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검종지보(7)
“어, 어떻게?”
강아현의 입술이 떨렸다. 그녀로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지난 육 개월. 내공과 검술 그 양쪽 모두에서 그녀는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일 합.
그래 고작 일 합이었다. 검과 검이 교차했고, 그녀는 어느새 백운호를 지나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달빛. 그녀의 등 저편에 백운호는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공격을 이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 모습에 강아현이 떨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멍청했다. 너무 경솔하고 급한 공격이었다. 지난 육 개월간 눈부시게 발전한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상대방 역시 놀고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한 번만 더!!”
강아현이 검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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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더!!”
억울한 듯 소리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 역시 나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고, 어디까지 통용될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했다. 몽원경의 태사조님은 매일같이 ‘아직 멀었다.’ ‘한심하군.’ 같은 말만을 늘어놓았다. 반면 현실의 사부님은 그저 격려와 감탄만을 쏟아냈다.
물론 나 스스로도 내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당장 기해혈의 크기만 하더라도 수련동에 들어가기 전과 비교하면 족히 네 배는 커졌다. 그리고 그렇게 내공이 성장한 만큼 사부님이 검종지보라고 말하는 그 기술의 활용 역시 원활해졌다.
하지만 지난 육 개월간은 그것을 시험해 볼 상대가 하필 몽원경의 태사부님 뿐이었다. 그분은 까마득한 태산과 같다. 아무리 열심히 올라도 이곳이 산의 초입인지 중턱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반면 강아현은 다르다. 나는 육 개월 전 그녀에게 아쉽게 패배했다. 내가 지난 육 개월 동안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시험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상대다.
강아현이 검을 움켜쥐고 다시 한번 나에게 접근했다.
정보는 무한에 가깝다. 그 무한에 가까운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분석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 너머에 있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장 효율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분석하여 예측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나의 두뇌다.
사람의 몸은 내공의 힘으로 강화된다. 뼈는 더 단단해지고, 근육은 더 탄력이 생기며, 피부는 더 질겨진다. 두뇌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의 검이 움직인다. 익숙했다.
매농검은 지난 넉 달 동안 내가 피 터지게 연마한 검이다. 반면 그녀는 그리 열심히 검술을 수련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녀의 검은 너무 효율적이다.
아, 물론 보통의 경우 효율적이라는 말은 칭찬이다. 하지만 매농검은 예외다. 이 검은 쉽게 표현하자면 ‘기만, 그리고 속임수’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 검을 창안 한 사람의 성격은 어지간히 비비 꼬였음이 틀림없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비효율조차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지난 넉 달. 태사조의 매농검 앞에서 나는 수도 없이 농락당했다. 그에 비하자면 강아현의 매농검은 서너살짜리 아이가 입에 당과가루 잔뜩 묻힌 채 자기가 안 먹었다고 우기는 귀여운 거짓말 수준이다.
내가 매농검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래서야 차라리 납매검 쪽이 더 위력적이다. 납매검은 그 길을 알더라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단단함이 존재한다. 반면 매농검은 아니다.
-챙!!
힘의 방향과 크기 작용점을 느끼고 그것을 거스르는 대신 힘을 더해줬다. 어렵지 않은 수법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아······, 아니야!!”
처음과 마찬가지로 바닥을 나뒹군 강아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오기였을까? 그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차라리 다른 방식이었다면 그보다는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아현이 이렇게 어설픈 매농검으로 나에게 덤벼드는 이상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없다.
어둑어둑한 저녁.
그녀의 무복이 흙투성이로 변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강아현을 단번에 때려눕히는 것이 더 어려워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강아현의 실력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이 어둠이 나의 시야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한 번 더 덤빈다면 이번에는 일 합에 제압하기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아니지, 조금 전까지 다섯 번의 공격에서 나타나는 경향성을 변수에 추가한다면 시야가 조금 제한되더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섯 번째 바닥을 나뒹군 강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응?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네······라고.”
“아현아, 잘 안 들려서 그러는데 좀 또박또박 말해줄래?”
“네!마!음!대!로!하!라!고!!!!”
귀청이 떨어지게 빽 하고 소리를 지른 강아현이 그대로 사라졌다. 확실히 경공으로 유명한 옥녀봉 홍매당 출신답게 여전히 따라잡을 엄두도 나지 않는 훌륭한 경공이었다.
* * *
눈물이 났다.
분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녀 인생에서 패배가 처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에 와서 패배는 익숙했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이준형을 이기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왜일까?
너무나도 압도적인 패배이기 때문일까? 그래, 그것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한 것은 그녀가 최선을 다한 분야에서 패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옥녀봉 홍매당주와 천하제일의 연단사의 딸 강아현으로 태어났기에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닌, 강아현이라는 무인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고작 한 번의 칼질에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옷소매를 들어 눈가를 쓱쓱 닦았다. 갈 곳이 있다. 강아현이 화산의 험난한 산길을 나는 듯이 달렸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연무장이 딸린 모옥. 그곳에는 까칠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홀로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공야찬이었다.
그의 눈이 검에 고정됐다. 강아현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평소 사람들 앞에서 강아현을 대할 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강아현은 그런 그의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삼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무슨 소리냐.”
“백운호말이에요. 그 녀석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죠? 아니, 그 이전에 대체 언제부터 저 몰래 그 녀석에게 검술을 가르치신 거예요?”
“그런 적 없다.”
“그런 적이 없기는요!! 그 녀석 분명 삼촌이 개량한 납매검을 사용하고 있잖아요.”
공야찬의 시선은 여전히 자신의 검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글쎄.”
“글쎄라니요. 게다가 저랑 비무 끝나자마자 그 녀석 데리고 수련동으로 들어가셨잖아요. 그것도 무려 육 개월이나.”
“그래······, 그랬지.”
“대체 육 개월 동안 뭘 어떻게 가르치신 거에요. 네?”
“가르쳐? 그 녀석을? 내가?”
공야찬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강아현을 바라봤다. 타오르는 광기와 억눌린 분노가 가득 담긴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 이글거렸다.
“천만에, 나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만약 그곳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건 그 녀석이 아닌 나겠지.”
“네? 뭐라고요? 대체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검종지보.”
“네?”
광기 가득한 그의 시선이 다시 자신의 검으로 돌아갔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쪽이 더 빠르겠지.”
공야찬의 검이 움직였다.
유려했다. 조금 전까지 분노와 광기로 가득하던 사람이 휘두르는 검이라고 하기에 그의 검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처음에는 저게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강아현의 시선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매농검? 아, 아니. 하지만.”
그래, 지금 공야찬이 펼치는 것은 매농검을 닮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든다.
그러니까 저게 정말 매농검이라고?
한바탕 검무를 끝낸 공야찬이 다시금 자신의 검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삼 할이다.”
“삼 할이요?”
“그래, 이게 고작 삼 할이다. 녀석이 딱히 숨긴 것도 아닌데 고작 삼 할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그보다 그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준 걸까······?”
공야찬이 다시금 자기 혼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삼촌······.”
“하지만 이걸로 분명해졌어. 검종지보. 그걸 갖고 있는 녀석은 그 녀석이 분명해.”
광기, 그리고 질투.
아니, 지금 공야찬의 혼잣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보다 더 고약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탐욕.
그래, 탐욕이다.
강아현이 한때 다정했던 삼촌에게서 진득한 탐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