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44화 (44/288)

44화

선단(1)

종화의 시선이 강아현을 향했다. 그녀의 고운 얼굴이 흙먼지와 땀으로 엉망이다.

“그래,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하지만 어디 떠들고 다니면 안 된다.”

“알겠어.”

“영약이야.”

“영약이라고?”

백운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백 년 전만 하더라도 화산의 자소단이나 종남의 화룡단은 그 약효가 비슷했다. 하지만 지난 백 년간 화산의 자소단이 그 효능을 꾸준히 발전시킨 것에 반하여 종남의 화룡단은 그대로다.

그리하여 작금에 이르러서는 화룡단의 평균적인 효율은 자소단의 6할에 불과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런 종남에서 영약이라고?

자리에 주저앉아 호흡을 고르던 강아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차 홍매당을 물려받게 될 그녀다. 정말 종남이 새로운 영약의 개발에 성공했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설마 종남에서 새로운 영약의 개발에 성공한 건가요?”

종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렇다면 화룡단의 개량? 하지만 하루아침에 어떻게······.”

“아니, 그것도 아니고······.”

잠시 주저하던 종화가 입을 열었다.

“태청단이야.”

“네?”

“태청단? 태청단이면 무당의 그 태청단을 말하는 거야?”

무당의 태청단이라면 소림의 대환단과 함께 강호 최고를 다투는 영단 중의 영단이다. 하지만 종남의 무인이 무당의 영단을 대체 어떻게······.

“설마 그 암시장에서 거래됐다는 태청단이?”

“맞아.”

강아현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벌써 몇 년 전 일이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워낙에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탓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연구용으로 하나 매입하려고 했는데, 어느 미친놈들이 무려 금자로 구천칠백 냥을 불렀다고.

화산파에서도 가장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홍매당이라지만 금자 구천칠백 냥이면 토지가 300결. 어지간한 대장원 하나를 구매할만한 거금이다. 화산파 전체의 일 년 예산도 거기에 살짝 미치지 못한다.

“맙소사······. 아빠가 연구용으로 하나 구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태청단을 구매해간 곳이 종남이라니······.”

“맞아. 그것 덕분에 본문의 반찬이 매우 부실해졌지.”

그도 그럴 것이 금자 구천칠백 냥이면 종남의 오 년 예산이다. 당시 종남은 거의 삼십 년을 아껴 모았던 돈을 단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부족해서 속가를 통해 상당한 자금까지 빌려다 썼고 최근까지도 그 돈을 다 갚지 못한 상태다.

“확실히 태청단이라면 그 불가사의한 내공도 이해가 되긴 하네요.”

뜻밖에 강호의 비사 하나를 알게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운호 자신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비밀이었다. 결국 영약이라니.

“그러면 뭐 하겠어. 검술이 이 모양인데. 젠장, 내심 검술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내력 특성이나 이용해서 간신히 이기다니.”

조금 더 제대로 된 목검을 들고 온 둘의 승부는 종화의 신승으로 끝이 났다. 태을검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현이의 무공이 격발형이라는 것을 눈치챈 종화가 조금 더 수비적으로 버틴 결과였다.

“이기다니요. 아직 일승일패에요. 그러니 한 번 더 겨뤄서 승부를 내야죠.”

“뭐, 그래. 대련이라면 나도 환영이지. 어차피 여기서 한 달은 더 있어야 할 테니까. 다만 거기 백운호. 너도 같이 하자.”

“나도?”

“그래, 솔직히 너도 좋잖아. 나만 한 상대 어디서 만나기 쉬운 것도 아니고.”

종화의 제안에 운호가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저 목검으로는 태을검을 제대로 펼칠 수 없겠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종화는 제법 괜찮은 비무 상대였다.

게다가 어제, 오늘 저 두 사람의 비무를 생각해보면 아현이 역시도 꽤 재밌는 상대다. 그녀가 펼치는 내력을 이용한 자운검을 상대하다보면 최근 힘을 쏟고 있는 자운검에도 성취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 좋아. 그러면 내일부터 이 시간에. 비무는 돌아가면서 하도록 하자.”

“내일? 난 지금 당장 해도 괜찮은데.”

“내가 안 돼.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아. 쉴 때는 푹 쉬어 줘야지. 괜히 하루 먼저 움직이다가 며칠 더 쉬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백운호의 거절에 종화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거절하더라도 뭐라 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내일부터라도 시작한다는 것이 어딘가. 종화가 부러진 목검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내일 이 시간에 보자. 목검은 내가 또 만들어 오도록 하지.”

* * *

두 사람이 떠나고, 백운호는 평소와 똑같은 일과를 이어갔다.

영약이라······.

물론 반년 후 자소단이 예약되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약이라는 것은 사람의 체질을 강하게 탄다.

약의 효율, 휴지기. 그리고 내성까지. 백운호 자신은 그 모든 점에서 최악에 가깝다.

그가 알기로 이준형은 여덟 살, 강아현은 일곱 살에 처음 자소단을 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오 년과 육 년의 휴지기를 두고 두 번째 자소단을 복용했다. 물론 백운호가 먹었던 자소단은 그 수율이 상당히 높지 못했던 물건이었기에 그들만큼의 휴지기는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한계치가 그 녀석들만큼 높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잠깐의 고민.

그 순간, 무언가 번뜩이는 생각이 백운호의 머리를 스쳐 갔다.

“잠깐만.”

분명 조금 전 강아현은 그녀의 아버지인 강진이 연구용으로 태청단을 하나 사고 싶어했다고 말했었다.

또한, 십 개월 전, 위석단 때문에 화산금정 강진을 찾았을 때, 당시 강진은 운호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제법 높은 우선순위를 배정해주겠노라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래, 분명 자소단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만약 신약이라면? 태청단 급의 영약이라면 어쩌면 부족한 내공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게 아니더라도, 영약 쪽에 관련된 고민이라면 이렇게 혼자 끙끙 생각할 필요 자체가 없다. 화산금정 강진 사숙이야말로 이쪽 분야 최고의 전문가다.

망설일 이유 따윈 없었다.

백운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옥녀봉 홍매당으로 향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사숙님.”

“응? 이게 누구냐? 운호? 운허냐? 맙소사. 이야기는 들었다만 정말 놀랍구나.”

강진이 깜짝 놀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지막 만남으로부터 불과 십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겉모습만 본다면 운호는 거의 다른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위석단을 만든 장본인으로써 자신이 연단한 단약이 저런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강진을 흥분케 했다.

“어디 몸에 특별한 통증은 없느냐? 뭐 없다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급격하게 성장을 하게 되면 성장통이 오기 마련인데······. 역시 위석단이 인대와 근육의 성장까지 돕는 건가? 아니면 함께 복용한 철령액과 금골환 덕분인가?”

강진의 손이 운호의 몸 곳곳을 주물렀다. 사실 운호에게 연단사로써 그저 자기 몸이나 지키는 수준의 호신술만을 익힌 강진의 손을 뿌리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애당초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쪽은 운호였다. 강진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운호가 차분하게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후, 미안하구나. 워낙에 놀라운 장면이었던지라. 나도 모르게 흥분했구나.”

“아닙니다.”

“그래, 그나저나 여기까진 무슨 일이냐?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나올 자소단의 명단에 네 이름이 올라왔더구나. 하지만 지금 대충 몸을 만지면서 살펴본 바로는 앞으로 육 년은 더 있어야 휴지기가 끝날 것 같다만······.”

역시나.

고작 정상적인 자소단의 육 할 남짓한 녀석을 섭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휴지기는 강아현보다 이 년이나 더 길다.

‘망할 체질 같으니. 그래도 강진 사숙이 말을 꺼내준 덕분에 질문을 꺼내기가 더 수월해졌네.’

백운호가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

잠시 검지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고민하던 강진이 구김살 하나 없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다시 태어나면 가능하겠구나.”

“네?”

“아, 물론 농담이다.”

농담이라기에는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절반만.”

“절반이요?”

“그래, 환골탈태(換骨脫態) 정도 되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니. 절반 정도만 농담이라고 봐야겠지.”

“환골탈태요?”

반노환동(反老換童)에 맞먹는 전설상의 경지가 강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숙님, 대체 그게 현실에서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글쎄다, 권신님을 보고 있자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던데······. 반노환동이 가능하다면 환골탈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권신 사조님도 완전한 반노환동은 아니잖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지금도 그런 모습이신데, 십단공을 이룬다면 정말로 반노환동이 이뤄지지 않을까? 게다가 애초에 사람의 체질이 완전히 바뀌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아, 그게 아니라면 양신(陽神)을 이루는 방법도 있겠구나.”

점입가경이다.

양신이라니······. 그거라면 이미 사라진 전진도의 조사인 왕중양 정도나 도달했다는 경지 아닌가.

“확실히 너의 경우라면 환골탈태보다는 양신쪽이 더 빠르기는 하겠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응? 무슨 말이냐니? 운호 너 찬이 형님 밑에서 검종을 전수 받는 거 아니냐?”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 누구냐. 백사십 년쯤 전에 그 증무 진인이라는 분도 양신을 이루고 우화등선하셨잖아. 그러니까 검종이라면 당연히 환골탈태보다는 양신이지.”

매일 밤 꿈에서 마주하는 증무진인이 양신을 통해 우화등선을 했다고? 백운호가 처음 듣는 정보의 나열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강진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 맞다. 아니면 내가 만드는 신약이 성공한다면 또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신약. 그래, 드디어 강진의 입에서 뜬구름 잡는 신화의 영역이 아닌 현실적인 영역의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백운호가 조금 안심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선단(仙丹)이라면 환골탈태나 반로환동. 혹은 양신에 뒤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지.”

“선단이요? 설마 그 먹는 순간 바로 신선이 된다는 그 선단?”

“그래, 선단. 알다시피 도가 연단의 궁극적인 목표 아니더냐. 선단에 비하자면 대환단이니 태청단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과정에 불과하지.”

“그러니까 사숙님이 개발하신다는 신약이 설마 그 선단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물론 단번에 선단을 연단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단계가 있으니까. 그러니 우선은 태청단과 같은 수준의 약효를 만들어내야겠지.”

환골탈태, 반노환동, 양신에 이어 선단까지.

애당초 그런 것을 이룰 수 있다면 내공으로 고민할 이유 자체가 없다. 이것은 마치 ‘금자 백 냥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금자 일만 냥짜리 땅이 있으면 된다.’ 라는 대답을 들은 격이다.

강진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운호 너 신약에 관심이 있느냐?”

“신약에 관심이요?”

“그래, 예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그 나름의 성과를 보고 있기는 한데, 이 신약이라는 것이 워낙에 비용이 막대하게 필요해서 말이다. 여러 사람에게 투자를 받고 성공을 할 경우 우선 순번을 주고 있단다. 물론 단번에 네 체질을 바꿔놓을 선단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태청단 정도만 되어도 무림인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겠지.”

끌리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 ‘투자’라는 단어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사가에서 자금을 끌어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고아에 불과한 운호로서는 특별히 재산이라고 할 것이 없다.

“아, 그거라면. 죄송합니다. 제가 딱히 가진 재산이라는 것이 없어서요.”

“아니지. 너에겐 훌륭한 재산이 있지 않으냐.”

“네? 훌륭한 재산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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