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30화 (130/288)

130화

보물(15)

“사실 노납의 현재 성취는 파검에 기인한 바가 큽니다.”

“네? 하지만······.”

운호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명현의 텅 빈 오른팔로 향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시는 대로 평생 검을 쥐었던 저의 오른팔을 가져간 것은 파검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건대 어쩌면 그것은 파검 나름의 과격한 가르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네? 가르침이라고요?”

파검이 당황하지 않고 뻔뻔하게 콧대를 높이 세웠다.

-흐음, 늙은 비구니가 뭘 좀 아는구나. 그래, 원래 하수일 때는 좀 그렇게 두들겨 맞기도 하면서 크는 거다. 사람이라는 건 원래 분한 마음이 있어야······

명현이 인자하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사실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파검의 우화등선 소식을 듣고 확신할 수밖에 없더군요. 그만한 인물이라면 가능한 일이었겠구나 하고요.”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잊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선천적으로 왼손잡이로 태어났던 것 같더군요. 놀랍게도 빈니가 평생 동안 검을 쥐면서도 몰랐던 사실을 그는 몇합 나누지도 않고 눈치를 챘던 겁니다.”

-그래!! 어쩐지 영 보기 불편하더라고. 오른팔이 딱 없는 게 더 보기 좋겠다 싶기도 하고.

‘이미 늦으셨습니다.’

-크흠······.

예기(禮記)의 내칙(內則)편을 보면 자능식식 교이우수(子能食食 敎以右手)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오른손으로 먹도록 가르치라는 말이다.

중원의 문화가 본래 그러했다. 설사 왼손잡이로 태어난다 할지라도 어릴 적부터 오른손잡이가 되기를 강요받는다. 명현신니 역시 그러했다. 다만 그녀의 경우 보통과 달랐던 점은 왼손잡이로 태어나 오른손으로 검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타암의 미래를 책임질 재능 소리를 들을만큼 대단한 자질을 타고 났다는 점이었다.

“처음 왼손으로 검을 쥐었을 때는 그저 막막했었죠. 과연 다시 할 수 있을까. 절망적인 기분이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검을 휘두르며 빈니는 마치 몸에 꼭 맞은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왼팔의 근력이 올라가는 속도가 범상치 않았죠. 고작 일 년. 왼팔의 근력이 이전의 오른팔 수준까지 올라오는 데는 고작 일 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우연의 극치.

명현 신니가 말을 이어갔다.

“빈니가 그대로 계속 검술을 수련했다면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글쎄, 그건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깨달음은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지요.”

어느새 그녀의 손에 검이 쥐어져 있었다.

인지하지 못했다. 빨라서? 아니다. 그저 사람이 숨 쉬는 것을 특별히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을 항상 유심히 지켜보지 않는 것처럼.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명현 신니가 검을 뽑아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매와 검을 나누는 것을 보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직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겠지요. 오늘의 가르침은 이걸로 대신하지요.”

“아, 비무라면 오늘은 좀······. 지금 제 검이 이 모양인지라.”

운호가 -스르륵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곳곳에 실금이 가고 중심이 휘어져 수리조차 불가능한 고철이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내일. 마찬가지로 동쪽으로 나오시면 제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운호를 따라오며 검을 지도해줄 생각인 듯싶었다. 차라리 합류하여 편하게 이동하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려던 운호가 멈칫했다.

명현이 운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미소지었다.

바로 얼마 전 보타암의 습격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쪽 팔이 없는 비구니라니. 너무 특징적이다. 게다가 탈속한 기세를 내뿜는 명현이라지만 어찌 됐건 해룡방은 자신의 한쪽 팔을 가져간 상대다. 마냥 편할 리가 없다.

“네, 그러면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 * *

“멍청하기는!! 실패를 했다면 실패를 했다는 보고만 할 것이 아니라 대응책을 가져와야 할 것 아니더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명정이라면 절강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입니다. 게다가 적룡창 배규라면 현재 저희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절정고수였고요. 이제 더 이상 절강성에는 여유 자원이······.”

-뻐억!!

“이 빌어먹을 버러지 같은 놈. 아주 쓸모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구나. 내가 너라면 그렇게 주저리 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을 시간에 대책을 강구하겠다.”

“죄송합니다. 오공공.”

오혁의 손등에 얼굴을 얻어맞은 사내가 얼굴에 피를 줄줄 흘리며 재빨리 일어서 소리쳤다. 저 어린 내관은 현재 중원 최고의 권력자를 수발드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고작 몇 대 얻어맞았다고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사내 자신의 목숨만이 문제가 아니다. 저 내관은 그의 가족과 어린 자식들까지 쥐도새도 모르게 모조리 죽여버릴 힘이 있었다.

“창위들을 동원해라.”

“네? 하······, 하지만. 일전에 보고 드렸다시피 소신검은 현재 북진의 교위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금의위와의 마찰로 이어질 수도······.”

“금의위와의 마찰은 무슨. 혹참가포 조충이라고 해봐야 이제 이빨과 발톱이 모조리 빠진 이리에 불과하거늘.”

사내가 여전히 줄줄 흐르는 피를 닦아내지 않은 채 오혁에게 답했다.

“물론 공공께서 혜안을 갖고 지휘하신 일 덕분에 중앙에서 혹참가포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만 지방은 조금 다릅니다. 게다가 꼭 조충 그자가 아니더라도 창과 금의위 조직간에는 특유의 관계라는 것이 있는지라······.”

“흐음······.”

오혁이 잠시 고민했다.

‘어린 고자야. 너는 일이 틀어지더라도 혹참가포가 네 모가지를 틀어 쥘 일은 없겠지만 이 나으리는 다르지 않느냐.’

-뚝뚝

사내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오공공, 이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혹참가포는 이미 끈 떨어진 연이고 더 이상 나으리의 경쟁상대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그의 무력 만큼은 확실한 가치가 있지요. 그러니······.”

“내 휘하로 포섭해라?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태감 어르신의 공부를 다 물려받는다면 천하에 누가 감히 공공 어르신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조충 그자도 이번 일로 공공께 원한을 품기보다는 감히 공공을 적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아주 제대로 경험했을 테니 공공께서 먼저 손만 슬쩍 내밀어주신다면 아주 넙죽 엎드리지 않겠습니까?”

“그럴까?”

“마땅히 그러할 겁니다. 게다가······.”

“게다가?”

“그의 충성도 시험할 겸, 아예 이번 일에 투입을 지시하는 것은 어떨런지요? 소신검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감히 혹참가포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제안은 제법 오혁의 마음에 든 것일까?

그의 찌푸린 미간이 풀어졌다.

“어이쿠, 이 사람. 이거 얼굴에 피가 이렇게 나는데 이것 먼저 처치하지 않고 뭐를 한 건가. 자, 여기 이걸로 좀 닦게.”

“아닙니다.”

“아니기는. 이 손수건 이거 이번에 들어온 촉금인데 질이 아주 좋아. 그러고 보니 자네 딸이 얼마 안 있으면 생일이었지? 내 말 해둘 테니 가는 길에 한 필 챙겨가고. 나도 참 이 불뚝하는 성질머리를 고쳐야 하는데 말이지.”

“감사합니다. 대인!!”

얼굴에 찢긴 상처 하나에. 상품의 촉금 한 필이라. 이 정도면 수지맞는 장사다.

“그러면 혹참가포에게 공공 어른의 부름이 있노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명현 신니와의 만남 이후. 운호는 잠들기 전 그녀에게 반 시진에서 한 시진 가량 무공을 전수 받는 시간을 가졌다.

“좋구나!!”

명현 신니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라고 해서 자신의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전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본인이 창안한 검식. 그러니까 해남파에 본래 내려오던 반야검의 명현식이라 이름 붙인 그 검술은 속성법으로 익혀 잘못 활용될 경우 사파의 무공처럼 보일 소지가 있었기에 함부로 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야검만 하더라도 사문 전체를 통틀어 그녀보다 높은 성취를 보이는 이가 없었으니 많은 제자들이 그녀에게 반야검을 전수 받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했던 제자들 대부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혀를 내두르며 나가 떨어졌다.

“여기서는 가볍게 힘을 빼고 견우혈에 서푼의 힘을 더 싣는 느낌으로 천종을 더 이완시키고 동시에 위중과 온문에 힘을 실으면 된다. 그러면 이렇게!!”

-휙!!

“네?”

그것은 그녀 딴에는 해줄 수 있는 가장 쉽고 상세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 설명을 받아들이는 제자입장에서는 마치 외발자전거를 타면서 접시를 돌리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단다. 어때 쉽지? 라는 말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말로 내뱉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을 왜 단번에 해내지 못하는지를 답답해하기까지 하는 눈치다.

그녀는 천재였다. 그리고 천재라는 족속들이 다 그렇듯 범재가 수십 일을 고련 해야 하는 부분을 단번에 뛰어넘는다. 그녀 입장에서는 굳이 고민할 필요도, 수련할 필요도 없는 부분들이 범재들에게는 긴 수련이 필요한 일이다. 즉, 평범한 사람들이 고민하고 수련해야 하는 부분에 대하여 그녀는 조언을 해줄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냥 하면 되는 일에 대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팔을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말에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면 결국 어느 근육을 어느 정도 힘으로 움직여. 라고 밖에는 말해줄 수 없는 것처럼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운호는 명현신니와 합이 딱 맞는 아주 좋은 제자였다.

그리고 그것은 운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그를 가르쳤던 것은 크게 두 부류로 볼 수 있었는데 첫 번째는 아직 속가제자의 신분이던 시절. 집단으로 그를 가르쳤던 화산의 교관들. 그리고 현재의 사부인 현종자 공야찬이었다. 그들의 가르침은 상세했다. 그것도 너무. 그렇기에 운호에게 그들의 가르침은 굳이 집고 넘어갈 필요가 없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이야기하는, 말하자면 매우 비효율적인 가르침이었다.

두 번째 부류는 몽원경에서 만났던 천중일검 목운평, 혹은 파검 좌부원이었다. 그들의 경우는 앞서와는 정반대였는데 그들의 가르침은 대부분 실전적인 비무를 통하여 운호 스스로가 깨닫게 만드는 형태였다.

그런 의미에서 운호에게 명현 신니는 적당히 쉬운 부분은 빠르게 넘어가고, 꼭 필요한 부분 위주로만 이야기를 해주는 아주 좋은 선생이었다.

게다가 참으로 묘한 것이 명현 신니가 미리 말했던 것처럼, 운호가 명정과의 싸움에서 성취를 얻었던 난풍검의 묘리들과 명현 신니가 전수하는 반야검 명현식이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난풍검의 복원 역시 이전보다 훨씬 빠른 진전이 있었다. 그것을 돕는 남궁철과 강아현은 달라진 운호의 태도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저 명정과의 싸움에서 무언가를 얻은 것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약 일주일.

부상자들이 포함된 이 무리가 마침내 일차적인 목적지인 영강의 나루터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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