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보물(16)
해룡방의 무공은 탐나는 먹잇감이었다.
변변한 무공이 없는 낭인들에게도, 딱히 전통이랄 것이 없는 중소문파에게도, 심지어 제법 오래된 전통을 갖춘 대문파에게도.
완전히 익히기만 해도 초절정의 경지가 보장되는 절세의 비급.
삼봉 진인이 남기고 간 태극도해를 넘어서는 대단한 비전이 있다더라.
강호의 소문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살이 붙는 법이다. 처음에는 그저 우화등선한 고수의 유진 정도로 알려졌던 것이 무당에 내려오는 태극도해를 넘어서는 대단한 비전이 되는 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강호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깃거리는 역시 마교 대제사장을 패퇴시키고 우화등선한 파검 좌부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럴 게 아니라 한 번 나서봐야 하는 거 아닌가?”
“자네는 보타암에서 명정 신니가 나섰다가 낭패보고 물러났다는 소문도 못 들었는가? 이미 남궁세가와 화산이 나섰다고 하더군. 듣기로는 황실에서도 손을 쓰고 있고. 보타암은 그래도 명분이라도 있었으니 그렇게 물러라도 났지. 명분도 실력도 없는 우리 같은 놈들이 나섰다가는?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끽. 알겠나?”
“화산파에 남궁세가면 구대 문파에 칠대세가고. 그 말은 결국 무림맹이 나섰다는 말인데 거기에 황실까지? 에잉.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은 무림맹과 황실 모두 이번 해룡방에 숟가락을 들이밀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는 실로 절묘했는데, 만약 어느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해룡방의 비전을 탈취하여 나머지 하나에 투신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관과 무림 두 집단 모두를 적으로 돌려서야 중원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물론 중원 밖 새외라고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단단히 마음 먹은 북병이나 남병 혹은 서병을 뚫고 새외까지 무사히 도주한다?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나저나 명정신니라 하면 절강에서도 이름 높은 고수인데 그녀가 낭패를 보고 물러나다니. 대체 누가 나섰길래? 설마 천무십칠성이나 사상십이신이라도 나선 것인가?”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소신검이 단독으로 적룡창을 죽이고 명정 신니를 물러나게 했다고 하더군.”
“소신검? 소신검이라면 설마 그 화산의 젊은 고수? 아직 약관도 채 되지 않았다는?”
“그래. 바로 그 소신검. 놀랍지 않나? 고작 열일곱의 젊은이가 오랜 시간 이름을 떨친 절정의 고수 둘을 패퇴시키다니 말이야.”
“허, 고작 열일곱에 절정에 오를 때부터 이미 천하제일인을 예약해뒀다고 생각했건만, 적어도 내가 늙어 죽은 다음이 아닐까 했는데, 이래서야 앞으로 이삼십 년이면 천하제일을 논할만 하겠구만.”
“응? 앞으로 이삼십 년이면 자네는 충분히 늙어 죽은 이후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하하하, 농일세. 농이야. 어쨌건 스무살도 되기 전에 초절정을 목전에 뒀다는 고수를 꺾었으니. 이래서야 당분간 화산의 성세는 계속될 듯하이.”
당금 강호에서 가장 뜨거운 화젯거리 옆에 마찬가지로 만만치않게 뜨거운 화젯거리가 활약을 했다.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다.
게다가 강호의 소문이라는 것이 다 그러하듯 운호가 적룡창과 명정신니를 격퇴했다는 말에는 점점 더 살이 붙어 나중에는 운호가 홀로 적룡창과 명정신니의 합공을 무찔렀다는 것은 기본이요. 일초반식에 적룡창의 창이 부러지고 명정신니가 피를 토하며 목숨을 구걸했다는 이야기로까지 발전했다.
그 덕에 신이 난 것은 화산파의 도사들. 특히 재화를 관리하는 도사들이었다.
종남의 벽운이 화산에 올라 현무를 쓰러트린 이후 줄어들었던 기부금이 다시 폭발했다. 태을검선이 사망하고 청무가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을 때도 이만큼은 아니었다.
당연하다.
상인은 언제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법이다. 윗배분이 그런 것은 현재이며 그것은 상수다. 그들은 그보다 무당과 종남이 지금 세대를 지나 벽자 배 현자 배가 일대 제자가 됐을 때 지금의 형세가 그대로 유지되지 않으리라고 판단했었다.
그것은 운호가 종화를 꺾었음에도 마찬가지다. 운호도 종화도 아직은 너무 어렸으니까.
하지만 운호가 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이윽고 적룡창과 명정신니를 격파했다.
고작 열일곱의 소년이 차차기가 아닌, 차기 천하제일인에 도전할만한 재목임을 증명한 것이다. 앞으로 운호가 초절정에 오르는 데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그 나이는 고작 서른일곱이다. 삼십대에 초절정의 고수? 적어도 오십 년은 천하제일인 자리를 유지할만하다.
그것은 보잘 것 없던 무당산의 도관을 천하 양강으로 뒤바꿨던 장삼봉의 재림이라고 할 만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장삼봉의 기반이었던 무당은 당시 시골의 작은 도관에 불과했지만 화산은 이미 천하제일을 논하는 거대 문파다.
대체 화산의 성세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 덕분에 모처럼 풍족한 재료들을 보급받은 강진이 생각했다.
혼원단에 이어 자소단까지. 역시 운호에게 투자하길 잘했노라고.
* * *
“역시 너무 편하게 왔다 싶었지?”
“그래도 일주일이나 편히 왔잖아. 덕분에 몸도 다 추슬렀고.”
지난 보타암과의 싸움에서 운호가 입은 상처는 작지 않았다.
하지만 화산에서 출발하기 전에 먹었던 자소단이 힘을 발휘했다. 비록 약성에는 약간의 손해가 있겠지만, 내상의 회복에 소화되지 않았던 자소단의 기운을 왕성히 끌어 쓴 덕분에 일주일 사이 운호의 기운은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강성해졌다.
영강 곳곳에 무공을 익힌 이들이 느껴졌다.
그 수준 역시 상당히 정예하다. 이전에 그들을 습격했던 낭인들이나 보타암도 상당했지만 지금 이자들 역시 만만치 않다.
일단 배만 탄다면 안휘까지는 금방이고, 안휘에 들어서면 감히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건드릴 자가 없을 테니 상대로서도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결국 한바탕 드잡이질을 피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단단히 각오를 해야겠는데?”
“그러······, 응?”
바로 그때, 운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되는 얼굴.
혹참가포 조충이었다.
“여어. 오래간만이로구나.”
조충이 손을 흔들며 운호에게 다가왔다. 그가 항상 걸치고 있던 누런 장포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중앙의 고관이라기보다는 흡사 거리의 한량과 같은 모습이다.
조충과 운호는 한 가지 거래를 했다.
조충은 현재 북경을 떠날 수도 없었고, 손발이 모두 잘려나가 그저 숨만 쉬는 신세다.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최염. 하지만 최염과는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최염이 탐내는 물건이다.
운호가 필요한 것은 의형의 안전. 그리고 힘이 닿는다면 해룡방의 무사함이다. 조충은 그것을 도울 힘이 있었다.
비록 손발이 잘려나간 신세라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중앙에서의 일이고, 본래 북진 소속이었으나 지방으로 발령나간 금의위의 무사들 사이에서 그의 신망은 여전했다. 현재 해룡방을 습격한 세력이 낭인들, 그리고 보타암에 그치는 것은 조충이 나름대로 힘을 써준 덕분일 것이다.
다만 그 거래의 내용대로라면 조충은 여기 나타나서는 안 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타날 수 없었다.
현음명 최염이, 그리고 그를 따르는 무리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운호가 검을 움켜쥐었다.
여덟 걸음.
혹참가포 조충의 몸에서 수천, 수만 가지의 경로가 엿보였다.
어느 것 하나 지워내기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연체. 조충은 저 자세에서 그 모든 공격을 단번에 성립시킬 수 있다.
강아현이 운호의 모습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속상했지만 이미 운호의 경지는 지금의 그녀는 짐 덩어리로 전락시킬 만큼 압도적이다.
그녀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공 대협!! 좌 여협!!”
좋은 선택이다.
싸움이 도움이 안 된다면 도움이 되는 이를 부르는 것이 현명하겠지.
혹참가포 조충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네 계집인가? 얼굴이 아름다운 계집은 보통 여기가 문제가 많은 법인데. 저만하면 반려로도 훌륭하겠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저희 계획은 분명 조금 달랐을 텐데요.”
그 질문에 조충이 답하려는 찰나.
운호의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것은 최근 일주일. 명현 신니가 보여줬던 그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흉내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어림 없었다.
“어이쿠!!”
조충의 손바닥이 절묘하게 운호의 검을 흘려보냈다.
내심 자신이 있는 기습이었건만 통하지 않았다.
“보타암의 명정을 이겼다고 하더니. 과연 그럴만하다. 하마터면 영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뻔했어.”
“하지만 막혔네요.”
“쯧, 너무 뻔하다. 말을 걸어 넣고 대뜸 검을 휘두르다니. 본관이 그런 순진한 수작에 당한다면 이 두 손에 유명을 달리했던 수많은 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지.”
나름대로 허를 노린 기습이었거늘, 동작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 자체가 문제였다. 역시 금의위. 거기서도 암행과 사찰, 혹형을 담당하는 북진의 총관답다. 운호의 수 정도는 이미 꿰뚫어 본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부웅!!
“진정해라. 혈운검과 해랑검이 오기 전에 끝내는 건 곤란하지. 혹시라도 네가 너무 허무하게 당하는 걸 보고 달아나면 그 나름대로 귀찮은 일 아니겠나.”
“어째서입니까.”
“응? 어째서냐니? 그야 당연히 더 편한 길이 생겼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뭐 그 맹랑한 꼬맹이가 영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거야 차차 처리하면 그만일 것이고. 파검의 무공이 내 손에 들어온다고 해봤자 그 이후의 과정이 지난하기 짝이 없을 터인데, 그것을 단번에 해결해준다고 하니 나야 나쁠 것도 없지.”
운호의 시선이 조충의 손가락을 스쳤다.
조충은 소림의 용조수와 함께 강호의 이대 금나술로 손꼽히는 금의위의 독문 무공 천라추포(天羅追捕)를 대성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맨손으로 오촌 두께의 강철을 종잇장처럼 찢는다. 사람의 몸 따위 저 손에 잡히면 부스러진다. 과거 철포삼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했던 절정의 고수가 그의 손에 조각조각이 났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의 손이 벼락처럼 운호의 맥문을 노렸다.
운호의 시선이 닿았던 오른손 손가락이 아니다. 운호의 팔에서 더 멀리 있던 왼손이다. 찰나의 순간. 노강호다운 기습.
운호의 팔이 마치 그것을 예상한 것처럼 움직였다.
-멍청하기는.
파검이 웃는다.
감히 한 수 위의 고수를 상대로 일부러 허점을 노출하는 것이 말이 될까. 심지어 그 한 수 위의 고수가 중원에 이름 높은 십이신 중 하나 혹참가포 조충일지인데.
하지만 그렇기에 매농검이다.
-따다당!!
운호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조충의 오른손이 그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그 손에는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마치 강철과도 같은 손. 아니, 오히려 조충의 손끝에 부딪힌 검날이 상하기 시작했다. 화산의 검이 아닌 시골 대장간에서 급하게 구입한 검이라 품질이 좋지 못한 탓이다.
순식간에 여덟 합.
조충의 왼손을 철판교로 피해내며 크게 여섯 걸음 물러난 운호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자, 이제 시험 해볼 만큼 해보셨으면, 솔직히 말씀해주시지요. 대체 왜 오신 겁니까.”
-응?
파검의 의아한 목소리 속에 조충이 나지막하게 투덜거렸다.
“하여간 참으로 재미없는 꼬맹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