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04화 (104/288)

104화

강호행(2)

‘역시 그렇군요.’

절정의 경지에 접어들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화산(華山)의 정기(正氣)라는 것이 과연 무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절정의 경지에 오른 운호는 알 수 있었다. 산의 정기라는 것이 무인의 성장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공력이 쌓이는 속도가 다르다. 저자에서 십 년은 수련해야 쌓일 공력도 이곳에서는 칠 년이면 충분할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마도 화산의 무공을 익힌 이라면 이곳 화산에서 그 진기의 수발이 훨씬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무공의 위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화산파는 제자들을 밖으로 많이 내돌리지 않는다. 또한, 하산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공과를 계산해준다. 축기의 손해를 벌충해주기 위해서다.

물론 운호가 익힌 포원공은 다른 제자들과는 그 성향이 조금 다르다. 화산의 기운에 영향을 덜 받는 대신, 저자의 탁기도 안정적으로 소화해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원공 역시 화산의 내가기공이다. 게다가 이단공에 올라 더욱 더 화산의 색채를 뛰게 됐다. 화산에서 수련했을 때 얻는 이득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운호의 ‘재능’을 더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운호의 성장세는 분명 범상치 않다. 그리고 그것의 기초에는 ‘내공’이 아닌 무학 그 자체에 대한 깨달음이 수반된다.

이제 운호는 목운평 조사의 이야기를 이해한다.

점수와 돈수. 점오와 돈오.

점수돈오도 돈수점오도 점수점오도 돈오점수도 아니다.

기종의 무학은 점수점오다.

서서히 갈고 닦아 천천히 깨닫는다. 지난한 길이지만 그만큼 긴 시간과 끈기만 확보된다면 누구나 걸어갈 수 있다. 물론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그 나름의 체질과 환경에 따라 가감이 있다. 이준형과 같은 체질이라면 백 년이면 족할 것이요, 운호와 같은 체질이라면 삼백 년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운호와 같이 축기가 힘든 체질이라도 정말로 그만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혹은 매화신단과 같은 절세의 영단이 찾아온다면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검종의 길은 다르다.

오직 돈수돈오.

검종의 진정한 길은 바로 그곳에 있다.

그렇기에 검종지보이며 오직 하늘이 허락한 재능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그나마 점수돈오나 돈오점수만이 그럭저럭 따라올 수 있을까?

재능이 있는 이라면 한순간에 깨달을 수 있는 길을 그것이 부족한 이는 수천 년이 걸려도 깨달을 수 없는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물론 내공이 받쳐주면 좋다. 그만큼 더 많이 칼을 휘두를 수 있고, 휘두른 칼에도 더 큰 힘이 실린다. 하지만 증무 진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한계에 다다른 양은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질적인 상승을 노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놈의 공과격인지 뭔지에 얽매여 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운호 너는 질적 상승을 노려야 한다.

지금 파검 좌부원의 말 역시 그와 같다. 물론 그는 애당초 산에서 숨 쉬는 것으로 강해지는 것보다 전장에서 피 튀기며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강해지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운호의 담담한 인정에 파검이 더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자하기공을 익힌 화산의 무인은 자연적인 노화를 거스른다. 화산의 장문인인 굉허자 역시 자하기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한구부에서 잠시 보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장문인의 얼굴은 꽤 많이 늙어있었다. 특히 얼굴 곳곳에 피기 시작한 검버섯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몸이 많이 상했군. 근데 저거 하루 이틀 된 게 아닌 것 같은데?

“왔느냐.”

장문인이 의자를 잡아끌었다.

“그래, 한구에서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리 보니 참으로 놀랍구나. 절정이라······. 그것도 고작 열일곱에. 허허허······.”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니. 겸양하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운도 따랐겠지. 절정의 경지란 그러한 경지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다 너의 실력이다.”

“감사합니다.”

본래 노인이 된다는 것은 아득하게 쌓인 살아온 날만큼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화산의 장문인이 그러했다. 물론 몇 달 전의 장문인과 지금의 장문인 사이에는 고작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의 신체는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굉무 사형의 사손을 눈앞에 둔 지금. 굉허자는 대부분 노인이 그러하듯 자신의 마음에 담아뒀던 과거를 토로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굉무사형.

그리고 잔살비마.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거였다. 검종에 대하여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굉무사형이 쓸데없이 검에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도호에 무(武)가 붙을 만큼 빛났던 재능을 기공에 쏟아부었더라면. 쓸데없이 검술을 복원하는데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날의 비극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굉허자가 당장에라도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말들을 꿀꺽 삼켰다.

그 대신 인자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뭐 수련에 필요한 것은 없더냐. 물론 이번 일의 공로는 문파 차원에서 엄정하게 기록할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 개인적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주마.”

“그거라면······, 화산의 검술들을 열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학문에 능한 사람을 하나 붙여주셨으면 합니다.”

“검술들이야 그렇다 치고 학문에 능한 사람이라고? 그건 왜?”

“그것이······, 납매검과 매농검은 거의 완벽하게 해석이 된 상태이지만 자운검이나 광음검의 경우는 아무래도 그게 조금 미진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생각해본다면 남은 검술들 역시 그럴 확률이 농후하여 비급의 글귀들을 읽고 그것의 비어있는 부분들을 유추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화산에서 기본적인 글은 뗐지만 아무래도 제 학식이 부족하여······.”

“납매검과 매농검은 완벽하였다고?”

굉허자의 반문에 운호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참으로 좋은 검술들이었고, 자세한 설명들이었습니다. 오태산 혈사로 화산의 검술들에 많은 훼손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마치 그 두 개의 검술은 그런 것이 없었던 것처럼요.”

“네가 지금 경지를 개척하는데 도움이······, 도움이 많이 되었느냐?”

“제 모든 검술의 근간입니다.”

어쩌면 그저 이유를 찾던 노인이 억지로 가져다 붙인 이유일지도 몰랐다. 굉허자는 멍청하게도 사형에게 ‘사형이라면 충분히 화산의 검술을 되살릴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데 지쳐있었다.

고작 그 한 마디가 사형의 미래를 결정지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언제나 잔을 넘치게 하는 것은 한 방울의 물인 법이다. 굉허자의 그 말 역시 굉무에게는 그 한 방울의 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사형이 복원했던 그 검술들이 장차 화산에서 배출할 새로운 천하제일인에게 아주 커다란 도움이, 아니 그 도움을 넘어 그의 근간이 됐다는 말은 너무나도 따뜻한 위로였다.

“그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굉허자의 표정이 너무나도 편안하여 운호가 조금 당황했다. 그 당황에 파검이 한마디 조언을 툭 내뱉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본래 늙은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말에 자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곤 하니까. 지금은 뭐, 좋은 쪽으로 흘러간 것 같으니 너도 그냥 좋아하면 그만이다.

굉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아이를 붙여주마. 검술 비급은 장서고로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본의 경우 반출이 불가하니 따로 사본을 만들도록 지시를 내려두마.”

“감사합니다.”

“아니다, 그보다 뭐 다른 부탁은 없느냐? 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니 당분간 무공을 수습할 곳이 필요할 듯싶은데 어디 수련동이라도 하나 개방해주랴? 한 반년 정도는 내 재량으로 열어주어도 될 것 같구나.”

장문인이 운호에게 커다란 호의를 베풀었다.

기본적으로 화산의 무인들은 단순히 무공만을 수련하지 않는다. 그 위치에 걸맞은 일을 수행하여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음식이며 의복 등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화산은 전전대 제국 이후로 면세를 허락받았지만 이만한 인원의 무인들이 화산 주변의 땅을 소작준 돈으로 먹고 사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물며 그들이 매년 사용하는 영약의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련동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삼시세끼를 받아먹으며 수련에만 집중하는 것은 정말 막대한 공과격을 지불 해야 하는 일이다. 과거 공야찬이 운호와 함께 수련동에 틀어박혔을 때, 그가 지불했던 공과격은 그가 거의 2년을 꼬박 모아야 하는, 자소단 반 알에 가까운 양의 공과격이었다.

장문인이 베푸는 커다란 호의에 운호가 대답했다.

“무공의 특성상 수련동에 틀어박혀 참오하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과 검을 섞는 쪽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괜찮다면은 검술 비급의 사본과 그 해석을 도울 이와 함께 강호행을 했으면 합니다. 물론 사문의 임무를 담당하면서요.”

“실전을 경험하고 싶다는 거구나. 흐음······. 사문에 남아 다른 이들과 검을 섞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이냐?”

“그것이 아무래도 현재 화산에 검술을 깊숙하게 수련한 이는 사부님뿐이신지라······.”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하지만 비급을 들고 강호행이라······.”

“어렵겠습니까?”

“아니다. 기공의 비급이라면 몰라도 검술 비급이라면 딱히 반대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학문을 그만큼 익힌 이 가운데 너와 함께 강호행을 나갈 이를 선별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구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찬이 녀석도 그렇고. 절정의 고수가 알아서 사문의 귀찮은 일을 해결하러 나가주겠다는데. 오히려 내가 고마울 일이지.”

* * *

옥녀봉 홍매당.

화산금정(華山金鼎) 강진이 크게 감탄하며 운호의 몸 곳곳을 주물렀다.

“신기하구나. 참으로 신기해.”

사문에 내려오는 벽곡단이 이상하게 잘 맞는 체질인 것도 신기했는데, 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참 빌빌거리던 녀석이, 고작 열일곱에 절정이라니.

하지만 강진이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그의 성취가 아닌 운호의 몸 그 자체였다.

“아무리 절정에 올랐다고 해도 그렇지, 기맥이 이렇게까지 변화를 했다고? 선단의 영향인가? 아니, 아니야. 찬이 형님도 그거 열심히 먹고 절정까지 갔지만 이런 극적인 변화는 없었단 말이지.”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운호의 몸을 주물럭거리던 강진이, 떠난 기간동안 운호가 작성해둔 일지를 받아들고는 또 다시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화산금정 강진······. 강호에서 가장 미친놈 중 하나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

‘그래도 목운평 조사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중원에 내려오는 정통파 연단사 일맥의 적통 같다던데요.’

-뭐? 연단사 일맥? 설마 그 황제한테 수은 잔뜩 먹여서 중금속 중독으로 죽게 만들어 놓는 바람에 맥이 끊길 뻔 했는데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권력자들한테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겠다며 돈을 뜯어내고, 강호 문파에는 내공 증진제라며 효과도 그리 크지 않던 약들로 폭리를 취했던 그 망할 놈들?

‘아······. 연단사 일맥이 그런 일맥이로군요. 사조님께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네요. 내공과는 다른 쪽으로 등선을 연구하던 일맥이라고 하셨는데 말이죠.’

-그 양반, 같은 도교 계통이라고 좋게 좋게 말해줬나 보네.

-쾅!!!

“그래!! 그렇구나. 참으로 오묘하다. 그런 의미에서 운호야. 너 이거 하나 먹어보지 않으련?”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