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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25화 (125/288)

125화

보물(10)

이 전장에서 운호의 승리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명정신니,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해랑검과 혈운검이 적룡창 배규의 죽음을 감지했다.

명정 신니는 판단했다. ‘승부의 한 축이 기울었으니 내가 이자들을 제압하여 다시 그 축을 돌려야겠다.’ 해랑검과 혈운검 역시 자신들이 조금만 더 버텨낸다면, 그리고 운호가 합류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절정 고수들의 싸움이 이전보다 훨씬 격렬해졌다.

세 사람의 절정 고수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싸움의 행방을 눈치챈 것은 남궁철이었다. 그는 두 명의 비구니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는데 보타암의 비구니들은 깡마른 체구와 달리 그 힘이 보통이 아니다. 내공도 내공이지만 아무래도 불가 계통의 문파답게 비전의 외가 기공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이런 난전에서 남궁철은 함부로 제왕검형을 펼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상대를 약하게 만드는 수법이지만, 동시에 피아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부웅

크게 검을 휘둘러 비구니들을 물러나게 만든 그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마침 운호의 검이 배규의 가슴팍을 파고드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하여 명정신니를 비롯한 절정의 고수들이 자신의 싸움에 더 깊숙하게 몰두할 때, 남궁철은 자신의 싸움에 몰두하는 대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선택했다.

“소신검이 적룡창 배규를 쓰러트렸다!!”

다수와 다수의 싸움이다.

잘 훈련된 병사, 혹은 명문 세가나 문파의 무인이라도 어느 정도 기세를 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지금 이 전투의 절반은 낭인들이다. 항복하고 해룡방을 따르는 낭인들과 배규와 함께 보타암의 여승들을 따라 온 낭인들.

힐끔.

낭인들의 시선이 운호 쪽으로 향했다.

바닥에 쓰러져 가슴팍에 피를 쏟아낸 적룡창 배규. 그리고 자리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운호. 승패는 명확했다.

중늙은이 하나가 지지 않고 소리쳤다.

지난번 파열검 우돈과 함게 이번 습격을 획책했던 낭인 소모자(小耗子) 장일이다.

“저 애송이도 지쳤다!! 어쩌면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르지. 지금이 기회다!! 여기서 또 물러난다면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올까. 보물을 눈 앞에 두고 물러나 평생 후회하며 늙어 죽을 텐가? 아니면 손을 뻗어 보물을 움켜쥐어 볼텐가!!”

“보물도 살아 있어야 보물이겠지. 항복하라. 항복한다면 선처하겠다. 그게 아니라면!!”

-쾅!!

남궁철이 거세게 칼을 휘둘러 자신을 압박해오던 비구니의 석장을 반토막냈다.

“살아나갈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낭인들의 동요가 커졌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저, 저기!!”

-우드득!!

크게 기운을 일으킨 명정 신니의 오른발이 혈운검 좌하랑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순식간에 넉 장 가까이 튕겨나간 좌하랑. 앞서 입었던 배규에게 입었던 창상이 다시 터졌고 그 아래 늑골까지 부러졌다. 게다가 부러진 늑골에 장기가 상했는지 입에서 주르륵 선혈이 흘러나왔다.

해랑검 공조가 재빨리 좌하랑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과광!!

명정신니의 거침없는 공격이 공조에게 쏟아졌다. 그 장면을 바라본 장일이 낭인들에게 또 한 번 소리쳤다.

“자, 다 이긴 싸움이다!! 이제 그저 신니가 해적 놈을 제압할 때까지 저 애송이만 묶어두면 된다. 이미 내상을 입은 애송이다. 분명히 약속하마. 나와 함께 저 애송이를 막아낸다면 그 몫을 공평하게 나누겠다.”

-꿀꺽.

낭인들의 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적룡창 배규는 절정의 고수다. 당연히 그에게 보장된 금액도 천문학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금액을 공평하게 나누겠다고?

“소모자 네 놈을 어떻게 믿고? 게다가 소신검이 내상을 입은 건 확실한 거야?”

“그의 상대가 누구였는가를 생각해봐라. 소신검이 이긴 것 자체가 기적이다. 게다가 몸이 멀쩡했더라면 곧바로 싸움에 다시 합류했겠지. 지금 저기서 저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것 자체가 내상을 고르는 것이 분명하다.”

확실히 장일의 말은 그럴싸했다.

대충 싸우며 눈치만 보던 낭인들 몇몇이 장일 곁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남궁철이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젠장, 이렇게 되면?’

운호가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제왕검형을 아낄 때가 아니다.

낭인들, 어쩌면 해룡방의 방도들까지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운호가 상하게 둘 수는 없었다.

제왕검형(帝王劍形)

남궁철의 검에 금빛의 검뢰가 맺혔다.

그리고 동시에 남궁철 주변의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제왕의 기세다.

그 압도적인 기세가 적들의 신경계에 이상 반응을 일으킨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 속도가 증가한다. 사람이 투쟁의 상황에 처했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정상적인 반응 이상으로 강력해진다. 투쟁을 넘어 공포를 느꼈을 때 가까운 긴장감이다.

잔뜩 힘이 들어간 근육이 뻣뻣해지고 반응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늦다.

남궁철과 저 낭인들 사이의 거리는 상당했다. 게다가 제왕검형이 발휘됐다고는 하지만 보타암 비구니들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궁철의 짐작처럼 보타암의 비구니들은 금강경화(金剛硬化)라고 하여 상승의 외가기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것은 전신의 피부와 근육을 단단하게 만드는 공능이 있었는데 비구니들의 경지가 대단하여 기초적인 도검불침의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남궁철의 검뢰에는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있었지만, 그 근육을 완벽하게 베어내는 것은 마치 무공을 전혀 모르는 이가 대나무를 검으로 베어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소모자 장일을 비롯한 여섯 명의 낭인들이 운호에게 쇄도했다. 가장 강한 자는 강아현에게 필적했고, 가장 약한 자도 일류의 초입이다.

‘일류 여섯이라면 설사 멀쩡한 절정 고수라도 승산이 있다.’

물론 그것은 제대로 훈련되어 완벽하게 합이 맞는 일류 여섯이 그중 다섯 정도는 목숨을 잃고 나머지 하나도 반병신은 될 것을 각오했을 때 이할 즈음 되는 승률이겠지만, 상대는 방금 같은 수준의 고수와 싸워 내상을 입은 상태다.

가장 앞서 달리던 낭인 품속에서 비도 하나를 꺼내 달리던 힘까지 실어 그대로 투척했다. 따로 비도술을 연마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대단한 공격. 묵직한 비도가 공기를 가르고 빠르게 날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눈을 반개한 채 호흡을 고르던 운호가 자연스럽게 몸을 틀었다.

-쾅!!

운호의 몸을 스쳐 날아간 비도가 뒤편의 바위에 틀어박혔다. 끝나지 않았다. 첫 번째 비도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어 투척 무기 여럿이 따라서 날아온다. 각양 각색의 모양과 무게. 날아드는 속도도 각도도 모두 제각각이다.

운호가 반개하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후읍.

대퇴이두근, 반건양근, 반막양근. 미세하게 출혈이 일어났던 근육들은 여전히 뻐근하다. 하지만 흔들렸던 기맥은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이럴 때면 역시 자하기공을 익히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마도 자하기공의 공능이었다면 이런 사소한 부상 정도는 금방 회복시켜줬을지도······. 날아드는 비도가 보였다. 그래,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사고의 속도가 극대화됐다.

본래 부터 사고력이 평범한 사람을 아득히 뛰어넘던 운호였다. 절정에 이른 이후 그것은 더욱 대단해졌다. 그 오성이 범인에 불과했던 운호의 사부 공야찬이 운호와 수 싸움이 됐던 원동력이 바로 이것이다.

절정의 고수는 보통의 사람과 그 사고의 속도가 다르다. 범인이 한 번 생각할 시간에 절정의 고수는 서너 번을 생각한다. 이는 마치 서로 다른 시간축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운호의 시야가 날아드는 암기들을 살폈다.

가장 앞서 날아오는 것은 극단적으로 짧은 손잡이와 묵직한 칼날이 인상적인 비도다. 던지는 동작이 어렵지만 그 위력을 극대화시킨 비도다. 조금 전 바위에 틀어박힌 비도와 같은 종류다. 그 뒤를 따라 날아오는 쇠구슬, 그리고 미세하여 제대로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우모침도 보인다. 고작해야 낭인들 주제에 꽤 대단하다. 하긴 저 정도 수가 있었으니 감히 절정 고수를 상대하겠다 나선 것이겠지.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적의 길이 그려진다. 이것은 절정의 경지 때문이 아니다. 운호 본인의 타고난 재능. 혹은 지금까지 그가 익혀온 검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운호의 몸이 크게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거기서 일 촌 몸을 틀고 다시 그 방향으로 한걸음 전진했다. 가장 먼저 날아들던 비도가 스쳐 지나간다. 거기서 살짝 고개를 틀자 그 옆으로 쇠구슬 역시 스쳐 지나갔다. 우모침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보다 더 늦게 날린 수전 하나가 빠르게 쇄도해온다. 용수철을 사용한 암기다. 아마도 투척술에는 그리 자신이 없는 사람이겠지. 하지만 수전 자체가 제법 명품인 듯 그 궤적이 심상치 않다. 어설프게 투척술을 익힌 사람보다 훨씬 낫다. 운호가 크게 앞으로 전진하며 몸을 낮췄다. 머리 위로 작은 화살이 스쳐 날아간다.

그 즈음하여 우모침이 코앞까지 날아왔다. 쉽다. 어느새 빼어든 검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 동작 하나로 날아오던 우모침이 운호의 검이 만들어낸 공기의 와류를 탔다.

그리고 이 모든 동작이 이뤄지기까지 딱 한호흡.

암기를 던진 낭인들은 아직 자세를 바로잡지도 못했다.

“크억!!!”

앞장선 낭인 하나가 운호가 돌려보낸 우모침에 어깨를 찔렸다. 마치 소털과 같다고 하여 우모침이라 불리는 암기다. 암기 자체에는 그리 큰 힘이 없기에 주로 독을 발라 사용한다. 우모침에 어깨를 찔린 낭인이 순식간에 -그르륵 검품을 물고 쓰러졌다.

“이런 멍청한 새끼!! 해독약!! 얼른 해독약!!”

물론 운호에게 그것을 허락할 의사 따윈 없었다.

크게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이제 경지에 이른 부운약표가 순식간에 낭인 무리와 운호의 거리를 삭제했다. 일류의 무사 다섯. 운호의 검이 가장 앞선 낭인의 목을 노렸다. 화들짝 놀란 낭인이 재빨리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다른 낭인 넷이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고 운호를 노렸다.

공격과 공격과 공격. 그리고 또 공격.

그 틈새를 잇는 하나의 길이 보인다.

광음(光陰)이라 했다.

증무진인 목운평이 평하기로 상승의 시작이며 도에 닿을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검.

기해혈에 쌓인 포원공의 진기가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그리하여 오직 일검.

두 명은 허리가 가로로 잘렸고, 하나는 목이 잘렸으며 나머지 하나는 머리가 사선으로 잘려 나갔다. 그야말로 가로막는 모든 것을 잘라낸 상승의 검격. 그 참혹한 광경에 처음 물러났던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낭인이 겁에 질려 등을 돌리고 달아났다.

쫒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두 번의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수들과의 다툼은 이만하면 됐다. 그의 의형은 난사람이니 이제 저들의 싸움은 의형에게 맡기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지금 운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이 자리에 유일하게 유일하게 운호와 같은 높이에 선 적수. 저 거대한 석장을 마치 회초리처럼 가볍게 휘두르는 명정신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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