地級)의 마존이다. 마인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급의 마존은 비교적 흔하다. 물론 흔하다고 해도 마을 몇 개를 낀 이름 난 산에 하나 있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아주 보기 힘든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지급의 마존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쾅!!

주련노괴가 뚫어둔 구멍이 두 배로 확장됐다.

객잔에 모여있던 마두들이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련 노괴만큼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늙은 생강들이다. 지금이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들 그 자리에 기다려라. 혹시라도 도망간다면······.

저 멀리 떠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객잔전체에 우렁우렁하게 울렸다.

“육합전성!!”

“젠장······. 다들 이대로 저 말을 따를 생각이야?”

”따르지 않으면? 어쩔 생각인가.“

”이대로 뿔뿔히 흩어져 달아난다면······.”

“본존은 포기일세. 괜히 서투르게 달아나봤자······.”

“하지만!!”

“글쎄, 굳이 달아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우리 모두 그 백가 애새끼를 잡으러 온 것 아닌가.”

“지금 저 마기를 보고도 그런 이야기가 나와?”

“세상일이 어디 무공만으로 다 돌아간다던가. 기회를 노려본다면······.”

약간의 소란.

하지만 그 소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중년의 사내가 다시 객잔에 모습을 드러냈다. 봉두난발이 된 주련노괴의 몸에서 핏물이 -뚝뚝 흐른다.

“그러게 본좌가 불렀을 때 조용히 오면 될 것이지. 도망 가긴 왜 도망을 가고 그러나.”

“졔······, 졔셩햡니댜.”

그 짧은 시간 사이 얼굴 곳곳이 부어오르고 앞니를 비롯하여 치아도 몇 개 보이지 않는다. 주련노괴는 탁월한 생존본능과 그 생존본능에 어울리는 경공 실력으로 예순이 넘은 나이까지 마인으로 살아왔음에도 어디 하나 불구가 된 곳이 없던 마두였다. 그런 마두를 이렇게 짧은 시간만에 저렇게 만들어오다니.

“자, 그러면 이야기를 좀 해볼까?”

“녜? 뮤슨?”

“무슨 이야기기는. 지금 네가 할 이야기가 그 백가 꼬맹이 이야기 말고 또 뭐가 있다고. 자 어서 풀어놔 보라고. 여기 다들 궁금한 표정 아닌가.”

* * *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보다 몸은 좀 어떤가? 고작 반나절 운기로 완전히 회복할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던데. 온전하지도 않던 상태로 너무 무리하게 싸운 것 아닌가?”

“그렇게 무리하게 기습하지 않았더라면 더 크게 힘들어졌을 겁니다.”

조유가 망설였다.

힘이 되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말이 입안을 맴돈다. 일류와 절정. 그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참으로 야속했다. 물론 이제는 운호가 절정 가운데서도 특출나게 강력하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자신이 절정의 고수였다면 적어도 적 가운데 하나 정도씩은 붙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것도 쉽지 않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군.”

“짐은요.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그렇게 과감하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소문주께서 뒤처리를 해주실거라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소문주님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어딘가에서 쓰러졌을겁니다.”

“크흠······, 공치사는 이만하고. 관도로 쭉 달렸다면 아마 이백칠십리쯤 남았겠지만, 아쉽게도 산길로 빠진 터라 기껏해야 십 리 남짓밖에 움직이지 못했네.”

반나절 동안 십 리.

고수의 걸음이라기에는 매우 늦다. 설사 사람 하나를 업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길도 없는 산속.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생하셨습니다.”

“공치사는 그만 하자니까. 그보다 반경 삼백 리 정도면 대장군부에서 충분히 나설 만도 한데 이상한 일이군. 마인들이 이토록 준동을 하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니 말이야······.”

“대장군부에도 뭔가 문제가 생긴걸까요?”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지······.”

* * *

“옴마니 반메홈. 사제, 다시 말해보게.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사형, 장난 치실 때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남쪽으로 내려갔던 마구니들이 다시 기어 올라왔다? 그것도 자기들끼리 뭉쳐서?”

“네!! 공출을 올려야 하는 마을에 소식이 끊겨 마랍이 다녀왔는데 아주 초토화가 됐다고 합니다.”

“남쪽 마구니들 짓이 확실한가? 중원의 그 버러지들 짓은 아니고?”

무공의 흔적은 의미가 없다.

곤륜이나 공동의 무공은 마교의 무공과 확실한 차이를 보이지만 청해 대장군부의 경우 절반 이상이 마공을 익혔기 때문이다.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사람들이 죽어있었다고 하니 마구니들 짓이 확실합니다. 중원 것들은 노예로 끌고 가면 끌고 가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학살하지는 않으니까요.”

“반간계일 가능성은?”

“마교의 악적들이 철수한 건 그들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지금에 와서 그런 식의 반간계를 쓸 정도로 영보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소식이 끊긴 마을이 여기 여기 여기 여기입니다.”

노승이 지도에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들은 모두 기련산맥에 맞닿은 마을들이었다. 게다가 그 위치 역시 중구난방. 전략적으로 천고에 쓸모가 없는 위치들이다.

“생각 없이 중구난방인 것이 딱 마구니 놈들 짓 같긴 하군. 알겠네.”

“큰스승님께 말씀을 올리실 겁니까?”

“큰스승님은 지금 전대의 가르침을 수습하기 위하여 폐관에 들어가셨네. 그걸 깨트릴 수는 없지. 일단은 우리 아이들을 움직이도록 하세나.”

“알겠습니다.”

기련산맥은 매우 넓었다. 얼마나 넓었느냐면 그 남쪽 끝은 십만대산에. 그리고 그 북쪽 영역은 청해성. 그리고 서장에 널리 퍼져있을 만큼 넓었다. 덕분에 기련산맥을 따라 올라오던 마인들 가운데 몇몇은 청해성이 아닌 서장의 마을들을 약탈해가며 운호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 마인들을 잡기 위해 서장 포달랍궁의 라마들이 움직임으로써 운호에게 득이 되는 것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교의 마두들이 십만대산쪽으로 이동한 이후, 청해 대장군부의 첩보 역량의 팔 할은 포달랍궁 쪽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그들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다.

“대두마, 흑혈마, 독안혈귀까지?”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쪽 요원들이 얼굴을 알아본 마두가 그들뿐이지 총인원은 열 한명이나 됩니다.”

“그거야 제자들이나 부하들이겠지. 그만한 마두들이 시중드는 놈들도 없이 움직였을리는 만무하잖아.”

“아니요.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걸 어떻게 알지?”

“식사 준비를 대두마와 흑혈마가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철저하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마인들 사이에 잡일이란 결국 약자의 일이다.

그리고 그 말인즉 열한 명이나 되는 마인들 가운데 대두마와 흑혈마같이 이름있는 마인들이 약자들이라는 뜻이었다.

보통 일이 아니다.

“맙소사······.”

“빠르게 병력을 편성해야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하지만······.”

국경 지대에 라마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에 가용 가능한 즉시 전력의 오 할이 국경으로 배치됐다. 물론 예비 병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비 병력이란 어디까지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병력이다.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아니다.

“벌써 마을 세 개가 초토화 됐습니다.”

“끄응······. 알겠네. 내 장군께 얼른 보고를 올려보도록 하지.”

포달랍궁의 라마들.

마인.

청해 대장군부의 병력.

운호와 조유는 여전히 청해대장군부에 도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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