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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79화 (79/288)
  • 79화

    무한(10)

    15년 전 좌부원의 검은 파도와 같은 검(波劍)이었으며, 동시에 부서진 검(破劍)이었다. 당시 그에게 검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쥐고 휘두르는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15년 전의 그 문답으로 태을검선은 자신의 검을 버렸고 파검은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런 파검이 종화에게 전하려 한 것은 그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 먼 미래. 그리고 십중팔구 닿을 수 없는 높이까지였다.

    하지만 남궁철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또 달랐다.

    운호의 시선이 파검을 쫒았다.

    지금 파검이 남궁철에게 베풀고자 하는 것은 그저 일류와 절정.

    그것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깡!!

    날아오른 파검의 검을 남궁철이 막아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궁철이 막아낼 검을 파검이 날렸다고 해야했다.

    파검이 손을 움직였다.

    “어검술!!”

    검이 파검의 의지 아래 춤을췄다.

    남궁철이 이를 악물었다.

    유연성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결국 관절의 가동범위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람이 휘두르는 검은 기본적으로 그 움직임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검술은 다르다. 그 움직임이 자유롭고 또한 사람의 예측을 아득하게 벗어난다. 무엇보다 공방을 나눔에 있어서 결국 노려야하는 것은 검을 휘두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검술의 경우 그 검을 다루는 사람은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결국 어검술을 사용하는 쪽에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피해만을 강요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검술이 무적의 기술이 아닌 이유는 간단하다.

    위력.

    결국 의지와 기를 사용하여 움직이는 어검술은 사람의 몸으로 직접 휘두르는 검에 비해 그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보통 초절정 고수의 몸은 그 자체로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다. 지금처럼 어설프게 원거리에서 어검술만으로 상대를 하려 한다면, 단박에 그 검을 제압하고 반격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비슷한 수준’의 고수일 때 이야기다.

    남궁철의 몸이 크게 휘청했다.

    여덟 장.

    파검의 몸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크게 휘청하는 남궁철의 코앞에 나타났다.

    남궁철의 몸을 크게 휘청하게 만든 그의 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요요하게 떠 있었다.

    -타악

    파검이 허공을 유영하던 검을 가볍게 쥐고 크게 휘둘렀다. 그에 대항하는 남궁철의 검에 제왕의 금빛 천뢰가 파지직 피어올랐다.

    남궁세가의 오랜 선조가 창안하고 수많은 기재들의 피땀이 더해진 저것은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품고 있다.

    파검 좌부원은 이 강호무림 누구보다 그것을 뼛속 깊이 통감하고 있었다. 검왕 남궁벽은 분명 그보다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젊은 시절 그는 남궁벽에게 두 번이나 패배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전적으로 저 금빛의 천뢰에 있었다.

    -콰과광!!

    남궁철의 검을 감싸고 있던 금빛의 천뢰가 고작 일 합에 모조리 날아갔다.

    파검이 웃었다.

    “석년의 남궁벽보다는 낫구나. 최소한 잘 깔린 관도만 따라서 아무 의문 없이 달리는 멍청이는 아니군.”

    “그거 잘 깔린 관도를 놔두고 주변을 기웃거리는 머저리라는 말씀 같습니다만?”

    “알아들었다니 더 좋구나.”

    남궁철이 크게 호흡했다.

    실전이었다면 감히 시도하지 못할 빈틈투성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파검은 그저 어린 놈의 재롱이라도 보듯 그것을 지켜봤다.

    기혈을 가득 채우던 탁기를 몰아내고 다시 정순한 진기가 약동하는 데까지 세 호흡.

    이것 역시 또래 가운데는 발군이다.

    남궁철의 검에 다시 금빛의 천뢰가 번뜩였다.

    후회하지 않을 일격.

    제왕검형(帝王劍形)

    천뢰(天雷)

    그것은 몇 달 전 광혈마를 상대로 선보였던 당시의 일격 그 이상이었다.

    “응?”

    그리고 그 일격을 파검은 맨손으로 받아냈다.

    이미 그의 시선은 남궁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더 먼 곳.

    설익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제왕이 아닌, 진짜 제왕의 기도를 풍기는 누군가를 향해 있었다.

    “좌부원 네 이 노오오오옴!!”

    실시간으로 선명하게 커지는 목소리.

    -쿠과과과광!!

    황금빛 뇌전이 파검을 강타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남궁철은 이미 운호의 옆에 있었다.

    금색의 번개와 남색의 물결이 맞붙었다.

    “할아버지?”

    천무십칠성.

    검왕 남궁벽을 설명하기에 뇌신(雷神)이라는 단어만큼 적절한 단어가 또 있을까. 금빛의 천뢰로 뒤덮인 인영이 번뜩일 때마다 막대한 굉음과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에 맞서는 파검 좌부원의 검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라고 볼 수 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어검술은 같은 수준의 고수라면 충분히 힘으로 격파할 수 있다. 하지만 파검의 어검술은 달랐다. 지고한 무술의 경지인 어검술조차도 파검에게는 그저 검을 휘두르는 또 하나의 방법에 불과했다. 베고 막고 휘두르고 찌르는 그 모든 동작에 손을 벗어난 검이라는 하나의 선택지가 더해졌다.

    뜬금없이 벌어진 이 시대 가장 강력한 무인들의 싸움.

    운호의 두 눈이 그 싸움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검왕 남궁벽의 공격이 펼쳐지는 순간, 운호의 두뇌는 그것을 막아낼 길을 모색했다.

    틀렸다.

    좌부원은 운호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운호의 두뇌가 그 좌부원의 선택을 막아낼 길을 모색했다.

    또 틀렸다.

    남궁벽은 운호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보통 또래 아이들의 비무에서 운호의 생각과 다른 길은 틀린 길이었다. 하지만 이 완성자들의 그것은 그저 ‘다른’ 선택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무공을 완성한 남궁벽과 좌부원의 무공은 운호가 바라보는 ‘보통’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논리로 움직였다.

    그 불가해와 불가해의 부딪힘이 운호의 시야를 크게 넓혀주었다.

    “감히!! 남해의 비루한 해적놈이 남궁가의 귀한 혈손을 건드리느냐!!”

    “그 비루한 해적놈한테 두들겨 맞고 달아나던 놈 주제에 근처에 자기 편이 있는 것 같으니 아주 기고만장한 꼴이 참으로 우습구나.”

    “뭣이?”

    금빛으로 빛나는 찬란한 검.

    하지만 파지직 거리는 검뢰로 둘러 쌓인 남궁철의 검과는 달랐다. 검왕 남궁벽의 검은 그저 순금을 녹여 만든 황금의 검처럼 고요했다.

    하지만 운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것은 남궁철의 검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저 검에는 그야말로 천지를 가를 막대한 힘이 실려있다.

    검강(劍罡)

    과거 권신 청무진인이 연무장에서 보여줬던 한계를 넘어선 내공의 집적과는 그 궤가 달랐다.

    그래, 저것이야말로 검강이다. 하나의 완성된 검사가 다다를 수 있는 지고한 경지. 현실과 괴리된 검왕 남궁벽만의 완전한 이치가 저 검에 담겨있다.

    “흥, 아주 놀고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그래봐야 선조들이 닦아 놓은 길을 아무 의문 없이 달리기만 하는 머저리의 검일 뿐이지.”

    파검 좌부원의 검이 똑바로 섰다.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운호는 느꼈다.

    천하제일.

    저것은 감히 자신을 천하제일이라 칭하는 자의 검이다.

    남궁철이 이를 악물었다.

    과연 좌가 놈답다. 하지만 남궁의 검은 무적이다.

    바로 그 때였다.

    “끌끌끌, 다 늙어서 아직도 어릴 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서야······.”

    대체 왜 눈치채지 못 했던 것일까?

    한순간 후각을 마비시켜 버리는 압도적인 악취가 주변을 잠식했다.

    -우웩.

    종화와 남궁혜가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운호 역시 비릿하게 올라오는 토기를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운호를 비롯한 아이들은 악취도 정도를 넘어서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지금 저 노인이 누군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중원에서 가장 더러운 인간.

    물과 가장 먼 사나이.

    내리는 비를 맞기 싫어 호신강기를 대성했다는 전설적인 고수.

    천무십칠성의 일원인 걸왕 소진평이었다.

    “해적에 거지라. 최근 자주 만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래 어디 한 번 와 봐라.”

    검왕 남궁벽이 살짝 몸을 틀었다.

    천무십칠성 둘이 상대이더라도 물러설 생각 따윈 조금도 없다는 그 자세에 파검이 콧웃음을 쳤다.

    “흥, 거지가 싸움 말리러 온 거 대충 눈치채놓고는 괜히 허세 부리는 꼴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안쓰럽구나.”

    “웃기는 소리!!”

    “자자, 다들 그러지들 말고 일단 검부터 내려놓고 말로 해결하세나. 지금 구대문파에 칠대세가까지 모두 중요한 일로 모인 것 아닌가. 검왕 자네도 그 일 때문에 한구로 가는 길이었을 테고. 지금 여기서 천무십칠성 둘이 싸워봐야 마교 놈들만 웃는다네.”

    “해적과 거지가 마교보다 나을 것도 없지. 무엇보다 네 놈들이라면 마교와 손을 잡았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고.”

    검왕의 단호한 목소리에 걸왕이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거봐, 저 자식은 어차피 말이 안 통하는 놈이라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검왕과 끝을 보겠다고? 당장 한구에 모인 녀석들이 달려들걸세?”

    “그야 그 자식들 오기 전에 끝내고 튀면 그만이지.”

    “그리고 자기들 행사에 먹칠을 했다는 것에 분노한 구파와 칠가에서는 마교를 치기 전에 해적들을 먼저 도륙하겠지.”

    “그거야······.”

    “게다가 잊지 말게나.”

    걸왕이 눈짓으로 좌부원의 손녀 조혜주를 가리켰다.

    젠장.

    파검 좌부원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 벽창호. 무슨 택도 없는 오해를 하는지는 잘 알겠다만 가서 네 손자한테 직접 물어봐라. 내가 네 손자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은혜는 무슨. 남궁의 검에 너의 쓸모없는 잡학을 주입하려던 것 아니냐.”

    “잠깐만, 뭐야? 벽창호, 너 그러면 지금 내가 네놈 손자에게 가르침을 주려던 걸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미친개처럼 달려든 거냐?”

    파검이 걸왕을 바라봤다.

    지금 이래도 내가 참아야 하느냐는 그 눈빛에 걸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득, 바람에 새하얀 비듬이 흩날렸다.

    좌부원이 인상을 찡그린 채 자신의 검을 공중으로 휙 집어 던졌다. 그 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검집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젠장,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누구 마음대로.”

    “여기 내 손녀만 있는 거 아니거든? 너는 손자에 손녀까지 쌍으로 있다. 게다가 지금 거지가 중재를 한다는 건 그거 무시하고 덤비는 쪽 반대편에 붙겠다는 소리인 거 잘 알지?”

    남궁벽이 힐끔 아이들을 살폈다.

    그래, 이 정도면 체면에 영향은 없다. 남궁벽이 못이기는 척 검을 회수했다.

    * * *

    “과연 천무십칠성······. 정말 대단한 광경이었어요.”

    운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증무진인은 그에게 ‘천하 십대 고수’의 자질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 말인 즉 언젠가 운호 자신도 저런 수준에 오를 재능이 있다는 말 아닐까?

    운호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묘하게 파검 어르신이 더 ‘위험’하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그 스스로를 ‘천하제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뭔가가 느껴졌어요.”

    역시, 이 녀석은 특별하다. 아직 인간의 한계에도 온전히 도달하지 못한 주제에 그 너머를 어렴풋이 파악한다.

    운호가 그렇게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 파검이라는 녀석이야말로 지금까지 운호가 목격한 고수 가운데 유일하게 ‘천하’를 노릴만한 ‘자격’을 얻은 녀석이었으니까. 뭐, 그래봐야 고작 자격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증무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당장 닥쳐올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도 운은 좋구나. 딱 지금 상황에 포원공 이단공에 오르다니 말이다.”

    “네? 지금 상황이요?”

    증무진인이 검을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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