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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43화 (43/288)
  • 43화

    새로운 시작(3)

    이 곳을 찾기 힘들었다는 종화의 말은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어제는 아무 생각 없이 화산파 내부를 찾아 헤맸고, 오늘은 약당 근처에 있던 웬 덩치 산만 한 녀석에게 길을 물었는데 처음에는 이대 제자인 줄 알고 존댓말까지 썼다. 아니 그 덩치와 얼굴로 열네 살이라니. 명백한 반칙이다. 무공이 너무 허접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속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덩치 녀석, 일부러 그런 것일까? 설명 자체가 아주 부실했다. 설명을 듣고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나절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망할 자식.

    어쨌거나 그렇게 간신히 찾아왔건만 그녀 앞에 놓인 것은 그녀가 원하던 백운호와의 비무가 아니었다.

    “환자를 상대로 대체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에요. 정 그렇게 싸우고 싶으시면 제가 대신 상대해드리죠.”

    백운호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강아현이 먼저 나섰다.

    하긴, 요즘 수다나 떨고 할 일 없이 모옥에 놀러 오는 모양만 보여서 그렇지, 강아현도 무인이다. 그것도 화산의 삼대 제자 가운데서는 손에 꼽히는 무인.

    종화만한 상대를 봤다면 한 번 검을 섞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종화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난 계집애랑은 안 싸우는데. 괜히 몇 대 두들기면 질질 짜기나 하고 골치 아프단 말이야.”

    백운호가 피식 웃었다.

    첫 만남부터 느꼈지만 참으로 재밌는 녀석이다. 본인도 여자인 주제에 계집애와는 싸우지 않는다는 저 발언이라니. 말을 뱉는 데 뇌를 거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 툭툭 내뱉는 것이 남을 도발하는데 굉장한 소질이 있다.

    물론 지금 저 녀석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백운호 본인이었다면 아마 ‘응, 자기소개 잘 들었다. 이제 내가 몇 대만 때리면 질질 짤 예정인가 보네?’ 정도로 대꾸했겠지만, 강아현은 달랐다.

    “다, 당신. 이전부터 느꼈지만, 입이 참 더럽네요.”

    “더럽기는. 강호에 나가봐라. 이건 더러운 축에도 못 끼니까. 아, 하긴 애초에 강호에 나갈 일이 없으려나? 넌 생긴 것도 인형 같은 게 딱 집에 모셔두면 좋을 것 같긴 하네.”

    이게 대체 칭찬인지 욕인지.

    강아현이 검을 뽑았다.

    “화산 삼대 제자 강아현. 옥녀봉의 진전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세에 종화의 눈빛이 변했다.

    “너, 생각보다 제법이로구나. 그래, 좋아. 나는 종화. 종남파 삼대 제자. 순양의 검을 익혔으며, 최초의 완전한 태을이다.”

    종화 역시 등에 메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백운호와의 비무에서 검이 와장창 금이 가버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종남의 검은 증무진인의 말처럼 무려 팔백 년 전에 유행하던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형태만이 아니다. 사용되는 강철 역시 그 시절 그대로다. 이제는 그런 식으로 강철을 생산하는 공방은 중원 전체를 통틀어 서안부에 있는 종남과 계약한 대장간밖에 없을 정도다.

    종화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야, 백운호, 너 혹시 이거랑 비슷한 검 가진 거 없냐?”

    “그렇게 쓸데없이 크고 무겁고 딱히 인장강도가 높은 것도 아닌 그런 검을 쓰는 곳이 이 중원에 또 있겠냐?”

    “하긴, 그건 그렇지.”

    은근히 비꼬는 말에도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여 인정해버린다. 여러모로 특이한 녀석이다.

    “그러면 이걸 어쩐다. 아, 그래 이렇게 하자.”

    녀석이 훌쩍 몸을 날렸다.

    대단한 경공이었다. 물론 경공 역시도 타고난 체형이나 재질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내공 수위를 보는데 가장 적합한 분야다. 비무 때도 느끼긴 했지만, 확실히 내공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 광양지체를 타고나 자소단을 두 개나 복용한 이준형과 비교해도 크게 밀릴 것 같지 않다. 아니, 오히려 약간이나마 더 높지 않을까?

    -두둑

    종화가 두꺼운 나뭇가지 두 개를 꺾어 손날로 잔가지를 툭툭 제거하더니, 그중 짧은 하나를 강아현에게 던졌다.

    “조금 아쉽지만, 별수 없지. 이걸로 대신하자.”

    강아현이 말없이 나뭇가지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강아현의 무공을 본 것도 벌써 일 년 전 일이다. 열네 살. 그야말로 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이다. 과연 녀석의 무공 수위는 얼마나 올라왔을까?

    시작은 종화였다.

    크고 강한 찌르기. 멀리서 지켜보니 확실히 벽운 도사님의 그것과는 수준 차가 느껴진다. 강아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백운호가, 그리고 현무 사백이 그것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물론 그녀는 현무처럼 고강한 내공을 지니지 못했다. 또한, 백운호처럼 모든 수를 읽어낼 줄도 몰랐다.

    그렇기에 같을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하여 예측했다. 부족한 부분은 막강한 내력으로 버텨냈다. 지난 일 년. 그녀 역시 자소단 하나를 더 섭취했다. 화산의 삼대 제자 가운데 내력으로 그녀를 확실히 압도할 수 있는 이는 이제 이준형 정도다.

    순양의 검이 강아현의 몸을 노렸다. 꾸준하게 쌓아 올린 납매가 그것을 막아냈다.

    ‘이 계집애 꽤 제법이네.’

    백운호가 보여주던 검과 닮았다. 특히 엄밀한 방어에서는 거의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확실히 부족하다. 그녀의 검에는 백운호의 검이 보여주던 그 이해할 수 없던 움직임들이 없었다.

    다만 이 작고 야리야리한 몸 어디에서 이런 힘을 뿜어내는 것인지 강아현에게는 종화의 중검을 버텨낼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고작 이것이 그녀의 한계라면 태을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순양으로 충분하다. 내력도 초식의 수준도 모두 그녀가 한 수 위다.

    종화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읽은 것일까? 강아현이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운호랑 비무 할 때 사용하려고 아껴뒀던 건데.’

    그녀의 두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검이 변했다.

    자운검(紫雲劍)이다.

    물론 어제 운호가 증무진인에게 배웠던 그 자운검은 아니었다.

    드높은 진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뽑아낸다. 이단공에 도달한 옥녀진결의 진기가 폭발적으로 약동했다. 진기의 속도가 빨라졌다. 절대적인 양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같은 시간 동안 활용할 수 있는 크기 자체는 그 빨라진 속도 만큼 늘어났다.

    그리하여 본래라면 수많은 기예가 결합하여 간신히 도달할 형태를 그저 압도적인 내공으로 구현했다.

    거칠게 몰아치는 자운검 앞에 순양의 검이 흔들렸다.

    ‘무게가 부족해.’

    순양의 검이 발휘하는 묘리는 그 크기와 무게에서 나온다. 나뭇가지로 얼추 길이는 맞췄지만 순양검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을 구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태을로의 전환 역시 난망하다. 이런 나뭇가지로 태을의 검을 사용하기에는 태을검에 대한 화후 자체가 크게 부족했다.

    -쾅!! 쾅!!! 쾅!!!!

    충돌과 충돌. 그리고 또 다시 충돌.

    어마어마한 경력을 품은 나뭇가지가 연달아 충돌했다. 생나무의 껍질이 터지고, 조금씩 그 섬유질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드득.

    종화의 나뭇가지가 먼저 부러졌다.

    발갛게 상기된 표정의 강아현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턱 끝을 치켜들었다.

    “젠장. 이거 무효야. 내 검만 있었어도.”

    “그렇게 안 봤는데 핑계가 참 많으시네요. 그리고 벌써 잊었나요? 검이 없던 것도 그쪽. 그래서 나뭇가지로 싸우자고 한 것도 그쪽이에요. 왜요? 강호에서는 싸우다가 무기 핑계 대면 없던 일로 해주나 보죠?”

    “제, 젠장!! 두고 보자!!”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종화가 마치 삼류 악당들이나 남길법한 대사를 남기고 후다닥 달아났다.

    강아현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옥녀진결의 진기를 수습했다. 격발형 무공의 단점이다. 한순간 폭발적인 힘을 주는 대신 지속력이 짧고 이후로 상당 시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그보다 저 사람 정말 대단하네. 내심 자신 있었는데 설마 밑천을 탈탈 털어야 간신히 동수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강아현이 혀를 내둘렀다.

    며칠 전 비무에서 백운호가 워낙에 잘 버텨내기에 일검 일검에 이만한 위력이 실렸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한번 백운호를 훑었다. 불과 일년 전 정수리가 그녀 콧잔등까지밖에 안 오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그녀를 내려다보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내공량이 보통이 아니더라고. 대충 느껴지는 것만 해도 최소한 이준형만큼은 되는 것 같더라.”

    “응, 나도 그렇게 느꼈어. 그런데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준형이는 자소단을 무려 두 개나 먹었고 거기다가 천하에서 내공을 쌓는 속도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광양지체를 타고 태어났잖아. 물론 그 종화라는 사람이 준형이보다 한 살 더 많긴 하지만 말이야.”

    아현이의 이야기에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화산의 내공은 소림과 함께 천하 제일을 다툰다. 그런 화산에서도 손에 꼽을 인재가 이준형이다. 헌데 종남의 제자가 그런 이준형보다 내공 수위가 더 높다고? 심지어 순양의 진기를 태을로 전환하는 복잡한 심공을 가지고?

    또한, 영약의 가능성 역시 그리 크지 않았다. 저자를 떠도는 이야기에서는 공청석유니 천년설삼이니 만년하수오니 하는 것들이 대환단보다 훨씬 뛰어난 약효를 발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가공을 거치지 않은 원재료는 절대 영단의 효율을 넘어설 수 없다. 당장 천년설삼 한 뿌리를 혼자 다 먹는다고 해도 그 약효는 자소단 한 알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종남 비전의 영약인 화룡단은 그 효율이 자소단의 육할 남짓에 불과하다.

    문득 나의 내공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증무 태사조님의 태도가 생각났다.

    둘 중 하나다. 정말 내공을 신경 쓰지 않으시든지, 아니면 내가 알아서 해결할 방법이 존재하든지.

    그렇다면 어쩌면 종화의 그것이 그 해결 방법일지도······.

    “아현아, 저 종화라는 애, 지금 약당에 머무르고 있지?”

    “어, 근데 왜? 찾아가 보게? 뭐 때문에?”

    “그냥, 궁금한 게 좀 생겨서.”

    “그럴 거면 몸은 다 회복하고 찾아가는 편이 낫겠네. 보니까 당장에라도 칼 빼 들고 한판 붙자고 달려들 기세던데.”

    “역시, 아무래도 그렇겠지?”

    몸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사나흘 정도의 요양이 필요하다. 아쉽지만 궁금증은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뭐야? 왜 오늘은 혼자야? 그 계집애는? 같이 사는 거 아니야?”

    종화가 또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이번에는 등에 무언가 짐 덩어리를 짊어진 채로.

    “그러는 너야말로 왜 또 온 거냐. 등에 짊어진 그 짐들은 또 뭐고?”

    “어제의 설욕전을 해야지. 어제 그건 검이 잘못되서 패배했던 거니까. 특별히 인근에서 제일 단단해 보이던 나무를 순양공으로 말리고 가공해서 가져온 거야. 이거라면 어제처럼 허망하게 검이 부러져서 승부가 중단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승부가 중단됐다고?”

    종화가 뻔뻔한 얼굴로 어제의 비무는 승패가 갈린 것이 아닌 도구의 문제로 잠시 승부가 중단됐던 것임을 주장했다.

    그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들은 것은 운호만이 아니었다.

    종화의 등 뒤. 강아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호에서는 그렇게 뻔뻔한 억지도 잘 통하나 보네요.”

    “어머, 너 왔구나. 자 여기 네 목검도 하나 준비해왔어.”

    강아현이 고개를 획 돌렸다.

    “에이, 그러지 말고. 솔직히 너도 아쉽잖아. 나만한 상대 만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글쎄요. 전 그쪽보다 훨씬 좋은 상대도 하나 있어서요.”

    두 여자의 시선이 백운호에게 향했다.

    확실히 저 녀석이라면 아주 괜찮은 상대이기는 하다.

    “에이, 그러지 말고.”

    “그러면 제가 대련해드리는 대신 질문 하나 대답해주시는 거 어때요?”

    “질문?”

    “뭐,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고요.”

    “아냐!! 붙자. 대신 사문의 비밀이나 누가 생각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무효야.”

    “알겠어요.”

    두 여자가 검을 휘둘렀다.

    * * *

    “뭐? 내공?”

    부러진 목검을 손에 쥔 종화가 곤란하다는 듯 운호를 바라보며 턱을 긁적였다

    “혹시 말해주기 곤란한 비밀이야?”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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