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서안행(3)
서안은 큰 도시다.
그 기원을 쫓아보면 무려 이천 년 전 주나라 때부터다. 이후 춘추전국시대의 패자였던 진나라를 걸쳐 마침내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에는 제국의 수도 역할을 했다. 전성기에는 인구수만 백만에 육박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제국 물류의 중심이 황하에서 장강으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오십 만에 가까운 사람이 살아가는 대도시다.
내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자세히 알고 있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사실 우리 주양문이야 말로 이 서안의 정당한 지배자라 이 말입니다. 황소 그 멍청한 놈을 피해 희종 황제 이현이 도주를 할 적에 남아서 백성들을 위무하고 황소와 일대일로 담판을 지어 백성들을 지켰던 게 누굽니까. 저의 10대조이신 조량님 아닙니까.”
지금 내 옆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떠드는 이 남자, 다름 아닌 주양문의 방계 조곽 덕분이었다. 방계 주제에 가문에 대한 자부심은 또 어찌나 대단한지 무려 한 시진이 넘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쓸만한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양문에 도착하기 직전, 사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파견된 목적은 간단하다. 최근 주양문이 자신의 입지에 굉장히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니 화산과의 관계가 여전히 돈독하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주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게 전부인가요?”
사부가 차게 웃었다.
“그럴 리가. 애당초 그것이 목적이고, 그것만으로 해결이 될 것 같았다면 내가 아니라 사숙 중 한 분이 나오셨겠지.”
“그렇다면?”
“적절한 선에서 무력을 써야 할게다. 화산의 힘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줘야겠지. 그리고 그러기에 장로급 인사는 너무 무게감이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니다.”
사부가 말을 삼켰다.
차가운 웃음과 타오르는 분노. 표정과 말. 그리고 속에 품고 있는 감정이 충돌한다. 못 본 척 눈을 돌렸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적절한 선이 어디까지냐를 알아내는 일이다. 이것은 주양문의 말만 들어서는 안 될 일이야.”
“그들로서는 이번 기회에 최대한 본문의 힘을 빌려 쓰고 싶어 하겠군요.”
“그래, 만약 이곳이 서안이 아니라면 최악의 경우 그냥 못이기는 척 넘어가 줘도 괜찮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주양문의 경쟁자는 태을문. 우리와 같은 구파인 종남파에서 첫손으로 꼽는 속가다.”
사부가 말을 이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주양문과 태을문은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는다. 중간에 관중문이라는 서안의 태줏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아마 우리의 상대는 이 관중문, 혹은 관중문에서 부리는 하위 문파가 될 확률이 높다.”
“제가 할 일은 그 선을 조사하는 일이 되겠네요.”
“그래, 아마 나는 주양문 쪽 사람들이 그런 것을 조사할 틈을 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본래라면 사제를 하나 정도 더 데리고 왔어야 하는 임무이건만······.”
“괜찮습니다. 아시다시피 저잣거리라면 특히 저의 전문분야죠.”
“그래, 잘 부탁한다.”
* * *
서안은 이천년을 내려온 도시답게 매우 거대했다. 이곳 주양문에서 서안부성의 남문까지만 해도 십 리가 넘는 거리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나라 시절 계획된 작은 구역에 불과하다. 인구 오십만의 거대도시 서안은 이 사대문 밖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성벽에서 적당히 떨어진, 도시의 먹이사슬 최하단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빈민가. 거적때기 몇 장 얼기설기 엮은 것을 집으로 삼는 자들이 가득한 곳이다.
“아니, 도대체 볼일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냄새나는 먼 곳까지 직접 나오시는 겁니까? 그냥 아랫것들 써도 될 텐데요.”
조곽이 코를 틀어 막고 오만상을 쓴 채로 물었다. 이해한다. 사실 오래간만에 맡아서 그런지 나도 영 적응이 되지 않는 악취다.
내가 근엄한 표정으로 답했다.
“수양하는 사람으로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가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사실 내가 말하고도 조금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기는 했다.
내가 다섯 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저자를 떠돌아다니면서 무려 오 년 동안 목격했던 도사며 승려 중에서 빈자와 약자를 긍휼하게 여기는 사람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뭐, 당연한 일이다. 좋은 사람은 항상 손해를 보기 마련이고, 그렇게 손해만 보다 보면 누구보다 빠르게 세상을 떠버리니까.
“이런 삐까번쩍한 귀공자께서 대낮부터 이런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야야, 어쩐 일이시겠냐. 대낮부터 그게 급하셨겠지.”
“멍청한 새끼가? 인마, 그게 아무리 급해도 저기 물 좋은 곳을 가셔야지. 이런 개 같은 곳에는 대체 왜 오시겠냐?”
“그런가? 에이, 근데 좀 특별한 취향인 분들도 있잖아. 그냥 허리 흔드는 거 말고, 이런 거 저런 거 좋아하는 분들 말이야.”
일그러진 얼굴. 어딘가 한 군데씩은 고장이 난 것 같은 몸뚱이.
얼굴에 ‘나는 흑도의 하류 잡배입니다.’라고 크게 써 붙인 것 같은 이인조가 등장했다. 저런 놈들은 저잣거리를 떠돌던 당시의 나에게는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린아이와 뺀질한 남자 하나의 조합이다. 얼핏 생각하면 만만해 보인다. 하지만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을 조심하라는 무림의 격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만 생각이라는 것을 해도 저따위로 굴어서는 안 된다.
하긴, 그런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면 애당초 이런 곳에서 저런 꼴로 돌아다니지 않았겠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밑바닥 머저리들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 감히 누구 앞이라고!!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조곽이 한 걸음 앞으로 성큼 나섰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저자에서 생활하던 당시에도 가끔 이런 일들이 있었다. 쓸데없이 자기 실력을 감추고 투덕거리고, 결국 조직이 하나 결딴이 난다.
나는 그때마다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위험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면 될 텐데 대체 왜 그걸 굳이 숨기고 다니는 걸까? 물론 지금 나는 이곳의 상황을 조사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하지만 그게 굳이 나의 정체를 숨기고, 쓸데없이 싸움을 키워야지만 가능한 일일까?
-짜악!!
나의 검집이 녀석들의 얼굴을 두들겼다.
명문 화산에서야 최약체에 속하는 내공과 근력이라지만, 이런 뒷골목. 이미 몸의 일부가 망가진 놈들에게는 그야말로 천외천이다.
멍한 표정으로 털썩 쓰러져 자신의 턱을 부여잡은 녀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번에도 내 검이 검집에서 뽑히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두목에게 안내해라.”
“두, 두목이······.”
“멍청아!!!”
멍한 표정으로 되물으려는 녀석의 입을 옆에 녀석이 필사적으로 틀어막았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는 위협을 정확하게 알아듣다니 그래도 두 놈 중에서는 그나마 똘똘한 녀석이다.
“지금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아, 아니!! 길이 너무 더러우니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시면 제가 바로 데리고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공격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조곽이 또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네가 동료들을 우르르 끌고 오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믿지?”
후,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가끔 생각 없는 놈들은 조직원들을 우르르 끌고 나온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다 끌고 와도 상관없다. 어지간하면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다만, 그렇다고 너희가 그런 상황을 자초하는데 그걸 마다할 이유는 또 없지.”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동료들이라고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인 놈들입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녀석들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 다 가려고?”
“네?”
“아이고, 아닙니다!! 여기 이 녀석이 몸이 안 좋아서 찬데 오래 앉으면 안 돼서요. 그래서 일어난 겁니다. 제가 아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더 멍청한 녀석이 덜 멍청한 녀석에게 소곤거렸다. 물론 그래봐야 마치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지만 말이다.
‘왜 네가?’
‘그러면 내가 가야지. 너 두목한테 상황 설명 잘할 자신 있어? 어설프게 말했다가는 괜히 두목한테 두들겨 맞고 죽는 수가 있다?’
‘그, 그런가?’
녀석 중 하나가 절뚝거리는 다리로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하여 복잡한 골목으로 사라졌다.
조곽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협객행을 하실 생각이로군요.”
“협객행이요?”
“네, 안 그래도 힘든 삶을 살아가는 빈민들을 갈취하는 버러지들을 한 번에 모아서 싹 정리하실 생각이라니. 역시 화산의 협객이십니다. 설마 본문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저런 벌레 같은 놈들이 득실댈 줄이야.”
남은 흑도 놈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강력한 경멸이 묻어났다. 사람이 아닌 길거리에 쏟아진 오물을 바라볼 때나 나올법한 표정이었다.
그 역시 익숙한 표정이다. 불과 몇 년 전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이 저러했으니까.
“글쎄요. 뭐 일단 조금 살펴보죠.”
“살피신다고요? 왜?”
“이런 자들은 한 번에 뿌리를 뽑지 않고 어설프게 밟으면 더 지독하게 자라나는 법입니다. 그러니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도려낼 부위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죠.”
“아, 역시 명문은 다르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조곽이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주양문에서 나에게 붙여준 이 조곽이라는 자는 단순히 생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일까?
* * *
검은 머리의 사부와 흰 머리의 제자가 마주 앉았다.
“대체 어찌하여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한 것이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검종은 독과 같아서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고요. 그렇습니다. 독입니다. 지금도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이미 본문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자는 그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손을 쓴 것에 불과합니다.”
“후, 그래, 네 말이 맞다. 그것은 마치 독과 같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140년 전의 화산이 그러했지.”
청허자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탁아. 이 어리석은 제자 녀석아. 그 손을 쓰는 것이 어찌하여 그런 방식이더냐. 정말 네 마음에 단 한 점도 삿된 마음이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더냐?”
“그······, 그것은!!”
“안타깝구나. 참으로 안타까워. 하지만 그 삿됨 역시 뿌리를 찾아보면 모두 나의 잘못인 것을······. 내 평생 수없이 많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잘못된 선택들이 그저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한 가지. 그 때 우리가 아닌 너희를 내보냈던 그것 만큼은 차악이 아닌 최악으로 남았구나.”
검은 머리 사부의 한숨이 늙은 제자의 가슴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