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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72화 (72/288)
  • 72화

    무한(3)

    오래간만에 맛보는 속세의 맛있는 음식에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담뿍 머금은 청우가 통통한 배를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과연 벽아가 입이 닳도록 자랑할만하긴 하더라. 그래봐야 우리 아이가 조금 더 나은 것 같았지만 말이야.”

    청우와는 반대로 음식이라고는 소채 몇 가지 정도나 깔짝거린 청공이 되물었다.

    “그 아이가 지금 열여섯인가?”

    “누구? 벽이 손자? 아니면 우리 아이?”

    “우리 아이.”

    “어, 얼마 전에 두 번째 기수 아이들이 새로 들어왔으니 그쯤 됐겠지.”

    “열여섯. 그리고 무공을 익힌게 햇수로 이제 칠년 째라 이거네······.”

    “왜 그러는데?”

    청공이 아주 오랜 기억을 되살렸다.

    그것은 그가 아직 청공이라 불리기 전.

    화산이 아직 지금의 위세를 떨치기 전.

    백운이라는 인물이 천하제일인이 아닌 천하십대고수의 일좌로 평가받던 바로 그 시절의 기억이었다.

    당시 화산은 지금과 같은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못했다. 지금이야 전국에서 끌어오는 막대한 수입을 통해 옥녀봉 홍매당에서 막대한 분량의 영약들을 생산하여 제자들의 수련을 보조한다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은 감히 꿈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지 정확히 기억 안 나는 조사님이 천고의 영약을 구해오셨다. 그리고 홍매당에서는 그 영약들을 활용하여 자하신단을 만들어냈다.

    “이거라면 검종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럴까?”

    “증무사조님이 황산의 마존을 참하며 자신의 무위가 초절정에 이르렀음을 알린 것이 나이 마흔입니다. 그리고 백운 사형이 예순에 같은 경지에 이르렀죠. 그러니 자하신단을 재능있는 아이가 섭취한다면 이십 년의 시간 정도는 충분히 좁힐 수 있을 겁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증무 사조가 초절정에 이르자마자 황산의 마존을 참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증무 사조가 초절정에 오른 것이 마흔인지 그 이전인지는 확실치가 않아. 확실히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청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청공의 상념을 깨트렸다.

    “또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는 거야. 왜 그러는 거냐니까?”

    “그 아이, 분명 경계에 걸쳐 있었지?”

    “어, 좀 아쉽더라. 내공만 제대로 받쳐줬다면 억지로 뛰어 오를 수 있을 만한 것 같던데. 그 내공 상태로 봤을 때 억지로 뛰어 오르기는커녕 다른 거 다 갖춰져도 내공이 발목을 잡아서 경지에 오르는 데 고생 꽤나 할 것 같은데?”

    청공이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 검종이잖아.”

    “그게 뭐?”

    “내공이랑 전혀 상관없이 경지를 개척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애당초 고작 그 수준의 내공으로 그런 경지를 밟고 있는 것도 말이 안되잖아.”

    “그런가?”

    “어쩔 생각이야?”

    “뭐를?”

    -우물우물

    언제 배를 두들겼냐는 듯 다시 고기 한 점을 크게 입에 밀어 넣은 청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능청 떨지 말고. 청허가 굳이 우리를 내려보낸 이유 너도 잘 알잖아.”

    “그거야 구대 문파랑 칠대세가의 회합인데 아직 몸이 온전치 않은 청무 사형이 내려갈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청무 사형 지금 몸도 온전치 않잖아.”

    “그것 말고.”

    “그것 말고? 글쎄다. 난 바보라서 청허가 콕 찝어 이야기한 것 말고는 딱히 숨겨진 뜻 같은 건 전혀 모르겠는데?”

    “귀찮다는 말이로군.”

    청우가 대답 대신 입안에 음식을 가득 밀어 넣었다.

    * * *

    무한은 본래 전대 왕조까지만 하더라도 무한이진(武汉二鎭)이라고 하여 무창부와 한양부. 이 두 개 지역을 일컸는 말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제국이 무창부와 한양부를 대강남북을 잇는 요지로 점찍고 북직례와 남직례에 못지않은 관심을 쏟으면서부터 도시 자체가 점점 확장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본래 번화했던 무창부와 한양부만으로는 넘쳐나는 인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인근의 깡촌이나 다름없었던 한구부까지 그 경제권에 편입되게 됐다. 무한이진(武汉二鎭)이 무한삼진(武汉三鎭)이 된 것이다.

    심지어 작금에 이르러서는 계획적으로 개발된 한구부 쪽이 오히려 치안과 교통이 더 편리한 부촌으로 자리 잡았다.

    “저기가 바로 무한이군요.”

    “동생 무한은 처음인가?”

    “말씀드렸잖습니까. 호북성 자체가 처음이라고요,”

    “흐흐흐, 그렇군. 사실 할아버지 때, 그러니까 한 오십 년 전만 하더라도 여기는 무한에 속하지 않는 깡촌이었다고 하더군.”

    깡촌?

    운호의 시야에 한구부성이 들어왔다. 그가 지금까지 봤던 도시 가운데 가장 번화한 도시는 섬서의 중심인 서안부성이었다. 성곽 밖으로까지 넓게 펼쳐진 집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곳 한구부성은 그와는 달랐다. 부성의 터 자체가 서안부보다 넓었고 무엇보다 지붕에 초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부성 안 모든 집의 지붕이 죄다 기와였다. 심지어 그 가운데 몇몇 집은 그냥 기와도 아닌 청기와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다.

    “여기가 깡촌이었다고요?”

    “그래, 믿기 힘들겠지만 그랬다고 하더라고. 그냥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 와보는 동네였달까? 뭐, 지금이야 저 북경의 부호들부터 강남의 지주들까지 별채 하나 정도씩은 다 차려둔 동네지만 말이야.”

    “그렇군요······.”

    “그나저나 일단은 여기까지로구만.”

    “네?”

    “놀라기는. 이래 봬도 이 형님이 남궁 세가의 소가주 아닌가.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집 놔두고 남의 집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남궁철이 저 멀리 살짝 언덕배기에 위치한 커다란 집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저 청기와집이 우리 별장일세. 처음 아버지가 매입할 때만 하더라도 가문에서 사치한다고 욕을, 욕을 아주 바가지로 먹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때 가격의 여덟 배까지 오른 터라 아버지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돼버린 곳이지. 짐 다 풀고 바로 놀러 오게나. 내 명문 세가의 대접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아주 제대로 보여주겠······. 아, 그러고 보니 동생은 음식에 제한이 있었지. 이거 참으로 아쉽군.”

    그 순간, 불쑥 누군가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이 늙은이는 어떠냐? 나는 음식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참고로 말하자면 양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청우 진인이었다.

    남궁철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답했다.

    “하하하, 진인의 방문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지요. 아마 저희 아버지도 크게 반기실 겁니다.”

    “흐음, 너 왜 저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진짜로 웃으면서 나와 이야기할 때는 가짜로 웃는 것이냐?”

    “네, 네?”

    청우 진인의 직설적인 이야기에 남궁철이 잠시 당황했다.

    “하하, 가짜로 웃는다니 오해이십니다. 그저 워낙에 어른이시니 긴장을 하여 그렇게 전해진 듯합니다.”

    “흥, 됐다. 그보다 벽이는 여기에 안 오나 보지?”

    “글쎄요. 할아버지야 워낙에 신룡 같은 분이시니 오실지 안 오실지 저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신룡은 무슨. 아무튼, 알겠다. 그러면 나도 짐을 풀고 이 아이와 같이 갈 테니 저녁은 고기 위주로 부탁하마.”

    “네? 저녁이라면 설마 오늘 저녁 말씀이십니까? 도착하자마자 괜찮으신겁니까?”

    “괜찮지 않을 것은 또 뭐냐. 그리고 화산밥은 영 맛이 없어. 우리가 중도 아닌데 오훈채(五葷菜)는 왜 그리 기피 하는지.”

    “하하하, 알겠습니다. 허면 혹시 청공진인님께서도 함께 오실런지요.”

    청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달리 할 일이 있다고 하더구나. 게다가 혹여 그 녀석이 함께 간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워낙에 음식을 잘 안 먹는 녀석이라 그냥 젓가락만 한 벌 올려두면 몇 젓가락 깨작거리고 말 것이니.”

    “음식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잘 준비하라고 일러두겠습니다. 그러면 저녁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청우를 향해 포권을 한 남궁철이 운호의 어깨를 한번 두들겼다.

    “동생도 꼭 오게나. 음식은 못 먹겠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좋은 것들은 많으니 말이야.”

    남궁철이 일행에서 떨어졌다.

    꽤나 귀찮은 사람이었지만 운호는 이상하게 시원하다는 느낌보다는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형님이라······.’

    화산파 일행이 도착한 곳은 남궁세가의 별장처럼 으리으리한 청기와집은 아니었다.

    태현장.

    그곳은 화산의 속가 가운데 호북과 안휘 호남에서 상행을 하는 태현상방이 소유한 거점 중 하나였다.

    태현상방의 대방이 직접 화산의 고수들을 맞이했다.

    그는 청우와 청공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화산파 일행의 사실상 대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일대 제자인 외당주 굉명과 함께 동문수학했던 속가제자이기도 했다.

    “집은 깨끗하게 치워뒀네. 혹시 몰라 하인과 하녀들도 다 집을 비운 상태이지만 원한다면 말하게. 다시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아닐세. 어차피 본산에서도 다들 직접 하던 아이들이니 그대로 하면 될걸세. 그나저나 상행을 위해 필요한 건물로 알고 있는데 고맙네.”

    “고맙기는. 내가 이렇게 장사하고 먹고사는 게 다 어디 덕분인데. 이렇게 보답할 일이 생기니 나야 좋은 일이지.”

    화산의 제자들 개개인에게 각방이 배정됐다.

    지대가 비싼 지역답게 방의 크기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고, 마당도 그리 넓지 않았다. 무공을 수련할만한 환경은 되지 못한다.

    “이거 설마 진짜 금인가?”

    하지만 방을 채운 내장재와 각종 가구들은 고급스럽기 그지없었다. 운호로서는 처음 접하는 화려함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운호는 태현장의 화려함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문화충격이라고 할 만했다.

    물론 청기와를 봤을 때부터 다른 기와와 다른 화려함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내부는 가히 그 이상이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황궁이 이럴까?

    잠시 건물을 바라보던 운호를 향해 남궁철이 날 듯이 달려왔다.

    “하하, 동생 어서 오게. 청우 진인께서는 진작 와서 식사를 시작하셨는데 조금 늦었군.”

    운호를 맞이하는 남궁철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녹색의 궁장을 걸친 미인이 함께 서 있었다.

    “아, 이쪽은 내 동생. 남궁혜.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안휘제일미. 천상일화라고. 어떤가. 내 말이 과장이 아니지?”

    “오라버니······.”

    다행스럽게도 남궁철의 동생인 남궁혜는 그의 뻔뻔함을 닮지는 않은 듯, 안휘제일이 나올 때부터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남궁철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물론 그렇다고 하던 말을 멈출 남궁철은 아니었지만.

    운호가 지금까지 봤던 여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단연 강아현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선 남궁혜의 미모는 강아현에 못지않았다.

    다만 강아현의 미모가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의 풋풋함이라면 남궁혜의 미모는 화려하게 피어오른 작약이나 모란을 연상케 했다.

    이번만큼은 남궁철의 말이 허풍이나 과장이 아니었다.

    “백운호라고 합니다.”

    “어허, 동생. 그렇게만 말하면 안 되지. 혜아야. 내가 오는 길에 이미 한 번 설명을 하기는 했다만, 그래도 두 번 들어 나쁠 것은 없으니 또 듣도록 하거라. 여기 내 동생 운호로 말할 것 같으면 소검후를 상대로 유일하게 승리했으며 이 오라비와 함께 마인을 단칼에 제압!! 강호에 소신검이라 이름을 떨치고 있다. 아 별호가 어째서 소신검인가 하면······.”

    운호와 남궁혜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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