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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33화 (133/288)

133화

보물(18)

-챙챙챙

순식간에 십수합의 공방이 오갔다.

벽안검마 종자명의 초식은 실로 기괴하여 오른손의 송곳과도 같은 검은 베기를 거의 배제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왼손의 단검은 마치 작은 방패와도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마공이라 폄훼하기에 너무 대단한 공부였다.

-기괴하지만 놀라울 만큼 체계적이로구나.

파검 역시 그것을 인정했다.

“소문에 청해 대장군부의 도법이 실로 일절이라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쌍검으로 펼치는 검술도 그에 못지 않은 듯하군요. 마치 점창의 사일검을 보는 듯 합니다. 관부에서 강호 문파들의 무공을······.”

-피잉!!

운호의 검면이 종자명의 검을 비껴냈다. 저 낭창하고 얇은 검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든 경력. 종자명이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관부에서 강호 문파들의 무공을 수집한다? 개소리하지 마라. 점창? 웃기지도 않는다.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명가랍시고 거들먹대는 꼴이라니. 신선의 도를 추구한다는 구대문파의 잡것들치고 남의 가전 무공을 길에 떨어진 임자 없는 보물로 여기지 않는 곳이 얼마나 되느냐. 지금도 마찬가지다. 네놈들이 마치 저 해룡방을 보호하는 양, 정의라도 되는 양 굴지만 결국은 해룡방의 무공을 자신들이 차지하겠다는 심산 아니더냐.”

-뭔가 당한 게 있나보구나.

파검의 말처럼 종자명의 외침에서 강렬한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이 풍진 강호에 어디 기막힌 사정 하나 없는 사람 누가 있단 말이던가.

“도적질을 하는 이가 알고 보면 너희도 다 도적 아니냐 외치는 소리. 참으로 듣기 좋군요.”

“이 놈이?”

쌍검을 들었지만 일반적인 중원의 쌍검술과는 다르다.

저것은 마치 검과 방패다. 극도로 공격적인 검과 방패.

-재밌는 상대로구나.

운호가 가볍게 호흡했다.

단순히 익숙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다. 저것은 그 궤도도, 그 철학도 모든 것이 중원의 검술과는 다르다. 그래, 어쩌면 저 벽안처럼 저 검술 역시 중원 밖에서 날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것 역시 ‘검술’이다.

운호의 검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명현신니가 전수한 반야검 명현식이다. 명현 신니 본인이 평하기를 흡사 사파의 검술과도 같다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검술 곳곳에 오른팔을 잃어버렸던 명현 신니의 분노와 좌절이 곳곳에 드러났다.

공격과 공격과 공격이 어우러졌다.

벽안검마 종자명이 이를 드러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보통 그의 검술을 처음 접하는 이는 당황하고, 우선은 수세적인 방식으로 그의 검술을 살핀다. 하지만 순식간이다. 굳이 약점을 노리지 않는다. 사람의 몸은 유기적이라 어딘가에 구멍이 나면 전체적인 기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종자명의 검이 일점으로 쏘아졌다. 쾌속을 넘어선 쾌속. 운호가 점창의 사일을 논한 것이 과장이 아니다.

운호의 어깨 끄트머리가 쓸렸다. 하지만 괜찮다. 아슬아슬하게 피륙에 닿지 않았다. 터져나간 것은 옷깃뿐이다. 운호의 검이 그의 텅빈 가슴을 노린다.

-챙

왼손의 단검이 운호의 검을 긁어낸다. 길이와 속도는 곧 힘이다. 운호의 검에 실린 경력은 막대했다. 하지만 서른아홉이라는 나이. 쌓아온 공력의 크기가 다르다. 발현하는 힘의 총량 역시 다르다. 종자명의 단검이 무사히 운호의 검을 비껴냈다.

하지만 여전히 운호가 반 호흡 앞선다. 쾌속의 찌르기는 위협적이지만 그만큼 이후의 허점이 크다. 운호의 공격이 이어졌다. 종자명의 단검이 눈부시게 움직인다.

그래, 이것이다.

종자명의 검술은 일견 저 긴 직검을 이용한 찌르기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만큼 강맹한 일격이다. 하지만 이 검술의 핵심은 이 지독한 방어다. 마치 한비자에 나왔던 물막능함(物莫能陷)의 방패가 현실이 구현된 것같다.

수세적으로 나선다면 저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공세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저 단검을 뚫기 지난한 절세의 검술. 과연 서장의 라마들이 벽안검마라 부르며 치를 떨만하다.

무엇보다 저 살기.

강기(罡氣)는 단순한 기의 집합이 아니다.

만약 강기가 단순히 과도한 기의 집중이라면 절정의 고수 가운데 막대한 내공을 지닌 고수라면 누구나 강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운의 양이 아니다.

기운의 집중. 공간에 한계를 넘어선 기운을 밀어 넣고 그것을 유지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진기의 양이 아닌 그 진기를 다루는 고수의 의념(意念)에서 기인한다.

조금씩 이어지는 공격 사이로 종자명의 검극이 백열(白熱)하기 시작했다.

명백한 강기의 징조다.

-이능(異能)이로구나.

운호의 오성이 이능의 영역인 것처럼, 천살의 경지에 이른 종자명의 살기 역시 이능의 영역이다. 정도를 넘어선 살기가 초절정 고수들이나 발휘할법한 극도의 의념으로 발전했다.

-까가가가각!!

이십 년 수위를 살짝 넘어선 진기로 보호되는 운호의 검이 크게 갈려 나갔다. 안 그래도 그 품질이 좋지 못한 검이었는데 이걸로 검의 균형마저 크게 어긋났다.

하지만 괜찮다.

종자명의 천살(天殺)이 이능이라면 운호의 오성(悟性) 역시 이능의 영역일지니, 명현은 자신의 검술을 전수하기 위해 최소 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반야검의 명현식은 오묘한 구석이 있어 수박 겉핥기로 익힌다면 사파의 독랄한 검술로 보이기 쉬웠지만, 그 정수는 그 독랄한 초식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 모진 풍파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흔들려 쓰러진 갈대가 어찌 갈대의 본모습일까.

명현신니는 자신의 검술을 만들었음에도 그것을 명현검이라 칭하지 않았다. 그녀의 검술은 어디까지나 반야검의 명현식이다.

남해의 거친 풍파 속에서 해적들의 지독한 노략질 속에서. 보타암에 자리를 잡았던 여승들은 불살생계를 어기고 검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기꺼운 일이었을까.

보타암의 반야검은 그런 검술이었다. 불가피함 속에 검을 들었지만, 그 속에 자비가 스며있다. 그렇기에 불가의 검술이며 검후의 검이다.

명현신니의 명현식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 수련했던 오른 팔을 잃어버린 슬픔과 고통. 분노와 좌절.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지만 그럼에도 그 깊숙한 곳에는 평생을 수련해온 올바른 불가의 자비가 마지막 선을 넘는 것을 막아낸다. 그렇기에 정파의 검술이며 그렇기에 경지에 다다를 가능성을 품은 검술이다.

종자명의 왼손에 들린 단검이 운호의 검을 막아섰다.

사나운 검이다. 하지만 부동심을 갖추지 못한 하류잡배에게는 효율적일지 모르겠으나 천살을 이룬 종자명에게는 그저 여인네의 단순한 화풀이와 같은 얄팍한 검에 불과했다.

그래,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종자명의 백열하는 검에 완전한 별빛이 내려앉기 직전.

그리하여 물무불함(物無不陷)의 공능을 갖추기 직전.

그 미세한 심리의 틈 사이로 반야검이 움직였다.

초절정에 오른 이 시대의 검후가 말하기를

‘나는 육 개월을 생각하였으나 너에게는 일주일로 족하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움직임.

고통과 슬픔, 분노와 좌절이 존재함에도 그 검이 흐르는 길은 정진정명하며 그 손속에는 자비가 깃들어있는 불살의 검.

틀어지고 어긋난 운호의 검이 종자명의 오른 어깨를 ‘강타’했다.

그랬다. 분명 운호의 손에 쥔 것은 검이었지만 종자명의 운문혈을 두들긴 것은 생명을 해하지 않는 부처의 마음이었으니 그것 역시 단순한 진기의 양을 넘어선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용린갑 아래 숨겨진 종자명의 운문혈을 두들겼다.

-퍼억!!

왼손에 쥔 망고슈로 막아낼 틈도 없었다. 그야말로 불의의 일격.

한순간, 별빛이 어려가던 종자명의 검이 빛을 잃었다. 단 일격에 진기의 흐름이 완벽하게 끊어진 탓이다.

아니. 잃어버린 것은 별빛만이 아니었다.

-쨍그랑

절정의 검객이 검을 놓쳤다. 오른손에 힘이 쭉 빠졌다. 종자명의 전신에 어려있던 살기가 한순간 사그라들었다. 그것을 대신한 것은 치욕과 굴욕.

불혹을 목전에 둔 절정의 무장이 핏발 선 눈으로 운호를 바라봤다.

“방금 전 그 검술은?”

“남해 보타암. 반야검의 명현식입니다.”

“불가(佛家). 파사현정의 정검인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끝까지 정도를 버리지 않았던 여승의 마음입니다.”

종자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 좋다. 내가 졌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하지만 오 소감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요.”

-쿵!! 쿵!!! 쿵!!!!

종자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로군? 남로군이 여길 어떻게?”

저 멀리 질서 정연하게 몰려오는 백여 명의 인원이 보였다.

얇은 가죽 갑옷.

검게 탄 피부.

광서대장군부의 직속 부대인 남로군들이다.

“글쎄요. 마교가 한차례 크게 기세가 꺾였으니 잠시 숨을 돌릴만해서가 아니었을까요? 혹시 아는 얼굴들입니까?”

선두에 선 장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허리에 호피를 두르고 웃통을 벗어던진 모습이 사뭇 사나웠다.

“광서대장군 백기의 둘째 제자인 궁익이다.”

“사이는 좀 어떻습니까.”

종자명의 대답 이전

저 멀리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하. 종가야. 잘난 사부 밑에서 호가호위하더니. 외지에 나와서는 어린놈에게 두들겨 맞고 누운 꼴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종자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보다시피.”

“확실히 오 소감이 쉬운 상대는 아닌 것 같군요. 헌데 아무래도 저 궁익이라는 작자가 원하는 목숨은 해룡방과 오 총관님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쾅!!!

약 삼십 장.

궁익의 몸이 부웅 날아 거대한 도끼를 내려찍었다.

그 공격이 해룡방의 무사 하나와 그와 검을 섞던 종자명의 부하를 동시에 절단냈다.

-으드득

아마 얼마 전이었다면 감히 이런 짓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북병과 서병, 남병이 거의 군벌화되고 있다고는 해도 어찌됐건 제국의 국경을 지키는 방패들이었기에 그들간의 분쟁은 국가 안위에 치명적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북방의 달자들은 내분으로 지리멸렬하고 있었고, 이번 활불을 전대에 비하자면 범부 수준이었으며 남방의 마교는 매우 크게 낭패를 본 상황이다.

오혁은 이번 기회를 빌어 금의위에게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채우고 동시에 가장 뻣뻣하게 구는 서병의 기를 죽이려는 것이 분명했다.

종자명이 소리쳤다.

“신부작족(信斧斫足)이다!!”

순식간에 찾아 온 혼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종자명을 따라온 병력은 정예였으며 해룡방 역시 최근 낭인들과의 일들로 인해 적이 한순간 아군이 되고 아군이 한순간 적이 되는 꼴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방금 전까지 검을 나누던 이들이 마치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궁익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부웅!!

아무렇지 않게 휘두른 도끼질 한 번에 두 명의 일류 무사가 반토막이났다.

저 자. 절정이 아니다.

“저 자. 설마 십이신 중 하나입니까?”

“아니. 반 수 부족하다.”

“저런 실력으로도요?”

“아무래도 지난 몇 십 년 동안 관부에도 인사적체가 좀 있어서 말이지. 뭐 오늘 이 자리에서 오 총관이 죽으면 한 자리 차지할지도 모르겠구나.”

더 길게 말을 나눌 틈은 없었다.

고민할 틈도 없었다.

궁익의 도끼는 사나웠고 거기에 멀지 않은 곳에 운호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상대의 경지는 명백히 초절정.

마치 수레 앞에 달려드는 사마귀처럼.

운호가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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