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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68화 (68/288)

68화

검술총론(9)

계획에 없던 그 일검을 내뻗는 바로 그 순간 운호는 자신의 감각이 크게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기시감이 생겼다.

그는 분명 이와 흡사한 감각을 느꼈던 적이 있다. 통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그의 두뇌는 그것을 정확하게 잡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검과 검이 부딪히기 직전의 상황.

운호의 모든 감각과 능력이 금빛의 천뢰를 가르는 데 집중됐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철이 연철을 가르는 것처럼.

금속이 끈적한 진흙을 가르는 것처럼.

남궁철의 시선이 그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다.

분명 운호가 휘두르는 검에 맺힌 기운은 아직 강(罡)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헌데 어떻게!!

제왕검형의 검뢰는 분명 일반적인 검기보다 오히려 더 끈적하고 조밀한 특성을 갖건만 대체 어떻게 이토록 쉽게 그의 검뢰를 가르는 것일까?

남궁철이 이를 악물었다. 기해혈이 시큰할 만큼 진기를 뽑아냈다. 하지만 무용했다. 그 과정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만큼 그 결과 역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궁철의 검이 또 다시 크게 망가졌다.

거의 절반쯤 갈려나간 검을 들고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이것 참. 고작 며칠 만에 대장간을 또 찾아가게 생겼구만. 이거, 이럴 바에는 애초에 검을 서너 개 사 올 걸 그랬구만.”

제 자리에 선 운호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식을 통해 부족한 기운을 보충하고 행공을 통해 흔들리는 진기를 안정시켰다. 사실 무리한 일격이었다. 본래라면 세 호흡 정도 더 기운을 축적하고 휘둘러야 하는 검이었다. 그랬더라면 아마 저 검을 완전히 잘라내지 않았을까?

“뭐, 그래도 이전에 사용하던 검이 훨씬 좋은 검이었음을 생각해본다면 결과가 같다는 점은 상당히 긍정적이군.”

가볍게 운기를 끝낸 운호가 그의 말에 퉁명스럽게 답했다.

“긍정적인 부분은 결과가 아니라 소협의 사고방식인 것 같군요.”

“하하하, 그런가? 사실 이런 긍정적인 삶의 태도 또한 나의 커다란 장점 중 하나라고 하더군.”

그 뻔뻔함에 운호가 혀를 내둘렀다.

“동생, 그보다 내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이번 비무에 관하여 문답을 나눠보는 것이 어떤가?”

“궁금한 점이요?”

“그래, 솔직히 동생도 나를 상대하면서 곤란한 부분이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좀 있지 않겠나. 서로서로 궁금한 부분을 묻고 답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무론과 무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 비전에 속하는 방법 같은 부분은 답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말이야.”

운호가 잠시 고민했다.

괜찮을까?

지금까지 접했던 남궁철이라는 인간을 떠올렸다. 과다한 자신감과 자기 자랑. 무엇보다 그중 대부분이 진실이기에 더더욱 재수 없는 유형의 인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신의가 있으며 솔직하다.

“좋습니다. 대신 질문은 저 먼저.”

“허어, 동생도 나에게 궁금한 것이 있긴 있었나 보군. 하긴 아무리 자네가 좀 이득을 봤다고 하더라도 남궁의 검은 속가 제일의 검. 나 역시 천하제일의 기재이며 남궁 세가는 천하제일······. 으으음, 안휘성을 지배하는 가문 아니던가. 당연히 궁금한 점이 있을 수밖에. 좋네. 얼마든지 물어보게. 가문의 비밀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대답을 해 줄 터이니. 내 특별히 동생인 혜아에 관한 질문도 받겠네. 하하, 그래, 동생에게 무엇을 숨기겠나. 내 동복동생이 바로 그 안휘제일미 천상일화 남궁혜라네. 물론 나를 봐서 알겠지만, 그 미모가 실로 출중하여 안휘제일미라는 칭호가 과장이 아니라네. 하하하하하.”

정신이 사나울 만큼 빠르게 투다다 쏘아내는 남궁철의 말을 대부분 한 귀로 흘려가며 진정으로 궁금하던 점을 물었다.

“그 기술, 지금까지 그 기술을 파훼했던 무공들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남궁철의 웃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과연······. 절묘한 질문이었다.

사실 이 제안은 제안 자체가 남궁철에게 유리한 제안이었다. 운호의 무공은 그 무공 자체의 특성이라기보다는 그 깨달음이 경지에 도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남궁철의 무공은 제왕진결의 진기와 제왕검형의 초식이 만나 일으키는 비전의 상승작용이다. 그 비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운호의 질문은 아주 절묘하게 그것을 비껴나갔다.

“과연, 역시 내 동생이로군. 훌륭해.”

남궁철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그래, 정답이다.

남궁철이 능글맞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를 어쩐다······. 참으로 답하기 힘든 질문이로구만. 그 긴 역사 속의 고수의 무공들을 모두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동생에게 필요한 답을 들려주지. 소림의 세수(洗隨).“

소림.

어떻게 생각하면 단순히 무림의 태산북두를 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남궁철의 대답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역근과 세수로 대표되는 소림에서도 콕 집어 세수(洗隨)다.

“역시 내공이군요. 그 기묘한 감각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웅혼한 내공······.”

“자, 그러면 이제 내 차례로군. 동생은 나의 검에서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꼈는가.”

“네?”

남궁철이 운호의 ‘의견’을 물어왔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

그가 다시 물었다.

“물론 나의 검은 완벽에 가깝지. 하지만 그래도 나에 못지 않은 검재를 지닌 동생이라면 그 완벽에서 살짝 비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느꼈을 것 아닌가. 동생이 보기에 나의 검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은 어디였나?”

운호가 지난 두 번의 비무에서 경험한 남궁철의 검을 떠올렸다.

진퇴가 능란했으며 상대를 압박하는 기이한 공능이 어려웠다. 남궁철이 자신의 일검을 경험하겠다 나섰기에 간신히 이길 수 있었다. 과연 거기서 가장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을까?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균형이라고? 그럴 리가. 그것이야 말로 내 검의 가장 큰 장점이건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끄응······. 좋네. 동생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동생 차례일세.”

운호가 되물었다.

“단순히 내공 말고 그것을 파훼했던 일이 있었습니까?”

“글쎄, 내가 아는 한에는······. 아, 할아버지께서 아직 젊던 시절, 절강성의 파검이 할아버지와 동수를 이뤘었다고 들었네. 파검이라면 천무십칠성 가운데 내공이 빈약하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니 자네의 질문에 답이 될 것 같군.”

“파검······.”

파검이라면 천무십칠성의 일좌로 기기묘묘한 초식들로 환검의 극치를 이뤘다는 절강성의 해적왕이다.

이상했다.

운호가 파악한 제왕검형이라면 환검과 같은 섬세한 검예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파검이 젊은 시절 검왕과 동수를 이뤘다고?

“자 그러면 이제 또 내 차례일세. 동생이 생각하기에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이 인간이?

분명 운호의 첫 번째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했을 텐데 이번에도 화산의 검이 아닌 운호의 의견을 물어왔다.

“괜찮겠습니까?”

“당연하네. 물론 첫 번째 답변은 납득하기 힘들지만, 동생의 생각이 있다고 믿네. 나의 탁월한 안목으로 봤을 때 동생이 근거 없이 대충 대답할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 아니 그런가?”

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운호 자신을 칭찬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화자찬인지. 하여간 어떤 의미에서 정말 초지일관 대단한 인간이다.

“좋습니다. 말씀드리죠. 제가 보기엔 소협의 검에는 파탄이 없습니다. 웅혼한 진기와 능숙한 활용. 속도, 변화, 위력 어디 하나 부족한 곳 없는 초식의 운용과 적절한 상황 판단까지 말이죠.”

“하하, 뭐 그런 당연한 칭찬을······. 내 부끄럽군. 하지만 듣기는 좋으니 조금 더 해도 괜찮네.”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칭찬이 아닙니다. 소협의 검에 파탄이 없음은 인위적인 조정이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더 잘하는 것이 있고 못 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팔방미인이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소협의 검은 그렇지 않죠. ‘균형’ 물론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소협의 검은 가장 부족한 것에 다른 것들을 억지로 끌어 내려 맞춘 균형 같더군요. 물론 그럼에도 소협의 검이 저를 압도하는 것은 그 가장 부족한 것의 수준이 대단히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협의 검이 저를 이길 수 없는 이유 역시 소협의 단점으로 저의 강점을 이기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궁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해결책은 두 가지입니다. 지금이라도 그 인위적인 조정을 포기하시든지······.”

“포기하든지?”

“그냥 그대로 계속 수련하시는 겁니다.”

“그냥 이대로 계속 수련하라고?”

운호가 남궁철의 질문에 오래전, 증무 진인이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때론 한계에 도달한 양이 결국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법이죠.”

“한계에 도달한 양이 결국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운호의 말이 마치 벼락처럼 남궁철의 뇌리를 두들겼다.

한계에 도달한 양?

질적 변화?

그는 줄곧 절정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고민해왔다. 하지만 절정의 경지를 밟은 고수도, 그것을 넘어 인간의 한계 너머로 이른 초절정의 고수도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운호의 이야기는 그에게 아주 중요한 답변이었다.

“그렇군. 그랬어.”

물론 옛날 이야기에서처럼 그 자리에서 환골탈태를 하며 절정에 이르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라.

본래 깨달음은 벼락처럼 찾아오지만, 그 깨달음을 몸에 익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까.

한편, 운호 역시 남궁철에게 조언을 해주며 본능적으로 지금 이 문장이 매우 중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마간산으로 지나갔던 광경을 되새겨야 한다는 조언이.

그의 사부에게서 느끼던 기묘한 감각이.

예식용 검법에 불과한 광음검이 화산의 팔대 검술로 기록된 것이.

젊은 시절 절강성의 해적왕이 남궁의 검왕과 동수를 이뤘다는 이야기가.

그리고 한계에 도달한 양은 결국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조언까지도.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무언가 강력한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운호의 두뇌가 당시 증무진인의 이야기를 또렷하게 되살렸다.

처음 마인과 만났을 당시, 운호는 마치 신이 된 것 같은 어마어마한 내공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증무진인은 그것이 몽원경의 공능이라고 말했다.

그 내공의 양은 포원공 일단공의 끄트머리에 도달한 지금도 감히 측량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이었다. 하지만 증무진인은 그 신이 된 것 같은 막대한 내공을 고작 ‘한 줌’이라 표현했었다.

-아니, 그것도 양으로 치자면 그리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줌? 명심해라.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닌 질이다. 물론 한계에 도달한 양은 결국 질적 변화를 일으키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질적인 상승을 노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 순간, 운호는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운호가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소협, 그 기묘한 기술, 또 한 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응? 갑자기? 하지만 내 검이 이 모양인데?”

“검은 부딪히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그 감각을 느끼게 해주시는 걸로 충분합니다.”

요 녀석. 뭔가 깨달은 거라도 있는 건가?

남궁철이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아쉽군. 이 ‘소협’은 조금 전까지 너무 전력을 다한 탓에 여력이 없어. 아무래도 무리인 듯하이. 혹시 절친한 동생의 부탁을 들어주는 ‘형님’이라면 또 모를까.”

운호가 웃었다.

그래, 밉살도 이 정도까지 오면 미운정이다.

“네, 형님. 이 동생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남궁철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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