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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83화 (83/288)
  • 83화

    무한 혈사(2)

    어린 시절. 그가 기억하는 독안의 할아버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강철의 남자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자 그의 아버지를 냉정하게 포기했다.

    “너는 가능성이 부족하다.”

    어린 시절 그는 그런 할아버지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었다.

    “더 강해져야 한다. 그 정도로는 부족해.”

    할아버지는 항상 그를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시간이 흘렀을 때, 그는 그 강철의 남자가 어쩌면 강철의 남자가 아닌, 그저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불쌍한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 * *

    갈기갈기 찢긴 화려한 전포 사이로 청동빛 근육이 불끈했다. 기회를 노리던 무신 모용경의 완벽한 일격.

    하지만 그 공격이 향한 곳은 가면 사내가 아니었다.

    파검의 공격을 막아냈던 도륜이라는 사내.

    -콰과과과광!!

    하지만 통하지 못했다.

    어느새 나타난 가면의 사내가 도륜의 앞에서 무신의 공격을 받아냈다.

    “쳇.”

    모용경이 크게 두 걸음 물러나 파검 옆에 나란히 섰다.

    완벽하게 박살 나 있던 무신 어깨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노사 그 팔?”

    “소림 역근경에서 말하는 금강불괴와는 조금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화석신공을 대성하면 금강불괴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 공능 중 하나다.”

    금강불괴.

    무림 역사상 스스로를 금강불괴라 칭했던 이는 많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 경지에 다다른 이가 대체 몇이나 될까?

    무신 모용경의 마음이 파검에게 닿았다.

    -저 녀석 공격에 진기를 해체하는 기이한 공능이 담겨있는 것 같다.

    -엥? 그게 무슨 소리요?

    가만히 모용경을 바라보던 가면 사내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렇구나. 익숙하다 했더니. 그대, 모용이었구나.”

    “익숙하다?”

    “그래, 130년쯤 전이었던가? 본좌 앞에 무릎 꿇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던 그 녀석이 모용씨라고 했었다. 스스로 눈알을 뽑으면 살려주겠다니 주저 없이 뽑는 것이 참으로 보기 좋았지.”

    가면 사내의 말에 모용경이 인상을 굳혔다.

    분명 그의 할아버지는 마교와의 싸움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 그리고 저 범상치 않은 무위······.

    설마 전설로 내려오던 마교 대제사장의 이야기가 사실이란 말인가?

    “거참. 노사. 저거 대충 들어도 개소리인데 뭘 그리 진지하게 듣고 그러시오. 게다가 만에 하나 저 녀석 말이 진짜라면 그건 더더욱 좋은 일 아니요.”

    “좋은 일이라고?”

    파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130년 전에 노사의 선조를 상대로 이겼다면 나이가 거의 이백 살은 됐다는 소리인데, 이백 살 먹도록 무공 수준이 저거라면 저거 그냥 빡대가리라는 말 아니요. 나라면 이백 년을 무공 수련했으면 벌써 진즉에 우화등선했겠구만.”

    파검의 말에 모용경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클클클, 그래. 해적 네 놈 말이 맞다. 대제사장이고 뭐고 이백 년을 수련했는데 고작 저 수준이라면 그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빡대가리로구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가면 사내가 -쾅!! 크게 발을 굴렀다.

    “참으로 무례하기가 짐승과 같구나. 내가 이래서 달마가 이 땅에 문화를 전하는 것을 그토록 반대했거늘.”

    “달마? 다알마아? 와, 허언증도 그 정도면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하겠구나. 이제는 노사의 조상에 이어서 보리달마까지 나오는 거냐? 왜? 아예 좀 더 써서 반고가 세상을 만들 때 옆에서 장강은 그것보다 더 구불거려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그러지 그러냐?”

    “이······, 이 무례한!!”

    파검이 대답 대신 검을 움켜쥐었다.

    그가 마음속에 단단하게 세워 둔 검이 또 다시 찬란하게 피어났다. 물론 가면 사내는 그것을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가면사내의 몸이 파검을 향해 쇄도했다.

    “어디를!!”

    모용경이 가면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후읍

    한 번의 호흡으로 모용경의 몸이 1.5배쯤 크게 부풀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서로를 견제하던 열둘의 초절정 고수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쿠과과과광!!

    그야말로 경천동지.

    강기와 강기가 맞부딪혔고, 산조차 베어버릴 참격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꿀꺽

    감히 합류할 엄두도 나지 않는 전투의 현장.

    가장 먼저 소리 친 것은 종남의 무인들이었다.

    “우리도 합류하도록 하자.”

    “하지만 장문님이!!”

    “사술이다. 사술은 그것을 건 자를 제거하면 해결될 것이다. 벽하. 네가 남아서 장문인을 살피도록 해라.”

    “네!!”

    그래, 백 명쯤 되는 절정 고수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 하나의 초절정 고수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하물며 저기서 싸우는 초절정 고수의 숫자는 동수다.

    이 삼백의 무인들이 돕기 시작한다면 의외로 승부는 금방 날 것이다.

    그것은 신호탄과도 같았다.

    하얀 상복을 입은 종남의 무인들을 필두로 삼백에 달하는 절정의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마교 놈들.

    호랑이 굴에 스스로 기어들어 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절정 이하의 무인들 앞에 가면 사내가 나타났다.

    ‘환상?’

    ‘사술?’

    가면의 사내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바라봤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곳에 모인 절정 이하 대부분의 무인들이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멈춰 섰다.

    검을 뽑아들고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굳은 자들도 있었고, 뛰어오른 그대로 철푸덕 바닥에 떨어진 자들도 있었으며 달리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나뒹구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 가운데 몇몇은 절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몸의 어딘가가 기묘한 각도로 부러지기도 했으며 몇몇은 그대로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쿠웅!!

    -털썩!!

    -뿌드득!!

    기묘하고 기괴한 광경.

    그 가운데 오직 몇몇.

    화산의 굉명과 같은 고절한 무인들만이 자신의 몸이 멈췄음을 의식했다.

    ‘모, 몸이?’

    ‘마······, 맙소사!!’

    심지어 그들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무인들은 자신들이 멈췄다는 의식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틈.

    모용경의 주먹이 그 앞에 선 가면 사내의 몸을 두들겼다.

    -콰과과과광!!

    그것은 설사 천근 거암이라도 박살낼 파괴력을 지닌 일권이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가면의 사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직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 몸에 새겨 넣은 무의 방식대로 통나무보다 두꺼운 모용경의 다리가 가면 사내의 머리를 두들겼다.

    하지만 여전히 흔들림은 없었다. 심지어 얼굴에 쓴 가면조차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호신강기?”

    이와 흡사한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강호에서 호신강기로 유명한 걸왕 소진평이다. 하지만 소진평의 호신강기가 병아리라면 이자의 호신강기는 독수리, 아니 대붕이다.

    -후읍

    모용경이 숨을 들이켰다.

    먼 옛날 화석신공을 창안했던 모용세가의 선조는 그것으로 금강불괴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용경을 제외한 모든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그 길의 끝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 오직 모용경. 무신 모용경만이 달랐다.

    그에게 화석신공의 궁극은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진기와 혈액의 양은 같았다. 그저 그 속도가 몇 배 빨라졌을 뿐이다. 더 이상 강화될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진 모용경의 심장이 단번에 피를 내뿜었다.

    그 한 번의 호흡으로 그의 상체가 반 배쯤 크게 부풀었다. 금강불괴에 이른 육체가 그 터무니 없는 행위를 견뎌냈다.

    현세의 법칙을 일그러트리는 압도적인 육체의 폭력.

    그렇게 모용경의 심상이 불완전하게나마 현세에 구현됐다.

    가면의 사내가 움직였다.

    “이건 다시 봐도 신기하구나.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불완전하게나마 이런 길을 만들어내다니.”

    사내의 손바닥이 모용경의 주먹을 향해 움직였다.

    그는 이미 한차례 그와 유사한 수법에 당했다.

    저 기묘한 하얀 손바닥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공격을 무효화한다.

    세월이 흘러 어린아이는 강철과 같은 무인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무공이 어린 시절 보왔던 그 독안의 할아버지보다 강해졌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한차례 꺾여 너덜너덜해진 그 할아버지보다 훨씬 단단했다.

    무신.

    나는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무인이다.

    모용경이 이를 악물었다.

    -번쩍!!

    그것은 분명 물리법칙을 완전하게 어긋나는 움직임이었다.

    모든 것을 꿰뚫을 것처럼 움직이던 하나의 주먹이 그림처럼 회수됐다. 동시에 그 운동력이 완벽하게 회전력으로 전환됐다.

    몸의 중심을 축으로한 거대한 회전.

    마치 통나무를 연상케 하는 모용경의 오른발이 가면인의 뒷통수를 향하여 번쩍였다.

    시야와 감각의 밖에서 파고드는 압도적인 발차기.

    가면인이 진심으로 놀랐다.

    파검도 그렇지만, 실로 놀랍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가면인의 시야가 확장됐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그보다 한 차원 높은 곳으로.

    그리하여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면인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의 시간이 멈춘 것에 가깝게 변했다. 압도적인 인지와 사고의 속도.

    절정의 고수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빠르게 움직이고 수십 배, 수백 배 빠르게 세상을 체감하는 것처럼, 가면인의 세상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것을 인지하는 것은 오직 열다섯 명.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고수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모용경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동공이 자신의 발차기를 피해 움직이는 가면인을 포착했다.

    골반의 뒤틀림, 무릎 관절의 움직임. 칠십 년을 넘게 고련한 절정의 각법이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하지만 늦다.

    부족하다.

    일류의 고수가 절정의 고수에게 닿지 않는 것처럼.

    절정의 고수가 초절정의 고수에게 닿지 않는 것처럼.

    무신 모용경의 발차기는 가면인에게 닿지 못했다.

    가면인의 손바닥이 모용경의 허리에 닿았다.

    현실 세계에서는 강철보다 단단한 모용경의 몸이었지만, 가면인의 세상에서는 마치 두부처럼 부드러웠다.

    모용경의 눈이 커졌다.

    고통일까?

    가면인이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너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홀로 다른 시간을 걷는 그였기에 그 말은 아무도 듣지 못할 말이었다.

    그래, 그래야만 했다.

    “지랄 염병한다.”

    응?

    -스윽!!

    파검의 마음이 가면인의 등을 갈랐다.

    * * *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차라리 누군가와 칼을 부딪혀 죽은 것이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저 가면인이 한번 바라본 것 만으로 조금 전까지 의기를 불태우던 무인이 달리던 자세 그대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어버렸다.

    그 터무니없는 불합리에 운호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저 그의 마음일 뿐. 운호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쿠과과과광!!

    여덟 명.

    그저 초절정의 무인들의 싸움이 만든 여파가 굳어있던 여덟 명의 고수를 피떡으로 만들었다.

    불합리.

    그야말로 압도적인 불합리.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추악한 인상의 마인과 청공진인의 충돌이 만들어낸 경력의 여파가 종남의 무인들 쪽으로 뿜어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종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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