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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9화 (9/288)

9화

정기비무회(2)

“그래서 미안하지만, 장광을 먼저 상대해야 할 것 같아.”

강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망울이 반짝인다.

“그래 알겠어. 다른 녀석도 아니고, 그 멧돼지라면 확실히 너랑 은원이 깊긴 하지. 알겠어. 하지만 잊지 마. 내가 선약이었고, 지금 이건 내가 너를 배려해서 양보하는 거라는 거.”

이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고 있자면 어떤 헛소리라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했지.

“뭘 그렇게 거창하게까지 말하냐. 비무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번 미루겠다는 건데. 게다가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그 약속이라는 것도 네가 일방적으로 던지고 간 말에 불과하잖아. 그걸 들어주는 것 자체가 네가 나에게 신세를 진 거 아니야?”

“그······, 그건!!”

나의 지적에 강아현이 잠시 그대로 굳어졌다.

그러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보통 이럴 때 아득바득 우기는 녀석들이 태반인데 의외다.

“확실히 그건 그렇네. 그나저나 생각보다 깐깐하네? 보통 다른 남자애들은 내가 이렇게 굴면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기 마련인데 말이야.”

“와, 그 발언 그거 뭐야? 지금 본인이 예쁘다고 자화자찬하는 거야?”

“어머, 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홍매당 당주라서 그 권위에 존중을 보여준다는 말이었는데, 네가 보기에 내가 예쁘긴 예쁜가 봐?”

그녀가 묘한 미소를 띠고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훅하고 들어오는 복숭아 향에 가슴이 미친 듯이 쿵쿵거린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신의 미모를 잘 알고, 그걸 활용할 줄 아는 미인이 이렇게 무섭다. 은 주왕, 주 유왕, 당 현종, 오왕 부차 같은 사람들이 괜히 나라를 말아먹은 게 아니다.

“응, 뭐 네가 예쁜 건 객관적 사실이니까.”

“뭐······, 뭐라는 거야!! 아 됐고!! 어쨌거나 그러면 장광 바로 다음 비무는 나랑 하는 거다. 그러니까 절대 다치면 안 돼!!”

움찔 한걸음 뒤로 물러난 강아현이 소리를 빽 지르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근데 설마 이거 그렇게 뻔뻔하게 대놓고 미인계를 쓴 주제에 지금 부끄러워하는 건가?

* * *

“멀리서도 눈에 띄는 아이들이 몇 있군요. 특히 저기 저 아이는 도저히 열셋이라고 믿기 힘든데요?”

“아, 광이 말씀이시군요. 진 사형의 큰아이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녀석입니다. 타고난 체질이 강건해서 내외공 모두에 소질이 있다고 합니다.”

화산 장문인 굉허자 경원탁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단순히 발육이 빠르다는 말 정도로 넘어갈 덩치가 아니었다. 8척 장신은 다 큰 성인 가운데도 보기 힘든 덩치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그 자질과 배경을 보고 데려온 아이들이 대부분인 만큼 또래에 비해 발육이 좋은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그 가운데서도 장광은 단연 발군이었다.

“확실히 진 사제의 무공이라면 저 아이에게 아주 잘 맞겠군요. 그나저나 그 앞에 선 아이는 누구죠? 유독 작아 보이는데요.”

“아, 그게 그러니까. 백운호라고······.”

“백운호? 흐음,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은데요.”

“연안현 조가촌 사건의 생존자입니다.”

“조가촌이라면······. 그 아이로군요.”

“네, 그런데 크게 신경은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백 사제의 마지막 말도 있고 해서 각별히 신경을 써주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자질이 자질인지라······.”

굉허자가 혀를 찼다.

“아쉬운 일이로군요.”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화산의 속가 제자라면 제 한 몸 간수하는 데는 충분하죠. 게다가 제 손자에게 듣기로는 하산해서는 저희 집안에서 운영하는 표국에 들어가기로 이야기를 끝낸 상태라고 하더군요.”

“아,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시다니 역시 이러니 제가 재무각주님을 믿을 수밖에 없지요.”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 * *

“운호야, 안색이 엉망이네? 왜? 밤새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잤나 보지?”

“글쎄, 얼굴은 네 쪽이 더 엉망인데? 생전 안 하던 화장실 똥 푸는 일이 어렵긴 했나 보다? 혹시 어설프게 똥 푸다가 똥물이라도 뒤집어써서 똥독이라도 옮은 거 아니냐?”

“뭐라고?”

“아, 아니다. 생각해보니 네 얼굴은 원래 엉망이었지? 괜히 가만히 있는 똥 탓을 했네. 이거 똥에 사과해야겠는데?”

“이······, 이 새끼가 진짜?”

장광이 입으로 나를 도발하려 했지만 멍청한 짓이었다. 지금까지야 내가 워낙에 약자였으니 그저 순하게만 굴었다. 하지만 애초에 귀한 집에서 곱게 자란 녀석과 달리 나는 저잣거리에서 몇 년을 구른 몸이다. 녀석이 집안의 빵빵한 지원 속에서 저 강건한 몸을 얻었다면, 나는 저잣거리에서 쉽게 지지 않는 매운 입담을 얻었다고 볼 수 있었다.

“야, 그나저나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대체 왜 그런 거냐?”

“무슨 헛소리야.”

“아니, 내가 당번도 다 해줘, 시중도 들어줘. 이 정도면 ‘아이고, 소중한 나의 부하님. 제가 떡이라도 하나 챙겨드리겠습니다.’ 이러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 대체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데? 어? 이유나 좀 들어 보자.”

“이유? 그거야 당연히!!”

말을 하는 와중에도 녀석의 시선은 나의 왼쪽 허리에 달린 검집에 집중돼있었다.

기회다.

-퍼억!!

나의 오른발이 녀석의 허벅지를 두들겼다.

“이······, 이 새끼가. 사람 말하려는데 비겁하게?”

“필요 없어. 어차피 입 열어봐야 개소리밖에 안 나올 텐데. 근데 그거 들어서 뭐 하겠냐.”

녀석의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턱살이 부르르 떨렸다.

성공적 도발이다.

말을 하다 마는 것만큼 짜증 나는 것이 물어봐 놓고 대답하는 거 막는 일이다. 게다가 평소 우습게 보던 녀석에게 선공까지 허락했다.

타고난 근골 자체가 다르고, 외공까지 제대로 익혀 성취를 본 몸이니 그저 따끔한 정도겠지만 기분은 몹시 나쁘겠지.

그거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검이나 뽑아. 이 멧돼지야.”

“뭐, 뭐라고?”

삼대 제자들에게 지급된 검은 무인검. 아직 날을 세우지 않은 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볼 수만은 없다. 이준형이나 장광같이 내공과 근력이 터무니없는 놈들은 이 무인검으로 통나무도 박살을 낸다.

나? 나야 뭐, 통나무까진 아니더라도 내 팔목 정도 두께의 나무라면 가능하다. 아 물론 생나무 말고 잘 마른 나무로······.

장광이 자기 덩치에 맞는 검을 뽑아 들었다.

저것은 화산에 입산하고 햇수로 삼 년. 만으로는 이 년 하고도 육 개월의 시간 동안 나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던 그 검이다.

사납게 으르렁거릴 때마다 나를 한없이 위축시켰던 바로 그 검이 날아들었다.

확실히 빠르다. 그리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너무 단순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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