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37화 (137/288)

137화

보물(22)

북경으로 가는 길.

올 때는 운호와 강아현 단둘이었던 일행이 많이 늘었다. 해랑검 공조, 그리고 혹참가포 조충을 비롯한 금의위 무사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거기서 파검 대협이 ‘이제야 알겠다. 그런데 여전히 모르겠군.’이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모든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아니겠습니까?”

“역시 우화등선을 했다고 하더니, 도가에도 깊은 조예가 있던 모양이로구나.”

혹참가포 조충이 운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해랑검 공조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사부가 정말 그랬다고?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여간, 제자라는 놈 쌔빠지게 키워놨더니. 참으로 쓸모가 없구나.

사실 현재 강호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역시 파검 좌부원의 우화등선이었다. 그리고 운호는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본 사람 중 하나이고. 사람들이 궁금해할만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파검 좌부원의 수제자인 해랑검 공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부의 영웅적인 죽음에 관하여 강호에 떠도는 소문은 많았지만, 강호의 소문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러하듯 한 다리만 건너면 터무니없이 부풀려지기 마련인지라 아무래도 운호를 통하여 듣는 파검에 관한 이야기는 몹시 새로웠다.

운호가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곳의 행사는 구파와 칠대세가의 행사였고 개방과 해룡방은 굳이 끝까지 싸워야 하는 의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걸왕 대협은 무신 대협과의 약조를 위하여, 그리고 파검 대협은 강호의 도의를 위하여 마지막까지 마교의 수괴와 맞서 싸우셨습니다.”

“맙소사. 강호의 무뢰한들 가운데도 그런 이가 있었다니. 그야말로 실로 대협의 풍모로구나.”

“그러게요. 파검에 관한 뜬소문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강호의 소문이라는 것이 참으로 믿을 것이 못된다는 이야기가 참말인 듯합니다.”

물론 운호의 그런 이야기들은 파검 좌부원이 남긴 거대한 똥으로 인하여 건물과 땅을 모조리 뺏기고 모진 강호에 나와 그런 쌩고생을 한 해랑검 공조 입장에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게다가 운호의 입에서 나오는 좌부원에 관한 이야기는 평소 사문에서 보여주던 그의 모습과는 매우 큰 괴리도 존재했다.

“이상하다······.”

그렇기에 공조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그저 ‘이상하다.’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혹참가포 조충이 입을 열었다.

“고래로 영웅들은 집안에서는 한심한 꼴을 보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 아마 파검 대협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범인은 영웅의 웅지를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니까.”

-저 녀석. 알고 보니 꽤 좋은 녀석이었구나.

운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건 파검과 함께 할 예정이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는 파검이라는 사람이 더 신비롭고 더 훌륭한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파검이 마지막까지 싸움을 이어나갔던 것이, 반쯤은 강한 상대에 대한 호승심.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무림맹의 승리에 가문의 자산을 홀라당 걸어버린 탓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파검에 대한 칭찬을 이어나가자니 그야말로 곤욕 그 자체다.

“영웅의 웅지······.”

하지만 공조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는 파검 좌부원이라는 사람을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음에도 조충이 말한 ‘영웅의 웅지’라는 단어에 홀라당 넘어갔다.

사람은 본래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준 사부가 날건달이라는 말 보다는 사실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영웅이었다. 라는 것이 그에게는 더 믿고 싶은 사실이었겠지.

-믿고 싶은 사실이라니!!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무림은!!

‘네, 네. 압니다. 와장창 됐겠죠. 아무래도 그 마교의 대제사장이라는 작자. 정상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요.’

그의 심상 속에 존재하던 그 거대한 용화수.

아니, 그것은 단순히 거대하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었다. 마음의 검을 세우고 심지어 한 차원 위의 세상으로 떠난 파검조차 가를 수 없었던 압도적인 규모를 단순히 거대하다는 말로 퉁 칠 수는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것도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몽원경의 주인이었던 천중일검 목운평이 두서없이 흘렸던 말로 유추해보자면 150년 전, 천중일검 목운평은 당시 파검보다 더 대단한 무위를 발휘했음에도 그를 지금까지 묶어놓는 것에 그쳤다.

과연 가능할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연달아 찾아왔던 증무진인 목운평과 파검 좌부원. 운호는 그 만남들에서 강한 천명(天命)을 느꼈다. 그것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야 한다는 강력한 의무감이기도 했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너만한 나이에 나와 같은 스승을 만났다면 가능했을 테니까.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어르신은 스승으로는 영 엉망인 것 같단 말이죠.’

운호의 시선이 힐끔 해랑검 공조에게 향했다.

확실히 파검의 명성을 생각하자면 매우 부족하다. 심지어 저것도 그가 받았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취다.

-크흠······. 그거야 달마가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혜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장삼봉이 이름을 떨쳤던 것도 칠대 제자가 있었기 때문 아니더냐.

‘뭐, 그렇다고 해두죠.’

운호가 파검의 이야기를 한귀로 흘려 보냈다.

파검의 교습 능력과는 별개로 이번 싸움을 통하여 운호가 얻은 것은 적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위험한 순간들 투성이었다. 무엇보다 명현 신니가 아니었다면 운호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거니와 저기서 웃고있는 아현이의 목숨까지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아찔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한 지금. 운호는 명현신니가 전수한 반야검 명현식 외에도 본래 궁구하던 난풍검에 상당한 진전을 얻을 수 있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정답은 실전에 있다.

운호가 자신의 다음 목적지를 결심했다.

* * *

“참으로 멍청한 선택들을 했더구나.”

“공공!! 죄송합니다!! 소인이 미욱하여. 하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파검의 무공은 구해오도록 하겠습니다!!”

오혁이 넙죽 자리에 업드렸다.

비록 최태감의 후계자 소리를 들을 만큼 가까이에서 최태감을 모시는 그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그런 평가를 받았던 소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그리고 그들 가운데 지금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는 이가 몇이나 되는지를 말이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구나. 쯧쯧쯧. 참으로 영민하던 아이가 대체 어찌 이리 된 것인지.”

“아닙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잘 들어라. 너는 조충이 어째서 이번 일에 훼방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거야 그 작자가 금의위 대총관 자리를 놓친 것을 두고 감히 태감께 앙심을 품고······.”

“여전히 헛소리하는구나. 녀석은 나에게 쓸모를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내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으니 자신을 써달라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 그런······.”

“그러니 어차피 파검의 무공은 나에게 오게 돼 있다. 내가 화가 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나의 무공’이 쓸데없이 여러 놈들에게 공유가 된다는 점이지.”

오혁이 머리를 굴렸다.

대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

“태감 나으리. 북진 총관 조충과 그 부관이 태감 나으리를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받고 사흘.

며칠에 걸쳐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이상했던 점은 그 과정에서 최염이 그를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혁은 그 정도로 은밀하게 일이 진행됐다고 믿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저 그에게 아직 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최염은 그저 조충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시기에 맞춰 자신을 소환한 것이고.

납작 업드린 오혁의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최공공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간 참으로 여러 번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고 싶었는데 이제야 뵙는군요.”

“하하, 산직(散職)에 있는 나야 어디 바쁠 게 있겠냐마는 실직(實職)에 있는 자네야 워낙에 바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 다 이해하네.”

“이해해주신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과의 만남을 거부해왔던 최염이 그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 조충 자신의 성의가 부족해서라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조충은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보다 옆에 너는? 눈에 익은데······.”

“화산파의 백운호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초제가 있기 전에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래. 그래. 옷이 바뀌어 못 알아볼뻔 했다. 하여간에. 젊을 때는 기도만으로 십 리 밖 사람도 알아보고 했는데, 늙어서 그런지 영 예전만 못해. 쯧쯧.”

운호의 기도가 달라졌음을 애둘러 이야기하는 최염의 어법에 파검이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늙은 고자 놈이 음흉하기는.

“그보다 그저 인사나 하자고 나를 찾아온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용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던가?”

조충의 시선이 힐끔 오혁을 스쳤다.

조충과 운호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납작 업드린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최염 역시 마치 오혁을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른 건 아니옵고 이번에 금의위에 새로 입직한 무인이 하나 있사온데 그자가 글쎄 최근 무한 삼부의 사건으로 유명한 파검 좌부원의 수제자. 해랑검 공조입니다.”

“호오, 파검의 수제자라면 제법 큰 문파의 후계자일텐데 어쩌다 금의위에 투신을 했단 말인가?”

“아무래도 거목에 기대어 자라던 작은 나무들이었으니, 거목이 사라진 이후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탓이겠지요.”

“쯧쯧, 하여간 강호의 무뢰배들이란······. 헌데 그자가 금의위에 입직한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자네가 나를 찾아온 것인가?”

“그게 말입니다. 여기 이것.”

조충이 비단보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파검이 남긴 무공입니다.”

“파검의 무공? 그것을 왜 나에게?”

“별다른 이유야 있겠습니까. 그저 보물은 그 주인을 가리는 법이니. 보물에 가장 어울리는 분께 보물을 받치려 함 아니겠습니까.”

최염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보물이 주인을 가린다라. 참으로 좋은 말이로다. 헌데 파검의 무공이라면 조총관 자네도 충분히 소유할만한 보물 아니던가?”

“어휴, 저야 아직 제 무공 하나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처지에 다른 무공을 탐낼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이런 걸 받았다고 해룡방을 살펴줄 처지도 아니고 말이죠.”

“하기사. 금의위의 북진 총관이라면 워낙에 바쁜 자리이니 그럴 수도 있겠군. 금의위 총관처럼 아랫사람들이나 부려 먹는 자리라면 또 몰라도 말이야. 그러고 보니 금의위 총관이 올해로 일흔셋이던가? 그 사람도 슬슬 집에서 손주 재롱 보면서 쉴 때가 되긴 했단 말이야.”

“감사합니다.”

최염이 넌지시 그에게 금의위의 총관 자리를 약속했다.

조충이 그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는 무슨. 그보다 여기 이 백 교위도 앞으로 계속 금의위에서 봉직하는 건가?”

“아닙니다. 이번에 금의위에 급한 일이 있어 제가 잠시 부탁했던 것이고, 오늘로 금의위에서 물러날 예정입니다.”

“허어, 그래? 좋은 인재 같은데 참으로 아쉽구만. 그렇다면······, 그래. 내가 이렇게 귀한 보물을 얻었으니 너도 뭔가를 얻어야지.”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기는. 내 듣기로는 최근에 검이 자주 부러졌다고 들었는데, 너와 같은 젊은 영웅이 검 때문에 제약을 받는다니 내 마음이 영 불편하구나. 그래, 기억이 난다. 그때 네가 나의 ‘정답’을 탐을 냈었지. 선제께서 하사한 귀한 보검이기는 하다만 그 아이도 이런 늙은이의 보물고에서 썩는 것보다 영준한 청년 영웅의 손에서 천하를 활보하고 싶어 하겠지. 내 말 해둘 테니 가는 길에 검을 받아 가도록 해라. 네가 이번에 보여준 활약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받아도 무방하다.”

“감사합니다!!”

운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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