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13화 (113/288)

113화

북경(5)

오 소감.

그러니까 오혁이라고 했던가?

그럴 처음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저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대단한 성취를 얻은 고수다.

동창 무공의 특성인지, 아니면 환관들의 특성인지 무공의 성취를 감추는 데 매우 능숙했지만, 운호는 이미 앞서 조태감과 그 호위들을 통해 그들의 특성을 눈에 익혔다. 그렇기에 그를 통해 대략적인 무위를 추측해볼 수 있다. 처음 장문인을 마중 나왔던 동창의 조태감이라는 자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호위하던 자들보다는 확실히 훌륭하다.

호위무사들의 수준을 일류, 조태감의 수준을 절정이라고 본다면 저자의 무공은 이번 사건으로 깨달음을 얻기 전 운호 수준. 그러니까 운호의 의형인 남궁철의 그것에 필적한다고 봐야 했다.

비록 그 비교 대상이 운호였던지라 두각을 보이기 힘들었지만, 남궁철은 안휘성 전체를 통틀어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인재라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다. 천하에 손꼽히는 재능 위에 천하에 손꼽히는 가문의 지원이 뒤따랐다. 남궁철은 학문이나 무위. 양쪽 모두 그 나이대에 최고 수준에 이른 인재다.

‘외양으로 봐서는 이제 갓 지학을 넘긴 것 같은데······.’

과연 사상(四象)의 하나인 현음명(玄陰冥) 최염이 곁에 두는 인재라 이 말인가? 하지만 사상의 다른 인물들이라면 몰라도 고작 무공의 재능만으로 그 현음명 최염이 이런 어린 내관에게 곁을 허락했을 리 만무하다. 현음명 최염이라는 사람의 역할은 다른 사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상의 다른 인물들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중원의 제국을 지키는 창과 방패라면, 현음명 최염은 제국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제국의 황실을 지키는 은밀한 독침이다. 저 나이에 최염의 최측근에 있다는 것은 그 무공에 대한 재능뿐 아니라 심계 역시 그에 상응한다고 봐야했다.

“어서 오게. 사례감에서 사례 태감 최염 어르신을 모시고 있는 오혁이라고 하네.”

“화산파 삼대 제자 백운호라고 합니다.”

변성기가 오기 전 거세를 진행한 탓일까? 사내 특유의 굵은 목소리 대신 어린아이들을 닮은 목소리가 오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전 조공공 때와는 달리 애초에 외양 자체가 아직 어려 보이는 탓인지 그리 기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혁의 눈이 운호를 훑었다.

이미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한 자료는 모조리 읽은 이후였다. 화산에 들어가기 전 운호는 평범한 촌민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살아남은 것을 보면 상당히 똘똘한 아이였겠지만, 그래도 중원 천지에 그만한 아이는 드물지 않다.

다만 그런 아이가 화산파에 들어간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과연 화산파라고 해야 하나? 그만한 협사를 배출한 것도 그렇고, 추천을 했다고 하여 받아준 것 역시 범상치 않다.

초반에는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낭중지추라 했던가? 3년 차부터 비범함을 뽐냈다. 아마도 앞의 2년은 다른 아이들이 이미 5, 6년에 걸쳐 쌓아 올린 것을 따라가는 과정이었으리라. 아마 오혁 자신이라도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이후, 몇 가지 사건을 걸치며 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실로 기이했다. 열일곱에 절정. 절대 범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팔 년 전만 하더라도 무공을 전혀 모르던 아이가?

‘장삼봉이 되살아온다고 해도 무리지. 과연 최공공 그 음흉한 늙은이가 관심을 보일만 하군.’

-험험

오혁이 짐짓 헛기침을 몇 차례 내뱉었다.

“본관이 그대를 보자고 한 까닭은 자네를 데리고 온 조괄에게 전해 들었겠지?”

“글쎄요. 무작정 오 소감님을 뵈러 가자고만 하여서······.”

물론 조괄이라는 내관을 압박하여 그 이유를 듣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추측이었고, 조괄 본인도 그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전했던 것이 지금 굳이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좋지 않겠다 판단이 들었다.

아니었다.

“쯧쯧쯧, 이리 어리석어서야. 그렇다면 그 머저리가 자네에게 무작정 따라오라고 윽박을 질렀겠구만. 자네는 화산과 황실의 관계를 생각하여 굽혀준 것이고. 이래서야 내가 자네에게 아주 큰 실례를 한 셈이로구만. 수하의 실수. 내 대신 사과하겠네.”

“아닙니다. 수하분의 충성심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충성심은 무슨. 멍청한 것이 천지구분을 못하는 게지. 아무튼간에 본관이 자네를 보자고 한 까닭은 사례 태감 어르신의 분부 때문이네.”

“현음명 최염 어르신 말씀이시군요.”

“현음명, 현음명이라. 그래 그렇지. 강호인들이 사례 태감 어르신을 그렇게 불렀었지. 조금 무례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태감 어르신의 위엄을 나타내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별호란 말이지. 태감 어르신께서도 그리 싫어하지 않으시고 말이야.”

오혁이 어린 외양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과 자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헌데 현음명 최염 어르신께서는 저를 어찌?”

“그야 현음명께서는 제국의 수호자 아니신가. 제국 내부에서 그만한 일이 있었고, 게다가 자네는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 아닌가.”

“하지만 그 자리에는 굉명 사숙조님을 비롯하여 다른 여러 어른들이······.”

“그래, 물론 그분들과의 이야기도 충분히 나누시겠지. 하지만 자네와는 또 나름대로 나눌 이야기가 있으시니 자네를 부르지 않았겠나? 무엇보다 자네는 고작 열일곱에 절정에 오른 고수 아닌가. 본관도 무공을 조금 익혔기에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네. 사례 태감 어르신께서도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히신 만큼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으실 게야.”

“그렇군요.”

-천하제일은 무슨. 뭐, 사상이라는 작자들 무공도 확실히 무시할 것은 아니지만 글쎄다. 예전에 북병을 통솔하는 팽야천을 만나본 적이 있었다. 당시 팽가 놈의 평에 의하자면 그 최염이라는 작자. 상종할 자가 못 된다고 했었다. 당시 팽가 놈도 그리 좋은 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거짓을 말하는 놈은 아니었다.

파검이 경고를 보냈다. 혼원단을 복용하기 전에도 증무진인에 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떠들던 파검이었지만, 그 대부분이 잡담이었던데 반하여, 혼원단을 복용한 이후에는 이렇게 본인이 무언가를 판단하여 이야기를 건네곤 했다.

“저야 강호에 위명이 자자한 현음명 어르신을 뵐 수 있다면 영광일 따름이지요. 그러면 언제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지금 당장이지. 어르신께서 자네를 먼저 찾으셨던 만큼 가서 잠시 기다리면 뵐 수 있을걸세.”

* * *

황실에서 화산파에 내주었던 저택은 거대했다.

북경의 비싼 땅값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그 저택 하나 가격이 화산 본산 전체 가격에 필적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으리으리한 저택조차도 현음명 최염의 집에 비하자면 개집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대체 몇 칸입니까?”

“그야 당연히 구십구 칸이지요. 다만 한 칸 한 칸의 크기가 조금 많이 클 뿐입니다.”

통상적으로 왕에게 허가된 집의 크기가 백 칸. 그 아래 모든 사람은 구십구 칸을 허락받는다. 물론 현실로 따지자면 조공국들의 경우 각자가 독립된 국가인만큼 왕궁에 관청과 여러 행정기구까지 포함돼야 하기에 칠천 칸이 넘는 규모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북경 만큼은 설사 번왕이라고 해도 백 칸 이상의 집을 지을 수는 없었다.

다만 이 ‘칸’이라는 단위는 길이나 넓이가 아닌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 그 자체를 의미한다. 물론 목재의 한계를 생각할 때, 그 넓이가 무한정 넓어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여기서 현음명 최염의 권세가 더 잘 드러났다. 황궁의 기둥이라고 이보다 더 두껍고 거대할 수 있을까? 운호는 천하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를 베어오기라도 한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산파의 사람들이 머무르는 저택 기둥의 두배는 족히 되는 두께다.

게다가 저택의 규모에 포함되지 않는 저 광활한 정원의 넓이를 좀 보라. 수백 명이 연무하는 화산파의 대연무장보다 반 배는 더 넓은 크기다. 북경의 땅값을 생각한다면 저 연무장만으로도 화산의 봉우리 하나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지 않을까?

“대단하군요.”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아무래도 황상께서 사례태감 어르신을 워낙에 귀히 여기시니······. 벌써 몇 년째 사례태감에서 물러나 이제 완의궁으로 물러나겠노라 고하시는데도 가납하시기는커녕, 완의궁보다 더 큰 집을 지어줄 테니 거기 머물며 황상을 보필하라 명하셨답니다.”

“그렇군요.”

-조심!!

파검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운호 역시 충분히 그 기운을 느꼈다.

전신이 저릿해지는 감각.

북경에 도착하여 그가 만나 본 고수 가운데 이만한 기세를 내뿜는 고수는 없었다. 처음 장문인을 마중 나왔던 조태감이라는 작자가 전력으로 기세를 내뿜는다면 이에 비견할 수 있을까? 아니, 모르겠다.

“금의위 북진의 총관이신 조충 대인이십니다.”

오혁의 말이 아니더라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눈에 잘 띄는 누런 장포. 강퍅한 인상. 팔척에 달하는 큰 키. 특히 허리에 감긴 손가락만한 두께의 구절편이 그를 상징한다.

혹참가포(酷慘苛捕) 조충.

동창과 마찬가지로 황실의 직속 기관인 금의위의 이인자로 동창이 무림에 조금 더 치우친 기관이라면 금의위는 관인들에게 더 치우친 기관이었다.

혹참가포(酷慘苛捕). 혹은 혹참가포(酷慘苛暴) 조충은 별호에 사납고 흉폭하다는 말을 네 번이나 덧붙일 만큼 그 위명이 자자했는데,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의 손 아래에서는 본인 돌잔치 때 먹은 음식 종류까지 토설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고문 전문가다.

“이게 누구야. 오 공공 아닌가. 요즘 조금 격조했는데 못본 사이에 신수가 아주 헌앙해졌구만.”

“공공이라니.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조 대인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 나 같은 졸자야 그저 최공공 존안이나 한 번 뵐 수 있을까 하며 기웃거리는 것이 일 아닌가.”

조충은 그 강퍅한 인상과 달리 수더분한 미소를 지어가며 오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호는 도저히 그 수더분한 미소가 조충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오혁이라는 내관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금의위의 이인자이자 황실을 수호하는 십이신의 일원인 혹참가포 조충이 저토록 살갑게 대하는 것인가 하는 경계심만 생겨났다.

-위세는 무슨. 본래 지방 현감보다 정승집 개새끼가 끗발이 더 좋은 법이니 그런 것이지.

‘정승집 개새끼 끗발도 정승이 아끼고 사랑할 때나 생기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 끗발 역시 위세죠.’

한참 헤실거리던 조충이 힐끔 운호를 쳐다봤다.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는 날카로운 눈빛.

-꿀꺽

조충이 비록 저 어린 내관에게 꼬리를 흔들고 있지만 역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자다. 그 순간 운호는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이 벌거벗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쪽은 행색을 보아하니 이번 사태에 주요 인물 중 하나라는 화산의 그 어린 제자로군. 최공공께서 부르신 건가?”

“오, 역시 조 대인이십니다. 그저 한번 힐끔 보는 것으로 그 정체를 알아내시다니요. 백소협. 뭐하는 건가. 조 대인께 어서 인사 올리지 않고.”

“됐네. 인사는 무슨. 강호의 무뢰한들이 언제 그런 예의를 챙겼다고. 그보다 어서 공공께 데려가게. 이래서야 괜히 내가 중간에 시간을 뺏은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구만.”

“조 대인이 시간을 빼앗기는요. 그저 이 미련한 놈이 백 소협을 부르는 데 그만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뿐이지요.”

“하하, 역시 오 공공의 배려심이란 참으로 넓다니까. 그러면 이 조가는 이만 물러가겠네. 그쪽 소협은 나중에 시간이 나면 본관도 한 번 찾아오면 좋겠군.”

“······.”

조충이 사라질 때까지 운호는 꼼짝 할 수 없었다.

어떤 각도, 어떤 방향으로 그가 출수를 한다고 해도 일초식. 아니 어쩌면 반초식이나 버틸 수 있을까?

그 잠깐 사이 운호의 손과 발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는 무려 십이지신 중 하나로 꼽히는 초절정의 고수다. 그런 고수와의 격차를 인지했다는 것 자체가 운호의 수준을 증명한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그 역시 지금의 저 내관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파검이 나지막하게 투덜거렸다.

-흥, 고작 절정에게 읽히다니 십이지신이니 뭐니 하는 놈들 수준도 뻔하구나. 기껏해야 남궁벽 그놈 수준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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