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북경(2)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강아현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화산의 검술이 이미 한가지 목적성을 가지고 한차례 다듬어진 이후라니. 지금까지 화산의 팔대 검술은 그저 오랫동안 화산의 각 도맥에 내려오던 검술 가운데 가장 위력적인 것을 한자리에 모았던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운호는 화산의 팔대 검술은 이미 150년도 더 이전에 당시 천하제일을 논하던 고수인 증무진인 목운평에 의해 엄선되고 다듬어진 검술이라고 말했다.
“그래, 화산의 팔대 검술은 목운평 조사님께서 모두 손을 보신 검술이야.”
“맙소사······.”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강아현이 운호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넌 대체 어디서 이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그냥, 우연한 기회에.”
“아니, 그러니까 그게 신뢰할만한 이야기인 건 맞아? 아무리 봐도 이런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무공을 모두 같은 분이 다듬은 거라고? 물론 목운평 조사님이야 검술의 종사셨으니 그럴 수 있지만, 화산에 그 많던 검술 가운데 왜 하필 그 여덟 개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신뢰할만한 이야기인 건 맞아.”
당연하다.
이건 운호의 몸에 들어왔던 증무 진인 목운평 본인의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도무지 납매, 매농, 자운검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없는걸.”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으음······. 그래! 말로 하는 것보다는 검 좀 챙겨서 나와볼래?”
“검을?”
“응, 오래간만에 한 번 검이나 나눠보자.”
“그래!! 절정 고수의 지도 대련을 거부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너무 방심하진 말라고. 나도 몇 달 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강아현의 귀여운 선포에 운호가 웃었다.
운호가 절정 고수라고는 하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두 사람은 거의 동등하게 검을 나누던 사이였다. 게다가 화산파의 홍매당에서 나고 자랐던 강아현에게 절정의 고수란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절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 지 강아현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황실에서 화산파에게 제공한 저택은 실로 거대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북경의 땅값은 얼마 전 사건이 벌어졌던 한구부와 비교해도 반 배는 더 비싸다. 과연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은 황실이라더니.
-쾅!!
“이 정도면 바닥 무너질 염려는 없겠네.”
“황실에서 내준 집인데 어련하려고. 자, 처음은 납매검부터 시작해서 매농, 자운검까지 차례대로 보여줄게.”
“그래, 그러면 절정의 고수가 상대이니 나는 전력을 다해도 괜찮겠지?”
“얼마든지.”
강아현이 짧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옥녀진결은 본래 격발형 무공이다. 한순간 폭발적인 힘을 내는 대신 그 유지력이 약하다. 강아현의 성취는 이단공. 하지만 이단공에 들어서기까지는 일단공의 진결을 운용하고 거기에 한단계를 더 도약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짧은 호흡 한 번에 강아현의 기세가 돌변했다. 상대는 절정의 고수다. 처음부터 후회 없이 전력을 다한다.
이단공의 옥녀진결이다.
이것은 운호가 무한에 가 있는 사이 그녀 역시 놀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강아현의 몸이 번개처럼 운호에게 도약했다.
자운검.
본래 화산의 무인들이 익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또한 운호가 재현해낸 본래의 그것과도 조금 다르다. 그 중간의 어디 즈음. 강아현 본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검이었다.
운호의 눈이 호를 그렸다.
그래, 이래야 강아현이지. 아마 그녀가 제대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더라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운호의 검이 스르릉 뽑혀 나왔다. 급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가장 적절한 속도, 가장 적절한 순간. 운호의 검이 강아현의 검을 받아냈다.
이단공에 다다른 옥녀진결의 막대한 힘이 실린 검격이었다. 이전이었다면 감히 힘으로 맞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검격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절정이란 인간이 인간으로 도달할 수 있는 어느 정상지점을 말한다. 아직 한참 절정을 향해 걸어가는 이의 검격 따위 얼마든지 상대해줄 수 있다. 하지만 운호는 그러지 않았다.
극에 다다른 합리성.
미시적인 범위에서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운호의 검이 움직였다.
막막하다.
강아현이 이를 꽉 깨물었다. 도대체 어디로 검을 휘둘러야 하는 것일까?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소용 없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 깨지지 않는 무적의 방패 앞에 선 것처럼 그녀의 검격이 완벽하게 봉쇄됐다.
-타악
운호의 검이 강아현의 검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여기까지. 이게 납매검이야.”
-허억허억
강아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운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선명하게 ‘분함’이라는 감정이 새겨져 있었다.
“잠시 숨 좀 고르면 매농검을 보여줄게.”
“그럴 필요 없어.”
“내가 그럴 필요가 있어서 그래. 제대로 봐야 할 거 아니야. 앞으로 같이 검술을 살펴봐야 할 동지인데.”
강아현이 -쳇. 가볍게 혀를 차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운기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대기가 약동하는 것이 강아현의 성취 역시 또래 가운데는 발군이라고 할만했다.
일 각.
강아현이 눈을 떴다.
“자, 그러면 다음. 매농검이야.”
운호가 가볍게 검을 내질렀다. 강아현이 빠르게 그 검을 막아냈다. 앞서 납매검을 상대할 때와는 달랐다. 공격과 수비가 번갈아 가며 반복된다. 가끔이지만 운호에게서 틈이라는 것이 보였다. 강아현의 검이 본능적으로 그곳을 공략했다. 물론 강아현은 매농검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허점이라고 여겨지는 곳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과거 운호와 겨룰 때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승기를 잡아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강아현이 운호의 허점을 두들기는 것은 선택이 아닌 강요였으니까.
지독하게 악독한 검술이었다. 당장 살길을 열어주지만, 오직 그뿐이다. 결국 그 길이 죽을 길임을 알면서도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까앙!!
결국 제대로 손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강아현이 검을 놓쳤다. 반 호흡이면 옥녀진결 이단공에 접어들 수 있었건만, 이번에는 그 반 호흡을 들이마실 여유조차 없었다.
날아간 검을 바라보는 강아현의 눈가가 촉촉하다. 그녀가 소리쳤다.
“백운호 너!! 지금 설마 봐주면서 살살한거야? 네 무공이면 이보다 훨씬 쉽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금 싸움에서 진신 내공의 절반도 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최선을 다한 거 맞아. 끝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매농검이 어떤 검술인지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잖아. 그러니 이게 최선이었어.”
강아현이 신경질적으로 걸어가 날아간 자신의 검을 다시 움켜쥐었다.
“그래, 알겠어. 그러면 이번에는 자운검이겠네.”
“응.”
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집에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뭐야? 자운검은 검을 쓸 필요도 없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들어와 보면 알아. 이번에는 숨 고를 시간 필요 없지?”
강아현이 또 한 번 옥녀진결의 이단공을 발휘했다.
분한 마음 덕분일까? 진기의 움직임이 한층 더 격렬했다. 정교함은 조금 부족해졌지만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강력하다.
하지만 그 강렬한 공격은 그녀가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중단됐다.
-히끅
어찌나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이 흘러나왔다.
이기어검(以氣馭劍).
검집에 담겨있던 운호의 검이 그가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스르릉 타고 나와 그녀의 목젖에 검극을 들이밀었다.
운호의 눈이 빛났다. 그야말로 자랑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강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기어검이라니. 그래, 확실히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손을 대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검이 뭐 어쨌단 말인가. 물론 이기어검은 사람의 몸으로 휘두르는 것에 비해 자유롭다. 사람의 팔은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그 움직임의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으로 인해 생기는 약점 역시 존재했다.
-쾅!!
강아현의 검이 운호의 검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녀의 자운검은 강검(强劍)이다.
이기어검의 수법은 검에 자유가 부가되는 만큼 힘이 사라진다. 허공을 격하고 진기로 움직이는 검이다. 사용하는 사람이 같다면 근육에 진기의 힘이 더해진 것보다 더 강할 수는 없다. 즉, 저 이기어검은 백운호가 직접 쥐고 휘두르는 검보다 위력 면에서는 무조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운호의 검은 그녀가 휘두른 검을 막아내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강아현이 빠르게 운호를 향해 질주했다.
옥녀진결 이단공의 폭급한 기운이 그 질주를 돕는다.
운호가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은 아직 비어있었다. 무엇일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튕겨날아갔던 운호의 검이 어느새 스스로 날아와 그의 오른손에 착 감겨왔다.
-쾅!!
검과 검의 충돌.
운호가 검을 놓쳤다.
아니, 강아현이 빠르게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저것은 검을 놓친 것이 아니다. 검을 놓은 것이다.
-까가강!!
그 빠른 반응에 운호가 웃었다. 훌륭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아마 이것이 실전이었다면 운호의 장심이 그녀의 가슴팍을 파고들었을 테니까. 운호의 검이 세 차례 강아현의 검과 부딪히고 다시 운호의 손아귀로 들어왔다.
신검합일(身劍合一)이란 무엇인가.
검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다. 그것은 나라는 자아를 확장하여 검조차 나의 일부로 만든다. 즉 소우주의 확장이다.
그렇다면 그 경지의 다음은 무엇인가? 운호는 일찍이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바로 검선이 보여줬던 그 이기어검이다. 검과 내가 진정으로 하나라면, 검이 손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강아현의 자운검은 강검이었다. 하지만 운호의 자운검은 기검(技劍)의 극치다. 그리고 그 화려한 기교는 검이 운호의 손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강아현이 제아무리 강력한 힘으로 검을 튕겨내도 의미가 없었다. 운호의 검은 언제나 적절하게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허억허억.
“고생했어.”
기해혈이 아려올 때까지 덤벼들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아니, 사실 강아현도 알고 있었다. 운호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언제든지 이 싸움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을. 이건 말 그대로 지도 대련이다.
“정말 절정이구나······.”
비록 반걸음 정도 앞서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엎치락뒤치락 정도는 하던 아이가 이제는 더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갔구나.
강아현은 그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에 운호가 씨익 웃었다.
자세히 보니 온통 땀범벅이 되어 숨을 헐떡이는 자신과 달리 몸에 땀 한방울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얄밉다.
“자, 어때? 좀 알겠어? 공통점이 좀 보여?”
“글쎄, 경험해보니까 세 무공 모두 너무 완벽하게 다른데. 이래서야 공통점이 아예 없어 보이는데?”
그녀의 말에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뭐? 지금 뭘 들은 거야. 완벽하게 달라서 공통점이 아예 없어 보인다니······.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