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성장(1)
인정한다. 화산은 효율적이었다.
청무 태사조님의 말씀이 다 맞다면 검종으로 도를 깨우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확률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나가 떨어진다. 반면 기종은 설사 도를 깨우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경지 이상으로 올라 설 수 있다. 집단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또한 청무 태사조님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화산을 대표하는 무인이 자신이 쌓아 올린 무공의 정수를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효율과 합리.
내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가끔 진짜 중요한 것을 그 효율과 합리 너머에 숨겨두곤 한다. 그래, 마치 조가촌의 그분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단언했다.
“틀렸습니다.”
“뭐라고?”
“화산의 규율과 제도는 틀렸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러니까 백운 태사조님이 세운 이 규율과 제도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냐?”
“네. 그렇습니다.”
권신이 눈을 치켜떴다. 그 얼굴에서 분노의 감정이 느껴진다. 태사조는 절대의 고수다. 그렇기에 특별히 내공을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그것만으로도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감히, 사조께서 세운 법도를 부정하다니. 지금 네가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심각한 말인지는 스스로 알고 있느냐? 화산의 법도에서 기사멸조의 대죄는 기맥을 폐하고 근맥을 절단하는 것으로 다스린다.”
“아니요, 기사멸조를 범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저는 백운 태사조님의 업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백운 태사조님께서는 구파에서 축출될지도 모르는 사문의 위기를 실로 현명하게 대처하셨습니다.”
그래, 백운 태사조의 시대.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시대를 함부로 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분은 분명 그분의 시대에서 최선을 다하셨을 테니.
하지만 올바른 선택이란 결국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대처다. 상황이 변했다면 올바른 선택 역시 변해야만 한다.
“생존을 앞에 뒀다면 효율과 합리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 화산의 앞에 놓인 것이 생존입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화산은 강호 제일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이제 백운 태사조님의 무게를 빼놓는다고 해도 그러합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 법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때 옳았던 것이 이제는 옳지 않게 됐습니다. 그렇기에 틀렸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단 말인가······. 하지만······.”
“네, 한낱 저잣거리에서조차 일 결의 땅을 가진 농부와 백 결의 땅을 가진 지주의 방식이 다른 법입니다. 하물며 화산은 대문파입니다. 그리고 대문파에게는 대문파에 어울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하나의 길만을 강요하는 편협이 아닌, 모든 길을 긍정할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백운 태사조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백운 사조님이라고?”
“네, 저는 그 당시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대로라면 증무 태사조님 이후 모두가 검종의 무공을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실제로 화산의 거의 모든 문도가 검종의 길을 걸었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오직 검종이 정도이며 기종은 좌도라며 백운 태사조님께 검종의 무공을 강요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나의 말이 청무 태사조님을 흔들었다.
하지만 강철로 빗은 것 같은 이 거인은 고작 그런 흔들림 정도에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아니, 요설이고 궤변이다. 그것과는 다르다. 검종은 이미 실패의 역사가 존재한다. 기종의 성공은 문파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검종의 성공은 문파를 쇠락케했다.”
“맞습니다. 실패의 역사가 존재하죠. 하지만 지금의 화산에는 그 당시와는 다른 존재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존재?”
증무 태사조가 마흔에 마존을 참하여 천하에 이름을 떨치던 당시의 화산에는 없었던 존재가 대체 무엇을 말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태사조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천하제일인. 그리고 천하제일인에 가장 근접한 무인 말입니다. 이미 기종의 무공이 천하에 통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검종은 말씀하셨던 것처럼 수백의 제자가 실패했습니다. 헌데 어째서 태사조님은 기종의 무공을, 아니 화산의 역량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내가······, 기종의 무공을, 그리고 화산을 믿지 못한다고?”
“네, 저는 설사 검종의 절대 고수가 나온다고 해도, 그때처럼 모두가 검종의 무공을 익힐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또한, 동시에 검종에 도전하는 그 몇몇 제자들이 설혹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여 우리 화산이 휘청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백운 태사조님이 정비하시고, 여러 사조님들이 일궈낸 화산은 천하제일의 대문파입니다.”
잠깐의 정적.
“하하, 하하하하하. 그래, 내가, 아니 우리가 믿지 못하고 있었구나.”
나의 이야기에 청무 태사조님이 크게 웃었다.
“대도(大道)는 무문(無門)이라고 배웠습니다. 맞습니다. 오직 좌도(左道)만이 방문(傍門)이라 하여 문이 없는 곳에 억지로 문을 만드는 법이지요. 그렇기에 기종의 무공은 무문일지 모르겠지만 오직 그것만이 무문이라 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무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검종에서 저의 도를 찾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방문이 아닌 무문이 될 것입니다.”
“맞다. 대도는 무문인 법이지. 어찌하여 칠십 년을 수행했음에도 그런 간단한 이치를 몰랐을까. 나는 화산을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태사조님의 말씀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아주 크게 깨우쳤다. 고맙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백운 태사조님이 정비하고, 우리가 키워낸 화산은 대문파이고 대문파에는 대문파에 어울리는 길이 있는 법이지.”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한 번 권하겠다. 기종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느냐. 앞서의 제안이 화산을 생각하는 제안이었다면 이번의 제안은 너를 생각하는 제안이다. 물론 체질적으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부실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너의 타고난 오성을 생각한다면 그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죄송합니다.”
청무 태사조님이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 이야기처럼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하지만 인간의 신념이라는 것은 세월 속에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마침내 고집이 되기도 한다. 나의 업은 화산 무공의 완성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렵게나마 너의 말을 긍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갑자가 넘는 세월을 오직 화산의 발전이라는 업에 얽매여 살아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이제는 화산의 발전이 아닌, 족쇄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긍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아이들의 과거······. 그런 것들은 설사 나라고 해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너는 여전히 검종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더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너의 의지를 존중하겠다. 동시에 노력하겠다. 너의 검에 아이들이 홀리지 않도록 그 반대편에 서겠노라고. 그리고 나의 다음, 그다음을 만들겠노라고.”
“감사합니다.”
“돕는 것 없이 네 경쟁자만 강하게 해주겠다는 고약한 노인네 심술에 감사는 무슨.”
* * *
“올바른 선택이었다.”
“네?”
“고······, 하여간 훨씬 대단한 고수의 가르침을 놔두고 한참 부족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니까.”
“가르침이라고요?”
“매일 밤 나에게 이토록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있지 않으냐. 내가 살아있던 당시에도 이토록 자세한 가르침은 거의 베푼 적이 없었다.”
“아······, 그러니까 이게 가르침이었군요. 이거 검종이 왜 그 모양이 됐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청무 태사조님은 증무 태사조님 이후에 아무도 검종을 대성하지 못한 것이 오직 하늘이 내린 재능만이 그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재능 이전에 가르침 자체가 워낙에 부실한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매일 태사조님과 하는 것이라고는 대련뿐이다. 헌데 이게 살아있던 당시에도 쉽게 베풀지 않던 가르침이라고?
아니, 사실 생각해보면 흔한 일이다. 하늘이 내린 천재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달하지 못하는 일 말이다. 누군가에게 숨 쉬는 법을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태사조님께는 검을 쓰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태사조님 같은 천재는 그저 이런 대련만으로도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겠지.
증무 태사조님이 나의 말에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말하는 것이 참으로 불경해졌구나.”
“딱히 신경도 쓰지 않으시잖습니까.”
이미 태사조님과 보낸 시간이 칠 개월을 넘어갔다. 그래서였을까? 이상하게 태사조님이 편하다. 아니 어쩌면 사실 이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화를 나눈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지만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같이 칼을 맞댔다. 부모님을 제외한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공유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태사조님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그렇지. 어차피 내가 누군가와 배분을 따질 처지도 아니고······, 너에게는 특히 그러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말씀이 많으십니다?”
“공과격이 제법 크게 쌓였다.”
“네? 공과격이 쌓였다고요? 하지만 오늘은 청무 태사조님의 무공을 견식한 것과 이야기를 나눈 것 말고는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요? ”
대체 공과격이란 무엇일까? 설마 화산파의 그것처럼 공과 과를 기록하여 상벌을 측정하는 용도일까? 여기서 상은 태사조님과의 대화이고? 그렇다면 대체 그 공과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묻지 말아라. 참으로 하잘 것 없는 이야기에 너무 많은 것이 필요하구나. 그보다 위석단에 관한 이야기나 조금 해주마. 칠백 알이라니. 그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영목의 상태가 좋아서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그거야 예상했던 범위 이내였고. 그보다는 그 연단사의 실력이 제법인 것 같더구나.”
증무 태사조님의 기준으로도 강진 사숙은 대단한듯 싶었다.
태사조님의 화법으로 미뤄봤을 때 제법이라는 단어는 태사조님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사실 위석단이야 긴 시간 섭취하면 섭취할수록 좋은 약이기는 하지만 칠백 알은 조금 많다. 보통 일 년 정도를 장복하면 그 효과를 거의 최대치로 본다고 봐야 하고 그 이상에서는 약효가 십 분지 일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습니까?”
“뭐, 무공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 약간도 얻으면 나쁠 것은 없겠으나 효율이 너무 떨어지지. 그러니 차라리 다른 약을 받도록 해라.”
처음이었다.
증무 태사조님이 이렇게 자세하게 나의 수련 일정에 대하여 말씀을 해주신 것은. 앞으로 약을 어떻게 복용할지와 어디에 중점을 두어 수련을 해야 하는지.
태사조님의 이야기가 반각 가깝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젠장, 쌓인 게 제법 많아보였는데 딱 여기까지인가? 그러면 이제 검을 들어라. 내가 오늘 검종이 대체 왜 그 모양이 됐는지를 아주 자세히 알려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