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34화 (34/288)

34화

성장(2)

종남산.

“대체 외당에서는 뭐를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서안에 그만한 마인이 잠입을 했는데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니요.”

“아니, 그게 어디 외당 잘못입니까? 적풍 장로님이 불과 넉 달 전에 서안을 다녀오셨는데 마인의 마기 따위 느끼지도 못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그냥 그 녀석이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의 마기를 숨긴 탓입니다.”

“마인을 무슨 마기만으로 찾아낸답니까? 그것만 할꺼면 외당이 정보 수집에 그 많은 돈을 끌어다 쓸 이유가 없지요. 게다가 그렇게 치자면 화산의 그 어린 것들은 대체 무슨 수로 마인을 찾은 거랍니까?”

“아니, 그거야 그쪽은 권신도 있고······. 그분들이 워낙에 대단한 분들 아닙니까.”

백발의 노인 하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놈의 권신, 권신. 그분들이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 벌써 팔 년입니다. 대체 언제까지 거기에 함몰될 생각입니까. 게다가 화산에서 여기까지 삼백리 길이 넘어요. 정말 저자에서 떠도는 이야기처럼 그분들이 삼백 리 밖을 내다볼 수 있다고 믿는 겁니까?”

“그게, 권신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그 분이라면 꼭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 것이······.”

“맞습니다. 내가 팔 년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분 외모가 내 제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젊어 보였어요. 권신은 사람이 아닙니다.”

“애당초 너무 이른 선택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그분들이 확실히 물러나길 기다렸어야 했어요.”

“동의합니다. 우리가 너무 성급했어요.”

종남의 장로들이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그들은 한참 강호에서 활약할 시기, 권신이라는 규격 외의 인물이 보여준 활약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목격했던 세대들이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도 권신이라면 혹시?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짝!!

종남의 장문인. 순양검 적하의 커다란 박수 한 번에 시끄럽게 떠들던 장로들이 입을 다물었다. 화산의 장문인과는 격이 다른 지배력이었다.

“자자, 다들 진정들 좀 하지. 아니,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우리가 태을문을 통해서 서안의 지배권을 되찾으려던 것이 어디 누구 하나만의 의견이었던가? 애당초 어차피 청자배의 노사님들 무공이야 모두가 알고 있던 것 아니었나. 언제든 이런 변수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 지금 중요한 것은 이미 터진 일이 대체 어떻게 일어났느냐가 아니야.”

종남 일대 제자 가운데 가장 영민하다고 알려진 적운이 장문인의 말을 거들었다.

“장문 사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가 지금 주목 해야하는 것은 어떻게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서안에서 마인을 찾았느냐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마인을 참한 자가 현자배. 그것도 현무가 아닌 현종, 그리고 그의 제자라는 점이죠.”

“아니, 그거야 뭐 화산 아닌가. 그런 녀석이 나올 수도 있는 법이지. 그리고 그 제자라면 이제 막 본산 제자로 받아들여진 정도일 텐데, 그냥 옆에 있었던 것이 그냥 소문이 조금 과하게 난 것이겠지.”

적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일투성이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우연한 일도 많지요. 하지만 이건 그렇게 속 편하게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화산의 명백한 의도가 담겼다고 봐야 합니다.”

“의도라고요?”

“네, 사실 화산의 성세가 점점 쇠하고 있다는 것이 강호의 중론 아니었습니까? 실제로 강호의 호사가도 그렇게 떠들고 있고요. 화산은 그런 사람들에게 경고를 날린 겁니다. 청자 배 이후로도 자신들에게는 이런 인재가 있으니 함부로 굴지 말라는 경고요.”

“허어······.”

“게다가 문제는 실제로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뭔가 수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화산과 직접적으로 마찰을 만드는 것은······.”

“아니, 그게 무슨 직접적인 마찰입니까. 사실 서안은 우리 안마당 아닙니까. 이건 우리가 눈을 감아주고 있던 것이라고 봐야지요.”

“그거야 화산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아니, 백장로님은 대체 화산 사람이십니까? 아니면 종남 사람이십니까? 어째 하는 말마다 화산 편을 드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화산 편이라니요!! 나는 그저 현실적으로······.”

장로들의 갑론을박을 듣고 있던 종남의 장문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개판이다. 평소에는 그토록 영민하던 장로들이 화산의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변해버린다. 지난 수십 년. 화산이 종남에 미친 영향은 그토록 거대했다.

“벽운과 그 제자 아이를 내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화산이 젊은 아이들로 마인을 처단하여 이름을 떨쳤다면 우리라고 못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네? 하지만 자칫하다 그 아이들이 위기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아니, 그렇다고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항상 싸고 돌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말은 조금 더 무공을 숙성시킨 다음에!!”

“벽운이면 이미 경지에 오른 고수인데 거기서 더 숙성을요?”

적운이 한 번 더 소리를 높였다.

“자자, 그만들 하세요. 그 부분은 제가 자명 사숙님께 부탁드려보겠습니다.”

“네? 자명 사숙님께요?”

“하······, 하지만!!”

“화산의 무신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러니 자명 사숙님이 움직이시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겠지요.”

종남파.

천무십칠성의 일좌인 태을검선의 강호행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강진 사숙이 주머니 두 개를 내밀었다.

커다란 주머니 하나와 그 사분지 일 정도 돼 보이는 주머니였다.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영목의 품질이 좋았어. 총 751개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처음 만들어보는 약이라 나름 재밌었다. 그나저나 찬이 형님은?”

“사부님은 요즘 준비하실 것들이 많으시다고······.”

“하여간 세상일 혼자 다 하는 양반이라니까. 그나저나 그거 만들면서 대충 계산해보니까 효율이 극대화되는 지점은 육 개월 정도고. 그 이후로는 약효가 반감되기 시작해서 일 년 좀 지나면 이제 약이 아까운 수준이 될 것 같던데 이거 좀 너무 많은 거 아니냐?”

강진 사숙의 이야기가 반가웠다.

안 그래도 내가 먼저 꺼내고 싶던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되면 말하는 것이 매우 편해진다.

“일 년까지는 꾸준히 장복해볼 생각입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좀 이래서요.”

그의 시선이 나를 훑었다.

“흐음, 확실히······. 네가 지금 열셋인가?”

“네, 석 달 전에 생일이 지나 이제 열셋입니다.”

“그렇다면 내 딸보다 생일이 두 달이나 빠르구나. 통상적으로 남아의 성장기가 여아보다 이년 정도 늦게 시작되니까. 뭐, 시기상으로는 딱 좋은 시기로군.”

강진 사숙이 커다란 주머니를 펼쳐 거기서 단약을 빠르게 꺼내기 시작했다.

“뭐, 내가 만들었으니 큰 차이야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개중에 더 잘된 놈이 있고 조금 못한 놈도 있기 마련이지. 이왕 챙겨 먹을 거라면 좋은 놈들로만 골라주마. 여기 이 주머니에 담긴 것이 좋은 놈들이니 이것들로 챙겨 먹거라.”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그렇게 되면 386개가 남는구나. 그건 어쩔 생각이더냐?”

사숙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이건 어떠냐? 안 그래도 요즘 삼대 제자를 받은 녀석들이 자기 제자들 영약 챙겨 먹인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이라면 이 위석단들을 이용해서 아주 좋은 조건으로 녀석들이 품속에 꽁꽁 감춰둔 물건을 털어올 수 있을 것 같다.”

불감청이 고소원이었다.

내가 사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필요한 물건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

사조님이 말씀해주셨던 계획에 필요한 약물들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너 운이 좋구나. 철령액이라면 공국 영감님이 만들어둔 것이 조금 있다. 아무래도 소림에서 매일 만들어대는 것이 철령액인 만큼 솜씨는 확실하지. 게다가 상피액은 내가 진무옥 장로님 부탁으로 만들어 둔 것이 조금 남아있고. 금골환이 문제인데. 이건 내가 소림에 사람을 보내 물어보마. 셈이 조금 맞지 않긴 하다만, 부족한 부분은 형님의 첫 제자에게 주는 이 사숙의 선물인 셈 치자꾸나.”

“감사합니다.”

* * *

태사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소한 칠 척 오 촌까지는 자라야 한다.”

“칠 척 오 촌이요?”

“그래, 칠 척 팔 촌, 아니 이왕이면 팔 척쯤 되면 더 좋겠지만, 아무리 위석단이라도 그건 조금 힘들겠지. 어쨌거나 아무리 무공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해도 그것을 펼치는 건 결국 사람의 몸이다.”

보통 무가의 자제들은 어린 시절부터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그에 더하여 각종 성장에 관련된 영약들을 복용한다. 하지만 나는 영약은커녕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라났다. 괜히 내가 삼대 제자들 가운데서 홀로 왜소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 차이는 성장기가 끝난 이후 더 크게 벌어질 예정이었다.

“단언하건데 근골의 성장을 돕는 약 가운데 위석단은 으뜸이다. 저 팽가나 언가의 약이라고 해도 이만한 효율을 보지는 못 해.”

이른 아침

자소공으로 몸을 풀어주고 위석단을 섭취했다.

하루하루 몸이 자라나는 것이 체감이 됐다.

“다만 그만큼 몸이 빠르게 자라나는 부작용으로 몸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그러니 그럴 때일수록 외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후로는 사부와 함께 검술을 수련하고 늦은 저녁에는 상피액을 이용해 피부를 질기게 만들고 철령액으로 근육을 단단하게 조여냈으며 금골환을 섭취하여 뼈를 보호했다.

수준 높은 외공의 비결을 익힐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화산의 외공은 그 수준이 높지 못했다.

장굉 같이 태생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아닌 이상에서야 도검불침의 경지를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외부와의 연락 없이 오직 수련에 몰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루하루 몸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리고 그만큼 거리감이나 몸의 느낌이 매일 미세하게 달라졌다. 사부와의 검술 수련만으로는 그 감각을 온전하게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니. 멍청하기는.”

몽원경의 가혹한 수련이 나를 도왔다.

태사조님은 항상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매일매일 달라지는 나의 몸에 하루하루 적응해나갔다.

십 개월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제 막 신록이 피어나려던 화산에 하얀 눈이 소복히 쌓였다. 그리고 오 척 팔 촌에 불과하던 나의 몸이 칠 척 사 촌까지 자라났다.

“후우.”

이른 아침, 자소공 수련을 끝낸 나의 몸에 더운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추위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백······운호? 너 정말 백운호야?”

그리고 실로 오래간만의 손님이 뜻밖의 소식을 들고 방문했다.

강아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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