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94화 (94/288)

94화

천중일검(3)

자운검(紫雲劍)

이것 역시 운호가 사용하던 것과 사뭇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화산의 무인들이 단순히 내공의 힘으로 밀어 내던 것과도 달랐다. 과정의 생략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과정을 다 거치는 와중에도 진기를 폭발시켜 위력을 더하는 것이다.

-우우우웅!!

검명?

전설상의 용이 실존했다면 이런 울음을 내뱉었을까? 목운평의 검이 울부짖었다.

강검(强劍)이다.

대제사장도 이번 공격은 감히 경시하지 못한 것일까? 그의 손이 목운평의 검을 막아내기 위해 움직였다.

지금이다.

청우와 청공이 움직였다.

구단공에 이른 자하신공이 폭발할 듯 움직였다. 준비되지 않은 두 진인의 기혈에 상처가 생겨난다. 하지만 어차피 타오르는 진원. 남은 수명이라고 해봐야 한 줌이다.

극성의 현천개벽장과 호천창월권이 대제사장의 옆구리를 통타했다.

-두웅!!

흡사 북소리 같은 거대한 울림이었다.

청우와 청공의 몸이 뒤로 크게 튕겨 나갔다.

“이건······.”

“통했다.”

-울컥

맑은 핏물을 뱉어내는 두 사람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곧바로 합류하기에는 늙은 몸에 미친 반작용이 너무 크다. 제자리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운호의 검이 대제사장을 붙잡았다. 약한 힘으로 강한 힘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필요한가.

소림은 힘 자체를 키울 것을 권했다.

무당은 유능제강(柔能制剛)을 말했다.

목운평이 한 자루의 검으로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기교와 기교와 기교.

약점을 찌르고, 공격을 유도하고, 유도한 공격을 흘려보냈다.

불가해의 검술.

분명 대제사장의 가장 약한 부분이 목운평의 가장 강한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 둘의 차이는 그토록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 순간, 천중일검은 한 자루의 검으로 대제사장의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파검 좌부원은 이전의 공방에서 운호를 비롯한 저들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들만을 용케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교하기 짝이 없는 검술에 빈틈이 생겼다. 멍청한 선택일까? 아니다. 엄정한 논리 아래 세워진 완벽은 아름다웠지만, 그 이후에 만들어진 허(虛)는 완벽에 만족하지 않는 발전이었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는 멍청한 선택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허 사이사이에 강검이 섞였다. 이로써 허실(虛實)이다.

파검의 눈으로는 그것을 모두 따라갈 수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무위를 뛰어넘는 고절한 초식의 전개다. 하지만 대제사장은 인간을 넘어선 괴물이다.

저 검술이 과연 그 괴물에게도 통할까?

-휘익, 쾅!!

대제사장의 하얀손이 오히려 운호의 검에 속도를 더해주었다. 튕기듯 날아간 검극이 대제사장의 명치를 두들기고 돌아온다.

이기어검? 아니, 아직 거기까진 아니다. 그저 신검합일의 극치다.

고통의 가면 아래, 대제사장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예전과 같았다.

저자는 저렇게 버티고 버티고 버텨내다 결국 아미타불로 각성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행보를 무려 백 년이 넘게 늦춰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때는 본신이었지만, 지금은 화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이 치민다. 이미 부처의 영역에 발을 디딘 자의 마음이다. 단순한 직감이 아닌 예지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후읍

한 번의 호흡으로 파검이 난도질한 용화수(龍華樹)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여덟 번의 칼질로 새겨진 상처가 선명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저자는 마음의 검을 잃었다. 이 영역을 오가는 이는 이제 자신이 유일하다.

모두가 멈춘 세상.

오직 아미타의 화신만이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딱 거기까지다. 지금까지 수비 일변도로 나갔기에 막아설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자신도 손해를 각오하고 내지르는 일격이다.

아마 대계가 일 년은 늦춰지겠지. 하지만 모든 후환. 여기서 끝내겠다.

대제사장의 양손이 하얗게 백열했다.

만족할만한 위력은 아니었지만, 아미타의 허약한 화신을 지우기에는 충분한 위력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

아미타의 화신이 바라보는 곳 정 반대편.

대제사장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방위에서 오물이 나타났다.

-쿠과과과광!!

걸왕의 몸이 대제사장의 공격을 막아냈다.

운인가?

아니다. 목운평이 의도한 그대로였다.

걸왕의 몸은 무신과 같은 금강불괴는 아니었다. 하지만 걸왕은 당금 무림에 가장 완벽한 호신강기를 이뤄냈다고 평가받는 무인이다.

삼 갑자의 내력으로 만들어낸 진기의 장벽이 크게 출렁이며 대제사장의 공격을 간신히 버텨냈다. 다만 딱 거기까지다.

“몇 번이나 더 버텨 낼 수 있겠느냐.”

“몇 번이라니. 힘들다. 방금과 같은 공격이라면 앞으로 한 번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충분하다.

운호의 몸을 입은 목운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보랏빛으로 물든 뚱뚱하고 삐쩍 마른 두 명의 도사가 있었다. 특별히 선골 따윈 보이지 않는다. 범인 그 자체다. 하지만 훌륭하다.

자하기공이라고 했던가? 저것 역시 도에 이르는 길임은 분명하다. 다만 저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제 다해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

“너희들은 얼마나 남았느냐?”

“새파랗게 어린놈이 말버릇하고는. 만약 우리가 지금 본문에 있었다면 넌 기사멸조의 죄로 사지 근맥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우습다.

물론 지금 저 두 제자의 나이는 자신이 우화등선했던 당시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무려 세 배분 아래의 제자들이다. 헌데 기사멸조를 논하다니. 하지만 저들이 보여주는 저 모습은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저 녀석들과 입씨름으로 버릴 시간 따윈 없었다.

목운평의 검이 걸왕의 몸을 두들긴 대가로 약간의 흔들림을 보이는 대제사장을 압박해갔다.

“청공아 놔둬라. 저거 지금 딱 봐도 귀신 들린 상태 아니냐. 하는 짓을 보니 잡귀는 아니고, 경지에 이르러 귀천한 노 선배들이 남긴 백 가운데 제법 고절한 녀석이 들러붙은 듯하다.”

“하여간 요즘 어린놈들은 대가 약해서 문제야. 그러니까 저런 귀신이나 들리고 그러지.”

“그래도 우리가 지금 버티는 것이 그 어린놈 덕분 아니냐. 그냥 좀 넘어가자. 그래,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더냐? 이제 반 각. 반 각 정도 버틸 수 있겠다.”

“흥, 나는 일각은 거뜬하다.”

반 각, 그리고 일 각.

목운평이 그들에게 명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필요 없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불태워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덤벼들어라.”

청공이 콧김을 내뿜었다.

“뭐라고? 아니, 내가 일 각 더 살아 보겠다는데 이 녀석 이거 자기 목숨 아니라고 아주 제멋대로 떠들고 있네?”

“걱정하지 말아라. 나도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으니.”

난풍(亂風)도 없고 무형(無形)도 없다.

그래도 광음(光陰)이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상승의 기초 정도는 밟은 무공이다. 여기에 모든 것을 건다.

“흐음, 뭐 그렇다면야. 딱 봐도 창창한 놈이 목숨을 걸겠다는데 늙은이가 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두 노인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목숨을 연소시키며 달려드는 초절정 고수의 기세는 매서웠다.

그들에게 자하기공 구단공의 경지는 새로운 경지였다. 누구나 새로운 경지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적응을 하기에 그들에게 주어진 이 각 남짓한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청공과 청우는 무려 팔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자하신공에 매달려왔다.

팔십년.

실로 아득한 세월이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자하기공 구단공은 과거 그들의 사조였던 백운진인이 한차례 밟았던 경지다. 또한 그들의 사형인 청무 역시 그 경지에 올라있다.

자하기공 구단공에 올랐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이미 문헌과 대화. 그리고 비무 등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진원을 폭발시키고 지금까지 일 각 하고 반. 청공과 청허는 처음 진원을 폭발시켜 구단공에 올랐을 때에 비해 반 배는 더 강해진 상태였다.

청허의 짧고 오동통한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진기의 폭주 때문일까? 본래도 사십 대 정도로 보이던 얼굴이 이제는 숫제 어린 아이로 보일 지경이다.

청공이 청허의 공격을 보조했다. 느려 보이지만 느리지 않다. 정직하게 투로를 밟아 움직인다. 화산의 무학은 천하 일절. 재능이 부족한 자라고 해도 팔십 년을 고련하면 이만한 수준에 오를 수 있다.

게다가 재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운평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이야기다. 초절정에 오른 무인이다. 일반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 역시 충분히 기재에 속한다.

그래, 일반의 시선이다.

대제사장이 손을 뻗었다.

분명 목운평을 상대할 때 대제사장은 그의 압도적인 기교에 쩔쩔매야 했다. 술로써 도를 이뤄낸 검사와 단지 긴 시간을 살아온 괴물의 사이에는 그러한 압도적인 격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상대하는 것은 그저 기재에 속하는 이들이 팔십 년 간 쌓아 올린 세월의 힘이다.

팔십 년? 그래 길다.

하지만 그의 긴 인생 앞에서는 너무나도 하찮다. 지금 저들이 밟고 선 위치는 그가 이미 지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조차 희미한 과거였다.

정직한 초식을 위력으로 내리누른다. 자하기공은 천하 제일을 다투는 신공이었지만 상대가 좋지 못하다. 내공의 크기에 있어서 천하에 이 자를 당할 자는 흔치 않다.

삼 초식.

고작 삼 초식 만에 두 사람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거기에 걸왕이 합류했다.

지금까지는 마인의 공격을 그가 받아냈다. 지금 이 네 사람 가운데 가장 단단한 이가 그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러할까? 걸왕 소진평의 양손이 대제사장의 공격을 향해 나아갔다.

취팔선보(取八仙步)

이철괴(李鐵拐)

개방에 대대로 내려오는 절학 중의 절학.

그 가운데 개방에서 가장 귀히 모시는 신선인 이철괴의 이름을 딴 보법이 펼쳐졌다. 왼쪽 다리를 절룩이며 몸을 크게 휘돌아 나간다.

뜻밖의 동작.

-푸욱

청공의 뚱뚱한 복부에 대제사장의 오른손이 박혔다.

‘청공과 청허의 목숨을 활용해라.’

‘뭐? 하지만 그들은 너의 사조 아니냐!!’

‘반 각도 채 남지 않은 목숨이다. 가장 가치 있게 써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다.’

청공이 양손으로 대제사장의 몸을 굳게 잡았다.

풀리는 복부에 힘을 더한다. 운기의 토대가 되는 하복부 기해가 파괴됐다. 하지만 이미 말단세맥으로 뻗어 있던 남은 진기들이 그 마지막 발버둥에 힘을 보탰다.

“그러게,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나의 이 몸은 전부 근육이라고!!”

땀일까? 아니면 눈물일까? 걸왕의 오물 가득한 얼굴에 더러운 땟국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동년배 가운데 남은 이가 대체 몇이나 되던가. 그 가운데 무려 둘이. 아니, 이제 곧 셋이 삼도천을 건넌다.

본래라면 한 번을 사용하고 며칠은 자중해야 하는 절기.

한계를 넘어선 기해혈이 파열될 것처럼 타오르듯 아려온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삼갑자의 거력.

아니, 이제 삼갑자의 거력이라고 하기에 너무 손상이 크다. 아마 오늘 무사히 살아남는다고 해도 회복될 수 없는 양이 상당할 것이다.

아깝지 않다.

천하를 제 집처럼 누벼왔다.

그 장대한 일대기의 마지막 장 즈음으로 이토록 어울리는 무대가 또 어딨단 말인가.

항룡십팔장(亢龍十八掌)

항룡유회(亢龍有悔)

세 번째 항룡유회.

걸왕의 칠공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파검 좌부원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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