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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47화 (47/288)
  • 47화

    태을검선(2)

    늙은 노인이 자신의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다. 하지만 단지 그 동작에 운호는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결(無缺)하다.

    노인이 든 지팡이를 보는 순간 운호가 느낀 감정이었다.

    “호, 이걸 느끼다니. 제법이로구나. 그런데 고작 다섯 걸음? 느낀 것은 있지만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냐? 아니면 자신감이 과한 것이냐.”

    검선이 빙그레 웃었다. 운호의 등에서 식은땀이 솟구친다.

    한순간 수백, 수천 가지의 경우의 수가 그의 머릿속을 명멸했다. 하지만 부족하다. 저 노인의 지팡이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무한(無限).

    한순간 운호의 머릿속에 무한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뭐, 그거야 직접 시험해보면 알게 될 일이지.”

    들어온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노인이 내민 지팡이의 끝이 어느새 운호의 허벅지를 두들기고 있었다.

    -퍼억

    인지할 수 없는 공격이었을까?아니다.

    수도 없이 많은 가상의 공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방의 끝에서 그가 내줄 수 있는 가장 작은 피해가 바로 그 허벅지였다.

    상피액으로 단련된 피부가 일차적으로 충격을 흡수했다. 금골환으로 단금질된 뼈가 단단히 중심을 잡았으며 철령액으로 단금질된 근육은 나머지 충격을 받아냈다.

    운호가 검을 휘둘렀다.

    검선의 눈이 빛났다.

    좋다.

    그는 이러한 기질을 좋아한다. 설사,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상대더라도 일단 검을 내밀고 보는 기질.

    그는 검으로 도를 추구하는 도인이지만, 동시에 검극에 목숨을 거는 무림인이다. 그와 함께 시대를 이끌 것이라 평가받던 자들 가운데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비명에 간 자들이 대체 몇이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들 대부분은 저렇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기질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순간 검을 들이미는 것은 합격이다.

    “제법이로구나.”

    물론 합격이라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었다.

    검선이 자신의 지팡이를 가볍게 들어 운호의 검을 향해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 순간 운호가 자신의 손목을 빠르게 튕겨냈다. 검선의 몸을 노리는 운호의 검신이 춤을 추는 것처럼 낭창낭창 움직였다.

    종남의 무식하게 단단하기만 한 검으로는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다.

    ‘좋은 활용.’

    그 순간 검선의 지팡이가 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대로 찔러 나갈까?

    안된다. 쭉 찔러 나가던 검을 크게 우측으로 휘둘렀다. 동시에 운호의 몸이 좌측으로 크게 세 걸음 움직였다.

    지팡이를 쥔 노인이 사라졌다.

    아니다. 분명 노인은 그 자리에 지팡이를 쥐고 그대로 서 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순간 운호는 저것이 지팡이인지, 아니면 노인인지, 아니면 지팡이를 쥔 노인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노인의 지팡이가 마치 나는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퍼억!!

    오른 손목을 타고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왔다.

    단단한 근육이 보호해주던 허벅지를 맞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찌르르한 통증에 손목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한다.

    여전히 상대는 무결하며 무한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목격했던 가장 강력한 고수인 권신 청무진인 조차도 저런 감각을 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저 피할 수 없는 압도적인 규모의 재해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상대는 정답이 없는 질문이며 모든 것의 해답이었다.

    운호의 머리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했다.

    포원공의 진기가 그것을 도왔다.

    무결하며 또한 무한하다니. 대체 어떻게 사람에게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감히 사람이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눈앞의 저 노인이 사람을 벗어난 존재인가?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하지만 운호의 본능이 그것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벗어난 존재와 매일 함께한다. 저것은 그에 한없이 근접했지만,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사람은 무한할 수 없으며 무결할 수도 없다.

    그리고 눈앞의 저자는 명백히 사람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저 노인은 무한하지 않고, 무결하지 않다.

    이것은 단지 느낌이며 착각이다. 운호 자신의 감각이 저 노인은 무결했으며 또한 무한하고 느낄 뿐이다.

    별것 아닌 말장난 같았지만, 사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었다.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 가장 급선무로 삼아야 하는 것은 올바른 질문인 법이니까.

    무결은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렇다면 무한은? 모든 가능성의 종착은 현상이다. 현실세계라면 그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무한의 가능성이란 결국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일단 검을 휘두른다.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경우의 수는 무한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노인의 가능성은 무한하게 느껴진다.

    좁혀나간다.

    -딱!!

    노인의 지팡이가 또 한 번 몸을 두들겼다. 공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압도적이다. 순간순간 노인과 지팡이가 구분되지 않을 때마다 그것은 운호의 예상을 벗어난, 영역 밖의 움직임으로 그를 두들겼다.

    대체 어떻게!!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아니 이것을 대체 공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검을 움직였지만 노인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이 툭툭 운호의 몸을 두들겼다.

    충격이 누적됐다.

    금골환, 철령액, 상피액으로 단련된 몸이었지만, 거듭되는 충격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운호의 몸에 울긋불긋한 멍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러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맞고 또 맞았음에도 운호의 그 눈은 여전히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노인이 웃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내가 직접 나선 보람이 있지.”

    권신에게는 거래라고 말했지만,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검선의 손해다. 평생동안 화산을 넘기 위해 애를 써온 주제에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화산의 아이에게 가르침을 주다니.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다.

    하지만 검을 다루는 자로써, 저런 재능 앞에서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또한 그런 재능을 지닌 아이가 헤매는 그 길이 자신이 평생을 추구해온 검리와 일치하는데 그것을 어찌 보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아이야.

    보고 느끼고 몸에 새겨 두거라.

    네가 지금 당장 이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이야말로 너의 그 이상한 검술이 추구하는 극한일 것이니. 언젠가 네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검선의 지팡이가 움직였다. 운호의 감각이 또다시 흔들렸다.

    저것은 지팡이도 노인도 지팡이를 쥔 노인도 아닌 무언가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그가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벗어난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운호가 검을 휘둘렀다.

    여전히 상대의 검은 무한했다.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속도? 힘?

    아니다. 부족한 것은 상상력이며 이해였다.

    지팡이인지 노인인지, 아니면 지팡이를 쥔 노인인지 알 수 없는 저것은 운호가 예상하는 영역 밖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노인이 운호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 밖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본래 그러하다고 상상했다.

    운호가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지 못했다. 운호가 상상하는 그것은 사람이 휘두르는 검이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검선이 희미하게 웃었다.

    참으로 재능이 넘치는 아이다. 그저 보여주고자 했건만 벌써 저만큼이나 따라오다니. 하지만 이 이상은 무리다. 이곳은 아직 저 아이의 몸으로는, 저 아이의 내공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높이다.

    여기까지다.

    검선이, 그렇기에 검선의 지팡이가 운호를 노렸다.

    그리고 운호가 검을 휘둘렀다.

    상상의 그것은 분명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다. 하지만 운호는 최근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자운검(紫雲劍)

    사부에게 배웠던 자운검은 분명 그가 해낼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었다. 하지만 검을 다루는 그 수많은 방법이 그를 그 영역으로 도달하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것 역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폭발하듯 약동하는 포원공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그 문턱을 조금 낮췄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상 속 그것은 요원했다.

    강화된 신체가 약간의 무리를 감수하겠노라 나섰다.

    그래 봐야 새 발의 피다. 부족하다.

    수많은 검의 기술들이 운호의 뇌리를 스쳤다. 여전히 정확하게 이거다!! 싶은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몽원경에서 증무 태사조에게 수없이 당했던 수많은 수법들이,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궁구했던 수많은 기술들이. 그리하여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어떠한 감각이 운호를 움직이게 했다.

    운호가, 그렇기에 운호의 검이 움직였다.

    그것은 상상의 극한 속에서 보이는 움직임과는 달랐다. 하지만 분명 운호의 이 일검은 노인이 지팡이를 빼어들기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그 ‘무한’에 조금은 닿아 있었다.

    -쾅!!

    그리고 그것이 운호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 * *

    “맙소사. 고작 이 나이에 이 정도를 보여줬다고 벌써 신검합일(身劍合一)의 초입에 들어선다고?”

    검선이 경악했다.

    그래, 물론 깨달음은 한순간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라는 것도 그만한 기반이 있을 때 가능하다. 물론 저 나이에 심기체를 합일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뿜는 검기(劍氣)를 보여준다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그런 이상함을 넘어선 곳에 위치한 일이었다.

    저 자운검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신검합일이라는 점은 눈치채고 있었다. 검기(劍技)를 극한까지 단련하여 검을 마치 손의 일부처럼 다루게 하고, 그것을 통하여 검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궁금한 점은 대체 왜 저런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느냐 정도였다.

    결국, 검을 다루다 보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기 마련이거늘, 저것은 마치 아직 날개가 성숙하지 않은 새끼 새에게 강제로 나는 법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궁금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자연스럽게 하늘을 날아다닐 새에게 왜 저런 방식을 사용하는지. 하지만 이제 알 것 같았다.

    “이건······, 애초부터 이런 녀석을 위한 검술이로구나.”

    * * *

    “정신이 들었느냐.”

    정신을 차린 운호가 대뜸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네, 가르침을 받았으니 마땅히 감사해야지요.”

    검선이 웃었다. 영특하다.

    그가 물었다.

    “가르침을 줬다고 다 감사하다고 해서 쓰겠느냐. 내가 누군지 알고. 혹시라도 내가 흉악한 마두라면 어찌하려고?”

    “그야, 흉악한 마두가 화산에 나타났더라면 화산의 어르신들께서 가만히 계실리 만무하겠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그 검술. 종남의 태을검선 어르신 아니십니까.”

    “언제부터 알았더냐.”

    “처음부터입니다.”

    “처음부터라고?”

    검선이 진심으로 놀랐다.

    “헌데 어째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더냐.”

    “그야 목숨에 걱정이 없이 검선 어르신과 같은 고수와 검을 맞댈 기회는 흔치 않은 기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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