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44화 (144/288)

144화

신검(7)

-운호야 진정해라. 논리의 비약이다. 그자가 꼭 편마라는 확실한 증좌도 없지 않으냐.

파검의 말이 옳다.

걸왕이 아닌 운호를 갑급 명단에 올렸다고 하여 그자가 꼭 편마다? 심각한 비약이다. 그저 운호의 젊음을 높게 평가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시 걸왕의 부상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편마는 이미 죽고 그가 동료들에게 운호의 위험성을 알린 것일수도 있다. 이처럼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운호의 직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자가 바로 편마다.

파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절정 즈음 되면 때때로 직감도 무시할 수 없는 근거가 되긴 하지.

파검의 경우 이미 영혼은 높은 차원으로 사라지고, 그저 생전의 습관(魄)만이 남았기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 생전에 그 반짝이던 영성으로 일궈낸 직감이 얼마나 많은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아니, 잠깐만······. 근데 난 초절정이었는데도 딱히 직감이 제대로 맞았던 적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거랑은 다르죠. 그건 죄다 돈에 눈이 멀어서 그러셨던 거잖아요.’

파검이 입을 다물었다.

조유가 말했다.

“편마? 편마라면 이번 무한 혈사의 그 마인이니······. 확실히 소협이 눈에 들어오긴 들어왔었나 보군.”

새삼스럽게 운호의 위치가 와닿는다.

운호가 물었다.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어쩌기는. 비록 시작은 간자의 음모였지만, 어쨌거나 대장군부까지 안내하기로 약조하지 않았던가. 그 약조는 끝을 내야지.”

“하지만······.”

운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유가 고개를 저었다. 운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마인들이 노리는 것은 운호였다. 그의 곁에 있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겠지.

물론 무공만 따진다면 조유는 운호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되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어디 무공만으로 다 된다던가. 이 근방의 지리도 그렇고, 당장 밤에 번갈아 가면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절정의 고수라고 하여 아예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은 것은 아닐테니.

“어차피 마인들이 준동했으니 대장군부에서도 조만간 움직임이 있을걸세. 아니, 어쩌면 벌써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게다가 내가 소협과 함께 다녔던 것도 이미 알고있는 자들이 있을 거야. 그러니 지금은 괜히 여기서 소협과 떨어지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내 안전에도 더 유리하겠지.”

-멍청한 놈이. 재수도 없는 주제에 멋있는 척하기는.

허점투성이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가 운호와 함께 다녔으니 마인들 가운데 조유를 노리는 이가 나올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운호와 함께 대장군부로 이동하는 것보다 더 위험할 리 만무하다. 전자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운호를 쫓는 마인들과의 싸움이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운호는 굳이 그 허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고생길이 시작됐다.

* * *

-쾅!!

강맹한 장력.

운호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인이 득이양양한 웃음을 보였다.

운호는 허공답보나 천상제를 쓸 수 있는 초절정의 고수도 아니었고, 화산의 부운약표가 절정의 보신경이기는 했지만, 저 곤륜의 운룡대팔식처럼 허공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절학도 아니다.

물론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야말로 최악의 한 수다. 물론 그들이 운호에게 그 최악의 한 수를 강요하기 위해 내줘야 했던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널브러져 꿈틀대는 세 명의 마인들. 그중 하나는 기해혈에 검이 틀어박혀 설사 이 싸움이 그들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회생 불가로 보였다. 저렇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사실 저들 하나하나가 삼십 년 가까이 강호를 횡행한 인급의 마두들이다. 어지간한 소규모문파 정도는 단신으로 쓸어버릴 전력이다. 저 꼬맹이는 그런 마두들 넷을 상대로 여기까지 상황을 끌어낸 것이다. 그것도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막대한 마기가 대기를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앞서 상대했던 마인들보다 반 수 가량 높다. 어쩌면 이번 싸움에서 얻은 것을 잘 갈무리한다면 지마(地魔)에 당도할지도 모르는 대마두다.

허공에 몸을 띄운 운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겪은 싸움만 무려 네 차례. 운호도 그 싸움들을 통해 경험을 숙성시키고 자신의 무공을 정리하는 것으로 제법 성장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성장을 한 것은 바로 ‘정답’ 쪽이었다.

-스르릉

등 뒤의 정답이 자신의 힘으로 뽑혀 나왔다.

운호의 발끝이 검신을 -톡 밟았다. 마인의 눈이 희둥그래졌다.

“어검비행?”

터무니없다.

운호의 경우 신검합일을 통한 여러 가지 깨달음이 경지에 이르렀기에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사실 어검술만 하더라도 절정의 고수에게는 터무니없는 기술이다. 게다가 운호 역시 그 검의 움직이는 범위가 몸 주위 석 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위력 역시 손에 쥐고 휘두르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검 위에 몸을 싣고 검을 타고 날아다닌다? 그야말로 검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검선들이나 할만한 기예다.

그렇기에 당연히 운호가 보여준 것은 어검비행이 아니었다.

-끄응, 어서 움직여라.

아마도 사람의 몸이었다면 얼굴이 시뻘개져서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까? 파검이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뽑아내어 운호의 몸을 감당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긴 힘들다. 허공에서 한 바퀴 몸을 돌린 운호가 정답을 손에 쥐고 다시 땅을 디뎠다.

-후우

기맥이 엉망이다.

벌써 인급의 마두만 몇인지. 통상적으로 인급의 마두는 절정의 고수에 준한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차이는 있지만, 그만큼 인급의 마두는 제법 귀한 자원이다.

헌데 이 무식한 마교놈들은 인급의 마두를 찍어내기라도 했는지 고작 일주야 동안 만났던 인급의 마두들만 벌써 열하나.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이들이 전략적으로 운호를 몰아붙인 것이 아닌 정도를 넘어 그들끼리도 견제하고 경쟁하며 운호를 잡으려 했다는 점이었다.

워낙에 자주 정답을 쥐고 휘둘러서였을까?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하던 검의 무게 균형과 형태가 이제는 제법 익숙했다. 운호가 사용하는 검들, 그러니까 일반적인 중원의 검은 용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검 고동을 중심으로 2촌 이내에 무게중심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답은 달랐다. 고동 위로 무려 5촌. 검날의 사분지 일 지점에 무게중심이 위치한다. 검의 손잡이까지 다 감안 한다면 거의 검 전체의 중심에 무게중심이 있는 셈이다.

찌르기를 배제한 철저하게 베기만을 위한 검. 검의 형상을 한 도끼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아마도 그만큼 과거의 검이기에, 그리고 그 시대에는 감히 막아설 갑옷이 없을 만큼 대단한 검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현재에 그 검을 사용해야 하는 운호로서는 상당히 난감한 부분이었지만.

마기를 휘감은 마인이 쇄도했다.

-우우웅 마치 벌떼가 움직이는 것 같은 소음이 양손에서 울린다. 유형화되기 직전의 기운 덩어리.

정답이 움직였다.

남궁철이 내어준 검처럼 마치 운호 자신의 몸을 휘두르는 것 같은 감각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리 썩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와 합을 맞추는 것에 더 가깝다.

본래라면 삐걱거리고 맞지 않아야 옳다. 합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합공을 펼치는 이들간의 호흡이었으니까.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이가 검으로 천하를 논할 재능의 소유자였으며, 휘둘러지는 검이 이미 검으로 천하를 내려다봤던 절대자의 경험이다.

고집불통의 검이 말했다.

너는 아직 어리고 부족하니 나의 길이 옳다.

운호가 그 마음을 헤아렸다.

그리하여 검의 호흡에 자신의 길을 맞췄다.

그것은 본래 운호 자신이 사용하던 신검합일의 이치와는 정반대였다. 자신의 소우주를 확장하여 검을 부리는 것이 아닌, 타자를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보통의 천재에게는 불가능한 경험이었다.

천재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러하다. 세상 거의 대부분 일에서 그가 옳고 남이 그르다. 하지만 적어도 검술에서만큼은 운호는 이 파검(波劍)이라는 인간의 경험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보여줬던 천하는 그만큼 거대했으니까.

영혼은 떠나가 당시의 영성과 의념, 마음은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생전의 경험뿐.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신의 마기로 대자연조차 굴복시키는 지급의 마인을 눈앞에 뒀다고? 그게 뭐 어쨋단 말인가. 지금 이 검에 깃든 이의 경험은 그들의 수괴조차 물러나게 만든 경험이었거늘.

또한, 검에 깃든 파검 역시 운호가 자신의 의도를 읽고 따라오는 것이 가능함을 믿었다. 각자 자신이 옳다고 믿지만 동시에 상대의 경험과 재능을 신뢰한다.

그렇기에 그 기묘한 합공은 운호가 보통의 검으로 펼치는 신검합이로과는 다른, 하지만 그것 이상의 위력을 품었다.

무게의 중심이 어긋났기에 난감한 검.

하지만 운호의 재능과 오성은 그 난감함조차도 극복의 대상이 아닌 활용의 대상으로 삼았다.

마인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것은 저기 마인의 기해혈에 박힌 검을 휘두르던 당시의 운호였다. 하지만 정답을 휘두르는 운호는 또 달랐다.

그리하여 그것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유형화를 코앞에 둔 마기의 틈.

그 실낱같은 틈새로 ‘정답’이 파고들었다.

마치 도끼와 같은 강맹한 위력. 그리고 속도를 품은 채.

-뻐억!!

그 앞에서는 어마어마한 마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단 일격.

마인의 가슴팍이 완벽하게 함몰되고 심장이 파열된다. 즉사다.

-털썩

운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신이 물에 먹은 솜처럼 노곤하다.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우우웅

파검이 깃든 ‘정답’이 검명을 울렸다.

운호와는 조금 다른 형태겠지만 아마도 그 역시 마찬가지로 탈진한 상태일 것이다. 검명을 울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성이 머릿속에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저기서 조유가 달려왔다.

운호가 멀리서 마인의 기운을 읽자마자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했던 덕분에 합류 자체가 늦었다. 앞선 몇 번의 싸움에 잠시 끼었던 여파 덕분에 그 역시 상태가 그리 온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바닥을 기는 마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운호의 상태보다는 훨씬 양호하다.

그가 자신의 검을 뽑아 아직 명줄이 남아있는 마인들의 목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이미 마인들에 관한 정보는 앞선 이들을 통하여 들을 만큼 들은 이후다. 이들은 현재 운호라는 거대한 포상에 눈이 멀었다. 협력? 그런 것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심지어 이번에 운호를 잡으려던 이 네 명의 마두들마저도 서로서로 경쟁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조유가 운호의 검 두 자루를 모두 챙겼다.

그리고 운호를 들쳐 업고는 관도를 벗어나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익숙했다. 이제 적어도 반나절. 운호가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그의 임무다. 운호가 익힌 심법은 실로 놀라운 구석이 있어 이렇게 등에 업고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도 운기가 가능한 것 같았다. 물론 기운 좋은 곳에 가만히 앉아서 운기 하는 것에 비하면 그 효율은 터무니 없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놀라운 안정성이다.

“이제 대장군부까지 삼백 리도 채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탈진한 운호에게 하는 이야기였을까?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었을까.

조유가 발걸음에 힘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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