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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07화 (107/288)

107화

강호행(5)

운호가 지금까지 먹어본 영단은 자소단이 유일했다.

자소단에는 저자를 떠도는 이야기에 나오는 영단들처럼 입안에서 물처럼 녹아내려 사지 백해로 퍼져나가는 그런 신묘함 따윈 없었다. 그저 평소보다 기운이 왕성해지고 조금씩 몸이 뜨거워지는 정도였다. 게다가 그 효과 역시 당장에 나온다기보다는 삼 개월에 걸쳐 서서히 진행됐다. 그렇기에 운호는 혼원단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예측했다.

아니었다.

거무튀튀하고 불길한 기운을 잔뜩 품기는 그 단환은 입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운호가 느끼던 감각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쓰다.

시다.

맵다.

짜다.

그리고 달다.

오미(五味)의 폭발.

자극적인 감각이 입안을 휩쓸었다. 보통이라면 그만한 감각이 휩쓸고 지나가는 순간 입안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 혼원단이라는 놈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감각이 더 또렷해졌다. 서둘러 씹어 삼킨 이후에도 입안 가득한 그 맛의 폭발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온몸에서 그 맛이 느껴진다. 아니, 몸에서 맛이 느껴진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이 감각을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전신의 감각이 타오르는 것 같이 몰아쳤다. 과도한 감각은 폭력과도 같다. 운호는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혼원단(混元丹).

이 단환은 대체 무엇인가.

그 타는듯한 감각 속에서 운호는 문득 이 혼원단이라는 단환과 그가 매일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섭취하는 벽곡단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이 혼원단과 벽곡단을 비교하자면 그것은 마치 태양과 촛불, 장강과 동네 개천을 비교하는 꼴이다. 하지만 태양과 촛불은 모두 빛나는 불이고, 장강과 동네 개천 역시 모두 흐르는 물이다.

운호는 일 년 넘게 벽곡단을 꾸준히 섭취해왔지만, 그 최악의 맛은 도무지 적응이라는 것이 되지 않았다. 그쯤 되면 적응이 될 만도 한데 먹을 때마다 새롭게 맛이 없다.

혼원단 역시 그와 같았다. 줄어들지도, 적응되지도 않는 감각의 폭포. 그렇게 혼원단의 기운이 운호의 전신을 흔들었다.

십이경맥? 기경팔맥? 락맥? 아니, 어쩌면 혈맥?

어디라고 콕 찝어 이야기 할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운호의 명문에 부드러운 손이 와닿았다.

“침착하게, 전신의 감각을 집중해라.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려라.”

마치 탐색을 하는 것처럼 그 손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운호의 몸 곳곳을 스쳤다. 신기하게도 그토록 어마어마한 감각이 전신을 휩쓰는 와중에도 그 기운의 움직임은 똑똑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운호의 명문에 손을 얹은 강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훌륭한 반응이다. 하지만 묘하게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운호는 선골(仙骨)이다. 그렇기에 사문의 비전이 들어간 약물들에는 반응성 자체가 달라야 한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반응의 절반도 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호라면 응당 지금보다 삼 할은 더 높은 반응성을 보여야했다.

‘약성이 생각만큼은 아니었던 건가?’

비록 혼원단이 그가 꿈꾸는 선단(仙丹)으로 가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의 결과라지만 애당초 선단이라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목표다. 단지 그것을 섭취하는 것만으로 신선이 되는 약이라니. 그런 만큼 그 과정의 부산물 역시 범상치 않다.

우화등선을 하는 인간은 영(靈)과 혼(魂)이 상위의 세계로, 그리고 백(魄)과 육(肉)이 인세에 남는다. 강진은 이번 선단의 제조에 그와 비슷한 과정을 도입했다. 다만 그 결과물은 썩 좋지 못했는데 본래라면 약성이 모여야 할 영과 혼에 해당하는 맑은 쪽은 그저 증기만을 남긴 채 사라졌고, 가장 혼탁하고 더러운 찌꺼기에 그 약의 기운이 모조리 담겨버렸다.

장담하건대 지금 이 약 이상으로 사람의 백과 육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약은 없다.

-으아아아악!!! 이거 뭐야!!

운호의 귓가에 파검 좌부원의 비명성이 들려왔다.

강호의 노련한 고수로 수많은 일을 경험해봤지만, 단언컨대 이런 맛은 처음이다. 무엇보다 영(靈)도 혼(魂)도 육(肉)도 없는, 그저 백(魄)만이 남은 그에게 감각이라니.

역시 그 검은 단환. 안 그래도 생긴 것부터 불길했다. 망할 연단사 일맥 같으니. 역시 명성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설마 죽어 백만 남은 사람을 괴롭히는 단약이라니.

운호가 크게 호흡했다.

혼원단은 그야말로 혼탁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혼탁함이란 더러움이나 악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본래 그러한 것이다.

-우득, 우드드드득

운호의 몸이 조금씩 미세하게 변화했다.

환골탈태?

아니, 그런 전설상에 나오는 거창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환골탈태는 우화등선까지는 아니어도 반로환동과 더불어 초절정의 고수 가운데 극히 드물게 경험하는 희귀한 일이다. 그것을 고작 단환 하나로 만들어 낸다? 그것은 어쩌면 강진이 목표로 하는 선단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은 몸의 틀어진 부분이 ‘조금’ 맞춰지고, 불균형한 곳이 ‘조금’ 균형을 맞춰졌다. 그리고 한 순간.

‘어?’

백회는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용천과 회음이 꿈틀거렸다. 한순간 대지의 기운이 물밀 듯이 강하게 타고 올라왔다. 밤사이 쌓인 어마어마한 음기의 세례. 한순간 운호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강진이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잘 가고 있다고 했는데, 걱정했던 현상이 벌어졌다. 그것도 생각보다 거칠다. 이래서야 내공의 손상이 상당할 수밖에······.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사람의 몸이란 신묘하여 언제나 균형을 맞추려 한다. 생기가 왕성한 절정고수의 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운이 따른다면 미세하게 열린 용천혈과 회음혈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백회혈 역시 미세하게라도 열릴지 모른다. 불완전하겠지만 생사현관의 타통이다.

강진의 기운이 빠르게 운호의 몸을 탐색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운호의 기해혈 깊숙한 곳.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용천혈과 회음혈을 타고 들어온 무거운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운호는 절정의 고수였지만, 그의 단전은 이토록 균형이 깨진 진기를 수용할만한 용량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기이한 흡력은 마치 바닥을 모르는 무저갱처럼 탐욕스럽게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 흡력에 빨려 들어간 것은 운호의 몸을 탐색하던 강진의 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진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자신의 기운을 끊어냈다.

-쿨럭

미처 예상하지 못한 급격한 내공의 운영과 진기의 손실. 강진이 가벼운 내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운호의 몸은 게걸스럽게 기운을 빨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각 정도?

북쪽, 운대봉에 머물던 청무진인의 시선이 옥녀봉으로 향했다.

“흐음······.”

“사형,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매화봉에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서 말이다.”

“저는 아직 느끼지 못한 것을 보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매화봉이면 또 진이 녀석이 무슨 일을 벌인 거겠지요.”

“그런가?”

이 할 정도 열렸던 운호의 용천과 회음이 서서히 닫혔다. 동시에 요동치던 땅의 기운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런!!”

강진이 서둘러 운호에게 다가갔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운호의 몸이 그 어마어마한 음기를 모조리 수용했다. 단순히 생사현관이 타통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 적당히 내공에 손해를 볼 것이라 생각했건만, 이래서야 기해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탄을 품은 것이나 다름없다.

또 한 번 강진의 손바닥이 운호의 명문으로 다가갔다.

눈을 꾹 감은 운호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상으로 울렁이는 속을 참아가며 강진이 운호의 기혈을 살폈다.

‘응?’

깨끗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해혈을 단전으로 삼은 이상 기해혈은 모든 기혈의 중심이다. 그곳이 흔들리면 다른 곳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호의 기혈과 기맥은 지극히 평온했다.

강진의 기운이 조심스럽게 운호의 기해를 향해 움직였다.

‘으응?’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막대한 음기를 흡수했음에도 운호의 기해에는 그런 흔적 따윈 없었다. 그저 정순하고 굳건한 포원공의 진기만이 느껴질 뿐이다.

강진이 운호의 명문에서 손바닥을 뗐다.

여전히 운호는 두 눈을 꾹 감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 * *

파도치는 해변가가 아니었다.

지극히 아름다운 매화꽃들이 흩날리는 그곳은 오랜 시간 목운평과 검을 섞었던 그 몽원경이었다.

운호의 시선 끝.

저 멀리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사조님?”

대답은 없었다.

어느 순간 세상이 뒤바꼈다.

-······호야, 백운호!!

‘파검 어르신?’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은 겁니까?’

-단환을 먹고 삼각 정도 지났다. 중간에 네 용천과 회음이 열리고는 이각 반 정도 지났고. 젠장, 내가 이래서 저 연단사 일족이 내미는 약은 함부로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내가 죽고 나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운호가 눈을 떴다.

“정신이 들었구나.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기해에서 느껴지던 그 기이한 흡력은 또 무슨 일이고.”

“그것이······,”

파검 좌부원이 운호를 말렸다.

-나에 대해서는 밝히지 말아라. 네가 저 녀석에게 말을 하는 순간 네 사부라는 작자도 알게 된다고 봐야겠지. 내가 보기엔 영 좋은 꼴을 볼 것 같진 않구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진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운호야 나에게는 숨길 필요 없다. 아니, 적어도 네 몸에 관해서는 나에게 항상 솔직해야 한다.”

“정말입니다. 그저 지금까지 꾸준히 먹어온 벽곡단의 영향이 아닐까요?”

“글쎄다······. 그럴 것 같지는 않다만. 뭐, 일단 알겠다.”

믿을 수 없다는 노골적인 태도.

운호가 쓰게 웃었다.

“내공은 좀 어떠냐? 기혈과 기맥에는 손상이 없는 듯하던데.”

“글쎄요.”

운호가 가볍게 자신의 몸을 살폈다.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그저?”

“기맥과 기혈이 조금 더 넓고 두터워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제 더 빠르고 강하게 내공을 운용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강진이 경고했던 것과 달리 내공의 소실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몸을 감도는 포원공의 진기는 여전히 끈끈하고 두터웠다. 이래서야 그저 일방적인 기연이다.

-흐, 그런 고통을 겪고 고작 이만큼의 이득을 보느니, 그냥 기연을 안 받고 말겠다.

좌부원이 조금 전의 경험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그의 기준에서 방금의 기연은 영 수지가 맞지 않았다. 그런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칼로 몸을 난자당하는 편이 낫다.

“내공에 손상이 없다니. 다행이다.”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미심쩍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결과가 나쁘지 않다. 물론 원하던 측정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혼원단이 제법 괜찮은 효과를 보여준다는 관측값을 하나 얻을 수는 있었다. 과연 그만한 재료가 들어간 값어치를 하는지는 당분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자, 그러면 이제 내려가도록 하자꾸나.”

“사숙님?”

“응?”

“그래도 줄 건 주셔야죠.”

내상 때문이었을까?

강진의 속이 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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