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63화 (63/288)

63화

검술총론(4)

납매검.

가장 효율적인 호신의 초식이 제왕검형의 일격을 막아냈다.

묵직하다.

검에 실린 경력을 해소하기 위해 운호가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몸의 반응이 미세하게 늦다.

과한 긴장 때문이다.

분명 긴장은 필요한 작용이다. 반사 속도를 빠르게 하고 복잡한 생각을 일원화하여 의사결정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적당한 수준의 긴장일 때 이야기다.

과거 제왕의 검을 처음 창안했던 남궁의 고수는 위험한 상대를 만났을 때 긴장하는 인간의 생리 자체를 연구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러한 제왕의 검을 완성했다.

남궁철의 검은 화려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투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제왕심결의 공능이 남궁가의 전부였다면 그들에게 제왕이라는 이름은 붙었을지언정 속가제일검이라는 이름은 붙지 않았을 것이다.

간결하며 묵직했다.

일격에 살을 가르고 뼈를 부순다.

어차피 무림인들은 전장의 장수들처럼 두꺼운 갑주도 걸치지 않았는데 이런 묵직한 힘이 무슨 필요인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있을지언정 경지에 이른 무림인의 방어력은 두꺼운 갑주에 준한다. 아니, 아무리 두꺼운 갑주를 걸친다고 해도 그 내부로 전해지는 충격량 자체는 어쩔 수 없음을 고려한다면 진기로 뼈와 근육 자체가 강화된 무인의 방어력은 갑주 그 이상이다.

남궁철의 검이 마치 철퇴처럼 날아들었다.

-쾅!!

공격을 막아낸 몸이 흔들렸다. 충격을 흡수하는 관절이, 근육이 욱씬했다. 때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운호의 검이 남궁철을 위협했다.

천승보(天乘步)

남궁철의 몸이 앞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운호가 주력으로 익힌 보신경인 부운약표와는 크게 달랐다. 부운약표의 묘리가 구름처럼 떠다니며, 질풍과 같이 뛰어오르는 것에 있다면 남궁철이 사용하는 천승보의 묘리는 그 진퇴의 자유로움에 있다.

그것은 운호의 예측을 벗어나는 움직임이었다.

운동하는 힘의 크기와 궤도. 그리고 그 축까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운동의 법칙을 완벽하게 벗어나는 동작이었다.

상승의 무공이었다.

운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 빈틈을 남궁철의 검이 파고들었다. 여전히 제왕의 기운은 묵직하게 운호를 압박해왔다.

찰나를 다시 찰나로 쪼갠 시간.

운호는 자신의 반응이 평소보다 그 정도 늦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렇기에 움직였다. 정확히 그만큼 더 빠르게.

지금껏 남궁의 무공을 상대한 이 가운데 운호와 같은 방식을 선택한 이는 없었다. 당연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런 미친 짓은 할 수 없었고, 이런 미친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으니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초적인 전사경의 원리에 따라 남궁철의 검이 전해오는 경력이 분산 된다. 기초적이라고는 하지만 전사경은 매우 고급의 기예다. 그것을 자신의 동작을 강제로 빠르게 수행하는 가운데 저토록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그야말로 백운호이기에 가능한 신기다.

운호와 검을 맞댄 남궁철이 이상함을 느꼈다.

정확히 운호가 무슨 짓을 하는지를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운호가 하는 짓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 밖의 행동이었으니까. 하지만 제왕검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가 강제로 폭증시키던 자신의 기세를 제어했다.

운호의 동작이 또 한 번 어긋났다.

-쾅!!

운호의 몸이 또 한 번 흔들렸다. 물론 운호 역시 곧바로 다시 거기에 자신의 반응을 맞춰냈다. 하지만 공격의 우선권을 쥔 쪽은 남궁철이었다.

그렇게 남궁철에게 유리한 공방이 제법 길게 이어졌다.

-쾅!!

거세게 검을 휘두른 남궁철이 스스로 서너 걸음 크게 뒤로 물러나 불만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봐, 동생 왜 그걸 사용하지 않는 건가. 설마 사용할 틈이 없었다고 말 할 생각은 아니겠지?”

정확하게 무엇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남궁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뻔했다.

신검합일에 이은 검기의 사용.

운호가 가진 비장의 수다.

“생사결이 아닌 비무니까요.”

“뭐야, 설마 내가 다칠까봐 그러는 건가? 허허, 이것 참. 이 형을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에 감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형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는구만.”

운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그저 조금 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나의 검을 상대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뭐 그런 이야기로구만. 보통이라면 너무 건방지다고 이야기해주겠지만, 이리 잘 막아내는 걸 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없군. 그래, 그래서 뭘 좀 얻었는가?”

“아뇨, 유감스럽게도······.”

“그렇군.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말게나. 어디 깨달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찾아온다던가?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 고수 아닌 자가 대체 어디 있겠나. 범인이라면 평생에 한 번 얻기 힘든 것이 그런 깨달음 아니던가. 물론 나와 같은 천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지.”

평생에 한 번이라······.

남궁철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이 형님께 깨달음에 도전해볼 기회를 주지 않겠나?”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남궁철이 대답 대신 자신의 기세를 다시 한 번 크게 피워올렸다.

마인의 일격을 막아낼 때의 그 기세였다.

순간적으로 운호의 소우주가 확장됐다.

손에 쥔 검이 자기 몸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나’의 범위가 손에 쥔 ‘검’까지 확장된 것이다.

잊지 않았다. 중심이 되는 것은 ‘나’다. ‘검’이라는 객체가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주체가 검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 백운호라는 인간이 쌓아 올린 진기와 신체와 마음이 합일했다.

‘온다!!’

마인의 몸을 일검에 양단했던 바로 그 공격이다.

남궁철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일검이야말로 ‘해답’이라는 것을.

남궁철은 지금 절정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앞두고 있었다. 이것은 남궁세가 칠백년 역사에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단한 속도였다.

“네 재능이라면 부단히 수련하면 금방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어른들이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절정이라는 장벽을 보기 전, 크고 작은 벽들을 마주치고 그것을 넘어서는 연습을 하며 올라온다.

하지만 남궁철은 달랐다. 그는 천재였다. 그의 별호에 붙은 안수해원(案首解元)이라는 말이 증명하듯 그는 지금의 경지까지 무공이고 학문이고 단 한 번도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처음 느껴보는 이 절정이라는 높은 장벽이 너무나도 막막했다.

그렇기에 저것이었다.

남궁철이 느끼기에 저 어린 동생은 자신과 흡사했다. 저 번뜩이는 재능은 분명 이질적이다. 또한, 저 검리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 절정에 닿아있다.

그렇기에 해답이다.

완전한 절정은 아니지만, 절정에 닿아있는 검리. 저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절정이라는 장벽을 넘어서는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남궁철의 검을 둘러싼 황금빛 천뢰가 더 선명하게 타올랐다.

어마어마한 힘의 충돌.

두 사람 모두 아직 십 대에 불과했다. 서른아홉과 서른여섯은 큰 차이가 없겠지만, 열아홉과 열여섯은 차이가 크다. 힘의 총량 자체는 남궁철 쪽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밀도가 다르다. 마치 잘 정련된 강철이 무른 연철을 가르는 것처럼. 운호의 의지가 남궁 세가, 제왕의 천뢰를 갈랐다.

-쿠과광!!

크게 여덟 걸음.

남궁철의 얼굴에 낭패가 가득했다. 기혈과 기맥이 얼얼했다. 조부께서 특별히 선물했던 명검도 수리가 불가능할 만큼 엉망진창으로 망가졌다.

그나마 손에 쥔 것이 운남산 강철로 만든 명검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이상으로 크게 낭패를 봤겠지.

-후우

운호가 크게 탁기 가득한 날숨을 내뱉었다.

“어떠십니까? 뭔가 좀 깨달으신 게 있으십니까?”

남궁철이 제 자리에서 허리를 쭉 폈다. 아무렇지 않은 양 옷을 몇 번 툭툭 털고 검집에 검을 집어넣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검이 워낙에 크게 망가지고 뒤틀린지라 도무지 검집에 들어맞지 않았다.

“하하하, 아쉽지만 아무리 내가 천재라고 해도 한 번에 깨닫는 건 역시 무리가 있군.”

“그러면 어떻게, 한 번 더?”

“워워, 진정하게. 동생도 이런 검을 두 번씩 연달아 펼치는 건 힘들지 않은가. 보다시피 내 검도 이 모양이고. 내일, 아니지. 모레. 아니, 아니 사흘 후에 다시 한번 해보는 것 어떤가? 동생도 내 검에 아직 얻을 게 있을 텐데?”

사실 강아현과 검을 섞을 때와 마찬가지로 남궁철의 검에서는 공야찬과 검을 섞을 때 느꼈던 그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각과 무관하게 남궁철이 구사하는 저 제왕검형에 호승심이 생겼다. 마지막까지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성장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좋습니다. 사흘 후, 저녁 시간에. 이 자리에서.”

“아, 그리고 동생. 혹시 이 근방에 대장간이 어디 있는지 아는가? 보다시피 검이 이 모양이 돼버려서 말이지.”

“수리가 가능할까요?”

“하하, 그럴 리가. 이 검을 만든 명장이 와도 수리는 불가능할 거야. 새로운 검을 사야겠지. 뭐 이 검만큼 좋은 녀석을 사는 건 힘들겠지만. 이건 돈이 있어도 쉽게 살 수 없는 녀석이거든.”

“많이 아까우시겠습니다?”

“아깝기는. 어차피 신외지물인데. 돈이 있어도 쉽게 살 수 없는 검이기는 하지만, 우리 집안은 돈만 가진 것이 아니라서 말이지.”

저런 낭패한 모습과 파리한 안색을 하고도 자랑질은 멈추지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저것은 죽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을 본성인 듯 싶었다.

“대장간은 저 아래 회음현에 본문의 검을 전담하는 대장간이 있습니다만 최근 새로운 제자들 때문에 일이 밀려서 가능하실지는 모르겠군요.”

“뭐, 미리 만들어 둔 검 한두 자루 없겠나. 그러면 사흘 뒤 저녁, 이 자리에서 보도록 하지.”

* * *

“틀렸어.”

검술총론 수업.

운호가 자신의 검집으로 아이들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사실 과거 운호가 저 아이들의 처지이던 당시 검술총론은 그리 인기 있는 수업이 아니었다. 딱히 아이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단순히 첫날, 운호와 공야찬이 시범을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 여전히 화산을 대표하는 무인은 권신이며, 화산을 대표하는 무공은 자하 기공이다.

아이들이 열의를 보이는 까닭은 조금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래, 화산 본산의 무공은 상승의 경지를 담보로 하지. 삼십 년을 부단히 수련한다면 최소 일류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자질에 따라 무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절정의 경지에 오를 확률도 굉장히 높다.”

공야찬이 한 번 더 강조했다.

“그래, 삼십 년을 부단히 수련한다면 말이다.”

본산에 남아 부단히 수련을 한다면 경지에 오를 확률은 대단히 높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백팔십사 명의 제자들 가운데 본산에 남는 제자의 수는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경쟁이 가능한 상위권, 혹은 중위권의 제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삼 년의 수련을 끝내고 속가로 내려갈 확률이 농후한 제자들이라면?

그리고 거기에 짧은 시간에 대단한 경지에 오른 운호의 시범이 곁들여졌다.

그 결과 출신이 한미하거나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검술총론수업에 목을 매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공야찬으로는 바라마지않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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