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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105화 (105/288)
  • 105화

    강호행(3)

    강진이 운호에게 시커먼 단약 하나를 내밀었다.

    영단?

    하지만 영단이라기에는 생긴 것부터 풍겨 나오는 향까지 영 좋지 못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위험한 놈들이라고. 고래로부터 저놈들이 불로장생의 영단이라고 내민 약에 죽어 나간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글쎄요. 확실히 사숙이 목숨을 조금 경시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에게 일부러 독을 먹이거나 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강진 사숙은 저를 아끼시니까요.’

    -아낀다고? 저 미친 연단사 일맥이 사람을?

    ‘네, 아끼는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습니까. 저는 사숙이 인간적으로 아끼는 사부님의 유일한 제자이고, 사숙의 딸인 아현이의 친우이며, 동시에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소중한 실험대상이니까요. 함부로 허튼 곳에 소모할 재료가 아니죠.’

    -아······.

    파검이 납득 했다.

    “사숙, 이게 대체 뭡니까?”

    “글쎄, 아직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는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래, 혼원단(混元丹),혼원단이 좋겠구나.”

    “혼원단이요?”

    혼원(混元)이라 함은 태초에 음과 양의 태극 이전. 아무것도 구분되어있지 않던 우주 그 자체를 뜻한다. 저런 거무칙칙한 단환에 붙이기에는 너무 거창한 이름이다.

    운호의 표정을 읽은 강진이 웃었다.

    “그래, 혼원단이다. 뭐 애당초 이런 약을 원했던 것은 아니고 일종의 부산물?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효과는 확실하지.”

    “효과라면?”

    “너는 어째서 영단이라는 것을 복용했을 때 다음 복용까지 휴지기를 가져야 하고, 그 약성 역시 복용을 거듭할수록 효과가 감소하는지 알고 있느냐?”

    “네? 그거야 본래 약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니까······.”

    -쾅!!

    강진이 자신의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세상에!! 본래 그런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것은 그저 우리가 그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 영약의 기운은 매우 강력하다. 본래라면 사람의 몸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강력하지. 물론 그 가운데는 본래 사람의 몸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녀석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또 묘해서 거기에 ‘적응’이라는 것을 한다. 상당 기간을 쉬어 주면 ‘회복’도 가능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사숙님 말씀은 휴지기를 갖는 것은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약성이 감소하는 것은 적응을 했기 때문이다. 뭐 그런 말씀이신가요?”

    “그래, 비슷하다. 다만 거기에 한 가지 더. 내공이라는 놈은 본래 자연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정기를 인간이 받아들인 결정체다. 진기는 그 내공을 더 수월하게, 그리고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가공된 결과물이고.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문제요?”

    강진이 자신의 곁에서 작은 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비유하자면 그래, 여기 통이 하나 있다. 여기에 이렇게 솜을 집어넣는다고 치자꾸나. 자, 솜이 꽉 찼다. 이제 여기에 솜을 더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더 꾹꾹 눌러 담으면 되겠죠.”

    “그래, 그게 바로 내공과 진기의 차이다. 여기서 솜은 영약이나 조식을 통해 모으는 내공이라면 그 꾹꾹 누르는 힘이 바로 상승의 심법이다. 더 효율이 높은 심법은 더 강하게 압축하여 더 많은 양의 내공을 담게 해주지. 하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존재한다. 더 많은 힘을 담을수록 그 한계는 더 가까워지고 그만큼 손실되는 정기의 양도 커지는 법이지. 모르긴 몰라도 청무 진인이나 저기 개방의 걸왕과 같은 고수들은 아무리 조식을 해도, 영약을 섭취한다고 해도 내공의 질적 변환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내공의 크기 자체는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거다.”

    파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괜찮은 이론이다. 확실히 삼갑자 이상으로 내공을 쌓은 고수가 강호에 나타난 적은 없었다. 거지왕초 역시 내공이 삼갑자에 달했다고 알려진 게 거의 십년 전부터인데 그때부터 내공에 성취가 없는 것이 그저 늙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지만, 저 말대로라면 그것이 인간의 한계일 수도 있겠구나.

    운호가 강진에게 되물었다.

    “알겠습니다. 허면 그 혼원단이라는 단환은 대체 무엇입니까?”

    “이 단환은 몸을 속인다. 영약에 적응한 몸을 마치 그 영약을 먹어본 적이 없는 상태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 말씀은?”

    “그래, 한계에 다다른 내공이 늘어나지 않는 문제야 어쩔 수 없다지만 영약에 적응한 몸을 속이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이 되겠지. 아마 지금 네가 복용한다면 다시 자소단을 복용하더라도 처음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뭐, 그래봐야 체질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운호의 가장 큰 문제는 내공의 부족이었다. 절정의 경지에 오르기 전에도 비슷한 수준의 고수에 비해 내공에 큰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운호는 절정의 무위를 자랑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한계까지 무공을 사용할 경우 반 각도 채 되지 않아 내공이 말라버릴 그런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운호에게 내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실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운호는 그 반가운 소식 앞에 대뜸 강진이 내민 단환을 받아드는 대신 질문했다.

    “부작용은 뭡니까?”

    “부작용?”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대단한 약을 개발했다면 분명 화산 전체가 떠들썩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공로가 아니면 이 약을 구경조차 할 수 없어야 옳았다. 헌데 아무리 강진이라고 해도 그런 약을 운호에게 그냥 덥썩 건넨다?

    지금 운호가 복용하는 벽곡단이 수명을 갉아먹는 것처럼, 아니 분명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강진이 턱을 긁적였다.

    “그게 별 건 아니고······.”

    -저놈 저거 별거 맞다.

    그 태도에 파검이 단언했다.

    “내공이 좀 사라질 수도 있는데······.”

    -거 봐라, 내가 별거 맞다고 하지 않았더냐.

    “죄송합니다. 전 그러면 이만.”

    강진이 운호의 손을 덥썩 잡았다.

    “운호야 잠깐!! 잠깐만. 너 이거 정말 후회한다? 이게 일회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게 아니에요. 이론적으로 보자면 반영구적이야. 네가 환골탈태 같은 걸 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지. 그러니까 앞으로 영약을 먹으면 먹을수록 이득이라는 뜻이다. 잠깐 내공이 조금 사라지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사숙, 강호인은 항상 칼끝에 삽니다. 특히 저는 사정상 문파에 박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산에서 내려갈지도 모릅니다. 헌데 십 년, 이십 년 후에 더 이득을 볼지 모르니 지금 크게 손해를 보라뇨. 그 이득 보기 전에 죽어 나갈 줄 누가 압니까. 그런 영약이라면 차라리 다른 아이들에게 권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런 문제라면 내가 최대한 도와주마. 내가 누구냐. 홍매당 수석 연단사 화산금정 강진 아니더냐. 그리고······.”

    “그리고요?”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 약이 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강진은 최근 자신의 비업인 선단(仙丹)을 만들기 위한 길목 중 하나인 자소단의 개량, 혹은 매화신단의 개발에 매진하던 중 영초들에서 빼낸 독성(毒性)들과 영기가 절묘하게 고인 곳에서 놀라운 성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성분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혼원단이다.

    그리고 오늘.

    강진은 운호의 몸을 살피던 중 놀랍게도 운호의 몸이 이미 이전에 섭취했던 자소단의 부작용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니, 사실 그 이상이었다. 지금 운호의 몸은 마치 영약을 한 번도 복용한 적이 없던 것처럼 깨끗했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그의 경지가 절정에 올랐다는 것.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꾸준히 비전의 벽곡단을 복용해왔다는 점이었다.

    다만 체질 자체가 그가 원하는 혼원체(混元體)가 된 것은 아니었다. 혼원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혼탁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한차례 몸이 혼원체와 흡사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 약을 먹었을 때 적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이 녀석은 전설로 내려오던 바로 그 선골(仙骨)이 아니던가. 그의 사문에 내려오던 약 대부분과 궁합이 맞는 체질이다. 비록 혼원단은 그가 만들어낸 독자적인 단환이지만 그 역시 사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연구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단환이다. 운호와 궁합이 맞을 확률이 매우 높다.

    강진의 솔직한 고백에 운호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자소단!!”

    “네?”

    “극품의 자소단을 한 알 내어주마. 그거라면 설사 내공에 약간의 손해가 발생한다고 해도 충분히 벌충할 수 있을 게다.”

    분명 과거 공과격을 통해 운호 몫으로 배정됐던 자소단은 신약 개발을 위해 투자를 했었다. 물론 이번 일의 공로가 워낙 컸던 만큼 자소단 명단에 다시 이름을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기자 명단을 생각한다면 그 긴 명단의 끝에 이름을 올린다면 그것을 받기까지 적어도 3, 4년은 족히 필요하다.

    “단 여기서 혼원단을 복용하고 너의 맥문을 통해 그 소화 과정을 내가 살피게 해주는 조건이다.”

    -위험하다.

    운호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결론은 뻔했다. 남궁철은 차라리 나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모든 일이 끝난 뒤 산산히 부서진 동생의 시체를 목도했을 뿐이다.

    하지만 운호는 달랐다. 마음에 품고 있던 여인이 처참한 육편이 되는 것을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봤다.

    우화등선한 파검이 이십 년을 이야기했다.

    길다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던 천무십칠성의 일좌 단악도 팽불청이 다른 초절정의 고수 셋과 합공을 하는 과정에서 고작 일초식에 박살났다.

    초절정의 경지로도 부족하다. 적어도 무신 모용경. 그러니까 사문의 가장 큰 어른인 권신 청무 진인에 필적하는 무공이 필요했다.

    하물며 남궁강은 십 년을 말했다. 십 년 후에 십만 대산을 직접 치겠노라고.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러면 일단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돌아가고, 닷새 뒤가 보름이니 그날 인시 초. 음기와 양기가 가장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시간에 약을 먹도록 하자꾸나.”

    * * *

    화산에 귀환하고 정확히 사흘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운호는 정말 많은 장로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제법 쏠쏠하게 지원을 받아냈다.

    그리고 나흘 째 이른 아침.

    운호가 아무리 대단한 공을 세웠다고 해도 화산파의 원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백팔십에 달하는 아래 기수의 삼대 제자들. 아침 일찍 시작되는 대연무장의 자소공 수련의 감독은 일종의 당번제였고, 오늘은 운호의 차례였다.

    “······.”

    저 멀리 잘생긴 얼굴의 청년이 보였다.

    이준형이었다. 운호의 시선이 그를 훑었다. 거의 완벽하게 박살 났던 왼팔이 별문제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절정 고수의 예리한 시선이 어색한 지점들을 짚어냈다. 가동범위, 완력, 진기의 수발. 미세하지만 부족함이 존재한다. 이만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렇다는 것은 저것이 회복될 수 없는 영구적인 손상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동정하지 않았으며 딱히 이제와 살갑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이준형 역시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그저 가볍게 목례했다. 잠시 흠칫하던 이준형이 마찬가지로 목례로 답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운호가 눈앞에서 짧은 팔을 어설프게 바둥거리는 어린 후배들의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그렇게 아침 수련이 끝날 시간.

    대부분 아이들이 아침을 먹기 위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는 사이, 두 아이가 운호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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