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81화 (81/288)

81화

무한(12)

“글쎄, 내가 마교의 인물이었다면 제일 좋은 방법은 우리가 지금처럼 모이기 전, 전력을 동원하여 호북과 섬서의 무당, 화산, 종남, 제갈을 연달아 박살을 냈던지 그게 아니면 사천의 삼대 문파를 한순간 밀어버렸겠지. 쓸데없이 종남의 태을검선 하나 잡겠다고 나섰다가 권신에게 팔대 제사장 중 하나를 잃는 멍청한 짓을 하는 대신 말이야. 물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마기를 감추는 방법에 제약이 있어서 전력 대부분을 움직일 수는 없다고 봐야겠지만.”

남궁철은 운호에게 제갈첨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했다.

“아, 우리 매형? 으음······, 글쎄. 유능한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지. 솔직히 나는 그 양반이 자기 자신을 무후재림(武侯再臨)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도 일정부분은 공감해. 그러니까 한 요 정도?”

남궁철이 자신의 엄지와 검지를 한 치 정도 벌렸다.

“그 말은 정말 어떤 분야에서는 그분이 제갈무후에 비견될만큼 천재적이라는 말씀이신겁니까?”

남궁철이 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 계한의 제갈무후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알고 있는가?”

“에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삼고초려에 적벽대전의 동남풍. 소열황제의 유명을 받아 계한을 이어가고, 마지막에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쫒아내는 장면까지. 사실상 삼국지의 주인공 아닙니까.”

“그래, 뭐 그렇지. 하지만 사실 엄밀히 따져보자면 그건 나관중이 쓴 삼국지 연의라는 소설이고, 실제의 제갈무후는 그와는 조금 달랐다네.”

“달랐다고요?”

“그래,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이르기를 제갈무후는 군의 통솔과 준비에는 능했으나 기책이 부족하여 이기지 못했다 하였네. 굳이 따지자면 전한 한삼걸의 장량과 같이 대국적 식견이 있었고, 소하와 같은 행정 정치력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한신과 같은 재능은 없었다고 볼 수 있지. 물론 제갈가 사람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말이야.”

거리의 설화가들이 이야기하던 제갈량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실 지금 대화에서 그건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매형 역시 그와 비슷하네. 일선의 행정능력만 보자면 아주 훌륭해. 괜히 칠대세가의 전체적인 조율을 맞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그 뭐랄까······. 본인의 머리를 너무 믿는 경향이 있어. 덕분에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하지. 뭐, 그래서 어른들도 매형한테 무언가를 결정할 자리에는 잘 두지 않는 편이지. 물론 매형 본인은 그거에 불만이 많지만 말이야.”

운호가 남궁철의 그 평가를 머릿속에 되새겼다.

굳이 그의 생각에서 이상한 점을 지적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런 류의 인간은 그래봐야 이상한 논리로 그게 아닌 이유를 만들어낸다. 흔한 일이다.

“과연······. 하지만 그거야 ‘군사님’같은 유능한 분이 마교에 없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제가 여쭙고 싶은 부분은 마교가 어떻게 할 때 저희가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 올까. 뭐 그런 부분입니다.”

운호의 칭찬에 제갈첨의 콧구멍이 조금 커졌다.

“어떻게 할 때 우리가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느냐고? 그야 쉽지.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이야말로 강호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 아닌가.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 되겠지.”

“그렇다면?”

제갈첨이 웃었다.

“걱정이 많군. 여기 모인 천무십칠성이 무려 다섯. 게다가 청무진인에 청공진인에 각 문파의 주력이라고 볼 수 있는 절정 고수만 무려 삼백이지. 어디 그뿐인가? 부르지 않았던 속가의 제자들과 각지의 유력자들이 데리고 온 무사들은 또 어떻고? 게다가 개방과 해룡방이 우리와 사이가 별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중원의 무인들이야. 마교가 여기를 친다? 장담하건데 팔대제사장, 아니 이제 그나마도 하나가 죽었으니 칠대 제사장이겠군. 그들이 전부 다 달려든다고 해도 무한을 넘볼 수는 없어. 뭐 혹시 모르지. 전설로만 나오는 그 대제사장이라도 등장한다면 또 어떻게 될지.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쉽게 당할 것 같지는 않군. 어떤가? 이 정도면 자네 걱정에 대한 답이 된 것 같은데?”

운호가 물었다.

“만약 개방과 해룡방도 어찌 됐건 이기는 건 구대문파와 칠대세가라고 생각해서, 마교가 토벌된 이후는 자신들의 차례라고 생각하여 마교 편을 든다면요?”

“그야 분노한 구대문파와 칠대세가에게 주춧돌까지 모조리 박살이 나겠지. 마교보다 먼저 말이야. 무엇보다 그들이 합류를 한다고 해봐야 개방도 오백 남짓에 해적 서른 남짓이야. 그나마 개방의 거지들 가운데 일류 이상은 쉰도 되지 않고. 천무십칠성 가운데 둘이면 위험하긴 하지만 결정적인 건 아니야. 그들이 생각이 있다면 마교에 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돕고 이후 구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

제갈첨이 잠시 시간을 가늠했다.

“얼추 일각이 다 된 것 같군.”

“아, 한 가지만 더!! 혹시 마교가 이렇게 나오면 정말 짜증 나겠다. 혹은 이렇게 나오면 가장 편하겠다. 뭐 이런 건 없을까요?”

“그거야 숨어서 산발적으로 저항을 하는 거겠지. 제일 편한 것은 알아서 모여서 단번에 토벌되어주는 일일 테고.”

“그러니까 예컨대 지금 저희가 이렇게 모인 것처럼 말이죠?”

“그래······.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인 것처럼 말이야.”

제갈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궁철의 평가처럼 제갈첨은 좋은 군사감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는 쓸데없는 의심이 너무 많았고 그 의심에 논리를 더하기 위해 아전인수의 해석을 즐겨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일각이 다 지났군. 난 급한 일이 있어 이만 가봐야겠어.”

강자는 구대문파와 칠대세가이고 약자는 마교다.

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면?

* * *

무신이 물었다.

“그래서 마교가 우리들을 일부러 모았다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제갈첨은 그것을 질책으로 받아들였다.

“아니,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 만약 정말 그 전설의 대제사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하지만 아니었다.

구대문파와 칠대세가.

모두를 통틀어 마교를 가장 두려워하는 이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무신 모용경이다.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공이 하늘에 닿은 것 같았던 그의 할아버지의 비어있던 한쪽 눈을. 저 청공이 청우와 비교해도 그리 뒤지지 않을 것 같던 작은할아버지들의 어깨가 텅 비어있었다는 것을.

모용경이 진지하게 되물었다.

“그래서 만약 녀석들이 우리를 친다면 언제가 가장 적기라고 보느냐. 회담이 끝난 직후? 아니면 회담을 끝내고 모두가 돌아가는 때?”

“그게 그러니까······. 만약 우리를 모은 것이 정말 의도적인 일이라면······. 자신들의 실력을 그렇게 과신하고 있다면······.”

“있다면?”

모용경의 진지한 질문에 제갈첨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건 회담을 개최하는 바로 그 순간일 겁니다.”

구파와 칠가의 역사적인 회담일까지 이제 단 하루.

모용경이 결단을 내렸다.

* * *

-우당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모용세가는 한 때나마 중원을 차지했던 명문가다.

지난 제국의 혼란기.

수많은 사람이 모용경에게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기회라 속삭였다. 하지만 모용경은 가문의 세력을 일으켜 거병하는 대신 주가를 지원하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모용가는 무순공의 칭호와 함께 요녕의 실질적인 지배를 허락받았다. 그때 거병을 했더라면 어찌 됐을까? 천하를 손에 넣었을까? 아니면 스러져버린 다른 군벌들과 같은 꼴을 당했을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천하를 손에 넣은 주가도 그리 좋은 꼴은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모용경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숙부님!!”

검왕 남궁벽이 벌개진 얼굴로 문을 벌컥 열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됐다, 내버려 두거라.”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천하의 검왕이 밀고 들어오는데 이만큼이나 막은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지. 그래도 저 녀석이 손속에 사정을 두긴 했구나.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안 보이는 걸 보니.”

모용경의 말에 남궁벽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침착도 하십니다. 지금 그런 거 볼 정신도 있으시고. 아니,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칠대세가와 구파 회합에 거지놈들과 해적을 초대하다니요.”

“무슨 생각이기는. 마교는 모두의 적 아니더냐. 굳이 칠대세가와 구파가 아니라고 척을 질 필요는 없는 노릇이지.”

“척을 질 필요가 없다니요. 그놈들은 마교에 못지않은 해악들입니다. 마교를 쓸어내면 곧바로 쓸어버려야 할 놈들이라고요.”

남궁벽의 이야기에 모용경이 혀를 찼다.

“쯧쯧쯧, 너는 내일 먹을 저녁을 고려해서 오늘 아침을 정하느냐?”

“네? 그게 무슨?”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적들이 있는데 뭐 그 이후를 고민하고 있냐 이 말이다.”

“하······, 하지만. 그게 그러니까······. 아!! 그래!! 내부의 적!!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거 아닙니까. 섣불리 그 놈들과 공조를 했다가는······.”

모용경이 손을 저었다.

“그거야 네가 염려할 부분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무엇보다 너는 그냥 파검이 싫은 거 아니냐.”

모용경이 정곡을 찔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지만, 아쉽게도 남궁벽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네, 맞습니다. 전 그놈이 아주 지독하게 싫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선택하십쇼. 남해의 그 비루한 해적놈들입니까. 아니면 무려 오백 년 가깝게 끈끈하게 인연을 이어 온 저희 남궁세가입니까.”

“벽아.”

“네, 숙부님.”

“이미 강이와는 이야기가 다 끝난 일이다.”

남궁벽이 마치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모용경을 바라봤다.

그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처량한 표정에 모용경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이 녀석은 나이를 먹으면서 무공만 늘었지, 하는 짓은 도무지 변하지를 않는다.

“나중에, 나중에 모든 일이 다 끝나면 그때는 네 편을 들어주마.”

“정말이십니까?”

“그래, 그러니 잠시만 참도록 해라. 그저 딱 마교를 토벌할 때까지만이다.”

* * *

실로 장관이었다.

강호를 이끄는 수많은 명숙들.

무엇보다 강호 최정상에 위치한 천무십칠성, 아니 천무십육성 가운데 무려 일곱이 한자리에 모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 강호무림의 절반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인 구대문파와 칠대세가의 회담.

어쩌면 근 백 년 만의 무림맹이 설립될지도 모르는 이 중요한 회담에서 누가 개회를 선언하느냐를 두고도 참으로 많은 설전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때론 그 별것 아닌 일이 많은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것 역시 모용가의 대승적인 양보가 있었다. 무신 모용경은 맹주에 지원하지 않기로 약속을 함으로써 이번 회담에 개회 선언을 담당하게 됐다.

군웅들이 가득 모인 장원.

무신 모용경이 그 모든 이들 앞에 섰다.

“지난 오태산 혈사 이후 백삼십년. 마인들은 꾸준히 출몰했지만 본격적인 마교의 발호라고 할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전. 마교는 은밀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강호에 다시 마각을 드러냈고 그 더러운 발톱에 나의 오랜 지인인 자명이 귀천했습니다.”

모용경이 말을 이어갔다.

태을검선 자명 진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마교가 얼마나 무도한 자들이며, 그들의 위협이 얼마나 미증유의 것인지.

-짝짝짝

그런 모용경의 말 가운데 누군가의 박수소리가 선명하게 모두의 귀를 파고들었다.

“참으로 좋은 말이구나. 미증유의 위협이라. 그래, 옳다. 아주 옳아. 본좌야 말로 너희에게는 미증유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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