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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42화 (142/288)
  • 142화

    신검(5)

    손에 전해지는 감각이 좋지 못하다.

    정답은 이천 년 묵은 검치고는 괜찮았지만, 어디까지나 이천 년 묵은 검 치고다. 조금 전까지 손에 쥐고 있던 금자 기백냥짜리 최신의 명검과 비교하면 구닥다리다.

    명공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속담과 달리 명공일수록 본래 도구를 가린다. 화룡점정의 완성은 어디까지나 그 약간의 차이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명공은 싸구려 도구를 들고도 일정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명공이다.

    운호 역시 그러하다.

    황이의 몸이 절반쯤 쩍 갈라졌다.

    약간의 아쉬움.

    만약 신검합일이 이뤄졌더라면 이 일검에 마인 하나를 양단할 수 있었을 텐데.

    -얕다. 거기서는 허리를 조금 더 돌렸어야지.

    ‘정답’은 그야말로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신검(神劍).

    신검합일이란 검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인데, 이는 검을 신체의 일부처럼 만들던지, 아니면 몸을 검과 같이 만드는 경지를 말한다. 운호의 신검합일은 전자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을 사용하기에 이 빌어먹을 검의 자아는 너무 강력했다.

    운호가 허공에 집어 던진 정답이 다시 등의 검집으로 쏙 들어간다. 그리고 황일의 어깨를 꿰뚫은 보검이 손에 쑥 들어왔다.

    눈치를 보던 종염이 빠르게 등을 돌렸다. 눈치가 빠르고 선택이 신속하다. 뭐, 그런 것이 있었으니 그토록 오랜 시간 마교의 간자로 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겠지.

    전력으로 도주하는 녀석에게서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마공을 숨기는 단약을 섭취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운호의 감각에 걸렸을 테니까. 덕분에 어려웠다. 종염과 조유 가운데 누가 저 마인들과 한패인지, 아니면 저 마인들을 만난 것이 그저 우연인지를 알아내기가 말이다.

    일류에 턱걸이나 할법한 무위에 비해 경공이 제법이다. 쭉쭉 나아가는 모습이 날래다. 운호의 감각이 왼팔이 뼈까지 잘려 나가고 오른쪽 어깨가 뚫린 황일과 허리가 반쯤 갈라진 황이를 훑었다.

    이들을 완전히 정리한 이후라면 늦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일자 몸이 움직였다. 운호의 몸이 번개처럼 쏘아진다. 목표는 저 마공을 익히지 않은 마인 종염. 아니, 마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마인이라 부르기도 힘들다. 그러니 그저 마교의 무인이라고 해야 할까?

    크게 부상 입은 마인들이 운호를 따라오는 대신 조유를 선택했다.

    꾸물거리는 살덩이들을 보아하니 대부분 마인들이 그렇듯 불사계통의 마공을 익힌 마인들이 분명하다. 불가계통 무공에서 시작된 금강불괴를 저열하게 따라한 최악의 마공. 인간의 육(肉)을 섭취하여 자신의 몸을 회복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육(肉)에 포함된 백(魄)을 섭취하는 것이다. 누덕누덕 기워져 오염된 백은 처음의 모습을 잃어버리지만, 당장에 어마어마한 회복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조유를 택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조유의 육과 백을 섭취하여 파괴된 육체를 수복한다.

    인급의 마두라 함은 절정에 준한다. 반면 조유의 수준은 한 걸음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일류. 평생 동안 그 한 걸음을 넘지 못하는 이가 태반임을 생각하면 일류의 끄트머리 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를 버리고 종염을 향해 달려가는 운호를 원망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놨을 때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급박한 상황은 사람의 염치를 뺏어가는 법이니까.

    부상 당한 두 명의 마두를 바라보며 조유가 칼을 들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결국 모두가 자신의 잘못이다.

    아랫사람이 어찌하여 아랫사람이며 윗사람은 어찌하여 윗사람이던가. 권한이 있으면 책임도 함께 하는 법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황염이 마교의 간자임을 미리 간파하지 못한 자신의 실책이다.

    심지어 간자의 꼬임에 넘어가기까지 했으니······.

    그의 현조부(玄祖父)이셨던 단심쾌도협 조찬은 절정의 고수였다.

    비록 주변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감숙성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곳 청해에 뿌리를 내릴만한 고수였음은 분명하다. 그가 남긴 조가도법은 분명 절정으로 가는 길이 담겨있을 것이다. 4대 연속 아무도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은 후손들의 자질 문제일뿐이다. 그렇기에 다시 절정에 올라 가문을 부흥할 인재는 오직 조유 자신뿐이다. 적어도 조유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부상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인급의 마두들이다.

    그 풍기는 기세가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렇기에 감히 경시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여 조가도법의 절초를 펼쳐낸다.

    작정을 하고 몸을 단단히 했다.

    전신의 기를 모아 오직 일격에!! 각오를 다진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우연하게도 운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운호의 손이 종염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버둥거리는 종염.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치 세 살짜리 아이를 제압하는 것처럼 가볍게 몸의 구석구석을 검극으로 툭툭 두들겼다. 신기하게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음에도 버둥거리던 종염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종염은 조유 자신과 고작 반수 차이의 고수다.

    아니, 마교의 간자였으니 어쩌면 그 실력 조차 조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헌데 그런 고수를 저렇게 가볍게?

    그리고 그 장면이 조유의 목숨을 살렸다.

    마두들을 상대로 목숨을 건 절초를 펼쳐내려던 마음을 거뒀다. 크게 도를 휘둘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일이 어깨로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우드득

    제대로 펼쳐내면 아름드리나무도 일격에 분쇄하는 조가도법의 절초다. 하지만 이미 도망칠 결심을 굳혀 그 위력이 감소해서였을까? 아니, 설사 제대로 펼쳐냈다고 해도 황일을 저지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조유의 공격은 운호가 마치 무 자르듯 잘라내던 황일의 어깨 근섬유를 채 몇가닥도 잘라내지 못했다.

    -부웅

    황일의 공격이 조유의 가슴팍을 스쳤다. -투두둑, 손끝에 걸린 옷감이 찢겨나갔다. 운호가 뚫어놓은 어깨가 아팠는지 황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손으로 내장이 흘러나오는 옆구리를 움켜쥔 황이가 조유를 압박해온다.

    -쾅!!

    조유가 크게 몸을 뒤틀어 간신히 그 공격을 피해냈다. 허공을 두들긴 주먹에서 마치 대포알과 같은 굉음이 울렸다. 제대로 침을 삼킬 시간도 없었다. 이들을 상대하고 있자니 운호의 강함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새삼 느껴졌다.

    저 어린아이가 이런 괴물 둘을 그렇게까지 몰아붙였다니.

    비틀거리는 조유의 복부를 향해 통나무 같은 황일의 다리가 쇄도했다.

    자세를 바로잡을 틈도 없었다. 그대로 조유가 뒤로 몸을 날렸다. 나려타곤(懶驢打滾). 게으른 당나귀가 바닥을 구르는 것과 같은 굴욕적인 신법이다. 저 중앙의 떵떵거리는 명문 가운데는 나려타곤을 펼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자들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중앙도, 명문도 아닌 조유는 조금 달랐다. 세상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보통이라면 비웃음으로 상대를 격동시켰겠지만, 지금은 황일, 황이 형제에게도 그럴 시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멍청한 종염 녀석이 제대로 도망조차 치지 못한 덕분이다.

    사신과 같은 고수가 매서운 기세로 날 듯 달려오고 있다. 그전에 몸을 회복해야한다. 만전의 상태로 다시 맞붙는다고 해도 승률은 오 할을 넘기기 어렵다. 하물며 지금의 상태라면?

    조유를 쫓는 손과 발이 바빠졌다.

    ‘가능합니까?’

    -흐음, 굳이? 고작 저런 녀석 목숨 구해주자고? 저 자식 평소에 영 마음에 안 들었었잖아.

    ‘능력이 안 되는 것까지 오지랖을 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능력이 된다면······. 어지간하면 협객과 같았으면 한다고 그랬습니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그냥 그런 게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능합니까? 여전히?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명색의 우화등선까지 하신 천재 파검의 백(魄)께서?’

    -흥, 네 놈이 여길 와 봐야 그런 소리가 안 나오지. 이건 애초에 사람이 머물라고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신이 머물만한 공간이야.

    ‘그래서요?’

    -하지만 나 파검. 천하(天下)를 논하던 절대의 무인. 신(神)이라고 해봤자 결국 나보다 조금 먼저 등선한 사람 아니더냐.

    충분하다는 말조차 참으로 길게 한다.

    -스르릉

    등 뒤의 ‘정답’이 아주 약간 스스로 뽑혀 나왔다. 운호의 기예가 아니었다.

    그리고 크게 세 걸음. 달리던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기어검은 아니었다. 파검의 백이 머무는 이 기이한 검과 운호는 통(通)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 검의 궤도는 운호의 마음과는 무관했다.

    그러니 이것은 비검술(飛劍術), 혹은 투검술(投劍術)이라 함이 옳았다.

    운호의 손끝에서 ‘정답’이 벼락처럼 날았다.

    처음 검을 뿌리는 운호를 바라보며 황일도 황이도 모두 그 검을 피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 이기어검은 놀라운 기예지만 어쨌거나 몸을 떠난 검은 쥐고 휘두르는 것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의외성을 제외한다면 저렇게 날린 검은 손을 떠나는 시점에 가장 빠르고, 점점 느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정답’의 궤도는 조금 달랐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 같았다. 달리기 시작한 생물이 조금씩 가속을 높여가며 절정에 다다르는 것처럼. 운호의 손을 떠난 정답이 ‘가속’했다.

    황일과 황이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쾅!!!

    황일은 간발의 차로 그 검을 피해냈다.

    가슴이 길게 쩍 갈라졌지만 그래 봐야 서푼의 깊이. 불사의 마공을 익힌 그에게는 몇 식경이면 회복될 상처에 불과하다. 심지어 누군가의 육을 섭취한다면 숨 한 번 쉴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황이는 상황이 달랐다.

    이미 옆구리가 쩍 갈라져 있던 그는 황일보다 반응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둘째야!!”

    답은 없었다.

    당연하다. 사람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입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운호가 집어던진 ‘정답’은 마치 포탄처럼 황이의 하악골 위, 상악골과 전두골을 통째로 박살을 내버렸다. 아래턱 위로 남은 것이 없는 처참한 얼굴. 이래서야 불사의 마공이고 뭐고 즉사다.

    황일이 분노로 가득찬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분노로 각성하여 커다란 힘을 얻는 이야기는 저자의 기환담으로 충분했다. 한쪽 팔이 박살나고 반대쪽 어깨도 박살난 마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끄럽다.”

    -서걱

    운호의 검이 황일의 목을 갈랐다.

    어차피 상황을 설명할 입은 하나 살려두었다. 굳이 마인들을 살려둘 이유는 없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살점을 먹고 무공을 키워온 괴물들을 말이다.

    나려타곤을 펼치느라 바닥을 열심히 굴러 흙투성이에 엉망진창이 된 조유가 운호를 올려다봤다.

    “황씨 형제가 마인인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던 것은 나와 종염을 의심했기 때문인가?”

    “네, 밥 한끼라면 몰라도. 소문주가 직접 길안내라니. 아무리 제가 화산파 소속이라고 해도, 섬서라면 모를까 이곳 청해에서 받기에는 너무 과한 대접이었죠.”

    “의심이 많군.”

    “잔소리 좋아하는 어떤 분께서 매일 귀에다 대고 떠들어주신 덕분이죠.”

    -이놈이?

    “그래서 내가 차를 진짜 마시는지를 지켜본 것인가?”

    “그보다는 종염이 술을 진짜 포기하는 지를 지켜본 겁니다.”

    “나보다는 종염을 의심했다 이거군.”

    “네, 소문주님은 음흉한 속셈을 품은 사람치고는 제게 너무 날을 세우셨거든요.”

    조유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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