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15화 (115/288)
  • 115화

    북경(7)

    “환생이라······. 그것참 골치 아픈 부분이지요.”

    청해대장군부에서 왔다는 종자명이라는 무장은 서역인의 피가 진하게 섞인 벽안의 사내였다. 올해로 서른아홉살. 사상의 일인인 청해대장군 영보의 막내 제자라더니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가 저릿하다.

    “정말 사람이 기억을 모두 갖고 환생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네, 일단 우리가 밝혀낸 바에 의하면 가능합니다.”

    “현재 활불이 오대 활불일텐데, 거의 삼백 년의 기억을 가지고 무공을 수련해온 셈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야말로 당적할 자가 없는 천하제일인겠군요.”

    종자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또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것이 단순히 삼백 년을 수련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종자명과 오혁의 대화를 듣던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백 무사는 이해를 한 것 같군요.”

    “네, 최근 성장기가 급격하게 찾아온 적이 있어서요.”

    -아!!

    오혁이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군요. 몸이 바뀌니 그것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내공은 이어지지 않을 테니 그것을 다시 쌓는데 걸리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겠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한다고 하여도, 무공에 처음 입문하여 그것을 쌓는 속도와 애당초 높은 곳을 경험한 이가 그것을 다시 오르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 역시 맞지요.”

    “허면?”

    종자명이 말없이 씨익 웃었다. 그 웃음에 오혁이 곤란한 표정으로 -끄응 신음성을 내뱉었다.

    “전량은 무리입니다. 다만 태감께 말씀은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저야 소감께서 그렇게 성의를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지요. 사실 저 따뜻한 남방이나 최우선으로 지원되는 북병에 비해 저희쪽 식구들이 좀 고달프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래서 대체 무엇 때문에 활불의 무공 성취가 늦어지는 겁니까?”

    사람의 몸은 영혼백육으로 이뤄져 있다.

    대부분 종교에서는 그 가운데 고등한 영과 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우화등선이나 탈각 같은 것들은 결국 백과 육을 벗어던지고 영혼이 상위 차원으로 올라가는 형태를 띈다.

    “저희 사부께서는 환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이 육을 갈아타 백을 다시 쌓아 올린다고요. 당연히 이미 한 번 걸었던 길이기에 시행착오가 없을 것이라는 소감의 말씀은 옳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육(肉)입니다.”

    “육이요?”

    “네, 활불은 자신이 갈아탈 몸을 인근 지역으로 한정을 지을 뿐, 자기 마음대로 정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갈아탄 몸에 따라서 상당한 제약이 발생합니다.”

    “제약이요?”

    운호가 그 질문에 종자명 대신 답을 했다.

    “자질과 오성이로군요.”

    “자질과 오성? 자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성은 영혼에 구애받는 것 아닌가?”

    종자명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 사부님 말씀으로는 그게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실제로 활불은 그 차지한 몸에 따라 성취가 좀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전대인 사대 활불의 경우 불혹의 나이에 초절정에 올랐고 당시의 청해대장군님이시던 영균님과 중앙에서 파견 나왔던 동창 고수분들의 합공으로 간신히 처리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오대 활불의 경우는 얼마 전, 지천명을 넘겨서야 간신히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니, 꼭 환생을 거듭한다고 더 강해지지는 않는 셈이지요.”

    “이미 정상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해도, 결국 그 길을 걷는 것은 사람의 몸인 셈이로군요.”

    “오, 그래. 바로 그걸세. 게다가 무공이라는 것이 본래 사람을 좀 타지 않나. 검술만 보더라도 남들보다 팔 다리가 길고 경맥이 얇은이는 세검이 어울릴 것이고, 팔다리가 짧고 경맥이 두터운 이는 대검이 어울리겠지. 헌데 활불은 몸이 바뀔 때마다 그런 것들이 바뀌는 법 아닌가.”

    종자명의 말을 듣고 보니 어찌하여 청해대장군부와 곤륜, 공동이 서장을 막아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듣고 보니 그 환생이라는 놈, 꽤 비효율적인 방법이로구나. 하지만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무섭게 강해지는 것도 가능하겠다.

    ‘확실히······. 여러 가지 몸을 통해 많은 길을 경험하고 언젠가 자질과 오성이 따르는 육체를 얻는다면 천하에 당적할 자가 없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번 활불의 나이가 이제 고작 쉰 살이고, 지금 당장 환생한다고 해도 너보다 스무 살은 더 어릴 테니 네가 걱정할 일은 없겠지.

    그 순간, 운호의 머릿속에 무언가 묘한 생각이 번뜩였다.

    하지만 운호가 그 생각에 집중할 시간도 없이 종자명과 오혁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환신(換身)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환신이라······. 갑자기 활불에 대하여 묻기에 뭐 때문인가 했더니 이번 마교의 대제사장 때문이었군요.”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야 다른 군부와 달리 공동, 곤륜과 거의 한 몸 아닙니까. 공동에서도 이번에 크게 낭패를 보는 바람에 우리도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닙니다. 복마검수가 여덟이나 죽었어요. 몸이 크게 상해서 년 단위로 정양해야 하는 이들도 넷이나 되고 말이죠.”

    “유감입니다. 어쨌든 이미 알고 계셨다니 이야기가 조금 편해지겠군요. 환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종자명이 잠시 뜸을 들였다.

    “휴, 제가 동창 쪽의 아이들에게 조금 더 신경쓰라 이르겠습니다.”

    “허허, 그런 게 아니라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거였는데. 참으로 감사합니다. 환신이라······.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활불의 환생이 갖는 약점이 거의 다 없어진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육체에 갈아탄다는 의미일테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영혼백육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래 하나입니다. 활불의 환생도 비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어쨌거나 사람의 태를 타고 태어납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죠. 헌데 그 이치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만약 그것이 정말 가능하다면 그것은 역천일겁니다. 그리고 모든 역천의 술에는 그만한 반작용이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역천이라······. 그렇군요.”

    결국 종자명도 환신에 대하여는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운호는 본능적으로 오늘의 대화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활불의 방식이 그러했다.

    ‘화산의 검술과 비슷한 느낌이야.’

    물론 환생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하나의 검술을 대성하는 데 평생을 써야 할,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검술들을 묶어 하나의 길로 인도하는 방식.

    활불의 저러한 환생은 어쩌면 운호 자신과 같은 재능이 없는 이가 이와 비슷한 길을 걷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그렇다면 마교 대제사장의 환신은 대체 어떤 의미이며 어떤 형태라는 것일까.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이제 작은 공자님이 외출을 하실 시간이라서요.”

    * * *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초제(醮祭)는 황실에서 주관하는 행사다.

    그리고 제국은 행정적으로 매우 발달한 국가였다. 지금은 북방으로 쫓겨난 전대 황조까지만 하더라도 제국이 곧 황실이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제국의 세금과 황실의 내탕금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황제라고 해도 사사로이 국가의 세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렇기에 연단 위에 차려진 상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운호는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태어나 구경도 못해본 음식들까지 한가득이다.

    저 멀리 금의위의 고수들이 도열해있다.

    아마 그 뒤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황제, 혹은 황실의 인원들일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근처로 동창으로 추측되는 내관들의 기운 역시 느껴진다. 무림인이라기에는 희미한, 하지만 일반인이라기엔 강성한 묘한 기운이다.

    -대단하군. 역시 중원 최고의 부자는 황실이라더니······.

    파검이 초제의 거대한 규모에 감탄했다.

    현 제국이 건국될 당시 황제는 장강 이남에서 손에 꼽히는 대지주였고 그것은 황실이 막대한 내탕금을 보유하는 기초가 됐다. 그리고 이 내탕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불어났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황실의 내탕금을 관리하는 것은 내관들이다. 그리고 그 내관들은 제국 내 가장 강력한 첩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만한 정보력을 가지고 투자에 실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 마치 구대문파와 칠대세가가 하나가 된 무림맹이 마교의 기습에 돈좌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아니다, 지금 이 행사를 보니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화산의 장문인인 굉허진인이 제례를 위한 의복을 입고 연단에 섰다. 보통 화산의 무인들은 자기 나이보다 십 년은 젊어 보이는데 반하여 올해 예순네 살의 장문인은 나이보다 족히 대여섯살은 더 늙어 보이는 외양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공을 익힌 무인인지라 골격 자체는 크고 장대하여 추레하기보다는 어디 하늘에서 내려온 노신선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그 옆으로 무당의 장문인인 평광진인이 올라왔다. 마찬가지로 기도의 헌앙함이 굉허진인에 뒤지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뒤지지 않는 수준이 아니다.

    향을 집어 든 평광진인이 손끝으로 향을 건드리자 정순한 불길이 화르륵 일어났다.

    -저 말코, 요 몇 년을 두문불출하더니 결국 경지에 올랐구나.

    굉허진인은 화산파의 장문인이지만 굉자 배 가운데서도 무공이 그리 특출난 편이 아니다. 반면 무당은 벽자배에서 분심양검 벽산진인이 가장 뛰어난 고수였다면 그 아래 평자배에서는 장문인인 평광진인이 가장 뛰어난 고수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시작할까요?”

    상천지재무성 물자이수 유국지본재식······

    두 장문인의 목소리가 나란히 울려 퍼졌다. 운호가 가만히 서서 무당의 인물들을 살폈다.

    북숭소림(北崇少林) 남존무당(南尊武當)이라 했던가?

    과연 화산과 함께 천하에 손꼽히는 문파답다. 저기서 축문을 외는 초절정의 고수인 평광진인만이 아니라 다른 고수들 역시 눈에 띄는 자들이 여럿 보인다.

    특히 이대 제자로 보이는 어느 도사는 일대 제자들에 비해 그 성취가 부족하지 않아보였는데 아마도 화산의 현무자와 비견된다는 그 세대 무당파 최고의 고수 자현 도사가 아닌가 싶었다.

    -양검이 죽었지만, 그래도 무당의 성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뭐 그런 걸 보여주려는 것 같구나. 아무래도 너희 화산파는 청우와 청공 선배가 죽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문파를 대표하는 권신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파검이 평광진인이 모두의 앞에서 삼매진화를 선보인 것을 그렇게 평가했다.

    확실히 굳이 거기서 자신의 무력을 드러낼 이유는 과시라고밖에는 볼 수 없었는데 평광진인이 딱히 남에게 자신을 뽐내기 좋아하는 성격이 아님을 고려한다면 파검의 추측은 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어? 근데 저기?

    ‘저기라구요?’

    파검의 말을 따라 운호가 시선을 돌렸다.

    “흐흐, 혹시나 했는데, 역시 소협이였군. 내가 시간이 나면 한 번 찾아오라 일렀는데 혹시 잊었던 것인가?”

    누런 장포.

    금의위 북진의 총관인 혹참가포 조충이 운호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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