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49화 (49/288)

49화

신검합일(1)

“하지만 대체 어떻게······.”

운호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고작 몇 달 전, 지팡이를 밟고 하늘을 나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고수가 그렇게 갑자기 가다니.

하지만 공야찬은 운호의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벽운과 그 제자 아이가 무당에서 종남으로 귀환할 때, 마중을 나갔다가 그만 변을 당하셨다는구나. 거의 2년을 헤어져 있었으니 보고 싶으셨겠지······.”

사실은 그 2년 내내 쭉 따라다니셨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공야찬이 말을 이어갔다.

“대체 누가 어떻게 태을검선님을 해친 겁니까?”

“마교의 팔대 제사장 중 하나인 역천검귀와 그 직속의 도륜당의 마졸들이라고 하는구나.”

“잠깐만요, 차라리 다른 천무십칠성이라면 몰라도 마교의 팔대 제사장이면 천급의 마존 아닙니까. 헌데 그런 자가 중원을 횡보했다고요? 뭐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확실하다. 청무 태사조님께서 확인하셨다.”

“네? 청무 태사조님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급의 마존라고 하면 천기에까지 영향을 주는 대마두다. 그 이동만으로도 수많은 징조가 따라붙는다. 또한 호북의 무당에서 종남으로 귀한하는 길이라면 말 그대로 중원의 한복판이다. 천급의 마존이 중원의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그것도 도륜당의 마졸들을 이끌고?

게다가 갑자기 청무 태사조는 여기서 또 왜 나온다는 말인가.

공야찬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안 그래도 그걸로 말들이 많다. 그래서 조만간 구파와 칠가의 회합이 이뤄질 때 우리가 참가해야 할 것 같구나.”

“그건 서안부의 그 마인 때문입니까?”

“그래, 그 마인도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몇 년이나 서안부에서 암약을 하지 않았더냐. 천급의 마존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급의 마인이 그만한 기간을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지. 상부에서는 그것이 같은 선상의 일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그 말씀은?”

“그래, 마교에서 자신들의 마기를 감춘 채 움직이는 법을 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서안부의 그것은 일종의 시험이었고, 이번이 그것을 실전에 도입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측되는구나.”

예상치 못했던 마교의 움직임.

그리고 강호 무림를 대표하는 천무십칠성의 사망.

“아, 그리고 그 전에 종남으로 문상을 가야 할 듯하니 준비해두도록 하거라.”

“문상이요? 설마 사부님이 대표로 가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무리 최근 종남과의 관계가 조금 안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태을검선만 한 무인의 죽음이다. 이미 청무 사조님께서 비공식적으로 가 계시고, 외당주인 굉명사숙께서 대표로 참가하실 거다.”

“그렇군요.”

“아, 그리고 벽운 도사와 그 제자는 다행히 무사하다고 하더구나.”

* * *

“이런 말은 조금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저희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어허!! 재무 각주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재무각주 굉진자 이진섭이 장부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걸 보시면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외당을 통해 아이들을 훨씬 많이 내보내고 있습니다만 속가에서 올라오는 금액이 3할이나 줄어들었어요. 고정비 지출을 제외하고 나면 당장 내년에 자소단 생산량이 4할은 감소할 겁니다.”

“4, 4할이나요? 아니 홍매당주. 저 말이 진짜입니까?”

“예산이 좀 줄긴 했지만, 생산량이 그만큼 감소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외부 판매량의 비중이 늘어나는지라 문파 내부에 돌아오는 양은 그 정도로 감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그거야 외부 판매량을 줄이고 내부로 돌아오는 양을 늘린다면 해결되는 문제 아닙니까.”

옥녀봉 홍매당주 능라나찰 소여향이 허튼소리를 내뱉는 설매각주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간 평생 숫자랑 상관없이 무식하게 무공만 수련한 작자들은 저게 문제다. 무공이 세다고 조직의 장 자리에 올려두니 저렇게 장부 하나 제대로 해석할 줄 모른다.

“애초에 원료수급이나 생산인력 문제가 아닌 예산 문제로 생기는 일입니다. 고정비를 감당하려면 당연히 내부로 돌리는 양을 줄이고 판매량을 늘려서 감당을 해야지요.”

“아니, 하지만 그 속가 기부금이 3할 정도 줄었다고 자소단의 수량이 그렇게 줄어든다는 것이······. 애당초 우리 예산이 속가 기부금만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잖습니까.”

설매각주의 멍청한 소리에 재무각주 이진섭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화산 본산의 인원만 무려 사백육십삼 명입니다. 거기에 새로운 기수의 삼대 제자들 백칠십이 조만간 들어 올 예정이고요. 이들을 먹여 살리고, 수련시키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해보세요. 이건 수입과 무관하게 고정적으로 지출돼야 하는 비용입니다. 게다가 최근 상황에서 아이들을 속가로 내려보낸다고 추가로 들어간 비용들을 좀 보세요.”

“자자, 이미 다 끝난 일에 목소리 높이는 건 그만들 하시지요. 아무래도 이번 일로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장문인이 높아지는 장로들의 목소리들을 잠재웠다.

“장문 사형의 말이 옳습니다. 그보다 오늘 저희가 모인 이유인 이번 조문에 대해서나 조금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아무래도 이번 조문이 앞으로 있을 회합의 전초전 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공동에서는 장문인인 일권분혼(一拳分魂) 종능지가 직접 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제갈세가에서도 세가주가 직접 참가한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의 시선이 장문인에게 모였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물론 상황이 중대하긴 합니다만 저희는 새로운 기수의 삼대 제자를 받아야 하는 중요한 행사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제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런 인사들 사이에서 외당주가 과연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가······. 게다가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벽은 달변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굉명사제가 무공이야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그 이런 쪽에서는······.”

잠시 고민하던 장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기로 하지요. 권위야 어차피 그곳에 청무 사백님이 계시니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협상에 관련된 부분인데, 아무래도 이 부분은 재무각주님이 적임자이긴 합니다만······.”

회의를 들어오는 와중에도 밀린 서류를 들고 들어온 재무 각주에게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보시다시피 최근 문 내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니 곤란하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홍매 당주님 어떻습니까?”

“네? 저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산이 줄어 생산량도 줄어들었고, 덕분에 관리감독할 일 자체도 줄어든 상황 아닙니까. 그나마 여유가 조금 있지 싶은데요.”

종남파로 향하는 조문단.

옥녀봉 홍매 당주의 합류가 결정됐다.

* * *

“오래간만이네.”

“그러게. 진짜 오래간만이야. 운호 너는 그사이에 키가 좀 더 큰 것 같은데?”

“어, 한 3촌 정도?”

“와, 이러다가 굉이만큼 커지는 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지, 그 녀석 이제 키가 9척에 가깝지 않나? 그리고 난 이제 위석단 복용이 끝났으니 급성장도 끝났다고 봐야지.”

칠 척하고도 칠 촌.

이제는 어딜 가더라도 절대 작은 키는 아니다. 꿈속의 증무진인이 원하던 것보다 이 촌이나 더 자랐다.

하지만 변한 것은 운호만이 아니었다.

“그러는 아현이 너야말로 많이 변한 것 같은데?”

“눈치챘구나?”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하지만 운호가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너무나도 크게 달라져 있었다. 몸의 중심, 체중의 이동, 그리고 무엇보다······.

“다섯 근?”

“어멋!! 얘가? 호호호. 아주 숙녀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강아현의 손바닥이 빠르게 운호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다가왔다.

빠르고 강하다.

물론 운호가 가만히 그 손바닥을 내버려 둘 리 만무했다. 애초에 운호가 그 손바닥을 내버려 둘 만큼 배려심이 있었더라면 다섯 근이라는 발언 자체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우측으로 몸을 가볍게 틀었다.

하지만 강아현의 움직임 역시 만만치 않다. 옥녀진결의 이단공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폐관이 들기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빠르고 강하다.

하지만 발전한 것은 강아현만이 아니었다. 비록 검선의 가르침 당시 느꼈던 감각을 되살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자운검의 화후는 그사이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단순히 검을 다루는 기술만이 아닌 몸을 놀리는 기술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다섯 근 하고 여덟 냥인가?”

“이이익!!!”

백운호가 강아현의 움직임을 통해 무게를 더 정확하게 추측했다. 그 정확한 수치에 강아현이 할 말을 잃었다.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고작 다섯 달. 겉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강아현의 체중은 크게 증가해있었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단 하나. 몸에 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크게 증가했다는 뜻이다.

보통의 경우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강아현은 일류에 근접한 고수다. 기본적으로 단련이 된 몸이라는 의미다. 그런 몸에서 이 정도로 지방을 제거하고 근육을 채워 넣다니.

“사숙이 도와주셨구나.”

“어.”

종화와의 비무를 통해 아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근력임을 깨달았다. 내공이 신체를 보조하고, 기술이 근력을 보충한다고 해도 몸의 기초적인 움직임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신체다.

강진은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축적된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사춘기 끄트머리의 여성에게 가장 효율적인 약제가 아현의 성장을 도왔다.

“하긴, 종화 녀석을 생각하면······.”

“괜찮겠지?”

“글쎄, 녀석 목검이랑 진검의 위력 차이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 증가로는 확신하긴 힘들 것 같은데······.”

“아니!! 그거 말고. 태을 검선님이 돌아가신 것 말이야. 종소저한테는 그냥 태사조님이 아니잖아. 게다가 돌아가신 이유가 마중을 나오셨다가 그런 거니까······. 자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스스로를 원망할 수도 있고.”

운호가 잠시 종화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자기와 각별한 태사조님이 자신을 구하려다 돌아가셨다고 스스로를 원망한다고? 그 녀석이?

“글쎄다. 내가 보기에는 그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원수를 갚겠다고 이를 갈면서 수련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게다가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만나보게 될 텐데 뭐. 내가 서안부에 한 번 가봤잖아. 생각보다 본문과 종남이 가깝더라고.”

화산에서 종남까지 거리는 약 삼백오십 리. 길이 조금 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절정의 고수가 전력으로 경공을 펼친다면 네 시진이면 당도하는 거리다. 그리고 이번에 조문단에 참가하는 인원 가운데 삼대 제자는 운호와 아현이 전부였다.

그리하여 이틀.

화산의 조문단이 종남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오, 자네가 그 유명한 서안탐마동(西安探魔童)인가?”

“서안탐마동이요?”

“듣던 것보다는 키가 많이 크군. 몰라볼 뻔했어. 확실히 성장기는 성장기로구만.”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그리고 서안탐마동은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종남의 접객당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태을검선은 무려 70년이나 강호를 횡행한 노강호이자 무림을 대표하는 검객이다. 그 조문객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종남의 접객당이 북적거리는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화산파(華山派)

강호를 영도하는 세력이자 최근 종남과의 다툼으로 크게 화제가 됐으며, 이번 사태의 전조였던 서안 사건과 관련된 문파.

그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미리 종남에 조문을 와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모여든 탓이다.

“아, 아. 내가 결례를 범했군. 내 이름은 제갈첨. 강호의 동도들 사이에서는 무후재림(武侯再臨)이라고 불리고 있지.”

제갈첨이 우아하게 포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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