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19화 (119/288)

119화

보물(4)

“늦었군. 아현아 조심해서 접근하도록 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운호야?”

구보로 달리던 말의 잔등을 박차고 운호가 몸을 날렸다. 이미 진행 중이던 속도에서 운호 본인의 속도가 더해졌다. 그야말로 쏜살처럼 쏘아지는 몸. 딱히 경공에는 조예가 깊지 않던 운호다. 하지만 절정은 절정이라는 것일까? 첫걸음이 바닥을 딛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조금의 느려짐 없이 오히려 한층 더 빠르게 몸이 쭉쭉 뻗어 나간다.

“워워!”

아현이가 운호가 박차고 나간 말의 고삐를 낚아챘다. 갑자기 등에 전해진 충격에 놀란 말이 아현이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짧은 거리에 한정 짓는다면 일류고수인 강아현 자신도 말의 습보에 필적하는 속도를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운호의 속도는 그 이상이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운호는 이미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싸움이 벌어졌다는 뜻이겠네······. 이럇!!”

강아현이 말을 달렸다.

* * *

한눈에 전장 전체가 들어왔다.

난잡했다.

흉험함으로 따지자면 무한에서 있었던 마교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침공이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더 흉험했다. 일수에 절정의 고수 몇 명이 피떡이 되어 사라졌던 전장이다. 아마 거기서 그렇게 피떡이 되어 사라졌던 고수 서넛만 이 자리에 있어도 전황 자체가 바뀌지 않을까?

하지만 하수들은 하수들 나름대로의 치열함과 급박함이 있었다. 목숨이 하나인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가장 먼저 기감에 잡힌 것은 절정 고수들간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의형인 남궁철이다.

“자자, 다들 조심해라. 여기 이 도련님은 괜히 죽였다가는 뒤끝이 안 좋을지도 모르니까.”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넘어 실소까지 흘러나온다. 그의 의형은 그런 처참한 일을 경험했음에도, 그리고 곧바로 이런 일을 겪고 있음에도 여전했다.

지금 의형의 손에 반 토막 난 낭인이 위세가 제법 되던 녀석이었는지, 적들의 검세가 흉흉해졌다.

“여기 화산파의 삼대 제자이자, 황실 금의위 북진 교위. 소신검 운호가 나의 의형과 강호의 은인인 파검 대협의 후예를 도우러 왔다. 누가 감히 나의 검을 상대하겠느냐!!”

가장 먼저 저들 가운데 제법 기세를 풍기는 녀석에게!!

부운약표(浮雲躍飄)

뛰어오르는 동작은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낭인들의 얼굴에 당황이 채 깃들기도 전, 운호의 몸이 빠르게 독안의 검사에게 쏘아졌다. 두 번의 휘두름도 필요 없었다. 가벼운 일격. 하지만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흉골을 피하여 척추를 그대로 토막낸다. 인간의 뼈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조밀하다. 아무리 강철검이라도 쉽게 박살낼 수 없다. 하물며 진기가 운용되는 고수의 몸은 더하다. 하지만 절정이 어디 달리 절정이던가.

독안의 검사가 그대로 가로로 반토막이 났다.

그리고 눈 깜빡 할 사이. 어느새 운호가 남궁철의 앞에 섰다.

“운호 네가 여긴 어떻게? 그리고 금의위라는 말은 또 무슨 말이고?”

“하나밖에 없는 의형이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자세한 이야기는 일을 다 끝내고 하도록 하시죠.”

검을 휘둘러 핏물을 떨쳐낸 운호가 오연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황실 금의위를 상징하는 누런 장포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야말로 좌중을 압도하는 고수의 풍모다. 그 어린 용모도 압도적인 기세를 감출 수 없었다.

“자, 이제 누가 감히 나와 검을 맞댈 생각이더냐.”

웅성거림이 커졌다. 낭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감돈다.

“독안와가 고작 일 검에?”

“화산파······? 화산파라면?”

“설마 무림맹에서 끼어든 건가?”

“아니, 금의위라고 했잖아.”

“그렇다면 황실이야? 아니, 황실에서 대체 해룡방을 왜?”

“어이, 우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무림맹에서는 절대 끼어들 리 없을 거라며. 이런 식이면 이야기가 달라지잖아.”

낭인들의 웅성거림에 파열검 우돈이 당혹감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젠장, 화산파에 금의위라고?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저자가 보여준 무공이 심상치 않다. 우돈의 시선이 운호를 훑었다. 그저 기세에 눌렸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어린 얼굴이 보인다.

‘소신검?’

기억이 났다.

이번 무한 혈사에서 새롭게 떠오른 화산파의 신성. 십 대의 어린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 저런 어려보이는 외관에 절정의 고수라니. 사칭도 어렵다. 하지만 금의위의 북진 교위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봐, 우돈. 어쩔 생각이야.’

‘어쩌기는 뭘 어째. 우리 여기서 접으면 너나 나나 둘 다 끝이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지금 물러난다고 단순히 재산만 날리는 걸로 끝날 것 같아? 해룡방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저 놈들 남해의 해적 놈들이랑 거래하던 놈들이야. 주모자가 누군지 알아내서 죽을 때까지 추적해올걸? 지금 우리가 우위에 있을 때 끝을 봐야 해.’

‘그러면 저 애송이는 어쩌고. 금의위에 화산파라잖아. 지금 남궁세가의 애송이만으로도 벅찬데 금의위에 화산파까지 처치하자고?’

‘이판사판인데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어차피 소신검 얼굴 아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 그냥 사칭으로 몰아가면 그만이야.’

‘사람들이 믿을까?’

운호가 깊숙하게 호흡했다.

말잔등을 박차고 여기까지 일각에 가까운 시간을 전력으로 달려왔다. 무공 가운데 가장 정직하게 내공을 드러내는 것이 경공이다. 그리고 운호는 무공의 수준에 비해 내공이 매우 부실하다. 비유하자면 병량은 얼마 되지 않는 군대가 그 숫자는 너무 많은 것과 같다. 낼 수 있는 힘에 비해 지구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전력으로 일각. 그리고 적을 압도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양단한 일 검. 이미 운호의 내공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호흡을 따라 탁기가 빠져나갔다.

하지만 기해혈에 모인 진기는 미미하다. 더 긴 시간, 혹은 이런 조식이 아닌 제대로 된 운기가 필요하다.

적룡창 배규의 창끝이 매서워지는 만큼 혈운검 좌하랑의 손끝이 어지러워졌다.

-운호야!!

우화등선하며 인세의 모든 미련을 버렸으니, 더이상 아무런 관심이 없다던 파검 좌부원이 소리를 질렀다. 당연하다. 우화등선하여 상위 세계로 떠난 영혼도 아닌,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응집된 백(魄)이 혈육의 정을 어찌 끊을 수 있을까.

바닥을 드러내는 진기를 박박 긁어 모았다.

그래, 언제 자신이 넘치는 내공으로 싸웠단 말인가. 운호의 싸움은 항상 그러했다. 부족한 공(功)은 술(術)로써 대체한다.

상대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았다. 먼저 움직였다.

첫 번째 걸음에 전력을 다했다.

그들을 둘러 싼 낭인들의 눈동자가 커지는 것이 똑똑히 들어온다. 하지만 감히 반응하지 못했다. 운호의 첫걸음은 그토록 신속했으며 모두의 의표와 박자를 빼앗은 한 걸음이었다.

-뻐억

운호의 발끝이 낭인 하나의 머리를 터트렸다.

“공중이다!!”

낭인들의 검극이 하늘에 뜬 운호를 노린다. 느리다. 하지만 문제는 운호 자신의 몸 역시 무겁고 느리다는 점이다. 날숨에 탁기가 빠져나간다. 그 무게 만큼 몸이 가벼워졌다. 아니, 그 이상이다.

부운약표(浮雲躍飄)

그 첫걸음이 날아오르는 거친 회오리바람(躍飄)이었다면 두 번째 걸음은 허공을 떠다니는 구름(浮雲)과 같다.

운호의 발끝이 사뿐하게 거칠게 휘두르는 낭인의 검극을 밟았다.

-퉁

검을 휘두른 낭인이 운호의 무게를 느낄 새도 없었다. 세 번째, 네 번째.

그리하여 낭인 무리의 한 가운데.

텁석부리와 중늙은이.

운호의 외침에 웅성거리던 낭인들의 시야가 모여들었던 인물들이었다. 제대로 된 전장에서 정규군의 지휘 아래 싸웠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실수.

운호의 검이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향했다.

“이이잇!!”

각자가 일류의 경지에 이르른 고수들이다. 특히나 저 텁석부리의 경우는 그 경지가 꽤 높아서 그와 함께 달려온 강아현에게 필적할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텁석부리와 중늙은이의 검이 운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 그렇다면 이번 한 번만 버틴다면!!’

아무리 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이토록 많은 인의 장벽 사이에 홀로 몸을 던지다니. 절정의 고수는 뒷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움직인다지만 그래봐야 손 두 개, 발 두 개. 그리고 손에 쥔 검은 하나뿐이다. 사방을 둘러싸이면 허점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 지금 저기에서 몸에 상처가 늘어나고 있는 해랑검 공조처럼 말이다.

파열검 우돈의 검이 운호의 검을 정확하게 막아냈다.

-챙!!!

그래, 분명 막아냈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충격 이후 튕겨 나는 검. 바로 그 순간 운호가 손을 쫙 펼쳤다. 그 순간 운호의 검이 마치 허공을 유영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화들짝 놀란 우돈이 다시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가 무너진 자세를 바로잡는 것보다 튕겨나갈 듯 하던 운호의 검이 그의 목젖을 꿰뚫는 것이 더 빨랐다.

“이런 개같ㅇ······.”

-푸욱

고작 일 합.

일류 가운데서도 이름 높은 고수가 쓰러졌다.

그 모습에 운호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중늙은이가 한 걸음 뒤로 크게 물러나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하, 항복!! 항복이요. 부디 죽이지 마시오. 이대로 얌전히 물러나겠소!!”

짧은 호흡.

아릿한 기해혈을 달래며 오른손 손바닥을 쫙 펼쳤다. 무릎 꿇은 채 뒤로 털썩 쓰러진 우돈의 목에서 스르륵 화산검이 스스로 뽑혀 날아왔다.

“이······, 이기어검!!”

“맙소사!!”

절정의 고수라 하여도 쉽게 보기 힘든 기예. 더군다나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검과 쾌검을 위주로 익힌 이들에게는 더욱더 보기 힘든 기예다. 그야말로 저 산속에서 검만 수련하는 신선들이나 보여줄법한 그 모습에 운호를 향해 접근하던 낭인들이 모두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운호 주변으로 둥그런 공간이 생겨났다.

“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아주 괴물이 되버렸군.”

검을 움켜쥐고 싸움에 합류하려던 남궁철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무리를 이끌던 파열검 우돈이 사망하고, 그와 함께 무리를 모았던 늙은이가 항복을 외친 탓일까?

싸움을 이어가던 낭인들이 하나둘씩 무기를 회수하고,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운이 좋군.”

“누가 할 소리를. 아쉬우면 더 붙어 보던가.”

적룡창 배규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혈운검 좌하랑을 훑어보았다. 삼십 초. 딱 삼십 초만 더 섞을 수 있다면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거늘.

하지만 그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혈운검 좌하랑 하나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해랑검 공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괜히 그가 해룡방 최고수가 아니다. 만약 그의 상대가 해랑검이었다면 지금 혈운검 꼴이 된 것은 적룡창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싸운다면 그쪽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요. 그대들을 노리는 것이 우리뿐인 것도 아니고, 조용히 물러가겠소. 보내주시오.”

운호가 대답하는 대신 깊숙하게 호흡을 들이켰다.

약세를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은 이게 더 급했다. 진기가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무리하게 이기어검을 펼친 탓이다. 지체한다면 내상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너희들을 어떻게 믿고?”

시의적절하게 남궁철이 낭인들 사이를 헤치고 운호 옆에 섰다.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운호는 고수였지만, 동시에 남궁철의 의동생이다.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결정짓는 결정권자는 저 해룡방의 책임자인 해랑검 공조나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자 운호의 의형인 남궁철 쪽이 더 적절하다.

“믿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믿는 편이 그 쪽에게도 좋을 것이요.”

“하긴, 뭐 여기 내 동생도 왔겠다, 급해서 일단 먼저 달려온 모양인데 일행도 곧 합류를 할테니 너희 따위를 무서워 할 이유는 없겠지. 좋다. 보내주마. 단!!”

“단?”

“네 놈들이 입힌 피해는 충분히 보상해줘야겠지?”

“보상?”

남궁철이 능글맞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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