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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17화 (117/288)

117화

보물(2)

“대인!! 이리 오시지요. 지금 뭣들 하느냐!! 어서 고삐 받아들지 않고!!”

배가 불룩 나온 초로의 사내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솔직히 말해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왜냐하면 지금 저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는 사내는 이 지현의 최고 권력자인 현령이기 때문이었다.

지현의 현령쯤 되면 그 지역 호족의 장과 함께 해당 현 최고의 권력자다. 최소 향시를 합격한 거인이 십수 년 관직 생활을 한 끝에 당도하는 자리이며, 설사 회시를 합격한다고 전시에서 중간 등수 이상은 되야 제수받을 수 있는 높은 위치다.

그런만큼 설사 대문파의 제자라고 해도 삼대 제자 정도는 코 아래로 내려다 본다. 이대 제자라고 해도 하대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일대 제자쯤은 되야 평대를 해준다.

운호가 유리걸식하던 당시에는 지금 저 쩔쩔매는 현령은커녕 말고삐를 쥐고 어쩔 줄 모르는 현승조차도 까마득하게 높아 감히 얼굴조차 함부로 쳐다볼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지금은 말고삐를 쥐고 어쩔 줄을 모르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운호야,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나란히 말을 탄 강아현이 운호에게 속삭였다.

그 질문에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충 대인 말로는 줄 수 있는 자리가 이것뿐이라잖아.’

‘아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위라니. 이게 말이 돼?’

‘북진 총관의 부관 자리가 원래 교위직이래. 지금은 공석이었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과거도 안 봤는데······.’

아현이 운호의 몸을 감싼 화려한 금빛의 전포를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무림인들은 자신들이 주로 상대하는 동창에 비해 금의위를 조금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사실 금의위의 위상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제국은 행정적으로 굉장히 발달한 국가였고, 사법의 체계 역시 상당히 복잡했다. 기본적으로 체포, 수사의 권한과 감찰, 행형의 권한. 그리고 처결의 권한이 모두 분산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유일하게 예외인 것이 바로 금의위다.

금의위는 제국 황제의 통치행위 그 자체로 비록 그 범위가 관원에 한정되긴 하지만 체포, 수사, 감찰, 행형. 그리고 처결까지 모든 권한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관헌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지금 운호가 걸친 금의는 그가 금의위 북진의 교위임을 상징하고 있었는데 금의위의 체계가 총관과 부총관까지가 장군이고 그 바로 아래부터가 교위임을 고려할 때 이런 지방에서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저나 교위님께서 이런 촌구석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공무입니다.”

운호의 퉁명한 대답에 현령이 입을 다물었다.

아직 약관도 채 되지 않은 것같아 보이는 녀석이 금의위 교위라니 믿기 힘든 일이기는 했지만, 본래 중앙의 인사라는 것이 종종 그렇게 믿기 힘든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게다가 저 금의를 사칭했을 때 생길 일, 그리고 지금까지 저자가 꾸준히 역참을 이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칭일 가능성은 영에 가깝다.

물론 그러한 현령의 열렬한 시선을 받는 운호의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당장 해룡방 일행을 돕기 위해서는 빠르게 이동해야만 했다. 그리고 중원 땅에서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역참이다. 지금 운호가 입고 있는 금의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역참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제국의 핏줄이다. 오직 관원이나 황실에서 허가한 인원만이 사용할 자격을 얻는다.

비록 이런저런 실권과 부하들을 모조리 뺏기고 십이지신의 일 좌로 명목상 북진의 총관 자리를 유지하는 조충이었지만 어찌 됐건 금의위 북진의 총관은 총관이다. 자신의 부관을 임명할 권한 정도는 가지고 있다.

“조충 대인이 막아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했어. 동창에서 눈치를 채고 움직이기 시작할 거라고. 그 전에 합류해야해.”

“하지만 운호야 나는 아직도 네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물론 파검 대협이 무림맹의 은인이고, 남궁 소협이 네 의형인 건 알겠지만, 그러니 이건 더더욱 검왕 대협이 무림맹주로 있는 무림맹의 일이잖아.”

“그래, 맞아. 이건 무림맹의 일이지. 하지만 무림맹은 나서지 않을 거야.”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운호가 얼마 전 파검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남궁벽 그 옹졸한 놈은 제 손자가 나가 죽는대도 해룡방을 구하는 데는 절대 힘을 보태지 않을거다. 그 반대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남궁형은 남궁세가의 후계자인데······.’

-너 몰랐구나. 남궁벽 그놈 그거 애초에 남궁강부터 싫어하는 놈이다. 뭐, 본인 의도와 상관없이 가주 자리를 넘겨줬으니 그럴 만하긴 하다만. 어쨌거나 딱히 네 의형이 나가 죽는다고 해도 그놈이 굳이 나설 일은 없을 거다.

어쩐지······.

이전 검왕 남궁벽과의 첫 대면때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아무리 검왕이 파검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검왕 만한 고수라면 지금 파검이 손자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무공을 전수하고 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헌데 그것을 굳이 방해한다?

“그래, 뭐 운호 네 말이 맞다고 치자. 하지만 아무리 의형제라고 해도, 그리고 네가 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해룡방이라고 절정의 고수가 없겠어? 고작 너랑 나 둘이 합류한다고 대체 뭐가 달라지는데.”

“그야 당연히 많은 것이 달라지지.”

“많이 달라진다고?”

* * *

본래 해룡방의 식구는 총 마흔둘.

하지만 모든 이가 파검의 제자, 혹은 파검의 가족은 아니었다. 단순하게 고용이 돼있던, 혹은 식객으로 머물던 이들 열하나가 해룡방의 파산과 함께 떠났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하북성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던 낭인 파열검 우돈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일류 가운데도 상위의 고수로 중원 낭인계에서도 제법 명망이 높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이번 기회에 한탕 제대로 당길 수 있다. 그 말이지.”

“하지만 파검의 제자들 가운데 딱히 파검의 성취를 재현할만한 고수가 없다는 말은 그 무공이 그리 특출난 무공이 아니라는 소리잖아.”

“멍청하기는. 어디 무당파에 장삼봉이 다시 안 나온다고 해서 무당의 무공이 특출나지 않다는 소리일까. 우리 같은 낭인들이 초절정에 다다를 수 있는 무공을 얻을 기회가 또 어디 있다고 그래.”

“하긴 그건 그렇지.”

“게다가 딱히 우리가 그 무공들을 익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무공을 시장에 내놓으면 가격이 얼마나 할지 상상해보라고. 무려 우화등선을 한 파검의 진신무공이야.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일걸? 너나 나나 어디에 장원 하나 차리고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기회라고.”

파열검 우돈과 대화를 나누던 늙은 낭인이 조금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훑었다.

“흐음, 하지만 우돈 너는 얼마 전까지 해룡방에 몸 담고 있던 거 아니었어?”

“낭인이 밥 잘 주고 돈 잘 주면 가서 붙는 거지. 충성은 개뿔. 게다가 어디 파검 그 늙은이가 그렇게 갈 줄 알았나. 문파가 아주 쫄딱 망해서 전별금도 제대로 못 받았으니, 이렇게라도 알아서 챙겨가야지.”

“큭큭큭, 그래. 그건 또 그렇지.”

사실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대저 낭인이라는 자들 대부분이 그렇다. 가진 것이라고는 비루한 몸뚱이, 그리고 손에 쥔 칼 한 자루가 전부인 자들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 파검의 수제자인 해랑검, 그리고 그 딸년인 혈운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게다가 무기를 손에서 놓은지도 제법 됐고, 늙어 기력도 떨어지긴 했겠지만 파검의 부인인 공 대부인도 젊었을 적에는 제법 이름을 날리던 무인이었어.”

“결국, 주의해야 할 것은 기껏해야 그 셋에 불과하단 뜻이잖아. 그 정도야 뭐. 어차피 지금 노는 애들이 몇인데. 한탕 하러 가자고 하면 다들 좋다고 나설걸?”

이번에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에서 한몫 나름대로 챙겨보기 위해 북쪽에서 내려온 낭인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수백이 훌쩍 넘어간다. 물론 무공이 특출나거나, 신용도가 특별히 높은 몇몇 낭인들이야 이번에 신설된 무림맹에 뽑혀가는 행운을 얻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낭인들 대부분이 이번 사태로 인해 일이 없어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는 신세다.

“그래, 좋았어. 그러면 네가 인원을 좀 모아보라고.”

“그들이 어디로 갈지는 알고 있는거지?”

“당연하지.”

파열검 우돈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 * *

“이보게. 정말 괜찮겠나?”

“네, 아버지께서도 허락하신 일입니다. 아, 물론 어머님과 아버님도 허락을 하셔야 하는 일이지만요.”

“아니, 우리야 반대할 이유가 없다지만 그래도······.”

혈운검 좌하랑이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인 좌부원이 살아있었다고 해도 상당히 기우는 혼인이다. 남궁강이 남궁세가의 가주로 등극한 이후, 남궁세가의 가세는 그야말로 욱일승천. 칠대세가의 수좌인 모용세가 만큼은 아니어도 부동의 이인자 자리를 굳건하게 굳혔다.

게다가 이번 사건 이후, 천무십칠성 가운데 무려 일곱이 사망했고, 그 자리에 살아남은 두 명의 초절정 고수 중 하나인 검왕 남궁벽. 그러니까 남궁세가의 태상가주는 무려 ‘무림 맹주’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런 남궁세가의 소가주다. 당금 강호 최고의 사윗감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현재 해룡방은 그 중심이던 파검 좌부원이 사망했고, 그가 남긴 채권들로 인해 문파 자체가 파산했다. 남은 것이라고는 여기 서른 남짓한 사람이 전부다.

이건 기울어도 너무 크게 기우는 혼사 아닌가.

남궁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장조님, 아, 그러니까 생전의 파검 대협께서도 허락하신 일입니다.”

“끄응, 망할 아버지가 그래도 마지막에 손녀 생각을 조금은 한 모양이네.”

좌하랑의 불평에 남궁철이 멋쩍게 턱을 긁적였다.

사실 그녀 입장에서는 이정도 욕으로 끝나는 것이 다행일 것이다. 손녀를 데리고 외유를 나가더니 본인은 우화등선을 해버리고, 딸의 안위가 걱정되어 죽을 것 같은 찰나에 가문으로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빚문서가 날아들었다.

그나마 이렇게 번듯한 사내가 딸의 약혼자라며 찾아온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그런 상황에서 남궁철이 ‘파검 대협은 실로 대단한 강호의 영웅이었습니다. 아마 그 분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구파와 칠대세가, 나아가 황궁까지 모조리 마교에게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라고 말해봤자 씨알도 들어 먹히지 않는다.

그나마 남궁철이 할 수 있었던 말은

“조 소저는 이번 일로 조금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저희 집에 잘 있습니다. 같이 오겠다 이야기 하긴 했습니다만······.”

“잘했네. 지금 이렇게 남궁가의 무사들이 합류했음에도 위험한 길이야. 그 아이라도 안전한 곳에 있는 것이 낫겠지.”

좌하랑의 이야기에 남궁철이 무의식적으로 가슴 어림을 쓰다듬었다.

그날, 그 사건으로 난자된 시체들은 그 주인을 유추할 수 있는 조각들은 가족에게 돌아갔지만 그렇지 못한 시체들은 합동으로 묻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남궁혜의 시체는 후자에 속했다.

그 말인즉 지금 불에 태워 뼛가루만 남은 이 작은 유골함만이 남궁혜라는 여인이 세상에 태어나 남긴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는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또한, 혜아를 그렇게 만든 원수를 기필코 갚아주고 말리라.

운호의 말에 따르자면 채찍을 휘두르던 그 천급의 마인.

이번 사건으로 작고한 대력금강 공조대사의 일장에 치명적인 일격을 입었다고 했지만, 그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인의 끈질긴 생명력을 고려한다면 아마 살아남았다고 봐야겠지.

“아, 죄송합니다. 잠시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버렸군요. 다들 쉴만큼 쉰 것 같은데 어서 이동하시죠. 조금만 더 이동하면 배편이 있을 겁니다. 거기까지만 간다면······.”

“조심!!”

혈운검 좌하랑의 검이 날아오는 화살을 박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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