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50화 (50/288)

50화

신검합일(2)

포권이 우아할 수도 있구나.

삼십 대 중반 즈음 됐을까? 청년과 중년 사이의 어느 언저리.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와 잘 가꿔진 윤기나는 수염.

자신을 제갈첨이라 말한 그 사내는 미남이란 이런 것이다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무후재림이라고? 확실히 생긴것만 보면 그런 별호도 어색하지는 않다. 생긴것만 보면 이야기 속의 제갈량처럼 빼어나다.

하지만 그래도 제갈첨이라면 제갈 세가인데, 제갈 세가에서 그런 광오한 별호를 사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제갈세가는 제갈량의 핏줄을 잇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의 시조로 제갈량을 모시는 곳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갈세가의 사람이 감히 무후를 운운하다니.

운호의 반응에 제갈첨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사람 참. 농일세 농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이상하게 쳐다보면 조금 무안하지 않나. 이거 농도 함부로 못 하겠구먼. 아, 물론 내가 제갈첨인 건 농이 아니라 사실이라네.”

“아, 네. 화산의 백운호라고 합니다. 헌데 무슨 일이신지?”

“무슨 일이기는. 그 유명한 서안탐마동을 직접 볼 기회인데 내 그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겠지.”

“아까 전부터 자꾸 서안탐마동, 서안탐마동 하시는데. 설마 그게 제 별호입니까?”

서안의 그 사건이 있었던 것이 벌써 1년을 훌쩍 넘어 2년에 가깝다. 헌데 서안탐마동이라니. 금시초문이다.

“별호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우리끼리 부르는 말일세. 우리 사이에서 자네 제법 유명하거든. 혹시라도 마음에 든다면 개방에 의뢰해서 별호로 소문 좀 내줄 수도 있고.”

“사양하겠습니다.”

“하긴, 보아하니 별호에 동(童)을 붙이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구만.”

제갈첨의 시선이 백운호를 훑었다.

키는 칠 척 칠 촌 정도? 이 정도면 어지간한 명문 무가를 기준으로 봐도 적지 않은 체격이다. 저 정도면 평범한 속인들 사이에서는 수백 명 가운데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거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특별한 용건이 없으시다면 전 이만.”

“아아, 그거 빡빡하기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아닌가. 게다가 어차피 그 종남의 소검후(小劍后)는 지금 바로 만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소검후요? 설마 종화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그건 우리가 붙인 말이 아닐세. 아미의 청허신니가 직접 붙여준 별호지.”

누군 서안탐마동이라고 불리는 판국에 소검후라니. 게다가 이 제갈첨이라는 자 실실 웃으며 허튼소리나 늘어놓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저 눈.

마치 지금의 이 모든 대화가 백운호 자신을 시험해보는 것 같다면 너무 과민한 생각일까?

“사실 최근의 활약을 생각하면 소검후라는 별호가 과하지는 않지. 사천의 삼대 문파가 내민 후기지수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심지어 한 배분 위의 고수인 당갈염과도 동수를 이뤘지. 어디 그뿐인가? 무당에서 야심차게 키우던 유천을 고작 사십이 초 만에 제압하지 않았던가.”

아니다.

과민하지 않다. 지금 저자는 의도적으로 운호 자신의 반응을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운호가 결정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저에게는 패배했죠.”

“그래, 바로 그거지. 참으로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나?”

“대체 뭐가요?”

“소검후의 실력이 빛을 발할 때마다 화산의 제자가 그녀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나오는데, 이상하게 그 제자가 서안탐마동, 아, 그러니까 백운호 자네라는 이야기는 그리 큰 화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말이야.”

“그거야 제가 아직 무림에 정식으로 출두한 게 아니니까 그런 거겠지요. 아마 앞으로는 다를 겁니다.”

“그럴까?”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뭐, 알겠네. 아직 어린 친구가 패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보기 좋구만. 나도 10년 전만 하더라도 자네랑 참 비슷했는데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작은 조언을 하나 해줘도 괜찮겠나?”

“조언이요?”

제갈첨이 운호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진짜 뽐내는 걸 좋아하는 인간들은 자기 자랑할만한 상황이 찾아오면, 아니 설사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랑을 아주 장황하게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네. 그러니까······, 바로 지금 나처럼 말이야. 자네도 그걸 참고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을걸세.”

“······.”

“아, 그리고 지금처럼 걸렸을 때 바로 인정하는 것도 썩 좋진 않아. 상대가 정확히 모르면서 일단 던지고 본 걸 수도 있거든. 강호라는 것이 무공도 중요하지만, 이 심계라는 것도 제법 중요하단 말이지.”

제갈첨이 운호의 어깨를 두 번 두들기고는 멋지게 장포를 휘날리며 돌아섰다.

* * *

제갈첨의 이야기처럼 종화는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부상을 당했다든지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단지 태을검선의 사망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종화는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삼인 중 하나였다. 그 가운데 권신의 경우 사람들이 추궁을 할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 아니었으니, 자연스럽게 사건의 개요에 관한 질문은 종화와 그녀의 사부인 벽운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정말 갑자기 아무런 징조도 없이 역천검귀와 도륜당의 마졸들이 나타났단 말이지?”

“정확히는 화전민 마을에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게 건장한 사람들만이 있어서 의구심을 갖으려는 찰나, 그들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마기는 전혀 느끼지 못했고?”

“네, 전혀요. 일단 이상함을 눈치채는 순간, 무언가 단약을 하나씩 꺼내 먹었는데 그 순간 마기가 폭증했습니다.”

“단약이라······.”

오십여 명의 마인들이 일순간에 벽운과 종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하나가 최소 인급에 해당하는 마인들이다. 고작 절정과 일류 하나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과한 전력.

그 순간 벽운과 종화는 죽음을 각오했다.

-퍽!!

가장 앞서 달려오던 마인의 머리가 사라졌다.

하얀 뇌수가 비산했다.

무슨 일일까?

“물러서라!!”

놀랍게도 그들 앞에는 태을 검선이 서 있었다. 분명 오십여 명의 마인이 내뿜는 마기는 흉험했지만, 태을검선의 검 앞에서는 무력했다.

“태사조님은 대단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그가 자신의 기운을 해방하는 순간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릿해졌고 몸속의 진기가 들끓었다. 알 수 없는 생리적인 거부감이 치솟았다.

역천검귀(逆天劍鬼)

마교의 팔대 제사장.

그는 천마(天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하게 증명했다.

“제대로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종화의 인지 밖에서 이뤄졌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경지에 발을 디딘 고수들간의 싸움이란 그러했다. 그나마 그 싸움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도륜당의 당주인 광혈마 정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태을 검선은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여전히 우세를 점했다.

“모두 저 때문입니다.”

도륜당의 마인들이 벽운과 종화를 덮쳤다.

위기의 순간마다 태을 검선은 그들을 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역천검귀는 태을검선에게 상처를 남겼다.

근 한 시진에 달하는 싸움.

도륜당의 마인들이 스물 정도 남았고, 광혈마의 한쪽 팔이 산산이 분쇄됐을 때, 태을검선의 옆구리가 역천검귀의 검날에 찢겨 나갔다. 물론 역천검귀 역시 무사하지는 않았다. 태을검선의 왼손이 그의 오른 눈동자를 박살 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승부는 명확했다. 패배한 쪽은 태을검선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태을검선은 웃음을 터트렸다.

“늙은이가 바로 지척에 살면서 도착하는 것이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쿠과광!!!

사람의 형상을 한 자연재해가 그곳에 강림했다. 일 권에 세 명의 마인이 피떡이 됐다. 반경 일 장이 말 그대로 뭉개졌다. 저 멀리 작은 점이 순식간에 커졌다.

“이 놈드을!!!”

권신 청무진인이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흐음, 그렇군. 알았다.”

* * *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 자리에 권신께서 나타나시지 않았더라면······.”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군요. 호북에서 순양까지는 거의 오백 리 길 아닙니까. 아무리 천마의 마기가 천지를 울린다지만 오백 리 밖에서 그걸 감지하고 한 시진 만에 그 거리를 달려오신다니요.”

“그보다 그렇게 달려와서 끝끝내 역천검귀를 주살하셨다는 점이 더 대단합니다.”

종남의 회의실.

사람들의 예상처럼 이번 장례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단순히 조문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구대 문파와 칠대 세가의 마지막 회합은 무려 이십 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조정해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네? 장문님들이요? 그건 조금 과하지 않을까요? 중원 어디에서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먼 곳에서 오는 분은 왕복으로 두 달은 걸리실 텐데 문파의 장문인이 그렇게까지 문파를 비운다는 것은······.”

“어허, 해남에서는 이번 일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시는 모양입니다?”

“아니, 뭐 심각성이라고 해봐야······. 태을 검선님께서 귀천하신 일은 참으로 유감입니다만 대신 마교의 팔대 제사장도 하나가 죽지 않았습니까. 비율로 따진다면은······.”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마교가 중원에 몰래 침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는 점이 문제 아닙니까!!”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사정이 달랐다.

물론 외부의 강력한 위협 앞에서는 똘똘 뭉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이번 사건을 그 정도로까지 강력한 위협이라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마교가 마지막으로 난장을 부렸던 것이 벌써 백 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그사이 강호 무림은 유례없는 성세를 맞이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력이자 천급 마인의 정점인 팔대 제사장 역시 천무십칠성에 비기지 못한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고 있었다.

백삼십 년 전의 오태산 혈사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무림맹은 천하 각지에서 마교와 혈투를 벌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화산파는 오태산에서 마교의 주력 단체 중 하나인 아비대를 상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교의 함정이었고, 화산파는 그곳에서 전력의 팔 할 가까이를 상실했다.

그리고 정확히 30년 후. 구파는 진지하게 화산의 퇴출을 의논했다.

“우선은 실무진에서 대략적인 것을 논의하고 혹시라도 필요하다면 장문인들의 회합을 주선하는 쪽으로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그건 너무 번거롭잖습니까. 애초에 권한 자체가 한정적이고요.”

“장소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역시 이런 것은 전통적으로 무림의 대소사를 결정지었던 소림에서 하는 것이······.”

“글쎄요, 지난 이십 년 전 회합도 소림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무당에서 여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화산의 대표로 참가한 홍매당주 소여향이 슬쩍 그들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순서를 따진다면 이번에는 본파에서 여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번 사건에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기도 하니까요.”

무슨 이유일까?

제갈벽이 그녀의 말에 힘을 보탰다.

“저도 화산에서 여는 것이 괜찮다고 봅니다.”

마교를 상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들은 그야말로 절대 악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사문의 존속 역시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종남산에 모인 구파 칠가의 논쟁이 길어졌다.

* * *

같은 시간.

사문의 어른들과 함께 종남에 모인 후기지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문에서 애지중지하는 최고의 후기지수들이었다. 그 말인즉 인생을 살아오면서 특별한 장애를 만난 적이 없는 십 대들이라는 뜻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철이라고 합니다.”

검왕의 손자가 강아현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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