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56화 (56/288)

56화

무림맹(1)

“맙소사.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원시천존, 원시천존.”

마기의 폭주가 시작된 직후, 종남에서 여기까지 서둘러 달려온 무인들이 목격한 것은 난장판이 된 분지와 몸이 반으로 잘려 나간 마인. 그리고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네 명의 젊은, 아니 아직 어린 무인들이었다.

“아, 아현아!!”

“맙소사. 종화야!!”

“철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더냐!!”

“운호야!!”

사람들이 서둘러 그들의 상세를 살폈다.

“설마 저 아이들이?”

“그럴 리가요. 분명 천지를 진동시키는 마기였습니다. 어쩌면 천마,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급의 대마두였을 텐데 어찌 저런 아이들이······. 아마 어르신들이 다녀가신 게 아닐까요?”

“하지만 이 싸움의 흔적은······.”

“이 자는?”

“아는 얼굴입니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광혈마 같습니다.”

“광혈마라면 얼마 전 역천검귀와 함께 검선님을 습격했던 도륜당의 당주 아닙니까. 헌데 어떻게 이 자가 이곳에? 분명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마인의 마기가 휩쓸고 간 분지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마치 화포의 포탄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흔적들이 가득했다.

“어쨌거나 자세한 내용은 저 아이들이 깨어나면 알게 될 일입니다. 수색에 관한 부분도 담당했던 이들을 조사해보면 될 일이고요. 지금은 우선 이 자리를 정리하도록 하시지요.”

“안 그래도 아이들에게 들것을 가져오라 일렀습니다.”

* * *

그것은 마치 희미한 꿈과 같았다.

늙은 청년과 젊은 노인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멍청하기는. 하여간 어설프게 맛을 본 놈들이 꼭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 그런 꼴을 당하지. 그냥 쓰던 칼이나 계속 썼으면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을. 쯧쯧쯧.”

“그건 선배가 저에게 하실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그보다 참으로 신묘한 공간입니다. 대체 이것이 어찌 가능한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군요.”

“그야 어설프게 맛만 봤으니 그럴 수밖에.”

증무진인? 그리고 태을검선이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광경.

“얼른 귀천이나 해라.”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뭐 하군요. 애초에 이 모든 일이 선배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업보에서 시작된 것이니 말입니다.”

“업보는 무슨······. 애당초 내가 아니었다면 벌써 140년 전에 일어났을 일이다.”

“글쎄요. 그 시대의 누군가가 해결했을지도 모르지요.”

“흥, 내가 그 꼴이 됐는데 누군가가 해결은 무슨. 여하튼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만 결과적으로는 네가 싼 똥은 잘 해결됐으니 미련은 가지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태을검선의 몸이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 따윈 보이지 않았다.

작게 시작한 불이 이윽고 거대한 불꽃으로 변했다. 아니, 불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야말로 태을검선 그 자체였다.

-저는 이만 먼저 갑니다. 선배도 부디 오랜 업보에서 벗어나시기를······.

불꽃이 사라진 자리.

젊은 청년이 씁쓸한 표정으로 되뇌었다.

“그래, 부디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 *

“정신이 좀 드느냐.”

“사부님?”

진한 약향.

광목천으로 둘둘 감은 몸이 쓰려왔다. 그러고 보니 그 마인을 상대할 적에 제법 많은 외상을 입었다. 상피액과 철령액으로 육체를 단련했음에도 진짜 고수의 공격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아니지, 그렇게 단련이 됐으니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났다고 봐야겠지.’

공야찬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쭉 마시고 다시 눕거라.”

“이게 뭡니까?”

“출혈이 많았다. 몸을 보하는 약이다.”

-꿀꺽

쓰다.

하지만 매일 식사를 대신하고 있는 그 특제 벽곡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남궁철은 함께 온 식솔 가운데 의학에 능한 이가 있다고 하여 그쪽으로 갔고, 아현이와 그 종남의 아이는 저 옆 방에 누워있다. 너보다 먼저 깨어났고, 지금은 잠이 들었다.”

“모두 무사합니까?”

“그래, 너와 다르게 내상 쪽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후유증이 남을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구나. 그보다 대체 어찌 된 일이더냐. 그 아이들을 통해 듣기는 했지만,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거의 천마에 다다른 마인을 어찌 네가······.”

또렷하게 기억났다.

천지를 진동하던 그 선명한 악의가.

종남산은 영산이다. 그리고 그런 영산에서 그만한 마기를 피워올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은 천마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거의 그에 준하는, 최소한 지마의 한계를 벗어난 마기였다.

또한, 공야찬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급의 마존이 얼마나 무서운 상대인지.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다.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폭주하는 마기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 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주화입마에 든 것과 흡사했다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오른쪽 팔을 잃은 것도 얼마 안 된 듯싶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수였지만, 그럼에도 초식에 파탄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마기만으로도 천지를 진동시키는 마인이었다. 물론 네가 검기상인(劒氣傷人)의 초입에 들어선 것은 알고 있다만······.”

“세 사람의 도움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작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깨달음?”

공야찬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깨달음이라고?

백운호가 기초적인 검기를 손에 넣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한데 그사이에 또다시 발전을 했다고?

“사부님께서 일러주셨던 자운검에 약간의 성취가 있었습니다.”

“자운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타고난 천재다운 놀라운 활용이었다. 본래라면 강력한 내력으로 펼쳐내야 하는 초식을 그런 구렁이 담 넘어가는 기교로 비슷하게 펼쳐내다니.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곡예와 같다. 현실적인 위력으로 따졌을 때 운호가 펼치던 자운검은 본래 자운검 위력의 오 할도 채 되지 못했다.

헌데 그런 자운검의 성취가 그런 터무니없는 흔적을 만들어냈다고?

기와 기. 의지와 의지는 상충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검기상인의 경지에 이르러 자신의 기와 의지를 세상에 강요한다고 해도 상대는 천지간의 기운에 영향을 미치는 마인이다. 그런 마인의 마기를 뚫고 그 몸을 일도양단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그러니까. 제가 마음 먹은 대로 검이 갔습니다.”

“검을 휘두르는데 마음 먹은 대로 검이 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 아니더냐.”

“그게 조금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검이 마치 제 손의 일부가 된 것 같았습니다.”

손의 일부라고?

설마.

“신검합일(身劍合一)?”

“네, 어쩌면 아마도······. 물론 그것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종화 소저와 아현이가 마인의 손발을 묶어주었고 남궁철 소협이 빈틈을 만들어줬습니다. 전 단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을 뿐입니다.”

공야찬의 귀에 뒷말은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신검합일. 신검합일이라니.’

터무니없다.

30년 넘게 검술에 매진했거늘 아직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 경지에 벌써 도달했다고?

아뿔싸!!

공야찬은 그 순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최근 사문의 일로 워낙에 정신이 없었고, 실제로 발휘되는 위력이 워낙에 미미한 탓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애당초 이 아이가 하는 행동이 아무 쓸모 없는 행동일 리 없었거늘!!’

그 쓸데없이 복잡하고 아무런 쓸모 없어 보였던 자운검의 초식들이 신검합일로 이르는 길목이었다.

공야찬이 백운호의 양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윽!!”

백운호의 입에서 작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미, 미안하다. 내가 갑자기 너무 흥분하여. 그보다 운호야!! 나에게도 그 자운검을 찬찬히 보여줄 수 있느냐.”

“네,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만 지금 당장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일단은 몸을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아, 그리고 이건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뒀던 약인데 쓰도록 하거라.”

공야찬이 품속에서 극품의 연자고를 꺼냈다. 고작 엄지손가락만 한 약통 하나가 무려 은자로 스무 냥. 그러니까 쌀이 스무 석이다.

뚜껑을 열자 청아한 향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운호가 약을 꺼내 조심스럽게 타박상 부위에 듬뿍 발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공야찬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났다. 저것을 저렇게 덕지덕지 잔뜩 바르다니. 사용하는 것이 아까워 정말 새끼손톱만큼만 조심스럽게 펴 발랐던 약이거늘.

과연 귀한 약은 달랐다. 즉각적으로 시원한 느낌과 함께 통증이 조금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사부가 제자의 몸을 챙기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 또 어딨겠느냐. 그러면 푹 쉬고 몸 조리 잘 하도록 해라.”

공야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금빛이 감도는 침으로 빼곡한 남궁철의 몸.

청수한 인상의 사내가 그 침들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뽑아냈다. 짧은 것은 새끼손톱만 한 것부터 긴 것은 어지간한 사내의 손바닥보다 긴 장침까지. 신기하게도 그런 침들을 모조리 뽑아냈음에도 작은 핏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모든 침을 뽑아낸 사내가 소매를 들어 땀방울 가득하던 이마를 훔쳐내며 말했다.

“이 멍청한 녀석아. 아무리 내가 부탁을 했다고 해도 위험하다 싶으면 재빨리 도망을 쳐야지. 남궁 세가의 후계자씩이나 되는 녀석이 대체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거기서 그런 짓을 하느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습적으로 마인이 다가온 터라.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어떻게 저 혼자 비겁하게 도망을 치겠습니까. 게다가 아마 제가 없었더라면 그 아이들 그 자리에서 모두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매형.”

-쯧쯧쯧

남궁철의 매형.

그러니까 제갈첨이 그 말에 혀를 찼다. 역시 아직 어리다. 가문을 물려받아야 하는 녀석이 이토록 순진하다.

이 시대, 칠대세가의 가장 큰 경쟁자는 마교가 아니다.

구대문파다. 그렇기에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경우의 수다.

하지만 제갈첨은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조금만 더 머리가 굵어진다면 알아서 깨달을 이치일테니.

“그래, 그래서 네가 보기에 그 아이들은 좀 어떻더냐.”

“세 사람 모두 놀라울 만큼 강했습니다. 특히 그 소검후라는 여아는 제가 최상의 상태라고 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 것 같더군요.”

“그래? 그렇다면 백운호라는 아이는 좀 어떻더냐?”

남궁철이 곰곰이 생각했다.

“좀 묘했습니다.”

“묘했다고?”

“실력보다 너무 잘 싸운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가끔 낭인 중에 그런 놈들 있지 않습니까. 무공 수위에 비해 이상하게 잘 싸우는 녀석들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무공 수위에 비해 이상하게 잘 싸운다라······.”

화산, 혹은 백운호와 마교의 밀월관계에 대한 의혹은 이미 뇌리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사건이 있고, 이득을 본 이가 있다면 보통 그 이득을 본 이가 범인이기 마련이다. 또한, 마교가 그런 신기술을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작’ 그런 식으로 드러낸 것 역시 마땅히 그럴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백운호라는 아이, 혹은 화산과 마교의 밀월관계를 의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광혈마는 지급의 마두였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 보여준 놀라운 마기를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마교의 새로운 제사장이 됐을지도 모르는 대마두다.

이래서야 수지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무려 세 번······. 그것도 이 짧은 기간에······.’

그래,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릇 책사라면 그것이 우연이 아님에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제갈첨이 새로 조직될 무림맹의 조직도를 머릿속에 그려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