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46화 (46/288)

46화

태을검선(1)

권신이 운호의 자운검을 보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며칠 사이에 제법 훌륭한 발전이다. 본인의 내공이 부족함을 깨닫고 그를 메우기 위한 발버둥이겠지.

물론 궁극으로 가면 저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는 행동이 될 것이다. 한걸음에 뛰어넘을 수 있는 장애물을 굳이 일일이 피해갈 이유가 없는 것처럼 결국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 더 효율적이고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저런 궁구하는 자세 자체가 훌륭하다.

한편, 같은 것을 바라보는 검선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상승의 고수라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권신은 지금 백운호가 펼치는 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장담하건대 지금 중원에서 저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어째서······.’

대체 왜 저런 방식을 취하는 것일까?

저만한 재능이라면 시간을 두고 조금만 천천히 걸어간다면 얼마든지 정상적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을, 어찌하여 저런 비약을 원하는 것일까?

대체 어째서!!

“우리 거래 하나 하는 것 어떤가?.”

“거래? 무슨 거래?”

* * *

종화가 이를 악물었다.

백운호가 미래를 읽는 것이 아닌 이상, 그녀의 행동이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는 순간, 그가 미리 던졌던 그 포석들은 그저 멍청한 손해로 끝나야 했다. 그래, 분명 그녀가 복기했던 그 비무의 결과는 그러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백운호에게서 느껴지는 그 찝찝함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마치 늪에 몸을 담근 것 같은 끈적함.

분명 그녀의 검이 더 빠르고 더 강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승리한 것은 백운호였다. 백운호의 검극이 그녀의 복부를 강하게 꿰뚫었다.

-쿨럭

단단하게 단련된 복근으로도 쉽게 버텨낼 수 없는 일격. 진검이었다면 여지없는 치명상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강아현이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결과다.

조금 다른 수로 그를 흔들겠다고?

얄팍하다. 차선은 결국 차선일 뿐이다. 최선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대에게 차선을 택하는 것으로 승리하겠다? 내가 약해지는 것 이상으로 상대를 약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훌륭하지만, 그것도 결국 상대가 그 선택에 흔들릴 때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 리가.

오직 수 싸움으로 한정을 짓는다면 이대 제자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운호를 이길 사람은 흔치 않다.

‘아니, 어쩌면 아예 없을지도.’

강아현이 놀란 것은 오히려 다른 쪽이었다.

자운검(紫雲劍)

그녀가 최근 가장 공을 들인 무공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저것은 화산파의 무인들이 익히는 자운검과 껍데기가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무공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녀가 익힌 자운검이 5의 진기로 10의 위력을 내는 검술이라면 지금 백운호가 펼치는 자운검은 1의 진기로 7의 위력을 내는 검술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진기만 따졌을 때의 효율이다. 백운호는 그 효율을 내기 위하여 정말 많은 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저것은 명백한 손해다.

저런 잔기술을 익히는 시간에 내공을 증가시키는 쪽이 옳다. 저것은 내공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 체질의 백운호이기에 필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아현은 왠지 저것이 꼭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이렇게 왔다는 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겠지?”

“네, 사숙님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러면 일단은 네 신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측정해보는 걸로 시작하도록 하자.”

“정확한 측정이요?”

“그래, 정확한 측정. 약의 효능을 알기 위해서는 그 기본이 되는 현재 상태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으니까.”

기초적인 체력과 순발력, 반응속도에 대한 측정부터 시작해서 각종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까지 근 두 시진에 걸친 꼼꼼한 측정이 이어졌다.

“재밌네.”

강진이 웃었다.

백운호가 자신의 딸을 꺾고 이준형을 꺾었으며 종남의 대표라는 아이까지 꺾었을 때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의 짐작보다 훨씬 재밌는 숫자가 나왔다.

“지금 네가 복용하고 있는 게 위석단이랑 금골환이지? 그리고 철령액과 상피액을 바르고 있고.”

“네.”

“그러면 일단 이걸 가져가.”

강진이 미리 준비해둔 커다란 주머니를 운호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벽곡단.”

“네? 벽곡단이요?”

벽곡단이라면 곡물과 솔잎등을 사용하여 만든 대체 식단으로 수련동에서 육 개월 정도 먹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냥 벽곡단은 아니야. 금단(金丹)의 원리에 따라 내가 특별히 조제한 벽곡단이야. 앞으로 네 식사는 모두 이걸로 대체할 거야. 그리고 식사를 대체한다는 말은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뜻이야. 하루에 세 알. 이제 이걸 제외하고 네가 입에 넣을 수 있는 건 오직 물뿐이야.”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사람에게 식(食)이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얼마나 그래야 하는 겁니까?”

“글쎄다. 그거야 네가 목표로 하는 것, 그리고 너의 자질과 성취에 따라 달라지겠지. 아, 미리 말해두지만, 그거 몸에 좋은 것만 들어간 건 아니다. 독이라고 할만한 것도 제법 들어갔어.”

“독이요?”

“어, 몸을 정순하게 만들어서 진기를 쌓는 속도를 올려주긴 하는데, 그게 잠재적으로 수명 자체를 좀 갉아먹어. 좀 천천히 쌓이더라도 만수무강해서 경지에 오르려는 화산 무공이랑은 결이 안 맞는 단약이지.”

“이거 혹시 화산에 저 말고 먹는 사람 또 있습니까?”

“있었지. 지금은 아니지만.”

운호가 물었다.

“그게 누굽니까?”

“네 사부. 한 3년 정도 버텼나? 아, 참고로 이거는 일단 먹다가 중간에 중단하면 다시 시작 못 하는 약이다. 그러니까 다시 화식으로 돌아가려면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라.”

“알겠습니다.”

운호가 그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일주일 분량이니까, 다 먹고 다음 주에 다시 찾아와라. 맛없다고 아예 굶는 것도 안 된다. 시간을 아주 정확히 지킬 필요는 없지만 깨어있는 동안 두 시진 반 정도 간격으로 세 개를 꼭 먹어줘야 해.”

++

그날 저녁,

끔찍한 맛이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단약이 쓰고 시고 비리다. 이건 일부러 이런 맛을 내려고 해도 내기 힘들 것 같은 맛이다. 심지어 단순히 수명이 줄어든다는 문제가 아니라, 맛 자체가 파멸적이라서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역시 그걸 가장 먼저 쥐여줬군. 맛은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다. 나도 외당 임무 때문에 산을 내려갔을 때, 불의의 사고로 그것을 잃어버리지만 않았더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운호가 벽곡단을 먹는 모습을 본 공야찬이 부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사부님, 혹시 사부님은 이거 맛이······.”

“엉망이었지. 세상 가장 끔찍한 맛이었다. 예전에 반쯤 썩은 만두를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차라리 더 나은 맛이었던 것 같구나.”

미각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새삼 사부를 향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동시에 이런 끔찍한 맛을 감수할 수 있는 효과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 역시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생각보다 빠르게 해소됐다.

바로 그날 밤.

“운이 좋구나. 그 녀석, 도가의 비전을 제대로 이은 연단사다.”

“네?”

“네가 오늘 먹은 그 약, 기연이나 다름없다.”

도가의 비전?

백운호가 증무진인에게 되물었다.

“기연이라고요? 이게 정말 그렇게 대단한 약입니까?”

증무진인이 잠시 고민했다.

애매했다. 공과격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이걸 이렇게 사용해도 괜찮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운호가 그 강진이라는 자를 신뢰하는 것은 제법 괜찮은 일이라고 판단됐다. 그렇다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데 이 정도의 공과격을 쓰는 것은 나쁘지 않은 사용이겠지.

“아주 오래 전, 지금과 같은 진기의 사용이 알려지기 전 도가의 주류는 내단(內丹)이 아닌 외단(外丹)이었다. 그리고 그 강진이라는 녀석은 외단의 정수를 제대로 이은 연단사 같구나. 네가 먹었던 그 벽곡단은 그들이 신선이 되기 위해 만들었던 약이다.”

“네? 신선이라고요? 그러니까 그 약을 먹는 것만으로 정말 신선이 된다고요?”

증무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이론적 가능이라고 하심은?”

“기본적으로는 이백 년. 하지만 운과 체질에 따라준다면 육십 년 정도면 가능할지도.”

“이백 년이요? 이거 수명에 영향을 주는 약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래, 그래서 결과적으로 외단 쪽이 실패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효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운호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증무진인은 그 공과격이라는 것에 얽매여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꺼려 한다. 그런 만큼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래, 잡담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구나.”

자운검과 자운검이 맞부딪혔다.

지난 며칠 동안의 겨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증무진인과 백운호 자신이 펼치는 자운검에는 무언가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활용? 기술? 수법? 초식의 완숙도?

그래, 물론 그 모든 것들이 차이가 난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피상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마치 납매검의 합리성과 매농검의 모순적 효율성과 같은 자운검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철학에 관한 문제다.

납매검은 호신을 통하여 합리성을 이야기했다. 매농검은 조롱을 통하여 미시적인 효율과 거시적인 효율의 차이를 논했다. 그렇다면 이토록 화려한 기술들로 이루어진 자운검이 논하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증무진인의 검이 백운호의 검을 타고 올라왔다.

-서걱

그리하여 그 검이 백운호의 오른손을 단번에 잘라냈다.

고작 열일곱 합.

본격적으로 자운검의 수련을 시작한지 벌써 나흘.

오늘도 그는 증무진인의 공격을 채 스무합도 받아내지 못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강아현과 종화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호를 찾아왔다.

아현과 종화, 종화와 운호, 운호와 아현.

세 사람의 비무가 매일 같이 이어졌다.

종화는 매우 훌륭한 수련 상대였다. 그녀는 매일같이 패배했지만, 다음 날이면 무언가 새로운 해답을 찾아오곤 했다. 그것은 보통 오답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명백하게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반면 강아현은 조금 애매했다.

종화가 태을검을 사용하지 못하기에 가능한 결과이기는 했지만, 최초 종화와 그녀의 승부는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승부는 점점 일방적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단순히 종화가 강해지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었다.

그래. 지난 삼 주의 시간. 강아현의 검술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었다.

강아현과 종화가 모두 사라진 모옥.

밀린 집안일을 하기 위해 몸을 돌린 운호의 눈앞에 지팡이를 쥔 노인이 마치 그곳이 본래 자신의 자리인 양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네 녀석, 괜히 멀쩡한 처자한테 헛바람을 불어넣고 있구나.”

살짝 굽은 허리와 주름 가득한 얼굴.

하지만 그런 겉모습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눈앞에 사람이 있건만, 운호의 기감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권신 청무가 막아설 수 없는 압도적인 재해와 같은 두려움이라면, 이 노인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기괴함이다.

-꿀꺽

운호가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누구십니까.”

검선이 대답 대신 조용히 자신의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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