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검술총론(7)
광음검은 기본적으로 매우 화려했다.
완급의 조절 역시 대단했다. 순간적으로 멈춘 것처럼 만검(慢劍)을 펼치다가 전신의 탄력을 끌어모아 쾌검(快檢)으로 전환하는데, 심지어 쾌검의 중간에서 잠시 동작을 멈췄다 다시 쏘아지는 것을 요구한다.
뭐, 피하려는 상대를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는 더 좋은 수법이 많다. 무엇보다 상대가 속지 않았을 경우 시전자에게 돌아올 위험이 너무 치명적이다.
“광음검이라니. 참으로 적절하구나.”
증무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호가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반복된 형태로 봤을 때, 이제 증무진인이 광음검을 사용하는 법을 보여줄 차례였다.
“검을 들어라.”
“광음검입니까?”
“네 놈이 이제 세상을 아주 날로 먹으려 드는구나.”
“세상이 빡빡하게 힘드니 이렇게 꿈에서라도 날로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운호의 뻔뻔한 대답에 증무진인이 크게 웃었다.
“이건 어떻게 봐도 예식용 검술에 불과합니다. 설마 요즘 기초를 크게 강조하시더니, 광음검이 적절하다는 말은 이제 한 번 정도 쉬어갈 때가 됐다. 뭐 그런 말씀이신 건 아니시겠죠?”
“이놈이 나를 뭐로 보고? 나는 화산에 쓸데없는 것은 남겨두지 않았다.”
쓸데없는 것은 남겨두지 않았다?
그 순간, 증무진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런······, 곤란하군.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 할 것 같구나.”
“네?”
* * *
증무 진인의 검이 아닌 이런 온건한 방식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3년 전, 몽원경에 발을 디딘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몸과 머리가 평소보다 훨씬 가벼웠다. 하지만 그렇게 가벼운 몸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잠들기 직전, 증무진인을 만나면 모든 궁금증과 문제들이 해소될 것으로 생각했건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더 궁금한 것들만 잔뜩 생겨났다.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나를 몽원경에서 쫓아낸 것일까? 분명 나를 내보내는 증무진인의 표정은 매우 곤란해 보였다. 그것은 이 ‘추방’이 그분의 의지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쓸데없는 것은 남겨두지 않았다는 말.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실 평소부터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다.
납매검, 매농검, 자운검.
각각의 검술이 품고 있는 철학과 함의. 그리고 그 의도까지 매우 다르다. 또한, 그것을 펼쳐내는 방식 역시 제각각이다.
당연한 일이다.
납매검도 매농검도 자운검도 모두 같은 학통에서 나오지도 않은 제각기 다른 도인들이 창안한 검술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화산파는 관윤자 윤희를 시조로 한다. 주나라 시절의 대부로 노자에게 도덕경을 전수했다 전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 화산의 형태가 갖춰진 것은 송나라 시절 태조 조광윤과의 일화로 유명한 신선 진단노조(陳摶老祖) 진희이 선생 때부터였다. 북송 시절에 이미 도를 깨우쳤던 그는 화산을 방문했던 송태조 조광윤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내리는데, 조광윤은 이에 감사를 표하며 진단노조에게 화산파라는 현판과 함께 영구적인 면세를 허가했다. 당시 화산에 난립하던 스물세 개의 도관들은 고작 삼십 년 만에 모두 진단노조의 화산파 아래 복속됐다.
물론 근 오백 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화산은 하나로 뭉쳐졌지만, 여전히 차별적인 무공들은 존재했다. 당장 옥녀봉 홍매당만 하더라도 당시 옥녀문이라는 이름의 독립적인 도관이었고 그때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렇듯 백운호가 익힌 세 가지 검술이 크게 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또 그렇게 마냥 다르다고만 보기에 납매검과 매농검 자운검에는 묘한 공통점이 존재했다.
그것은 그 무공들이 매우 뚜렷하게 ‘무언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얼핏 생각하면 합리성과 역설적인 효율성, 그리고 극대화된 기교는 상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이질적이다. 검술 하나하나가 모두 검술의 어느 극단에 치우쳐있다.
사실 처음에는 그것을 이질적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애당초 운호가 익힌 검술이 그것들 뿐이었으니 모든 검술이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남의 순양과 태을은 그렇지 않았다. 남궁의 제왕 역시 그 뚜렷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함의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그 검술 자체로 완성에 이르는 길들이었다.
반면 납매검과 매농검 자운검은 달랐다. 이 검술들은 분명 상승의 경지를 가리키지만 동시에 ‘완성’에 이르는 ‘무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화산의 무공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당장 자하기공이나 그것을 기반으로 펼쳐내는 자운장, 오룡권. 옥녀봉에서 전수되는 옥녀진결과 공선무극도 등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리고 사부의 말에 따르자면 본래 검종의 무공은 기종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화산의 검술은 하나 같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 이건 어쩌면 부족하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것은 애초에 납매, 매농, 자운이라는 검술 자체가 완성이 아닌 다른 ‘목적’ 아래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도구’ 같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화산에 쓸데없는 것은 남겨두지 않았다.’라는 증무진인의 이야기까지.
어쩌면 화산의 모든 검술은 증무 진인의 어떠한 ‘의도’ 아래 남길 것은 남기고, 정리할 것은 정리된 상태가 아닐까?
운호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그리하여 화산의 모든 검술에 증무진인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이 예식용 검술로 보이는 광음검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이 된다.
운호가 시간을 내서 비급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 * *
“오, 동생!! 드디어 오늘이군.”
“남궁 소협······. 저희 오늘 저녁에 보기로 하지 않았나요?”
“하하하, 그야 그랬었지.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정이 들려면 이렇게 좀 자주 얼굴도 보고, 밥도 같이 먹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아쉽게도 동생은 밥을 먹지 않으니 얼굴이라도 자주 보는 수밖에. 그나저나 동생, 회음현의 그 대장간 참으로 괜찮은 곳이더군. 검의 품질이 아주 훌륭해. 비록 내가 본래 쓰던 검만큼은 아니지만 기대한 것 이상이지 뭔가.”
“그것참 다행이로군요.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이제 볼일 좀 보시다가 저녁에 다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요.”
남궁철이 넉살 좋게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하, 동생, 우리 사이에 뭐 그리 내외를 하려고 하는가. 내 섭섭해지려고 그러네. 동생 일이 곧 내 일 아니던가. 걱정하지 말게나. 내 기꺼이 동생의 일을 도와줄터이니.”
“사양하겠습니다.”
“사양은 사양일세.”
“사문의 일입니다.”
“검술 수업의 조교 일이면 걱정하지 말게나. 안 그래도 내 장문인과 자네 사부님께 미리 다 허락을 받아뒀다네.”
남궁철의 어이없는 이야기에 운호가 되물었다.
“네? 아니, 대체 언제?”
“하하하,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리 좋은 날에 동생과 내가 함께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아니 그런가? 사실 내가 내 자랑 같아서 말은 하지 않았네만 이래 봬도 속가제일검문의 후계자 아니던가. 강호의 뭇 여인들이 나를 가리켜 옥면검룡이라 부르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네.”
“글쎄요. 옥면검룡이라니 금시초문입니다만, 소협의 별호는 안수해원아닙니까?”
“하하하, 그거야 예전에 공부할 때 별호일 뿐이고. 요즘 우리 동네에서는 다 그렇게 부른다네. 아무래도 아직 섬서까지는 소문이 덜 퍼진 모양이로군. 그나저나 어이쿠. 해를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본산으로 가세나. 자칫 잘못하다가는 조교들이 수업에 늦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
* * *
운호에게 조언을 들은 이후, 백수한은 평소보다 훨씬 공을 들여 자소공을 수련했다.
사실 자소공은 그에게 생소한 무공은 아니었다. 방계라고는 해도 그 역시 무가의 자식이다. 화산 계통의 속가라면 누구나 그렇듯 네 살 때 그가 처음 무공에 입문할 때 익힌 것이 자소공이다.
그 기간만 벌써 육 년. 그의 나이 고작 열 살이다. 백수한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소공을 수련해왔다. 그렇기에 수한은 자소공을 어렵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운호의 조언대로 하나하나 더 신경을 써서 최선을 다해 동작을 수행했을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이것을 대충해왔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검술총론 수업을 듣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을 때, 연무장에는 운호 외에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수염을 짧게 기른 훤칠한 미남이었다.
어른이다.
쉽게 보기 힘든 질 좋은 비단옷과 질끈 맨 금빛의 영웅건이 참으로 멋들어졌다.
“오, 어서 오너라. 오늘 수업에 특별조교를 맡은 남궁철이라고 한다. 뭐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남궁세가의 후계자다. 본래 이 수업에 조교를 담당하는 운호와는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지.”
“호형은 아니고 일방적으로 호제를 하는 관계다.”
운호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아······, 안녕하세요.”
수한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사이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씩 연무장에 도착했다. 그럴 때마다 남궁철은 그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수한은 남궁철의 자랑거리를 오십 가지 정도 알게 됐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그는 천하의 쾌남아이며 검술의 천재이고 원시, 부시, 현시. 심지어 향시까지 장원으로 급제한 석학인 동시에 안휘성 모든 여자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풍류남이었으며 각종 잡기에 능한 만능인이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그의 이야기가 다 사실이라는 전제일 때다. 수한이 느끼기에 저 남궁세가의 후계자라는 남자는 천하에 다시 없을 수다쟁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조금 달랐다.
특히 안휘성에서 온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남궁세가는 과장을 조금 보태 안휘성을 영지로 삼고 있는 왕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휘성 물류의 삼할이 남궁세가 소속의 상단을 통해 거래된다. 또한, 여주부 합비현을 지나려면 남궁세가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을 만큼 광대한 장원을 소유한 대지주이기도 하다.
물론 화산파는 남궁세가에 뒤지지 않는 거대세력이다. 아니, 오히려 남궁세가를 압도하는 거대세력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것은 저 거대한 세력을 물려받을 후계자라는 이야기다. 화산의 평제자 하나와는 그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물론 종남의 소검후를 꺾었다는 소문. 마인을 베었다는 소문. 그리하여 소신검이라고 불린다는 소문까지. 자신들에게 검을 가르치는 저 사형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을 들은 것과 저렇게 한 성을 좌우할 수 있는 대단한 인물과 스스럼없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또 달랐다.
운호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경외감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