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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26화 (126/288)

126화

보물(11)

자소단이 7할쯤 소화되어 20년에 가까운 내공을 갖게 됐지만 그럼에도 광음검은 여전히 어려운 초식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섯이나 되는 일류는 절정에게도 아무런 피해 없이 처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안전하게 처리하려면 장기전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데, 운호의 경우 내공의 양 자체가 부족한만큼 그것 역시 어렵다. 게다가 지금 상황이 그렇게 시간을 끌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도 자소단만 완전히 소화 시키면 좀 나아질 게다.

‘그거 소화시키는 것도 일단 여길 잘 넘겨야 말이죠.’

기해혈이 아릿할 정도로 내공을 끌어다 썼다.

파검의 이야기처럼 자소단만 완전히 소화 시켜 이십오 년쯤 되는 내공 수위에 이른다면 아마도 광음검 한 번 정도는 아무 무리 없이 펼칠 수 있지 않을까?

내공이라는 것은 일종의 근력, 혹은 체력과 흡사하다. 단순히 소모되면 사라지는 재화가 아니다. 백 근을 간신히 들 수 있는 사람은 백 근을 한 차례 들었다 놓는 것으로 허덕대지만, 삼백 근을 들 수 있는 근력을 갖춘 사람은 백 근 정도는 수십 번을 들어도 멀쩡하다. 내공 역시 이와 같다.

명정신니의 석장이 크게 움직였다.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잘 피해 나가던 해랑검 공조였지만 이번 공격은 그러기 힘들었다. 만약 저 석장을 쳐내지 않고 피한다면 혈랑검 좌하랑이 위험하다.

-후읍

공조가 크게 호흡을 들이켰다.

파검 좌부원은 천재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중원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하지만 좌부원의 수제자인 해랑검 공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쩌면 자신의 사부가 무당의 개파조사인 장삼봉, 소림무학의 창시자인 달마에 비견할만한, 아니 그 이상의 천재라고 확신했다.

지방 삼류 무관의 무공을 바탕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그것만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업적이거늘 심지어 우화등선이라니. 장삼봉이 우화등선을 한 것이 120세라고 전해지니 그보다 무려 50년 가깝게 빠른 것 아닌가. 이 정도면 사부야말로 고금 제일의 기재가 아니었을까?

문제는 그런 천재의 제자인 공조 자신이 그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신공을 창안자 본인에게 전수 받고도 초절정은커녕 절정의 초입을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라니.

공조의 검이 명정신니의 석장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쾅!!!!

잘 연마된 검이 크게 비틀어졌다. 전신의 경맥이 요동친다. 파검의 독문공부인 험풍악랑검(險風惡浪劍)의 요체 가운데 공조가 요체를 얻은 것은 오직 끊임없이 몰아치는 악랑뿐이었으니 이런 일합의 승부에는 크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늙은 비구니가 흉신악살과 같은 표정으로 석장을 움켜쥐었다.

물론 그녀는 공조와 좌하랑을 살리겠노라 약조했다. 하지만 그 약조를 맺은 이는 만 리 밖에 있고 그것을 감시하는 작자는 저리 죽어 나자빠졌다.

‘좌부원. 어디 그 잘난 하늘 위에서 네가 남긴 씨앗들이 제대로 피어나지도 못하고 죽는 꼴을 똑똑히 지켜봐라. 너는 신선이 됐겠지만, 이 땅에 이제 너의 흔적은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

“그만!!”

운호보다 한발 먼저 그 검이 명정 신니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다. 만약 그녀가 운호의 싸움을 제대로 지켜봤더라면 이것이 단순히 비검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두 명의 절정고수를 상대로 싸웠다. 한가롭게 운호의 싸움 전체를 지켜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명정 신니는 그저 가볍게 손을 털어 운호의 검을 막아내려 했다.

실수였다.

마치 창공을 노니는 용이 이러할까?

그리하여 명정 신니가 당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의지대로 움직인 운호의 검이 명정신니의 왼팔을 베었다.

-깡!!

마치 강철과 강철이 부딪힌 것 같은 소리.

‘쳇.’

-부족했다.

‘저도 압니다.’

이기어검은 결국 기(氣)와 의(意)로 검을 움직이는 수법이다. 손에 쥐고 휘두르는 것에 비하면 그 위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설마 긁힌 흔적 정도가 고작일 줄이야.

튕겨나온 검이 자연스럽게 운호의 손에 들어왔다. 이제 거리는 다섯 걸음. 운호의 도움으로 한숨을 돌린 공조가 좌하랑을 챙겨 뒤로 물러났다. 좋은 선택이다. 어설프게 돕겠다고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합류하느니 부상자를 치우고 확실하게 합류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명정신니는 그 꼴을 그대로 지켜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뒤에서 달려드는 운호를 무시하고 공조를 향해 쇄도했다.

굉음은?

아직 무리다.

방금 펼친 이기어검도 제법 크게 무리를 했던 일이다. 지금까지 운호는 이기어검을 항상 자신의 몸 근처에서만 펼쳐왔다.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통제를 위한 내공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은 거리에 단순 비례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자운? 아니, 그보다는 납매가 더 어울린다.

자운검의 위력은 발군이지만 효율은 그리 썩 좋지 못하다. 지금은 강하게 휘두르는 것보다 빠르게 명정을 따라잡는 데 더 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납매검은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이다.

아마 천릿길을 달린다면 명정신니는 운호보다 다섯곱절은 빠를 것이다. 백릿길이라도 세곱절은 빠를 것이며 십리길이라도 곱절은 빠를 것이다. 경공은 결국 지닌 바 내공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거리.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보법은 이야기가 다르다. 부운약표는 경신과 보법을 아우르는 절세의 보신경이다.

눈 깜빡할 사이.

두 사람의 거리가 네 걸음까지 좁혀졌다. 달리던 기세를 그대로 이용한 찌르기. 바로 그 순간 명정이 마치 미리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휙!! 몸을 돌렸다.

해랑검 공조를 쓰러트렸던 그 강격이 운호의 검을 노렸다.

뻔한 유인책. 하지만 뻔한 것이 뻔한 이유는 그것이 그만큼 자주 먹히기 때문이다. 강호의 늙은 생강이 젊은이의 조급함을 노렸다.

하지만 그런 싸움에 있어서는 운호를 따라올 자가 없다.

운호는 이미 명정의 동작을 통해 그 의도를 빤히 읽고 있었다. 움직임의 방향성. 발목의 각도, 오른 다리에 들어간 미묘하게 강한 힘. 그로 인하여 틀어진 무게중심까지. 휘두르는 검에서 그 운동력을 읽어 상대의 수법을 예측 간파하는 운호에게 이건 대놓고 나는 너를 기습할 것이다 라고 광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웅!!

명정신니의 석장이 거세게 날아들었다. 운호에게는 너무 뻔히 보여 피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공격이다.

-조심!!

파검의 경고가 날아들기도 전.

이미 운호가 두 걸음 크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부족했다. 무형의 기운이 그의 코끝을 스쳤다. 피부가 벗겨지고 송골송골 피가 맺혔다.

어마어마한 경력이다.

천생 신력? 아니면 완성된 신공의 힘? 아니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필요도 없었다.

-부웅

또 한 번 명정 신니의 석장이 날아왔다.

분명 초식의 형태는 허술했다. 보타암 무공의 특성일까?

-아니, 그냥 저 멍청한 년이 보타암의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 뿐이겠지.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아, 맞다. 보타암을 아주 박살을 내놓으시면서 제대로 구경 하셨었겠네요.’

-크흠, 하여간 보타암의 무공은 정교하며 섬세하다. 상당히 까다로운 수법들로 가득했지.

‘명정신니가 사용하는 무공은 정확히 그 반대인 듯 합니다만?’

-그러게 말이다. 흐음,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데. 워낙에 미미했던 사건이라······.

운호가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저 노 비구니가 저토록 피를 토하며 평생을 생각해왔던 일이 파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간 미미한 일이었구나.

길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쾅!!!

운호가 피해낸 명정신니의 석장이 바닥을 까부셨다. 덕분에 바닥이 깨지며 튀어 오른 자잘한 돌멩이가 운호의 몸을 스쳤다. 굵직한 녀석들은 피하거나 검으로 몰아냈지만 명정신니의 위협적인 공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운호의 몸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혈운검과 해랑검.

두 고수가 명정 신니를 상대로 고전한 이유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운호에게 명정 신니는 쉽지만 동시에 어려운 상대였다.

그 초식이 엉성하고 투로가 뻔했다. 운호가 정상이라면 저 공격을 허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저 압도적인 힘. 단 한 방이라도 허용한다면 그대로 박살이다. 게다가 금강경화공(金剛硬化功)을 완성한 명정 신니의 몸은 통짜 강철이나 다름없다.

아슬아슬하게 명정신니의 공격을 피해낸 운호가 그녀의 몸을 강하게 내려쳤다.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검격이었다. 과거 자운장을 사용하던 이준형의 왼팔을 일격에 박살냈던, 이제는 그때보다 더 강력해진 공격이었다,

-쾅!!

하지만 소용없었다.

물론 명정신니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나긴 했다. 아무리 통짜 강철처럼 단단한 몸이더라도 충격량 자체는 어떻게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막대한 충격을 받은 것은 검을 휘두른 운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목이 욱씬하게 저려왔다. 전신의 기혈이 요동을 친다. 반면 뒤로 물러나 자신의 옆구리를 몇 차례 어루만진 명정 신니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운호에게 다시 다가왔다.

“아이야, 검을 휘두를 때는 그것보다 더 강하게 휘둘러야지. 이렇게!!”

-쾅!!

운호가 발을 딛고 있던 지면이 쫘악 갈라졌다.

그야말로 경천동지의 위력. 하지만 이 정도의 위력조차 그녀에게는 그저 가벼운 동작이었던 것일까?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명정의 공격이 이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중수법?

아니. 아니다. 명정 신니의 몸은 단순히 거죽만 단단히 단련하는 금피공(金皮功)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속에 들어찬 근육의 올 하나하나가 마치 강철로 뽑아 만든 실처럼 단단하고, 그것을 보호하는 진기 역시 충만하다.

저것을 뚫고 내부를 타격한다? 그래, 물론 내가중수법의 달인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운호는 검사다. 절정에 다다른 그의 검술은 어설프게나마 검으로 격산타우의 묘를 발휘할만큼 대단했지만, 그것이 명정 신니의 강철 같은 육체를 꿰뚫을 만큼은 아니다.

세 번째.

그녀의 공격이 또 다시 바닥을 깨트렸다. 튀어 오르는 수많은 돌멩이들. 운호가 반응했다. 그리고 그 반응에 명정신니가 크게 놀랐다.

바닥을 깨트리는 이 수법은 외내공을 두루 갖췄지만 초식의 운용에 별다른 소질을 보이지 못하는 그녀가 내심 자신하는 수법이었다. 물론 깨진 돌멩이 파편들의 종류나 크기 등은 모두 제각각인, 그저 우연에 의지하는 수법이었기에 명정 신니 본인도 그 파편을 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외공이 충만한 명정 신니 본인에게는 별다른 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우연성이 상대를 더 당황하게 만든다. 사용할 때마다 다른 공격이다. 어찌 예상을 하고 피할까.

반 걸음. 툭, 툭, 툭툭툭. 그리고 다시 반 걸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휘익 휘두른 검으로 제법 큼지막한 돌멩이 하나를 명정 신니의 둥그런 머리통에 정확하게 튕겨냈다.

-퍼억!!

날아간 돌멩이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하지만 명정 신니의 머리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과연, 대단한 외공 입니다. 신니의 머리는 돌보다 단단하시군요.”

“이놈이?”

돌멩이는 명정 신니의 머리에 아무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운호의 말 한마디가 그녀의 머리 전체를 마치 삶은 문어처럼 붉게 만들었다.

-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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