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신검(2)
“조가야. 너 그 소식 들었냐?”
“소식?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거야? 무슨 소식이길래 그렇게 호들갑이야.”
“교에서 이번에 갑급 명단에 새로운 이름이 하나 올라왔다.”
“에휴, 난 또 뭐라고. 갑급 명단이면 황제, 광서 대장군, 소림, 무당, 점창 장문인. 낙일검. 하나같이 우리 같은 졸자들이랑은 인연이 먼 사람들이잖아. 뭐 새롭게 이름이 올라갔다고 해봐야 어떤 초절정 고수가 또 뭔가 교에 위협적인 일을 한 정도겠지.”
“조가야, 내가 그런 녀석이면 이렇게 나서서 이야기 할 리가 없지. 소신검(小神劍). 소신검이 명단에 올라왔다.”
“소신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별호인데······. 잠깐만. 소신검이면 설마?”
“그래!! 그 화산파의 어린놈 말이다. 이제 막 절정에 발을 디뎠다는.”
조가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잘못된 거 아니야? 교에서 고작 절정을 갑급 명단에 올렸다고?”
“그래!! 그렇다니까.”
“아니, 아무리 어린 나이에 절정에 올랐다고 해도 그렇지······.”
그들의 반응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수백 년의 역사를 둘러본다고 해도 마교가 갑급 명단에 초절정이 아닌 이의 이름을 올린 경우는 흔치 않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황제나 대문파의 수장과 같은 세력의 주인들이다. 심지어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마교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았다면 갑급 명단까진 올라가지 않는다.
“그게 프라타파나께서 깨어나시자마자 하신 일이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그 날 뭔가를 보신 거겠지.”
“제사장님께서 드디어 깨어나신 건가?”
“그래. 드디어. 무려 팔 개월 만에. 그 소림 중놈의 항마기가 워낙에 독했던 터라 바이샤쟈구르님께서도 크게 고생하셨다더라.”
“근데 그러면 그 소신검이라는 아이를 잡아도 본래 갑급 명단의 악적들을 제거했을 때 받는 포상을 다 받을 수 있는 건가?”
“당연하지. 원영단. 천급의 무공.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존자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는 권리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 주어진다고.”
조가가 마음이 동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화산파 소속이잖아. 게다가 아직 어린놈이고. 화산에 꼭꼭 틀어박힌 놈을 우리가 어떻게 처리한단 말이야.”
“쯧쯧쯧, 그런 일이었으면 내가 찾아오지도 않았지. 확실한 소식에 의하면 그 녀석 청해쪽으로 갔다고 하더라.”
“청해? 청해라면······. 끄응. 그것도 조금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로군. 거긴 포달랍궁의 미친놈들이 설치는 곳이잖아.”
“하지만 그래도 섬서성에 틀어박힌 것보다는 낫지. 게다가 잘 생각해보라고. 우리가 대체 언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겠어. 안 그래?”
“하긴, 갑급이라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가치가 있긴 하지.”
십만대산.
그 광대한 권역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마인들.
중원 무림의 무인들이 모두 구파와 칠대세가의 무인이 아닌 것처럼 이곳의 마인들 역시 모두가 중원에서 말하는 마교의 마인들인 것은 아니었다.
또한, 중원 무인들이 구파와 칠대세가를 선망하는 것처럼, 이곳의 마인들 역시 마교를 선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갑급 명단에 이름을 올린 운호는 매우 탐나는 먹잇감. 아니 어떻게 보면 기연 그 자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마공의 성취에 자신이 있었지만 교단에 오르지 못했던 마인들.
혹은 십만 대산이 아닌 기련 산맥 남단에 머무르는 마인들.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리들이 삼삼오오 청해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후, 역시 이 녀석도 이제 한계인가 보네요.”
-애당초 혈통도 좋지 않은 싸구려였다. 이만큼이나 버틴 것도 용한 것이지.
“슬슬 돈도 떨어져 가고······. 이래서야 이제 다음 마을부터는 걸어 다녀야겠는데요?”
-화산파도 참으로 쪼잔하군. 이왕 줄 거면 좀 넉넉하게 줄 것이지. 그나저나 이렇게 된 거 번화가에 가서 종잣돈만 조금 만들어다가 불려보는 건 어떠냐? 강호를 떠돌면서 돈 걱정 하는 것만큼 궁상맞은 것이 또 없다. 물론 너야 어차피 입에 넣는 거라고는 그 끔찍한 벽곡단 뿐이라지만, 어디 강호의 도락이 먹는 것 뿐이라더냐.
“됐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돈에 관해서는 어르신 말 절대 안 듣습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어르신 수제자가 지금 왜 북경에서 조충 대인 밑에서 구르고 있는지?”
-흥, 과거도 치르지 않고 금의위 교위면 그 녀석 깜냥을 생각하면 출세한 거지.
북경에서 청해까지 잘 닦인 길로 이동한다고 했을 때 거리는 약 일만 리. 지형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달린다면 그보다 조금 짧을 수는 있겠지만 그거야 작고한 태을검선처럼 검을 타고 날아다니거나 저기 화산의 권신처럼 능공허도로 날아다니는 양반들이나 하는 짓이고,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높은 산은 돌아 가고, 깊은 물은 피해 가야 하니 그 일만 리를 꼬박 달려야 했다.
무엇보다 절정 고수인 운호야 그럭저럭 버틴다고 하더라도 짐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중간중간 운호를 태우기까지 해야 하는 말들은 그 강행군을 쉽게 버티지 못했는데, 그럴 때마다 운호는 마을에 들러 병약해진 말에 약간의 은전을 얹어 새로운 말을 구매했었는데 말이라는 것이 원체 비싼 동물이다 보니 이제는 그럴 돈도 똑 떨어져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중원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섬서를 넘어 이제는 외곽이라고 할 수 있는 감숙까지 지나 이미 청해성의 초입에 이르렀다는 점이었다.
약 팔백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땅은 본래 제국의 땅이 아닌 독립된 국가였다.
하지만 당시 황제였던 양제가 이 땅을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킨 이후 청해성은 줄곧 제국 영토의 서쪽 끝으로 존재해왔다.
그리고 변방의 국경지대가 다들 그렇듯 중앙에 비하자면 그 성세가 참으로 부족했는데 이는 청해성이 매우 높은 고원지대로 사람이 살기 썩 좋은 땅이 아니라는 점 역시 한 몫 거들었다.
“슬슬 마을이 나올 때가 됐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국의 행정력이란 실로 대단하여 최소한의 관도라는 것이 꾸준히 유지됐는데 덕분에 관도 인근으로는 적어도 하루 거리 이내에 마을이 하나 둘 씩은 존재했다.
-저기 마을이다.
운호가 감지하기 직전.
파검이 한발 빠르게 저 먼 마을을 감지했다.
약 두 달에 가까운 여정 동안 ‘정답’안에 갇힌 파검은 정말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물론 그 발전이라는 것이 주로 검명 없이 떠들기에 집중되긴 했지만 이처럼 주변을 감각하는 능력은 거의 운호에 필적할 만큼 예리해졌다.
약 오백 호는 되어 보이는 제법 큰 마을.
청해성에서 이 정도면 마을이라기보다는 현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규모다. 실제로 마을 주변으로는 둥글게 목책이 설치되어있었는데 이것 역시 중원 내륙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경이었다. 실제로 목책에는 군데군데 패인 흔적도 보이는 것이 이곳이 국경 지대에 가까운 곳이기는 가까운 곳이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목책 위로는 작은 망루도 설치되어있었는데 그곳에 서 있던 건장한 텁석부리 사내가 운호를 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정지!! 누구냐!!”
“무림인입니다. 청해대장군부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 가려합니다.”
“호패는?”
-휙
운호가 가볍게 던진 호패가 망루에 있던 사내 앞으로 정확히 날아갔다. 무공을 익힌 낭인이야 흔하다지만 이만한 기예를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이는 드물다. 하물며 운호의 얼굴은 누가 봐도 이제 갓 약관이 될까 말까 한 얼굴이었으니 호패를 받아든 사내가 사뭇 놀랐다.
“섬서성에서 온 백운호?”
사내가 잠시 생각했다.
소신검이라는 별호는 매우 유명했지만, 정작 백운호라는 이름은 소신검이라는 별호에 비하자면 그리 널리 퍼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렇게 어린 나이. 그리고 섬서성이 결합되면 소신검을 떠올리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소신검? 맙소사!!”
텁석부리가 화들짝 놀라 목책의 문을 열어젖혔다.
“호패 여깄습니다. 아니, 진작에 말씀을 해주셨으면 이리 번거로울 일도 없었을 터인데.”
-흐음, 뭐지 이 반응은? 운호 너 여기서 제법 유명한가 본데?
“저를 아십니까?”
“당연하지요. 어찌 소신검을 모르겠습니까. 이미 대장군부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아무래도 길이 엇갈린 모양입니다만, 대장군부의 사람들이 본문에도 일러두고 갔으니 그곳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본문이요?”
“네, 쾌찬문이라고 이곳 공조현의 방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연.
현재 중원 중심부의 호족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에 가깝다면 외곽으로 갈수록 본래 호족의 개념인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까지 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니, 이곳 공조현 역시 그런 곳 중 하나인 듯싶었다.
텁석부리의 무공 수준을 보아하니 이류를 살짝 넘겨 일류의 문턱 즈음 되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운호가 만난 사람들이 워낙에 쟁쟁한 거대 문파였기에 매우 부족해 보였지만 당장 얼마 전 패배한 개처럼 떠돌던 해룡방만 하더라도 사실 절강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문파였다. 일류 즈음 되면 꽤 대단한 고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이 길을 따라 마을 중앙으로 가면 가장 큰 건물이 보일 겁니다. 아, 아니지. 그냥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이리 오시죠.”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 까지는······.”
“아닙니다. 어차피 감숙 쪽에서 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중요한 손님을 안내하는 일이라면, 저기 종규 놈에게 잠시 맡겨두고 다녀와도 문주님도 탓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텁석부리가 운호를 대신하여 말고삐를 쥐고는 앞장서서 마을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오늘 하루 이곳에 머무르고 바로 떠날 운호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기에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지만.
쾌찬문(快燦門)
“이곳입니다.”
-호오, 이 정도면 변방이라고 해도 상당하구나.
파검의 감탄처럼 건물의 규모는 상당히 거대했다. 텁석부리는 이곳에서도 제법 높은 사람이었는지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며 거침없이 운호를 문파 깊숙한 곳까지 안내했다.
“종염. 서문의 번을 서야 할 자가 문 내에는 어쩐 일이냐.”
그런 그의 걸음이 막힌 것은 어느 냉막한 인상의 사내 앞에서였다.
종염이라는 이름의 텁석부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소문주님. 다름이 아니라 화산파의 소신검이라고 얼마 전 청해대장군부에서 찾던 손님 있잖습니까. 그분께서 방문을 해주셔서 제가 직접 모셔오던 참이었습니다.”
“소신검?”
사내의 눈이 운호를 훑었다.
“화산파의 백운호라고 합니다.”
“쾌찬문의 소문주인 조유입니다. 쾌찬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부터는 제가 안내를 드리도록 하죠. 종염, 너는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거라.”
어지간히 넉살이 좋은 것 같던 텁석부리 사내가 조유의 명령에 군소리 없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흐음, 어째 눈빛이 영 마음에 안 드는구나.
‘곧바로 도박장으로 가지 못해서 심통이 나신 건 아니고요?’
-이놈이? 나를 대체 어떻게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