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43화 (143/288)

143화

신검(6)

“나의 옹졸함이 오히려 득이 됐다니, 참으로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이군.”

조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었다. 하지만 워낙에 바닥을 열심히 구른 터라 그리 썩 나아지지는 않는다.

-저런 꼴을 하고도 재수 없기가 쉽지는 않은데······.

“나는 중원의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나는 중원사람이 아닌 것 같군. 정정하지. 저 안전한 중원의 중앙에서 자기들끼리 협객 놀이를 하는 자들을 싫어한다.”

중원의 정세는 안정적이지 않다.

남방은 마교가 득세하고 있고, 서방은 서장의 포달랍궁이 북방은 쫒겨난 달자들이 호시탐탐 중원을 노린다.

그렇기에 변방의 사람들은 삶 자체가 투쟁의 연속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중원에서 가장 강대한 무력은 변방의 세력들이 아닌 중원의 호족들이 갖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공을 익히는 데는 많은, 아니. 매우 많은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바로 지금 이 눈앞의 소년이다.

참으로 괴로웠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소년과 친분을 쌓는 것은 매우 큰 이득이다. 고작 약관도 전에 절정에 오른 소년이다. 대체 어느 머저리가 모르겠는가. 앞으로 찬란하게 빛날 이 소년의 미래를.

종염이 은근슬쩍 그에게 길 안내를 핑계로 따라붙으면 친해질 수 있을 거라는 말에 괜히 넘어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호와 이야기를 섞을 때면 이상하게 삐딱해졌다.

“그래, 뭐 어쩌면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지.”

-모르는 게 아니라. 자격지심 맞구만 뭘.

조유가 말을 이어갔다.

“절정······. 정말 강력하구나. 아마 저런 마인이 하나라도 우리 마을에 쳐들어왔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그래, 만약 내가 절정의 무인이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백가촌도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지진 않았겠지······.”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결국 제 놈의 문제를 가지고 너에게 툴툴댔다는 거로구나. 참으로 못난 놈이로고.

그의 얼굴에 고통이 가득했다.

“연인입니까?”

“······.”

그래, 파검의 말이 맞다. 세상에 사정이 없는 사람이 어딨을까.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 사정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때때로 누군가의 사정이 자신의 사정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힘은 언제나 더 큰 힘 앞에 눌리는 법입니다. 또한 중원의 사람이라고 하여 모두 선인(善人)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나름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소문주의 눈에는 그것이 협객 놀이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목숨을 건 사명이었고, 구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경험인가.”

“경험입니다.”

그것에 목숨을 걸었던 것인지, 아니면 구원을 받았던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운호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조유는 여전히 중앙에서 쓸데없이 소비되는 그 힘을 긍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쓸데없는 소비가 저러한 10대의 절정 고수를 만들어 낸 것이라면······.

“그리고······. 이런 힘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입니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이깟 절정의 무위 따위······.”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이미 운호만 하더라도 그가 눈으로 본 사람 가운데 가장 강력한 고수였다. 절정의 고수를 처음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과거 대장군부에서 나왔던 천인장 하나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 역시 절정의 고수였지만 인급의 마인 하나를 상대하기에 급급했다. 헌데 두 명의 마인을 여유롭게 베어내는 경지라니.

그렇기에 조유는 운호가 말하는 절대적인 힘이라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말을 뱉는 그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읽었다.

그리고 그것인 조유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직 약관도 채 되지 않은 소년에게 열등감을 불태우며 대체 무슨 소리를 한 것이란 말인가. 심지어 그 소년은 자신에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거늘. 아니, 어쩌면 저 무위조차도 중앙에서 평온하게 각종 지원을 받아가며 무공을 수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치열한 삶의 흔적일지도 몰랐다.

멍청하구나. 조유.

“소협 미안하오. 사과가 늦었소. 나의 옹졸함도. 내부에 마교의 간자가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 어리석음도.”

그가 고개를 숙였다. 비록 멍청하고 옹졸했지만 비겁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속은 것이 어찌 속은 자의 허물이겠습니까. 속인 자의 잘못이지요.”

운호가 그 가운데 그의 어리석음은 잘못이 아니라 답해주었다.

-흥, 멍청함도 잘못 맞다. 하지만 뭐, 굳이 더 잘못을 따지자면 남의 탓을 하는 옹졸함이 더 큰 잘못이었으니. 그걸 강조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 * *

점혈은 실로 대단한 기술이다.

그것은 결국 내 몸의 진기를 타인의 몸에 밀어 넣어 무공과 행동을 봉하는 기술인데 힘의 크기만으로 따지자면 아무리 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그 힘의 일부를 밀어넣은 것으로 일류 고수가 가진 전체를 압도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점혈은 서푼의 힘으로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혈맥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사람마다 크기와 무게가 다르고 체형이 다른 것처럼 혈도의 위치 또한 미묘하게 달라서 그것을 통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결국 대부분 점혈은 경험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더 오랜 시간 무공을 수련하고, 더 많은 사람을 짚어 본 사람이 더 잘한다.

그런 것을 알기에, 조유는 운호가 펼치는 검기 점혈의 기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툭툭툭

운호의 검극이 종염의 몸을 두들겼다.

반야검. 명현식의 응용이었다.

비록 명현신니처럼 의념으로 초절정 고수의 무공을 봉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수의 혈을 짚는 정도는 가능하다. 보통은 경험으로 이뤄지는 귀납 영역조차 운호에게는 학습을 통한 연역으로 가능한 덕분이다. 사람의 크기, 근육의 형상, 뼈의 위치.

날카로운 검극이 몸을 찔렀음에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유는 운호가 가진 무공의 고강함을 한번 더 깨달았다.

대체 저런 고수가 말하는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란 무엇일까?

종염이 신음성과 함께 눈을 떴다.

“황씨 형제는?”

“죽었다.”

“젠장······.”

종염이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독을 먹이지 못했다고 해도 인급의 마인 둘을 단번에 베어내는 실력이라니. 고작 약관도 되지 못한 나이에 절정의 무위로 갑급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다.

“마교의 무리들이 청해에 얼마나 침투해있는거지?”

“살려줄 건가?”

종염이 비릿하게 웃었다.

-저 새끼 저거? 야, 운호야. 일단 한 대 때리고 시작하자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건 네가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

-뿌득

운호가 아니었다.

조유의 발길질이 녀석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뭉갰다.

“으아아아악!!”

“아, 미안하군. 표정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만.”

“이······, 이 빌어먹을 놈이 감히? 쾌찬문 따위. 공조현 따위. 내가 헛기침 한 번만 하면 그대로 날아간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뿌드득

“끄아악!! 이 개자식이!!”

이번에는 약지다.

“그러는 너는 지금 상황에서 그딴 말을 하고도 네가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뭐, 역시 변방에서 뛰는 녀석이라 그런지 행동 하나는 제법 시원하구나.

파검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유가 운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에게 맡겨주지 않겠나? 아, 물론 중앙, 혹은 소협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네. 그저 내가 이런 것을 아주 특별히 잘하는 편인지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아, 그리고 혹시라도 대장군부에 꼭 살려서 데려가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아직 거리가 조금 남아서 그때까지 명줄을 붙여두려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소문주님 편한 대로 하십쇼.”

“말이 통해서 좋군.”

조유가 종염의 뭉개진 왼손을 움켜쥐었다.

특별한 전조도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움직임. 종염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면 편히 쉬고 있게나.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으니.”

어째서인지 운호는 냉막함 그 자체에서 변화하지 않은 조유의 얼굴에 웃음이 매달려있다고 느꼈다.

* * *

“골치 아프게 됐군.”

조유가 숲속에서 피로 물든 손을 털고 나오며 고개를 흔들었다.

“소협이 거물은 거물인가 보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남쪽 십만대산의 마두들이 기련산맥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고 하더군.”

“마두들이 올라오고 있다고요?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최근 십만대산에 마기가 성하여 기련산맥의 마두들도 그곳으로 내려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그랬었지. 덕분에 청해성 남부가 한동안 평안을 되찾았었고.”

“헌데?”

조유가 답했다.

“갑급 명단이라고 하더군.”

“갑급 명단이요?”

“그래, 갑급 명단. 일종의 현상금인데. 그 포상이 우리로 치자면 과거 장원 급제에 대환단 수여 정도 될 것 같더군.”

“헌데 그게 저랑 무슨?”

“소협 이름이 거기에 올라갔다고 하더군. 그들 말에 의하자면 초절정 고수가 아닌 사람 가운데는 황제, 무당파 장문인을 제외하면 소협이 유일하다는구만. 심지어 천무십칠성 가운데도 태반이 갑급이 아닌 을급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고 하더군.”

“네?”

파검이 감탄했다.

-크, 그렇지!! 그 정도는 돼야지. 마교 놈들. 역시 뭘 좀 알긴 아는구나.

“아니, 거기에 제가 대체 왜?”

“그거야 내가 묻고 싶은 이야기라네. 대체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기에······. 그 뭐라드라? 프라······, 프라타파나? 하여간 마교의 제사장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소협을 갑급 명단에 올렸다고 하더군. 혹시 아는 사람인가?”

“마교의 제사장이라면······.”

분명 프라타파나라는 이름 자체는 처음이다. 그런 기상천외한 이름이라면 기억에서 잊었을리 없으니 분명하다.

하지만 마교의 제사장이라면 집히는 구석이 없지는 않다.

무한에서의 혈사 당시 대제사장을 따라왔던 천급의 마인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운호의 생각이 이어졌다.

당시 그 자리에서 살아나간 자들이 누구인가.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마교의 제사장은 총 셋. 그들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혹시 이번에 갑급 명단에 저 말고 걸왕 어른도 오르셨답니까?”

“글쎄······. 그 제사장이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것은 소협이라고 했는데. 걸왕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나오지 않았네.”

마교의 대제사장과 손을 나눴던 고수는 운호만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들 가운데 운호는 가장 젊긴 했지만, 가장 미미했다. 결정적인 활약을 보이기는 했지만, 총체적인 활약으로 따지자면 걸왕 쪽이 더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걸왕보다 운호를 더 위협적인 적으로 생각할까?

답은 쉽다. 운호의 몸에 천중일검 목운평이 머무는 것을 알고 있는 자. 운호가 몽원경의 주인임을 아는 자.

마교의 대제사장. 혹은 가장 먼저 운호의 정체를 꿰뚫어봤던 인물.

-으드득

“편마. 역시 살아 있었구나.”

바로 남궁혜의 목숨을 앗아간 그 마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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