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59화 (59/288)

59화

선골(2)

아주 오랜 옛날.

당시 중원의 수련법의 주류는 금단(金丹)에 있었다. 물론 당시라고 해서 내단을 주장하는 이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식(調息)을 통한 내공의 수련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금단 역시 건강의 악화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금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 이 역시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무한 것과 소수라도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많은 재능 있는 이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금단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금단은 조금씩 그 효율을 개선했다. 하지만 그 태생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여전히 스스로의 수명을 깎아 먹는 금단을 통해 도에 닿는 이는 한 줌에 불과했다.

“그리고 혁명은 중원 밖에서 시작됐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자면 그는 한줄기 갈댓잎을 타고 왔다고 하더구나.”

그는 중원 무학의 시조로 불리는 보리 달마였다.

보리 달마는 천축에서 선종의 수련법을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어마어마한 혁명이었다. 단순히 조식을 통하여 내공을 축적하는 것을 넘어 행공을 통해 진기(眞氣)를 축적하는 이 기술은 진정한 의미의 내단(內丹)을 가능케 했다.

“내단과 금단······. 사실 성공률 자체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도전 자체가 불러오는 결과가 너무 크게 달랐지. 금단에 도전한 이는 십중팔구 그 수명이 크게 깎였고 때에 따라서는 불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단은 긴 수련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안전했으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초인적인 힘까지 얻을 수 있었다. 감히 비교조차 될 수 없었지.”

“하지만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숙께서 주시는 이 특별한 벽곡단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요?”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긴 시간과 긴 ‘수련’의 시간은 같은 말이 아니지. 게다가 그 벽곡단은 금단 가운데서도 아주 기초적인 형태다. 독성을 극도로 억제한 대신 정말 긴 시간 장복해야 하지. 게다가 맛도 최악이고 일반적인 효과는 너에게 적용된 것과 달리 미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이 맛이 개량에 의한 거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본래의 것은 아예 미각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수준이었으니까.”

운호가 어쩌면 차라리 미각을 잃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뭔가 변화가 있는 겁니까?”

“글쎄, 사실 본산에 있던 당시에 네 몸은 분명 평범한 수준의 효율이었던지라 딱히 생각해둔 것이 없구나. 흐음, 이렇게 수치가 극적으로 변한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당장 가장 크게 짚이는 부분은 마인과의 싸움인데······. 아직은 표본이 너무 적어서 알기 힘들구나.”

운호가 생각했다.

마인과의 싸움. 그리고 선골.

“아, 설마? 혹시 그거 무공의 깨달음 같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사실 제가 마인과의 싸움 도중에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마기와 깨달음이 일으킨 복합작용일까? 그렇다고 보기에 그것도 너무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너는 지금 이 약을 5년에서 10년쯤 복용한 이와 비슷한 효율을 보이는 것 같구나. 물론 그 효율이라는 것도 편차치가 조금 크기는 하지만 말이다.”

“효능이라면 혹시 어떤 효능입니까?”

“정확한 것은 조금 더 살펴봐야 알겠다만 우선은 네 몸의 자연 재생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 같구나. 한 달 정도 걸릴 타박상이 완전히 회복되는데 일주일 정도로 줄어든 걸 봐서는 약 서너 배 정도?”

“그렇다면 앞으로 다쳤을 때 회복하는 시간이 조금 빨라지는 효과가 있겠군요.”

굉장히 유용한 능력 같긴 하지만 선골이라는 거창한 명칭까지 나온 것 치고는 뭔가 조금 애매했다.

운호의 그런 생각을 읽은 것일까?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것이 아니다. 이건 그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봐야지.”

“훨씬 대단하다고요?”

“그래, 우선 네가 좋아하는 수련이 있겠구나. 생각해보아라 다치거나 지쳤을 때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면 그 수련의 효율이 어떻게 될지를.”

확실히 맞는 말이다.

“게다가 사람의 육체는 강철과 닮아 두드리면 더 강해지지만, 강철과 마찬가지로 너무 두드리면 부러지지 않더냐. 그리고 여기서 자연 재생이 증가한다는 것은 강철의 내구성이 향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네 타고난 체질이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거라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

“그렇군요.”

“뭐, 어찌 됐건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꾸나. 새로 들어올 삼대 제자들 때문에 나도 할 일이 밀려있어서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변화를 좀 살펴보고 또 나눠보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 * *

“대단하군.”

웅장한 화산파 건물들의 모습에 남궁철이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물론 그 규모나 화려함을 따진다면 남궁 세가 쪽이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공사의 난도에서 감히 비할 바가 아니다. 위치 때문이다. 물론 화산파가 위치한 곳은 산의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폄훼할 수는 없었다. 화산은 보통 험한 산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곳까지 건축자재들을 끌고 올라와서 이런 대공사를 벌인다고? 남궁철은 과연 화산이 천하제일로 꼽힐만한 대문파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나치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 부족한 이가 없다. 그보다 열 살에서 스무 살 정도 연배가 높은 이대 제자들 가운데 약한 자라고 해도 그보다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으며, 그 태반은 그보다 수준이 높았다.

장로에 해당하는 일대 제자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한다면 그 대부분이 절정의 경지다. 지금까지 그가 목격한 숫자만 무려 서른이 넘는다.

안휘성의 지배자인 남궁 세가의 절정고수를 다 합쳐도 스물이 채 되지 않는다. 이건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숫자다.

남궁철이 한참을 걸어 이제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산 중 깊숙한 곳의 작은 모옥에 다다랐다.

그래, 심지어 지금 보이는 것만이 전부도 아니다. 이 모옥처럼 산중에 따로 거처를 마련해둔 고수의 숫자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뜬소문처럼 일류와 절정고수의 숫자만 따지면 소림과 무당을 합친 것에 필적한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한참을 기다리자 마침내 그가 기다리던 사람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백운호였다.

“여어!! 동생. 대체 어딜 갔었나. 내 여기서 한참을 기다렸네.”

백운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전신에서 싫은 티가 팍팍난다.

“대체 저를 왜······. 화산까지 오셨으니 이제 애초의 목적대로 견문을 넓히셔야죠.”

“하하하, 내가 화산에 친한 사람이라고는 동생과 아현 소저뿐 아닌가. 하지만 아현 소저가 있는 옥녀봉 매화당은 외부인의 경우 장문인의 허가를 득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이는 동생뿐 아니겠나.”

“그건 접객당을 가시면 친절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을 텐데요.”

남궁철이 고개를 저었다.

“으음으음으음. 그건 화산에 친한 이가 없는 이들이나 선택하는 것 아닌가. 우리 사이가 어디 보통 사이인가? 사선에서 함께 목숨을 나눈 사이 아닌가. 그런 동생을 두고 굳이 접객당의 안내를 받을 필요는 없지.”

“글쎄요. 제가 수련도 많고 할 일도 많아서 과연 시간이 날는지······.”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설마 내가 형이 되어 동생의 수련을 방해하겠나? 아니, 오히려 내 동생의 수련을 도와주도록 하겠네. 동생도 화산의 무인치고는 특이하게 검을 쓰는 것 같던데, 역시 검술 하면 남궁 아니겠나. 그러니 나와 대련을 하는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될 걸세.”

도움?

백운호가 볼멘소리로 답했다.

“글쎄요. 남궁 소협이야 말로 저와 검을 섞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하하하, 들켰군. 맞네. 맞아. 사실 나야말로 동생에게 큰 도움을 얻고 싶어서 그러는 걸세. 아니 내 무공이 요즘 도통 진전이 없지 뭔가. 헌데 그 마인놈과의 싸움을 경험하고 나니 뭔가 간질간질하게 잡히는 것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던 와중에 매형은 화산을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떤가 권하기도 해서 이리 따라왔다네.”

매형?

그러고보니 이전부터 남궁철은 자꾸 매형 이야기를 했다. 그는 대체 누구고, 무슨 생각으로 남궁철을 화산에 보낸 것일까?

의문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풀렸다.

“우리 매형? 너도 한 번 봤잖아. 제갈첨. 우리 큰 누이가 나랑 다섯 살 차이인데 조카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몰라. 나중에 기회되면 자네도 한 번 같이 가자고. 융중산이면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으니 말이야.”

제갈첨? 제갈세가의 그 제갈첨?

“제갈첨 대협이 남궁소협에게 화산행을 권했다고요?”

“소협이 아니라 형님!! 그리고 매형이 권한 것 맞아. 동생을 좀 지켜보라고 하더군.”

“자, 잠깐만요. 제갈첨 대협이 저를 지켜보라고 하셨다고요? 대체 왜?”

“그야 동생이 워낙에 마인과 접촉이 잦으니 의심병이 또 도진 탓이겠지. 뭐, 지금은 얼추 해소된 것 같긴 한데. 우리 매형이 워낙에 의심병이 깊어서 말이야. 글쎄, 그 양반 의심병이 얼마나 깊냐면 말이야. 그 나이에 아직도 마교의 대제사장 같은 걸 믿는다니까?”

아무렇지 않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늘어놓는 남궁철의 모습에 운호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사실 제갈첨이 그에게 사람을 붙였다는 사실보다 그렇게 붙었다는 남궁철이 그 사실을 모두 털어놓는 모습이 더 당혹스럽다.

“헌데 그런 사실을 저에게 왜 알려주시는 겁니까?”

“응? 그야 동생이 물어봤으니 알려주는 거지. 매형도 어차피 비밀로 하라고 말한 적 없으니까.”

“그건 그냥 너무 당연한 일이라 말씀 안하신 거 아닐까요?”

남궁철이 자신의 커다란 코를 긁적였다.

“그······, 그런가? 하하하. 뭐 그렇다면 또 어떤가. 어차피 동생과 내 사이인데. 우리 함께 사선을 넘은 동료 아니던가. 이 정도 비밀은 터놓고 지내야지.”

이 인간. 세상이 두 쪽이 나더라도 비밀 같은 건 절대 공유해선 안 되는 유형의 인간이다.

백운호가 남궁철에게서 한 걸음 더 멀어졌다.

* * *

“그래, 고생들 했다.”

화산 장문인 굉허자가 중원 각지에서 본산으로 돌아온 제자들을 위무했다.

184명.

속가에서 추천한 아이들을 제자를 직접 보내 검증한 끝에 고르고 골라 선별한 아이들이었다. 요 몇 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숫자는 이전 기수보다 더 늘었다.

과거 백운진인이 제시했던 문파가 강해지는 방법은 간단했다.

시간이다.

제자를 받고, 그 제자들이 무탈하게 성장한다. 화산 기종의 무공은 정직하다. 부단히 꾸준하게 수련하는 만큼 일정 경지까지는 무난하게 강해진다. 그렇게 절정의 고수가 백 명이 모이면 설사 천무십칠성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또한 그 숫자가 많은 만큼 경지를 밟는 고수가 나올 확률도 올라 간다.

급변하는 강호무림.

화산이 오랜 시간 내려온 자신의 전통을 흔들림 없이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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