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54화 (54/288)

54화

신검합일(6)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이화접목(移花接木)?

그런 고절한 무의 이치까지는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하나의 무인이 평생을 화두로 삼아도 도달할 수 있을지를 장담하지 못하는 이치다. 그렇기에 운호의 그 일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치가 되는 지고의 무학은 아니었다.

그저 호신을 위하여 가장 합리적인 길을 찾았다.

초식의 형이 해체됐다. 그렇기에 이것은 납매검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 역시 납매검이었다. 그 철학이, 그 원리가 그리하여 완성된 그 형태가 그러했다.

자운검을 통해 연마된 운호의 기교가 빛을 발했다.

그의 손목이 촌각을 수십 번으로 쪼갠 시간 동안 정확하게 꼭 필요한 만큼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 검기가 서린 그의 검이 춤을 췄다.

-챙챙챙챙챙

남궁철이 휘두르는 제왕의 검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운호의 몸이 표홀하게 움직였다.

정확하게 남궁철의 검이 움직이는 방향 반대편으로.

부운약표(浮雲躍飄)

화산의 험악한 지형을 평지처럼 노닐게 해주는 절정의 보신경이다. 일순간 남궁철의 시야에서 그의 몸이 사라졌다. 검을 휘두르는 남궁철을 중심으로 백운호의 몸이 백삼십 도를 회전한 탓이다.

“어디서 얕은 잔재주를!!”

남궁철이 이를 악물었다. 이뿌리가 시큰했다. 비릿한 혈향이 느껴진다. 창궁(蒼穹)의 진기가 천뢰(天雷)의 진기로 더 빠르게 변환됐다. 기해혈이 뻐근하다.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뽑아낸 일격이었다.

모든 삿된 것을 파괴하는 황금빛 천뢰가 운호의 몸을 따라 폭발했다.

정확하게 백운호가 생각했던 그 방향을 향해서.

그리고 그렇게 몸을 돌린 그 순간 남궁철의 시야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외팔의 괴인.

너무 빠르다. 처음 그를 인지했을 때는 저 먼 곳에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마치 홀로 다른 시간 축에 존재하는 것처럼 괴인의 몸이 쭉쭉 이곳을 향해 뻗어왔다.

이제는 자신을 감추던 새하얀 기운을 거의 지워낸 불길한 칠흑의 마기가 광혈마의 몸 위에서 일렁였다.

‘대체 어디서 갑자기 이런 마인이!!’

하지만 다행이었다.

괴인이 나타난 방향은 정확히 그의 검이 움직이는 바로 그 방향이었다. 이것은 마치 작정하고 젖먹던 힘까지 끌어낸 일격 앞에 마인이 자신의 몸을 들이대는 격이다.

그렇게 불길한 마인을 향해 남궁철이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최강의 일격을 휘둘렀다.

정확하게 백운호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쾅!!

황금빛 천뢰와 칠흑의 마기가 부딪혔다.

어마어마한 기운의 충돌이 거대한 폭발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남궁철의 몸이 힘없이 튕겨 날아갔다.

찰나를 반으로 쪼갠 시간.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종화였다. 남궁철의 검이 광혈마의 좌수와 충돌하기 직전 그녀가 검을 뽑아 들었다.

분명 남궁철의 검이 실린 경력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경력조차도 광혈마의 자세를 조금 무너트리는 데 그쳤다. 남궁철의 검과 부딪혀 튕겨나가는 광혈마의 왼팔에는 약간의 생채기 정도만이 보일 뿐이다.

이렇듯 상대와의 격차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최선을 다했다.

순양태을검(純陽太乙劍)

일초식.

순양귀태을(純陽歸太乙)

종화가 운호의 예상보다 반 박자 빠르게 반응했다.

몇 달 전 비무 때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태을검이 남궁철과의 충돌로 자세가 무너진 마인을 향해 쇄도했다.

‘선기(仙氣)!!’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거의 다 녹아내린 광혈마의 두뇌에 남아있는 유일한 명령이 꿈틀거린다. 자세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운호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광혈마의 시선이 종화 쪽으로 움직였다.

광혈마공의 마기가 온몸을 폭주했다. 종남의 영험한 기운은 그에 상극이었지만 광혈마는 이미 그런 제약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기우뚱한 몸을 되돌리지 않았다. 그저 그것이 본래의 동작인 것처럼 광혈마의 오른발이 솟구쳤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발차기가 종화의 태을검을 받아냈다.

기회다.

운호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몸이 빠르게 반 바퀴 회전했다. 아직 그의 검에 서린 막대한 기운은 대부분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운호의 공격이 마인의 우측 옆구리를 찔러 갔다.

광혈마가 자신의 몸을 마치 팽이처럼 회전시켜 운호의 공격을 피해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내장을 보호하는 근육 섬유 한 올 한 올이 철사보다 질기고 단단했다. 분명 운호의 일격은 금석조차 마치 두부처럼 베어내는 일격이었지만 피륙의 상처, 그리고 그 단단한 근섬유 몇 올을 잘라내는 데 그쳤다.

아직이다.

순양태을검(純陽太乙劍)

이초식.

천지여일(天地如一)

종화가 자신의 검을 마인을 향해 번개처럼 내리쳤다. 그들보다 한 박자 늦었던 강아현 역시 옥녀진결의 이단공을 끌어올린 채 그 싸움에 합류했다.

종화나 강아현 모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상대는 그 수준을 파악할 수 없는 굉장한 마인이며 백운호의 기지와 남궁철의 희생으로 만들어낸 이 작은 우세를 계속 이어가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는 것을.

그들은 과거 한 달 가깝게 끊임없이 비무를 이어갔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제법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만으로 파탄없는 합공을 이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사이 세 사람 모두 성장했을뿐더러 지금 상대하는 광혈마는 그야말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전력을 기울여도 될까 말까 한 상대다. 상대방의 공격에 합을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껏 검을 잡은 이래 지금처럼 검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자유롭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상대는 그 자유로움 너머에 있다. 이런 깨달음으로도 당해낼 수 없는 상대다.

그렇기에 합공이 필요하다. 종화의 최선과 강아현의 최선이 합쳐서 상승의 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종화의 최선과 강아현의 최선은 결코 합쳐질 수 없다.

불가능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아니다. 이미 네 손에는 ‘자유’가 있지 않더냐.

왜일까?

그 순간 운호의 머릿속에 주름투성이의 노인이 휘두르던 지팡이가 떠올랐다. 그것은 줄곧 운호의 상상을 벗어난 불가능의 영역에서 움직였다.

불가능과 가능을 가르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운호가 상상했다.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그 영역 너머를.

운호의 감각이 크게 확장됐다. 마치 강아현과의 첫 비무. 주변의 모든 변수를 파악하려다 기절했던 그때의 그 순간처럼 머리가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한층 깊어진 내공이, 한층 성장한 육체가. 그리고 한계치 직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일 수 있는 경험이 운호를 도왔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두 사람의 최선을 운호의 손에 쥐어진 자유가 엮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수십 년을 함께 수련해도 완벽할 수 없는 것이 합공이다. 그렇기에 완벽하지 않았다. 완벽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두 사람 각자의 최선을 더한 것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십여 합의 공방이 오갔다.

백운호, 종화, 강아현.

그 가운데 누구 하나 천재가 아닌 이가 없었다. 광혈마는 분명 수준 높은 고수였지만 그 공방 속에서 그들은 광혈마의 동작에 파탄이 있음을 눈치챘다.

‘이 자 오른팔이 잘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초식의 형 자체가 양손이 모두 있을 때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다. 동작 사이사이에 파탄이 드러났다.

광혈마의 몸에 차곡차곡 손해가 누적됐다.

조금만, 조금만 더!!

태을단을 복용한 종화의 내공은 또래 가운데 당적할 자를 보기 드문 수준이었다. 하지만 순양태을검은 그런 내공으로도 길게 활용할 수 있는 검술이 아니다.

강아현의 무공 역시 마찬가지다. 격발형 무공은 같은 화후의 무공과 비교했을 때 많게는 수 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촌각의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조금 더 몰아붙일 수 있다.

가능하다.

종화와 강아현의 검이 포효했다.

본능만이 남은 마인이 크게 호흡했다.

이성은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이 바로 기회라는 것을.

한순간 종남산의 청정한 기운이 일변했다. 대자연의 기운조차 굴복시키는 압도적인 지배력. 지급으로 분류되는 마인의 진정한 힘이다.

한순간 종화와 강아현의 검이 흔들렸다.

-콰쾅!!

* * *

“응?”

걸왕, 대력, 운룡, 무신. 그리고 권신까지.

총 다섯의 천무십칠성 가운데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이곳에 남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이변을 느꼈다.

흐릿했지만 명확했다.

마기다.

“북서쪽.”

“감히!!”

꼭꼭 숨어 도망가도 모자랄 버러지 같은 마인이 감히 다시 모습을 드러내다니. 오랜 친우를 잃어버린 두 사람의 반응은 동일했다.

무신과 권신.

강호 최강을 다투는 두 무인이 그곳으로 향했다.

두 사람 가운데 조금 먼저 도착한 쪽은 무신이었다. 무공의 고하 때문이 아니다. 권신은 아직 역천검귀와의 싸움에서 얻은 내상을 다 회복하지 못했다.

“늦었군.”

“지금 뭐 하는 건가?”

“글쎄, 장강의 뒷물결을 관찰하는 중이라고 해야겠지?”

놀라운 아이들이었다.

특히 저 남자 아이.

대단한 위력의 공격을 펼치는 아이는 여아들이다. 특히 검선 그 늙은이의 후계로 보이는 저 아이는 놀랍다. 하지만 지금 저 싸움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저 남자아이다.

“저 나이에 벌써 검의 이치에 닿아 있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단매에 마인을 때려잡으러 달려왔지만 이래서야 굳이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아마 이대로라면?

“저런!!”

하지만 그 순간 여자 아이들의 검이 흐트러졌다.

아쉬웠다. 경험의 문제다. 천지간의 기운을 조정하는 마인을 처음 접하는 탓이다. 조금만 더 노련했더라면······.

“끄응······. 조용히 지켜보려 했건만.”

무신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잠깐.”

“응? 왜 그러나? 그 몸으로 직접 나서려고? 나야 뭐 상관없지만······.”

권신이 고개를 저었다.

* * *

종화와 아현이 크게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내기가 흔들렸다. 저래서야 쉽게 합류하기 힘들다.

마인이 성큼 다가왔다.

그의 왼손이 섬전과 같이 움직였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셋이서도 이기지 못했던 상대를 홀로 어찌 상대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운호는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상상했다. 저 마인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수많은 경우의 수가 명멸했다. 틀렸고 틀렸고 또 틀렸다.

하지만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검선은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가 손에 쥔 검은 그가 상상하는 영역 너머로 나갈 수 있는 자유를 품고 있다고.

납매검.

매농검.

그리고 자운검.

백운호의 검이 움직였다.

그 순간 그의 손에 들린 검은 신외지물(身外之物)이 아니었다.

구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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