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검술총론(8)
무리가 생기면 서열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은 이번 기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력, 집안, 외모.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 ‘서열’이라는 것을 결정지었다.
그리고 그들의 그 ‘서열’이라는 것에서 두 아이는 완벽하게 갈렸다.
사실 두 아이의 행동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별히 누군가와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성실히 수련에 참가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한 아이는 그 뛰어난 성취와 배경에도 불구하고 거들먹거리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아이가 됐고 또 다른 한 아이는 비루한 성취와 배경에도 불구하고 잰척하며 어른과 선배들에게 알랑방귀를 뀌는 아이가 됐다.
눈에 보이는 괴롭힘이나 차별은 없었다.
그저 예컨대
“자, 그러면 오늘은 짝을 지어서 수련을 하도록 하자.”
아무도 백수한과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아이조차도 그저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를 찾았다.
운호가 그것을 인지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흐음······.’
저 아이는 이상하게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자질도 부족했고 배경 역시 좋지 않다. 아직 노골적인 괴롭힘이나 자기 일을 미루는 것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조만간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당시 조교나 교관들의 시선은 항상 뛰어난 아이에게 향해 있었다. 만약 그때 운호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있었더라면 아마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운호가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뭐, 함께 해줄 아이가 없다면 내가 상대해주면 그만이지.
남궁철이 귀신처럼 운호의 마음을 눈치챘다.
“어이, 거기.”
“네? 저, 저요?”
“그래, 거기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 더 커서 눈에 잘 띄는 너. 이름이 그러니까 장호?”
“네······, 넵!!”
남궁철이 한 걸음 먼저 움직여 북적이는 아이들의 중심에 있던 장호를 불러들였다.
“너는 오늘 저기 저 아이랑 짝이다.”
“네? 하지만······.”
특별히 무리를 짓는데 관심을 갖는 성격은 아니지만, 무공에 관한 욕심 만큼은 진짜다. 이왕이면 수련에 가장 도움이 되는 아이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백수한은 그리 좋은 상대가 아니다. 녀석은 이 수업에서 가장 부진한 아이 중 하나였으니까.
남궁철이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여기서 누구랑 검을 나눠보느냐가 중요할 것 같으냐? 아니면 내가 눈길을 한 번 더 주느냐 덜 주느냐가 중요할 것 같으냐? 내가 보기에는 후자인 듯한데. 네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구나.’
다시 말 하지만 남궁철은 절정의 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몸에서 풍기는 기세만큼은 절정 고수에 필적한다. 물론 상대방의 기세를 읽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수준이 됐을 때나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을 읽을 수 없다고 해도 남궁철만 한 고수가 풍기는 분위기란 범인을 압도한다.
장호가 재빨리 백수한 쪽으로 달려갔다.
남궁철이 운호를 바라보며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빵긋 웃었다.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무슨 짓이기는. 동생이 고마워할 짓이지. 동생, 내가 비슷한 일을 경험해봐서 알고 있네만, 지금 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어른들의 관심과 보살핌, 배려가 아니라네. 그보다는 또래 집단에 섞일 수 있는 작은 계기지.”
“태어나면서부터 촉금을 두르고 태어나신 분이 알면 뭘 얼마나 아신다고.”
운호의 투덜거림에 남궁철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그래, 나는 촉금을 두르고 태어났지. 하지만 때론 그렇기에 아는 부분도 있다네. 자네와 같은 종류의 천재들은 아마 절대로 모를 것이야. 아마 자네가 저 아이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 높은 자존감으로 다른 모두를 내려다봤겠지. 하지만 보통 사람은 다르다네. 암, 다르지. 다르고 말고. 아, 물론 그렇다고 내가 보통 사람이라는 소리는 아니고. 나는 천재를 초월한 일종의 초천재 아니겠나.”
남궁철이 언제나처럼 실없는 소리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운호가 생각했다.
내가 과연 그랬던가? 굳이 따져보자면 딱히 내려다본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본산에 남을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향해 항상 전력으로 달려갔을 뿐이다.
이준형이나 장광, 하재철 같은 녀석들에게 화가 났던 부분 역시 그 전력으로 달려가려는 자신을 각종 이유로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에게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한 자원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에게서 그 소중한 자원을 침탈해가는 악당들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수업에나 집중하세나. 아이들이 저리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으, 저런 눈망울들이 우리 남궁세가가 아닌 화산의 제자라는 점은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이왕 남궁의 검을 보여주기로 했으니 제대로 된 놈을 보여줘야겠지.”
남궁철이 가볍게 검을 뽑아들었다.
화산에 검을 납품하는 회음철방의 강철검이 반짝였다. 그것은 묘하게 백운호 자신의 검보다 좋아 보이는 검이었다.
* * *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그보다 어서 가서 저녁이나 먹으세. 물론 자네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자네의 그 맛없어 보이는, 아니 맛없는 것이 확실한 벽곡단을 먹게나. 난 저기 식당에서 그리 썩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을 먹고 갈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금 뒤 그곳에서 뵙도록 하지요.”
수업이 끝나고 언제나와 똑같이 홀로 모옥에 돌아와 벽곡단을 씹어 삼켰다. 그리고 남궁철과의 비무에 대비하여 가볍게 운기조식으로 몸을 가다듬었다.
일단공에 불과한 포원공의 성취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포원공으로 예민해진 감각에 저 멀리 강렬한 기운이 잡혔다.
스스로를 감출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하는 기운. 남궁철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뭐 저런 것이 다 있나 생각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근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부대끼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언가를 숨길 때는 아무도 못 보게 어둠 속에 숨기는 것 말고 저렇게 모두의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밝은 곳 사이에 두는 것도 유용한 방법 중 한 가지라고.
“오늘은 조금 더 어려울 걸세. 내가 자네에게 조금 더 적응했거든.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천재를 상대한다는 것은 항상 그런 어려움이 따르는 법 아니겠나.”
“오십쇼.”
남궁철의 말처럼 천재를 상대한다는 것은 항상 그런 어려움이 따랐다.
물론 거기서 천재는 남궁철이 아닌 운호 쪽이었지만.
제왕검형은 여전히 운호를 압박했다.
정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운호의 놀라운 적응력은 정답에 근접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남궁철의 기운이 운호를 압박하고, 풀어놓고를 반복하며 그 반응속도를 흐트러트렸다.
운호가 생각할 때 여기 가장 좋은 대응은 압도적인 진기로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 아래 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운호의 현재 수준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운호는 그냥 그 모든 것을 계산했다.
평소 운호는 운동하는 힘의 크기와 궤도. 그리고 그 축까지. 자신이 인지 가능한 범위를 모조리 계산하여 마치 미래를 예지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검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지금.
운호는 거기에 제왕검형이라는 변수를 하나 더 추가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의 몸이, 사람이 들고 있는 검이 움직이는 형태를 보고 그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 대응에 따라 나올 반응을 예견하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진기의 움직임을 추측하는 것은 전혀 다른 범위였으니까.
하지만 어쨌거나 그 제왕검형이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은 남궁철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합리적으로, 이쯤에서 조여주고 풀어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지점들을 예측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관찰 인지능력이었다.
제왕의 검이 금빛 검뢰를 두르고 운호의 몸을 공략했다.
남궁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약 삼 할? 그렇기에 여전히 유리한 쪽은 남궁철 자신이다.
하지만 이전의 비무와 비교하면 운호는 명확히 한 발 더 제왕검형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대체 어떻게!? 이건 벌써 자신의 몸을 온전히 자신의 의지 아래 넣었다는 뜻일까? 설마, 그럴 리가. 아니다. 불가능하다. 그것은 재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어떤 천재라도 넘을 수 없는 세월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운호의 검이 차근차근 기회를 만들어갔다.
운호는 이전의 비무에서 신검합일의 상태에서 심기체를 합일시켜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남궁철에게 승리를 거뒀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반쪽짜리 승리다. 그 당시 남궁철은 운호에게 그의 전력을 다한 검을 펼칠 기회를 제공했다. 운호가 스스로 만든 기회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심지어 그 일검에 굳이 정면으로 맞부딪혔었다.
쉽게 말하자면 운호의 그 검은 준비가 아주 오래 걸리는 한 발의 포탄과도 같다.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하지만, 그것이 상대를 무조건 맞춘다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 자체가 필요하다. 남궁철이라면 그 틈을 노려 운호를 공략할 수도, 그리고 아예 그 일검을 회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으며 차근차근 설계를 쌓아갔다. 납매검의 엄밀한 논리와 자운검으로 쌓아 올린 기교가 미시적인 손해를 최소화했으며, 매농검의 기이한 효율이 거시적인 흐름을 꿰뚫었다.
‘응?’
팔십칠 합.
공방에서 미세한 이득을 보는 와중에도 남궁철은 자신이 조금씩 늪에 빠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종화나 이준형처럼 전설적인 체질을 타고 난 사람은 아니었다. 또한 백운호처럼 전 중원을 오시할만한 압도적인 오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안휘성 전체에서 손에 꼽힐만한 재능을 타고 태어났으며, 중원에 손꼽히는 세력의 지원을 한 몸에 업은 채 십 세에 무공에 입문했던 백운호보다 무려 십 년이나 긴 시간을 수학했다.
운호가 설계한 마지막 일 검까지 세 걸음.
남궁철이 마침내 그것을 눈치챘다.
비등비등한 실력이라면 아마 그 방향을 틀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철에게는 운호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남궁철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재밌다.
어쩌면 이 녀석의 장점은 그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검이 아닌 거기까지 이어가는 이 일련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굳이 운호와 비무를 하는 까닭이 저 일검을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알아서 최고의 수준으로 그것을 펼치겠다는 데 방해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동생. 내 어울려주마.’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또래 중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쌓아 올린 두터운 진기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운호의 압도적인 인지능력이 상황을 파악했다.
‘눈치챘구나!!’
조금 미흡하다.
찰나를 다시 찰나로 나누어 그 십분지 일.
본능의 영역에서 판단했다. 시간을 더 주었을 때 이 미흡함은 메워질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어떠할 것인가? 지금인가? 아니면 최초의 계획인가?
답은 간단했다.
미흡하더라도 바로 지금이다!!
운호의 수족과 같은 검이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