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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41화 (41/288)

41화

새로운 시작(1)

자하 진기의 특성은 노화의 억제다.

이는 화산의 원로인 청자 배 사형제들과 그와 같은 연배인 종남의 태을검선을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권신 청무 진인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청공이나 청우, 청허의 경우 태을검선보다 명백히 수준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외모는 40대 중후반에 멈춰있는 데 반하여 태을검선은 누가 봐도 일흔 이전으로 보기 힘든 쭈글쭈글한 노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하 기공을 익힌 화산의 다른 고수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자기 나이보다 적어도 십 년씩은 젊어 보인다.

하지만 장문인은 달랐다.

백운호가 장문인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얼굴 가득한 주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래도 반백반흑 정도는 되는 것 같았던 머리 대부분이 허옇게 새어있었다. 가혹한 업무량과 내공에 비해 부족한 자하 신공의 성취 때문이다.

약간의 긴장감.

사실 운호는 이미 화산파의 최고배분이자 최고고수인 청무 진인과도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눠봤다. 게다가 꿈이라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화산파의 전설적인 고수와 매일 밤 만난다. 어떻게 생각하면 긴장할 이유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운호에게 그들과의 만남이 이야기 속에서 듣던 영웅과의 만남이라면, 장문인과의 만남은 현실 속 어려운 어른과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긴장의 종류가 다르다.

“왔느냐.”

장문인이 손으로 자신의 눈두덩이를 한번 꾹 누르며 운호에게 의자에 앉으라 손짓했다. 그 동작 하나하나에 피곤이 물씬 묻어났다.

“몸은 좀 괜찮고?”

“네, 어제 태사조님께서 주신 옥고환 덕분인지 움직이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다행이구나. 어제는 수고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화산의 명예가 크게 실추될 뻔했다.”

“과찬이십니다.”

굉허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공은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다. 사실 여러 가지 보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너의 경우 내공의 부족함이 가장 큰 문제라고 판단되어 임의대로 자소단의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었다. 본래라면 3년가량의 대기가 있지만, 다행히 나의 직권으로 일 년에 하나씩은 우선순위로 배정할 수 있다. 다가올 5월 즈음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보상을 원한다면 지금 말하거라. 조정을 해주마.”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개인적인 호오를 떠나 공을 세웠다면 마땅히 그에 따른 상을 받아야지. 그보다 오늘 내가 너를 이렇게 따로 부른 것은 이런 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본래대로라면 엄격한 공과격에 따라 자소단의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로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어제 그를 찾아온 권신이 그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검종의 길이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굉허자가 손을 들어 항변하려는 운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네 말에 설득이 될 생각이 없다. 나는 젊어서 누구보다 눈부신 재능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진심으로 믿었다. 또한, 그 녀석이라면 검종의 무공을 대성할 수 있다고. 그렇기에 응원, 아니 사실상 부추겼다. 멍청했지.”

굉허자의 늙은 눈에 회한이, 그리고 그 입에는 회한에서 비롯된 분노가 깃들었다.

“그것은 항상 그렇다. 가장 빛나는 재능을 유혹하고 삼켜버린다. 내가 그것을 부추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 녀석이 정도를 걸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왜였을까? 쌓일 대로 쌓인 피로 때문일까? 그래 그랬을지도.

단지 검종의 길을 걷는다는 것 뿐.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운호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운호에게서 굉무의 모습이 보였다. 굉허 본인이 망쳐버린 비운의 천재.

곪아가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검종? 웃기지 말아라. 그 길은 고작 쉰 살도 되기 전에 퇴보하기 시작하는 길이다. 나의 멍청함이 화산을 빛낼 인재를 그런 길로 몰아넣었다.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말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잔살비마의 그 일은 없었겠지.”

굉무가, 아니 운호가 그저 그 감정의 토로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래, 어쩌면 너는 검종의 무공을 대성하여 대도를 이룰지도 모르겠다. 사백님은 괜히 그런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시니까. 하지만 그런 너를 보고 헛된 희망에 빠질 수많은 굉무, 현종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나는, 화산의 장문인은 대체 어떻게······.”

장문인의 긴 이야기 끝에 운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노력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력?”

“네, 선심후수가 검술일성에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주셔야죠.”

“선심후수가 검술일성에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하신다면 저 역시 노력할 것입니다. 검술일성이 선심후수에 못지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요.”

“노력이라······, 재밌구나. 하지만 그것이 대체 어떻게 이 문제의 답이 된다는 말이더냐.”

“선심후수도 검술일성도 결국 모두 화산입니다. 그리고 오래전 선사들께서 화산에 두 가지의 길을 남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화가 가장 찬란하게 꽃을 피웠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입니다. 어쩌면 선사들께서 화산에 두 가지의 길을 남기셨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

장문인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운호는 실망하지 않았다. 본래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다. 한번 경험되어 학습된 사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역시 이 몇마디 말로 장문인의 생각이 바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는 검술일성의 일맥을 싫어하고 부정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 그 역시 화산의 일맥이란 말이로구나.”

그저 이것으로 충분했다.

검술일성 역시 화산의 일맥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말살의 대상이 아닌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시키는 것.

화산은 지금까지 외부에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거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는 현상의 유지로 충분했었다.

하지만 지금 종남이라는 실질적인 위협이 나타났다. 그 위협은 화산이라는 오래된 거인에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운호가 말한 이 경쟁은 그 해결책의 일환으로 장문인에게 다가갔다.

마침내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라고? 종남의 검이 화산의 권을 꺾었다고? 그것도 화산에서?”

“네, 바로 닷새 전에 화산 본산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맙소사. 이거 큰일이로군.”

“이제 섬서의 패권이 종남으로 넘어간다는 신호탄일까요?”

-딱

제갈첨이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멍청한 자식. 좀 생각이라는 걸 해라. 물론 벽운이 현무를 꺾은 일은 대단한 소식이기는 하지만 화산이다. 화산.”

“하지만 화산이 점점 예전만 못해진다는 게 중론이었잖습니까.”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려 백 년을 무림 최정상에 군림했다. 중원 각지에 뿌리내린 속가만 하더라도 대체 얼마더냐. 게다가 그 청자 배 노괴들도 쌩쌩하게 살아있고. 내가 볼 때는 이거 종남이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은 게 아닌가 싶구나.”

사람들은 화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백운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의 무서움은 화산 본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화산은 한 세대에 약 오백 명의 속가 제자를 배출한다. 그것도 대충 가르친 허접한 제자들이 아니다.

무려 삼 년이다.

그렇게 삼 년 동안 대문파에서 기초를 단단히 다진 무사들이 강호를 구른다.

구파오가의 기준으로 볼 때는 간신히 제 앞가림이나 간신히 할만한 수준이지만 강호 무림 전체로 보면 호락호락하지 않다. 심지어 단체생활을 통해 획득한 그들끼리의 끈끈함 역시 범상치 않다.

그리고 그런 세월이 무려 칠십 년이 넘었다.

“당분간 섬서쪽 애들 촉각 곤두세우고 있으라고 해.”

* * *

약당

“내가 지다니······.”

박살 나기 일보 직전의 장검을 바라보는 종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을 키우기 위해 종남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수했으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또래에게 패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내가 진짜 졌다고?”

-주르륵

그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을 들어 그 눈물을 닦을 생각도 들지 않는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실패.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격류가 그녀를 휩쓸었다.

-멍청하기는.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사조님?”

-어지간하면 그냥 내버려 두려고 했는데, 고작 한 번 패배했다고 주저앉아서 엉엉 울기만 하는 꼴이라니.

아니, 대체 태사조님이 어떻게!!

종화가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물론 그런다고 저 멀리 있을 태을검선이 보일리는 만무했다.

-무공만 열심히 집어넣다 보니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치는 걸 빼먹었구나.

“가장 중요한 것이요?”

-다시 일어서는 법!!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넘어지는 것 자체는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니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서 엉덩이 털고 달려가느냐.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아서 엉엉 울기만 하느냐다.

종남의 검선은 화산이라는 이름 앞에 평생 셀 수도 없을 만큼 넘어졌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렸다.

-자, 어쩔 생각이냐. 그대로 앉아서 생각 없이 울고만 있겠느냐. 아니면 일어나서 다시 한번 달려 볼테냐.

종화가 옷소매를 들어 눈가를 쓱쓱 닦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태사조님의 말이 옳다. 중요한 것은 패배로 끝내지 않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 도전하면 그만이다.

“백운호라고 그랬지?”

종화의 눈이 반짝였다.

* * *

“절대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꼭꼭 숨어있더니, 귀여운 사손이 우는 꼴은 또 못 참는군.”

“말 만한 계집애가 질질 짜는 것이 귀엽기는. 아니, 그보다 대체 저 녀석은 어떻게 되먹은 녀석인가? 저 쥐꼬리만 한 공력으로 검기라니.”

“말하지 않았나. 천하제일을 노릴 재능이라고.”

“아니, 이게 그런 이야기로 가능한 말이던가. 나도 검에 있어서는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재능 소리 듣고 자란 몸이지만 저런 묘기는 상상도 못 하겠군.”

“그렇다면 뭐 천 년에 한 번 나올 재능인가 보지.”

권신의 성의 없는 대꾸에 검선이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어떤가? 이제 그 이인자인지 뭔지 하는 소리는 취소인가?”

“글쎄······.”

검선이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상상도 못 한 결과였다. 분명 종화가 순양태을검의 이초식인 천지여일을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당황을 감추지 못하던 녀석이 한순간에 그런 놀라운 검기를 선보일 줄이야.

하지만······.

“그러니까 분명 화산에 팔대 검술 가운데 오태산 혈사로 실전된 검술이 둘. 그리고 반쯤 유실된 검술이 셋. 온전한 검술은 셋뿐이었지?”

“아니, 그래도 비급은 대부분 온전하게 남아있으니······.”

“자네도 알지 않나 제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앞선 거인의 어깨를 밟아야지만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는 법이야. 그 혼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자네 역시 백운진인 없이 비급만 갖고 지금의 경지가 가능했을 리 만무하지 않나.”

“끄응······.”

검선이 권신을 향해 반쯤 진심이 담긴 농을 건넸다.

“차라리 저 아이 우리 종남에 양보하는 건 어떤가? 뭐, 좀 걸린다면 종남 화산 공동 전인도 괜찮겠구먼.”

* * *

몽원경

“드디어 공과격이 채워졌구나.”

증무진인이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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