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30화 (30/288)

30화

화산비사(2)

“잘 다녀왔느냐.”

“네,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 소식은 들었다. 인급의 마인을 참살했다고?”

“운이 좋았습니다.”

“세상에는 운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지. 겸손이 과하구나.”

본문의 장문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신기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분명 덕담을 주고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는 냉랭하기 짝이 없다.

“운호라고 했더냐? 네 활약도 대단했다고 들었다.”

“그저 간신히 목숨만 부지했을 뿐입니다.”

“인급의 마인이 상대라면 그것 자체로 이미 대단한 일이지. 게다가 혼자 도망가는 대신 속가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면 그것은 크게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오는 길에 영목을 얻었다고?”

“네, 우연히 연이 닿아 영목을 채취할 수 있었습니다.”

“좋구나. 잘된 일이다. 홍매당에 맡긴다면 그에 알맞은 영약을 내리도록 지시하마.”

“장문 사백. 그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봐라.”

“이 아이에게 저희가 구해온 영목으로 제작한 영단을 먹였으면 합니다.”

“찬이 너도 알겠지만, 장문인이라는 자리는 문파 전체의 효율과 규칙을 생각해야만 하는 자리다. 물론 그 영목을 채취한 공로는 잘 알겠다만 본문의 규칙은 공과격을 따져 그에 가장 알맞은 보상을 내리는 것 아니더냐.”

사부가 말 없이 소중하게 품고있던 석판을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냐?”

“증무 태사조님의 유훈입니다.”

명백한 경악.

처음으로 장문인의 표정에 커다란 감정이 떠올랐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증무 태사조님이라고?”

“네. 영목을 채취하던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본래 영물이란 하늘이 정해준 주인이 있는 법이라고요.”

장문인이 석판을 양손으로 쥐고 몇 차례나 읽어 내려갔다.

“하늘이 정해준 주인이라······.”

“네, 증무 태사조님이라면 일찍이 그 공부가 하늘에 닿아 우화등선을 했다고 전해지지 않습니까. 아마 천기를 읽으셨던 게 아닐까요?”

사실 내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문파에서 까마득한 조사님이 남긴 이야기가 갖는 무게감은 막대하다. 심지어 증무 태사조님이라면 화산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다. 그런 분이 남긴 글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그렇구나. 알겠다. 홍매당에는 내가 전적으로 협력하라고 이야기해두마.”

“감사합니다.”

* * *

“젠장,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폭거야.”

“폭거가 아니라 인과응보겠죠.”

“인과응보라니!! 애당초 계약 자체가 나에게 일정 지분이 약속된 계약이었다고. 내가 어? 북경의 제안을 받고도 여기 눌러앉은 이유가 뭔데. 표준 생산량을 초과하는 분량의 이 할을 내 몫으로 주기로 해서 남은 거잖아. 근데 수율 잘 나온 녀석도 아니고 그냥 미달품 몇 개 좀 빼돌렸다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옥녀봉 홍매당 수석 연단사 강진이 투덜댔다. 물론 그의 옆에서 함께 일하고 있던 차석 연단사 종묵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거야 당주님과 결혼하시기 전 이야기잖습니까. 부인이 홍매당 당주니까 이제는 홍매당 예산도 생각해주셔야죠.”

“젠장. 내가 이래서 문내 연애가 싫어.”

“그건 당주님도 마찬가지겠죠? 애당초 지금 홍매당 예산 쪼달리는 이유가 수석님이 신약 개발한다고 자금 잔뜩 끌어다 쓰는 바람에 생긴 일 아닙니까. 화산파를 대표할 새로운 영약을 만드시겠다고요.”

“아니, 그건 소림에는 대환단이 있고 무당에도 태청단이 있는데 우리라고 언제까지 자소단이나 만들고 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도 화산이 소림 무당과 어깨를 나란히 한게 벌써 백 년이 다 돼가는데 말이야.”

종묵이 강진의 말에 반박했다.

“우리도 자하신단 있잖아요. 그거 하나가 대환단 두 개는 족히 되는 효율 아닙니까.”

“자하신단 같은 소리 하네. 그게 무슨 비방이 좋아서 나온 약이냐? 자소단 만드는 약방에 재료만 무식하게 공청석유랑 천년균사 때려 박아서 나온 거지.”

“근데 대환단이나 태청단도 귀한 재료 쓰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도 귀함의 정도가 다르지. 대환단이나 태청단은 그래도 10년에 한두 개 정도는 꼬박꼬박 나오잖냐. 근데 우리 자하신단인가 뭔가는 무려 80년 전에 다섯 개 나오고 소식이 없네? 그리고 솔직히 약방 자체도 별로야. 당장 내가 그 재료들 썼잖아? 그러면 지금쯤 천무십칠성 권신 청무 진인이 아니라 그냥 천하제일인 청무 진인이야.”

“그거야 뭐, 그때 우리 문파에 연단 기술이 좀 낙후되긴 했었죠.”

-으갸갸갸갸

한참 그렇게 수다만 떨던 강진이 약초 바구니를 앞으로 쭉 밀어내고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석님. 그만하시려고요? 오늘 할당량 다 못 채우면 당주님이 또 엄청 화내실 텐데.”

“그만하기는 누가 그만한다는 거야. 다했어. 오늘 할당량.”

“네?”

종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수다는 같이 떨어놓고, 그가 절반 조금 넘게 하는 사이에 벌써 약초 손질을 다 끝냈다고? 종묵의 시선이 강진의 바구니로 향했다.

완벽했다.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역시 젊은 나이에 중원 최고의 연단사로 꼽히는 실력자다운 솜씨다.

“진짜, 내가 이런 쓸데없는 단순 노동을 할 상황이 아닌데 말이야. 이게 다 인력 낭비라니까. 얼른 가서 신약 개발이나 구상을······.”“삼천오십이 냥.”

그들의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보.”

“그놈의 신약 개발하겠다고 가져다 쓴 돈이 만육천칠백삼십 냥. 아직까지 빚이 금자로만 삼천오십이 냥이에요.”

“하하, 여보, 그거야 내가 다 말했잖아. 일단 신약 개발에 성공만 하면. 자기도 알잖아. 태청단이 지난번에 암시장에서 얼마에 거래됐는지. 무려 금자 구천칠백 냥이야. 그 정도 손해는 그냥 한 방에 메울 수 있······.”

아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에 강진이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야. 굳이 이렇게 찾아오지 않더라도 내가 할 일은 아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하하.”

“현종 사형이 찾아왔어요.”

“형님이?”

“네, 단약 제작을 부탁할 모양이에요.”

“단약 제작을? 이상하네. 형님이라면 화산에서 그런 거랑 제일 안 어울리데.”

강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공야찬이라면 몇 년 전에 조금 약효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추 자소단 근처는 갈만한 약을 몰래 찔러줬을 때 자신에게는 딱히 필요 없는 물건이라며 거절했던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단약 제작 때문에 이렇게 찾아왔다고?

“그게 조금 특별한 단환인가 보더라고요.”

“특별?”

강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세상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다. 그가 마치 나는 듯한 속도로 응접실을 향해 달려갔다.

* * *

응접실에 홍매당의 수석 연단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산금정(華山金鼎) 강진.

연단 실력으로는 소림의 공국 신승과 함께 천하 제일을 다툰다는 그는 듣던 대로 굉장한 미남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강아현의 얼굴도 조금은 엿보인다.

“형님!! 너무 오래간만에 찾아오신 거 아닙니까? 이러다가 아주 얼굴도 잊어버리겠습니다.”

“삼대 제자들을 기르는 일로 워낙에 바쁘지 않았더냐.”

“에이, 그래도 한 번 찾아오면 어디 덧난답니까? 게다가 제가 아현이 통해서 보내는 약은 왜 죄다 돌려보낸 겁니까? 대충 보니까 몸도 안 좋아 보이는구먼.”

“지금 내 내공도 내 수준에서는 과하다. 어린아이가 보검을 휘두르는 것은 남에게도 그렇지만 자신에게도 위험한 짓이지.”

“거참, 남들은 다 하는 것을. 하여간 그런 분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연단을 맡기겠다고 이렇게 직접 찾아오셨습니까?”

조금 놀라웠던 부분은 사부님이 강진 연단사님과 아주 친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부님이 평소 남들에게 보이는 사근사근한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사부님과 이분의 친분을 증명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항상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 던졌다는 뜻이니 말이다.

“내가 먹을 약이 아니다. 이 아이가 먹을 약이지.”

“아, 형님 제자로군요. 그 백운호라고 했나? 아현이한테는 들었다. 근데 바로 얼마 전에 자소단을 먹었다고 들었는데? 물론 그게 수율이 상당히 불량한 녀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소화해서 자리를 잡고, 새로운 약을 먹으려면 몇 년은 휴지기를 가져야 할 텐데?”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종류의 약이 아니다.”

“그러면요?”

“위석단.”

연단사님이 잠시 자신의 무릎을 톡톡톡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서가 여덟 번째 책장 세 번째 단에 제목 없던 책······. 그러니까 위석단이면 낭강목 뿌리를 주재료로 하는 영단인데······. 설마 낭강목 뿌리를 구해오신 겁니까?”

“운호야.”

내가 등짐에서 낭강목 뿌리를 꺼냈다.

거의 내 머리통 세 배는 될법한 크기로 뭉친 나무뿌리에 그가 눈을 번쩍였다.

“맙소사. 이만한 크기라면 적어도 이백 년은 묵은 놈이겠군요. 위석단이라······. 뭐 좋습니다. 본래라면 종묵이 녀석에게 맡겨도 될 일이기는 합니다만 형님의 제자이니 제가 직접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고맙기는요. 그보다 잘 챙겨 먹이기나 하십쇼. 위석단은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만한 양이라면 600개 정도 나올 텐데, 일단 복용을 시작했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장복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보이니까요. 알겠느냐?”

연단사님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네, 연단사님. 명심하겠습니다.”

“연단사님은 무슨. 사숙이라고 부르거라. 내가 비록 화산의 제자는 아니지만 네 사부의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사이다.”

내가 슬쩍 사부의 눈치를 살폈다.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숙님.”

“그래. 위석단은 지금부터 재료를 손질하고 연단에 들어간다면 아마 보름 후쯤에는 물건이 나오겠구나. 그때와서 찾아가도록 해라.”

“네, 감사합니다. 사숙님.”

“감사는 무슨. 그렇게 감사하면 그냥 저기 저 무정한 양반이나 가끔 데리고 오거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뚱한 얼굴을 보기도 힘들 것 같으니.”

* * *

“소식 들으셨습니까?”

“당연하지. 요즘 아주 애들도 그것 때문에 난리다. 난리.”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에이, 그게 상상도 못 할 정도는 아니지. 그래도 심득을 얻으셨으면 강론 정도는 하실 법도 하잖아. 물론 그 대상이 삼대 제자들까지 다 모아서 하신다는 건 놀라운 일이지만 말이야.”

“네? 강론이요?”

“응? 뭐야? 너 청무 사조님께서 하시기로 한 강론 이야기한 거 아니었어?”

“저는 현종 사형이 무림행에서 만난 기연을 말한 건데요?”

“기연이라고? 그러면 현종 사형이 그 마인 참살한 게 그 기연 덕분이었어?”

“아니, 그건 아니고. 선후가 좀 바뀌기는 했는데. 그보다 청무 사조님이 강론을 하신답니까?”

“어, 사흘 후에 대연무장에서. 삼대 제자까지 전부 다 참석하라고. 근데 그 기연 이야기는 대체 뭐냐고.”

사흘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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