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천중일검(1)
-젠장!!
증무진인의 비명성이 머리를 강렬하게 울림과 동시에 시야가 역전됐다.
몽원경의 풍경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다른 것은 오직 증무진인 천중일검 목운평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내가 이래서 누누이 도망치라고 이야기했거늘.”
목운평의 안색이 침중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런 급박한 와중에도 공과격의 사슬은 여전히 그를 옭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압도적인 오성이 지금의 상황을 계산했다.
-쾅!!!
어마어마한 소음과 함께 거대한 진동이 몽원경을 흔들었다.
“망할······. 이제 정말 어쩔 수가 없구나. 마음을 편히 해라.”
“네? 그게 무슨······.”
딱 한 번.
본래라면 운호가 한계치까지 성장했을 때.
마지막 싸움에서 써먹으려던 수단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이고 뭐고 따질 여유 따윈 없었다.
-콰과광!!
몽원경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단순한 흔들림으로 끝나지 않았다.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까? 찢어진다? 아니 그것보다 더 과격하다. 그래, 뜯겨나간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몽원경의 공간이 무언가 거대한 힘에 의해 강제로 뜯겨졌다. 그리고 그렇게 뜯긴 틈. 고통으로 일그러진 가면의 편린이 엿보였다.
“여기 숨어있었구나.”
운호의 몸이 덜덜덜 떨려왔다. 단순히 겁을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 불가해(不可解)라고 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너머의 무언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증무진인 목운평의 오른손이 운호의 몸을 벼락처럼 꿰뚫었다.
* * *
-흠칫.
파검이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분명 그의 등 뒤에 있던 것은 백운호였다. 젊다 못해 어린, 하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시간만큼은 어쩔 수 없다. 물론 그의 천재성은 시간조차 어느 정도 뛰어넘을 만큼 빛났지만,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상식의 범주에 속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분절되지 않은 연속된 시간의 선상에서 백운호라는 인간의 무공이 갑자기 달라졌다. 감히 단언하건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설마 여태까지 자신의 무공을 숨기고 있던 건가? 아니다. 단순히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고 하기에는······.
‘사람 자체가 달라졌어. 설마?’
분명 지금 이 자리에는 목운평의 상식을 벗어나는 존재가 하나 있다.
마교의 대제사장.
그렇다면 지금 이 기이한 일도 저 자가 벌인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저자의 적이다.”
“응?”
-쿠과광!!
청공진인과 청우진인이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자하기공 9단공에 올라섬으로써 명실상부한 ‘초인’이 됐다. 칠십 년 전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올랐던 그들의 태사부, 백운진인과 같은 높이에 선 것이다.
물론 구단공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던 백운진인과 억지로 구단공에 발을 디딘 두 사람의 사이에는 상당한 수준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설사 전성기의 백운진인이라고 해도 지금 청공과 청우의 합공이라면 필승을 자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전성기의 백운 조사님 이상.’
‘실로 괴물이로구나. 이건 사형이라도······.’
천하에 자신의 내공이 두텁다 자랑하는 이는 많았다. 당장 저 걸왕만 하더라도 무려 삼갑자의 내공을 자랑한다.
하지만 청우와 청공은 강호 역사상 최고의 신단인 매화신단을 복용했다. 또한, 강호 문파 가운데 가장 막대한 부(富)를 자랑하는 화산파의 막대한 지원을 70년 넘게 꾸준히 받아왔다. 그런 그들이 쌓아 올린 내공의 양은 그야말로 광대무변(廣大無邊).
무진장(無盡藏)의 내공이 불타올랐다.
압도적인 공격과 공격과 공격.
마교의 대제사장이 그 폭발적인 공격을 가볍게 받아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면인의 안중에 청우와 청공은 없었다. 그의 시선이 운호에게 고정됐다.
“아미타여.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아미타? 아미타불?”
대제사장의 말에 반문한 것은 파검 좌부원. 그의 시선이 운호에게 향했다.
“스스로를 부처라고 칭하는 미친놈이다. 자신을 부처라고 하는 놈이 남을 부처라고 못할까.”
“그건 그렇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럴 것 아니더냐. 아니, 그보다 넌 대체 누구냐. 내가 알던 운호가 맞긴 한 거냐?”
-쿠과광!!!
대제사장이 그 질문에 답했다.
“저 아이는 아미타의 아바타다. 종전까지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 속에 숨겨진 아미타가 나타난 것뿐이다.”
“아바타?”
“너희의 말로 하자면 화신 정도 되겠구나.”
“그러니까 지금 운호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라고?”
미친 소리였다.
하지만 마냥 미친 소리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 분명 지금 운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저기서 정신없이 대제사장을 공격하고 있는 청공과 청허에 필적했다.
이제 막 절정에 올라선 녀석이 또다시 초절정으로 도약한다? 파검에게는 차라리 아미타불의 화신이라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아미타여. 고작 아라한의 경계라니. 참으로 영락했구나. 아니면 시간이 부족했던 건가?”
“전성기 실력이면 깨갱하고 도망칠 종자가 주둥이 털기는.”
“입이 더러운 것은 여전하구나.”
“그야 너 같은 개종자를 보면 대라천 옥경산 꼭대기의 원시천존도 욕설을 내뱉을 텐데 본좌라고 하여 어쩔 수 있겠느냐. 예나 지금이나 남에게 기생하는 꼬라지는 참으로 거지 같구나.”
“기생이라니. 그저 환신(換身)일 뿐이다.”
파검은 둘의 대화를 도통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렇게 변한 운호가 저 마존과 척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대제사장의 뒤를 치고 있던 청우와 청공의 얼굴이 진한 보랏빛으로 달아올랐다.
-콰과광!!
처음이었다.
등 뒤에서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는 청우와 청공을 마냥 무시하던 대제사장의 몸이 처음으로 움찔했다.
“이제야 좀 몸이 풀리는구나.”
“그러게 말이다. 슬슬 구단공의 내공을 제대로 활용하는 요령을 알 것 같다.”
가능할까?
파검의 의념이 저 멀리 쓰러진 무사의 검 하나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에 검은 없었다.
“어쩔 생각이냐.”
“이 몸은 이 강호 무림의 희망이다.”
“젠장, 자기 입으로 강호 무림의 희망이라니. 듣는 내가 다 부끄럽군.”
“살려 보내야 한다.”
“그래, 나도 참 그러고 싶다. 이왕이면 나도 살았으면 좋겠고. 그런데 어디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가면인이 손을 휘저었다.
-쿠과광!!
청우와 청공이 그 공격을 함께 받아냈다.
바닥에 깊숙한 고랑 네 개가 패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몸은 어디 결손된 곳 없이 멀쩡했다. 비록 두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쳤다고는 하지만 무신 모용경이 그의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입었던 피해를 생각한다면 조금 뜻밖의 결과였다.
“녀석이라고 무적은 아니다. 분명 너희들의 마지막 공격은 어느 정도 통했다. 특히 네 녀석. 어설프긴 하지만 심검이라니. 석년 본좌의 발끝 정도는 따라오겠더구나. 운호 이 아이가 아니라 네 녀석을 만났더라면 일이 조금 더 편해졌을지도 몰랐을 것을······.”
“뜬구름 잡는 소리는 그쯤 하시고. 그러니까 저 괴물도 지쳤다. 그러니 가능성은 있다. 뭐 그런 소리요?”
“글쎄, 일단 네 녀석이 다시 검을 쥔다면. 오 푼 정도? 그 정도면 이 아이의 몸 정도는 충분히 살려 보낼 수 있겠지.”
-카악, 파검이 걸쭉한 가래침을 바닥에 -퉤 내뱉었다.
“망할. 참으로 개소리도 아름답게 하시는구려. 부처의 조건이 뭐 개소리를 얼마나 잘하는가 그런 거라도 되는 거요?”
“우선 저들부터 다 불러 모으자. 혹시 아느냐? 오 푼이 육 푼 정도로 올라갈지?”
걸왕이 모용경의 배 밖으로 나온 창자를 정리하여 집어넣고 그 위를 천으로 꽉 조여맺다. 물론 보통의 경우 배에 구멍이 나고, 그 밖으로 창자까지 튀어나온, 심지어 창자 일부가 끊어지기까지 한 사람이 창자 집어넣고 지혈 좀 한다고 살아날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이 몸둥이는 금강불괴를 완성한 무신 모용경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부ㅌ······하······.”
무신 모용경의 입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장으로 완성되지도 못하는 그 말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이해됐다.
“니미럴.”
무서웠다.
차라리 다른 놈들처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면 또 모른다. 어설프게나마 저 괴물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었기에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늘 이 싸움은 구대문파와 칠대세가. 그리고 마교의 싸움이다. 개방은 그저 초대된 손님일 뿐, 굳이 끝까지 싸워야 할 의무 따윈 없었다.
무엇보다 평소 구대문파니 칠대세가니 하는 놈들 얼마나 고까웠는가. 이번 기회에 마교로 갈아타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걸왕이 덜덜 떨리는 무릎을 바로 세웠다. 하루에 두 번이나 전력을 다하여 항룡유회를 사용하는 바람에 몸도 아주 엉망진창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라면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지. 미친 괴물들과 손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뼈마디가 시큰한 개방의 용두방주가 싸움에 합류했다.
그리고 검왕 남궁벽.
마침내 그의 황금빛 검강이 마인의 목을 잘라냈다. 거기까지 희생된 절정 고수의 숫자는 열 넷. 하지만 절정 고수 열넷으로 초절정 고수의 목을 베어냈다면 수지맞는 장사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손녀를 비롯한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지만 남궁벽의 머릿속에 이미 그 사람들은 없었다.
그의 눈이 좌중을 훑었다.
괴물.
괴물에게 당랑거철로 달려드는 머저리들.
우두머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마교에는 여덟 명의 제사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전에 권신에게 죽은 제사장을 포함했을 때 지금까지 무려 여섯이 죽었다.
그리고 천무십칠성 가운데 이제 남은 이는 자신을 포함하여 열 명.
물론 아직 파검과 걸왕은 아주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지만, 남궁벽의 계산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저 자는 분명 괴물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무신과 걸왕 파검과 단악도가 합공 했을 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천무십칠성의 남은 이들이 모두 힘을 합친다면. 만약 남궁세가의 풍부한 인맥을 활용하여 사상십이신 가운데 몇이라도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저 괴물의 실력을 명확하게 설명해줄 고수가 이곳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청우와 청공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진원을 폭발시켰다. 어차피 살아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오직 검왕 남궁벽. 자신 뿐이다.
못난 아들과 귀여운 손자가 눈에 밟혔다. 그러나 대의 앞에서는 혈육의 정조차 하찮다.
그래, 여기서는 무작정 저 괴물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머금고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우선이다.
.
눈을 뒤룩뒤룩 굴리던 검왕 남궁벽이 청공과 손을 겨루던 마지막 남은 천급의 마인에게 달려들었다.
* * *
의식은 명료했다.
하지만 몸은 마치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옴짝달싹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운호의 몸은 지금 그의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 형태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게 진짜 납매검이라고?’
술로써 도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운호의 몸을 빌린 증무진인 천중일검 목운평이 그것을 직접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