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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86화 (86/288)

86화

무한 혈사(5)

공방이 거듭될수록 도륜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어째서?

분명 그는 모용경보다 더 크고 강했다.

“너는 무(武)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초절정에 도달한 무인 도륜에게 건네기에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말.

도륜이 주먹에 힘을 더했다.

-쿠과과과광!!

무신(武神) 모용경은 어찌하여 무신인가.

단순히 모용세가의 화석신공을 대성하여 금강불괴에 도달한 것을 칭송하고자 했더라면 금강이나 철골 등의 수식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뭇 강호인들은 그를 무신이라 칭했다.

무(武)란 무엇인가.

춘추좌씨전에서는 무를 일컬어 지과위무(止戈爲武). 무기를 저지하는 것이 곧 무(武)라고 칭했다.

하지만 무신은 알고 있었다.

무(武)라는 것은 결국 창(戈)을 든 발(止)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날카로운 창이 아닌, 날카로운 창을 든 ‘사람’이다.

도륜은 세상에서 가장 흉폭하고 무거우며 날카로운 창이었다. 아쉽게도 무신 모용경의 창은 그보다 조금 덜 무겁고 덜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 창을 휘두르는 사람은 무신 모용경. 중원에서 무(武)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였다.

도륜의 팔이 더 길었다.

하지만 모용경의 주먹이 먼저 닿았다.

도륜의 몸이 아주 조금 더 빨랐다.

하지만 모용경의 발이 조금 더 먼저 도착했다.

도륜은 자기 무학의 끝을 금강불괴의 완성으로 생각했다.

무신 모용경은 화석신공의 완성을 자기 무학의 시작으로 정의했다.

모용경의 오른발이 솟구쳤다. 이미 흐트러진 자세. 우선은 막아내고 볼 일이다. 도륜이 자신의 왼팔을 단단하게 조였다. 이것은 근육으로 만들어진 방패다. 결코 뚫리지 않는다.

그리고 모용경의 무릎 관절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정확히 그 순간이었다.

가면인이 홀로 다른 차원을 유영하여 초절정 고수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제지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무신 모용경이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다.

백 년에 가깝게 쌓아 올린 막대한 양의 진기가 단 일격에 집중됐다.

-뻐억!!

어마어마한 타격음.

-뿌드득 강철보다 단단한 도륜의 근섬유들이 파열됐다. 그리고 거의 마른 여자 허리 두께만큼 되는 목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그야말로 필살의 일격.

하지만 모용경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상대는 금강불괴의 경지에 오른 불사 계통의 마인이다. 모용경의 왼쪽 발이 그대로 쓰러지는 도륜의 거체를 통타했다.

-콰앙!!

단단하다.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빠르게 공조 대사의 오른팔이 뜯겨나갔다.

한 번 더?

아니, 아니다.

모용경이 판단했다. 이 녀석은 이미 끝났다. 설사 불사신공이 아니라 불사신공 할아버지를 익혔다고 해도 이번 싸움에는 합류할 수 없다. 무엇보다 단순히 손 한 번 내미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의식을 잃었음에도 그 몸뚱이의 단단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이면 대력금강 공조 대사는 확실히 죽는다.

모용경의 몸이 움직였다. 그의 코끝으로 은은한 악취가 느껴졌다.

거지다.

세상에 초절정 고수의 기감 밖에서 냄새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놈은 그놈뿐이다.

모용경이 크게 땅을 박차고 달렸다. 파검과 가면인은 어느새 또 자신들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공조 대사를 향하여 빠르게 쇄도하던 창을 비껴냈다. 모용경의 하박에 -주르륵 핏물이 흐른다. 하지만 막아냈다.

“대사, 일단 숨 좀 돌리시구려.”

서둘러 싸움에 합류하려던 공조 대사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비록 가면인에게 순식간에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한계를 넘어선 초절정의 고수다. 호흡을 고를 때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차츰 사람의 혈색으로 돌아왔다.

무신 모용경이 창을 든 마인을 몰아붙였다.

“훌륭하구나. 점창의 관일과 싸운다면 아주 좋은 승부가 되겠어.”

섬전처럼 찔러오는 창을 비껴냈다. 비껴나간 창이 나(挐)의 기법으로 모용경의 팔을 감아온다. 모용경의 팔이 한순간 불끈 부풀었다. 그를 통해 뿜어나오는 막대한 기파가 마인의 창을 떨쳐낸다.

한 걸음 한 걸음.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모용경과 마인의 간격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사이 호흡을 고른 공조 대사는 모용경을 돕는 대신 위기에 처한 벽산진인을 돕기 위해 달려갔다.

마침내 모용경의 주먹이 마인의 몸을 노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럴 줄 알았다.”

모용경의 양손이 환상적으로 움직였다.

-퍼버버벙

콩 볶는 소리와 함께 모용경의 양쪽 팔이 순식간에 상처로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그 커다란 상처에도 불구하고 모용경이 웃었다.

가면인의 공격이 그의 선에서 막힌 탓이었다. 분명 그는 가면인이나 파검과 같은 높이에 서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무공은 분명 미세하게나마 다른 초절정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파검의 검이 또 한 번 가면인의 몸을 베었다.

“젠장.”

“방도는?”

“글쎄. 우선은 다섯 호흡. 딱 그 정도만 제 자리에 세워둘 수 있다면 방도가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잡담은 거기까지 였다.

어느 순간 파검의 몸이 또 다시 흐려졌다. 저 뒤편 창을 쓰는 마인은 언제 자신이 몰렸었냐는 것처럼 모용경을 향해 힘차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

비룡재천(飛龍在天)

저 하늘 높은 곳에서 거대한 오물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쿠과과광!!

“거지, 늦었군.”

“오는 길에 막아서는 놈을 좀 두들겨 패느라. 그보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괴물이야. 자기가 대제사장이라고 그러더군.”

“대제사장? 그러면 저 녀석들이 저기서 저러고 멍 때리고 있는 것도 혹시?”

“이능인지, 아니면 초절정의 경지를 초월한 무공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가면인의 짓이야.”

각종 생채기로 피투성이가 된 파검이 가면인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냈다.

“헌데 왜 그 괴물을 자네가 아니라 저 녀석이?”

“이 자리에서 저 괴물을 그나마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좌부원 저 녀석뿐이야.”

“뭐라고? 그러면 설마?”

“그래, 파검 좌부원이 천하제일인이었어.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크게 의미가 있는 것 같진 않지만.”

“그래서 방도는?”

“우선은 버텨봐야지. 내가 파검에게 합류할 테니 자네가 저 마인을 맡아주게. 중간중간 대제사장이라는 자가 급습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고.”

모용경의 강건한 몸이 대제사장의 공격을 대신 받았다.

싸움이 이어졌다.

* * *

광음검(光陰劍)

운호는 처음 그것을 접했을 때 그것을 단순히 예식용 검술이라고밖에 판단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몽원경의 증무진인 역시 그 광음검에 관하여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운호는 알고 있었다. 화산에 남은 모든 검술에는 증무진인 목운평의 ‘의도’가 숨겨져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광음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렇기에 운호는 광음검을 일종의 수련을 위한 검술일 것이라 추측했다. 빠름 속에 느림이 있고 느림 속에 빠름이 있으니 만검(慢劍)과 쾌검(快檢)을 익히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초절정 고수들의 터무니 없이 높은 수준의 무공들은 운호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산을 오르는 이에게는 때론 저 너머의 정상이 어떤 형상인지, 정상이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싸움 가운데 청우 진인과 청공 진인의 무공이 운호에게 전달하는 것은 그런 것들과는 궤가 달랐다.

청우와 청공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하나는 길고 얇았으며 하나는 짧고 뚱뚱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같은 형을 공유했으며 같은 기운을 내뿜었다.

짧고 뚱뚱한 이는 누구보다 빨랐으며 길고 얇은 이는 느릿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그들은 분명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운호의 두뇌가 쉬지 않고 회전했다.

대체 왜일까?

분명 눈으로 보는 저들은 저토록 다른데, 어찌하여 나는 저들이 ‘같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답이 없는 질문으로 혹사당하던 운호의 두뇌가 또 한 번 불가해를 목격했다. 가면인의 경계가 흐려졌고, 파검 좌부원의 경계가 흐려졌다.

그렇게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로 복잡하던 운호의 두뇌에 그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문제가 더해졌다.

이제 막 틀을 깨고 이단공에 올라 선 포원공의 진기.

남궁혜의 죽음으로 생겨난 감정의 격앙.

언제나 해답를 궁구하는 그의 본능.

그리고 한계를 벗어난 질문까지.

돈오(頓悟)라고 했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그와 같다.

하나하나 문제를 풀고 답을 찾는 것은 돈오가 아니다. 그것은 점수의 과정을 거친 점오에 가깝다.

이해의 영역 밖.

운호가 깨달음을 얻었다.

-느림과 빠름은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에 광음(光陰)이다.

운호의 광음검이 자신을 옭아맨 가면인의 마음을 베어냈다.

-움찔

가면인에게 그것은 마치 자그마한 벌레가 무는 정도의 충격에 불과했다. 아주 약간의 따끔함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따끔함이기도 했다.

잠깐의 움찔.

또 한번 그들 만의 세계를 유영했던 파검은 자신의 호흡을 고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가면인의 공격에 왼쪽 옆구리가 박살난 피투성이의 무신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모용경의 본능이 판단했다.

이것은 앞으로 다신 없을 기회다.

피칠갑된 그의 거대한 몸이 가면인에게 쇄도했다.

그야말로 찰나의 틈.

가면인의 반응이 아주 미세하게 늦었다. 하지만 그와 모용경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다. 가면인의 우수가 모용경을 향해 움직였다.

하얀 손.

모용경은 이전에 있었던 수차례의 공방을 통하여 저 손에 담긴 위력이 극성에 다다른 화석신공의 성취를 뛰어넘어 자신의 금강불괴조차 파괴할만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모용경의 왼팔이 그 손을 막아섰다.

이전의 공방에서 느꼈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저 사내의 공격에는 모용경의 진기를 ‘해제’하는 기이한 공능이 숨겨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크게 부풀었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심지어 청동빛이 감돌던 팔뚝이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분홍빛으로 돌아갔다.

-우드득

잘 단련된 모용경의 왼쪽 팔뚝이 완전히 부러졌다. 부러진 뼛조각이 살을 뚫고 튀어나오는 참혹한 상처였다. 진기를 통하여 통각을 차단할 수도 없었다. 이 순간 그의 왼쪽 팔뚝은 평범한 노인의 부실한 왼팔이었다.

그 막대한 고통 앞에 무신 모용경이 이를 악물었다.

아직이다.

여기까진 예상한 범위다.

어린 시절.

그의 작은 할아버지 하나는 자신의 비어있는 팔뚝을 흔들며 이런 터무니 없는 농담을 건내곤 했다.

“사람의 팔이 두 개인 것은 하나 정도는 없어도 괜찮기 때문이란다.”

어린 모용경은 차마 그 농담에 웃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그 농담을 하던 작은 할아버지보다 더 늙어버린 모용경은 웃으며 답할 수 있었다.

“과연 이래서 사람 팔은 두 개인 거군요.”

-덮썩

모용경의 오른손이 자신의 왼 팔뚝을 박살낸 가면 사내의 하얀 손을 움켜쥐었다. 그저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모용경의 오른손이, 그가 쌓아 올린 필생의 진기가, 그가 만들어낸 금강불괴의 육체가 서서히 해체됐다.

하나.

둘.

셋.

그 압도적인 상실의 고통 속에서 무신 모용경이 소리쳤다.

“좌부우어어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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