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검종지보(1)
-쾅!!
화산파 이대 제자 매농검(賣弄劍) 공야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떴다.
지······, 지금 저 검은?
잘못 본 걸까? 설마, 그럴 리가.
그 옆에 앉아 있던 사제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공야찬에게 말을 건넸다.
“공야 사형, 무슨 일입니까?”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네. 그냥 오늘 비무회가 평소보다 훨씬 격렬한 것이 조금 걱정이 되어서 그만.”
“확실히 그런 면이 없잖아 있군요. 슬슬 이번 기수의 마지막이 다가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거 이런 양상이라면 약방으로 인원을 조금 더 배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공야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군. 뭐, 그러면 일단은 내가 가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이래 봬도 창상이나 열상 같은 건 또 전문가 아닌가. 보니까 저기 저 녀석 크지는 않더라도 생채기들이 제법 깊어 보이는구만. 무인검으로 저런 예기라니. 역시 아현이야.”
“재능이라는 게 어디 가지는 않나 보네요. 홍 사저도 저희 기수에서는 딱 저랬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간 난 저 녀석 데리고 약방으로 좀 가볼 테니 여기는 잘 부탁하네.”
* * *
강아현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그 일 검.
백운호가 내밀던 그 마지막 일 검이 그녀의 머릿속에 못 박혔다.
그것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처음에는 그저 그가 검종의 기술을 몇 가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래, 호기심. 딱 거기까지다. 애당초 백운호와 그녀의 수준 차는 명백했다.
그 생각은 장광과의 비무를 관전하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물론 처음 생각했던 수준보다는 제법 괜찮았지만 굳이 매농검(梅弄劍)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의 밑천 정도는 충분히 탈탈 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을 섞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분명 상정했던 수준의 강함이었다. 묘하게 실력보다 잘 빠져나가는 감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감당 가능한 범위였다.
하지만 초식이 늘어나고 싸움이 길어지면서 백운호는 놀라운 속도로 적응했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볼 때 그것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었다. 그는 명백히 비무의 과정에서 성장했다.
결국 이준형을 상대하기 위해 아껴뒀던 비장의 무기인 매농검까지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직 5성도 채 익히지 못한 매농검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후의 비무에서 그녀는 줄곧 백운호를 압도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분명 백운호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그녀의 검을 완벽하게 파훼했다. 더 빠르고 더 강했던 그녀의 검을 말이다.
“역시, 일방적이군.”
“그래도 백운호 제법 잘 싸우지 않았어?”
“잘 싸우기는. 겨우겨우 버틴 게 전부잖아. 봐봐, 백운호는 피투성이인 데 반해서 강아현은 멀쩡하잖아.”
“야, 애초에 강아현이 상대인데 버틴 것 자체가 대단한 거 아니야? 게다가 아현이도 마지막에 저렇게 무릎 꿇었잖아.”
“에이, 그거야 백운호가 마지막에 동귀어진에 가깝게 달려들어서 그런거고. 솔직히 저것도 아현이가 봐주지 않았으면 더 크게 다쳤을걸?”
제대로 볼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떠들어댔다.
하지만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녀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 조금만 더 길게 검을 뻗었더라면 패배하는 쪽은 아현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긁힌 상처 정도로군. 크게 문제는 없겠어.”
어느새 비무대 위로 올라온 공야찬이 운호의 몸을 살폈다.
이건 단순한 탈진이다. 마지막 남은 한줄기 기력까지 모조리 이번 비무에 동원했다는 증거다.
훌륭하다. 운호를 둘러업은 공야찬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쯧, 멍청하기는.”
목운평 태사조님이 나를 보자마자 일단 혀부터 찼다. 어지간한 일이었다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이건 솔직히 억울했다. 개인적으로는 제법 만족할만한 싸움이었고 백 점 만점은 몰라도 구십 점 정도는 충분히 받을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잘 싸운 거 아닌가요?”
“뭐라고? 잘 싸워? 그게?”
하지만 태사조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비무 중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 했던 실수들이 사조님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태사조님의 입에서 내 실수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부끄러움은 점점 커졌다. 최종적으로 복기를 해봤을 때 사조님이 말씀하셨던 실수들이 모두 없었더라면 훨씬 적은 피해로, 삼 초는 빠르게 장광을 제압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냐? 강아현은 명백히 너보다 강한 상대였다. 하지만 비무의 중반에 네가 잠시지만 승기를 잡았던 순간이 존재했지.”
“제가 두 걸음 물러났던 그 순간······.”
“그래, 잘 아는군. 그렇다면 거기서 왜 기다린 거지? 아, 답할 필요는 없다. 뻔한 이유겠지. 그대로 승부를 이어간다면 가장 무난하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애당초 너보다 강한 상대다. 승기를 잡았다면 몰아쳤어야지. 네 머릿속 계산으로 승리를 확신했다고 여유를 가져? 웃기지도 않는구나.”
태사조님의 신랄한 평가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맞다. 숙제!! 그래도 숙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흥, 그거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 싸움 도중에 깨달음을 얻어? 그래 물론 그럴 수야 있지. 나도 소싯적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너처럼 멍청한 짓을 한 적은 없었다. 한참 싸우는 와중에 분에 넘치는 짓을 시도해?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이번이 단순한 비무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진짜 싸움이었다면 넌 그 깨달음을 얻은 대가로 목숨을 내놔야 했을 거다.”
“······.”
“게다가 그렇게 멍청하게 다 담으려다 실패를 했으면 자기 한계를 파악했어야지. 애당초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더 덜어냈더라도 마지막 순간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그 계집애가 아닌 네 녀석이 됐을 거다. 그 계집애의 공격에는 딱 그 정도로도 충분했어. 멍청하게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한계 이상을 넘보다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분명 마지막 그것은 나의 욕심이었으니까.
“상대의 실력을 높게 평가해야 하는 순간에는 방심했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과대평가했다. 심지어 자신의 역량 조차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했지. 구십 점이라고? 천만에. 구 점도 아깝다. 그나마 그 구 점도 이것이 진짜 실전이 아닌 비무였기에 주는 점수다.”
태사조님의 말이 다 옳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숙제를 해결했다고 의기양양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다른 멍청한 놈들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넌 무려 고금제······, 아니 천하제일인인 이몸 천중일검 목운평에게 직접 검을 지도받는 행운아다. 고작 그 정도에 그쳐서는 곤란해.”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뭐, 그래도 한참은 더 걸릴 줄 알았건만 그럭저럭 숙제를 해결하긴 해결했구나. 그 점은 칭찬해주지.”
* * *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백운호.”
“공야찬 사숙님? 여긴 어떻게?”
마치 불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이글거리는 눈을 한 사숙님의 오른손이 나의 어깨를 꾹 눌렀다. 그 손아귀에서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꿀꺽
알 수 없는 기묘한 압박감.
공야찬 사숙이 입을 열었다.
“네가 어떻게 검종지보(劍宗至寶)를 알고 있는 거지? 백운호 대체 네 녀석 정체가 뭐냐.”
검종지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