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정기비무회(1)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십대 고수라고 하셨어요?”
“그래.”
“그러니까 지금 그 십대 고수가 화산파나 섬서 말고 중원 전체를 통틀어 십대 고수인거죠? 그 전 중원을 통틀어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그거요.”
태사부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화산파 십대 고수라니. 농담에도 정도가 있는 거다. 애당초 고금······, 아니. 천하제일인에게 무공을 배우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맙소사.
이건 정말 생각의 규모가 다르다.
화산파, 섬서성을 넘어 전 중원에서 열 손가락이라니.
근데 잠깐만. 그 정도면 나 설마 진짜 천재인 건가?
“제가 재능이 있기는 있는 거군요.”
“뭐, 그럭저럭 가르침을 따라올 정도는 되는 수준이지. 애당초 가능성도 없는 녀석이라면 이 몽원경에 올 수도 없었을 거다. 뭐, 그래 봐야 아직 첫 번째 관문도 넘지 못했지만.”
“첫 번째 관문이면 숙제, 그러니까 그 완벽한 대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완벽한 대답이라고? 크크크, 이 녀석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태사조님이 크게 웃었다.
“어서 검이나 들어라. 바로 보름 뒤에 그 여자아이와 검을 나누려면 지금 그 상태로는 꽤나 곤란할 테니 말이다.”
“고작 보름 만에 가능할까요?”
“글쎄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지금 이렇게 검 대신 혓바닥을 놀리는 시간만큼 그 가능성은 멀어진다는 점이겠지.”
천하 십대 고수
그것은 내가 무공에 입문한 이후 처음 접하는 달콤한 희망이었다.
* * *
삼 개월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 비무회는 상당히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누군가는 도전하고 누군가는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무를 회피하더라도 벌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한다. 정기 비무회는 그 자체로 기회의 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정식으로 화산의 본산 제자가 된 것이 아니고 본산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대 제자들의 눈에 띄어야 한다. 그리고 정기 비무회는 강의들과 함께 이대 제자들의 눈에 들기 위한 절호의 기회다.
그렇기에 특별한 이유 없이 도전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 승패가 어떻건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이다.
“이번 정기 비무회에서 백운호는 나와 겨룬다.”
이른 아침.
대연무장에서의 내공 수련을 끝낸 직후, 아직 아이들이 흩어지지 않은 곳에서 장광이 선언했다.
“어? 내가 너랑?”
“그래. 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이 중에 너와 붙어줄 녀석은 없을 테니까. 안그래?”
장광의 시선이 아이들을 훑었다.
마치 나설 놈이 있으면 나서 보라는 오만한 태도였다.
“저기 광아.”
“왜? 도망가려고? 인제 와서 나랑 비무 하려니까 무섭냐?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비무 선약이 있어서.”
“하, 백운호 이 새끼가? 너 아주 요즘 제대로 미쳤구나. 너 설마 지금 내가 부탁하는 것 같냐? 어? 네가 선약이 있다고 하면 내가 아이고 그러십니까? 그러면 제가 기다려야죠. 이래야 하냐고.”
으르렁거리는 장광의 얼굴이 사뭇 사나웠다.
하지만 어제 천하 십대 고수라는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이전과 달리 그 모습이 크게 무섭지 않았다.
내가 부모님을 여의고 저자를 떠돌며 경험으로 뼈에 새긴 사실은 자존심은 밥을 먹여주지 않고 약자는 약자 나름의 생존법이 존재하며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명백한 약자였다. 그렇기에 나는 약자로서 생존해왔다.
‘나는 아직도 그저 참기만 해야 하는 명백한 약자인가?’
하지만 동시에 또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만약 최소한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생겼다면.
그러니까 꼭 강자를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강자가 나를 건드렸을 때 본인도 크게 다칠 각오를 해야 할 정도의 힘이 생겼다면 그때는 마냥 참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럴 리가.’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야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다고 네가 하자고 한다고 내가 아이고 그러십니까? 그러면 제가 선약이고 뭐고 다 취소하고 해드려야지요. 그럴 수는 없잖아?”
“너······, 너 지금 뭐라고 한 거냐?”
“못 들은 거야 아니면 이해를 못한 거야? 좋아. 내가 아주 쉽게 이야기 해줄게. 나한테 도전하고 싶으면 저기 가서 줄 서고 순서 기다리라고.”
“도, 도전? 이 새끼가? 너 지금 미친 거냐?”
장광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미치다니.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거지. 그나저나 넌 육두문자를 안 쓰면 말을 못 하는 거야? 대체 어휘가 왜 그따위냐?”
“너 이 새끼. 넌 비무회까지 갈 것도 없겠다. 오늘 좀 맞자.”
장광이 성큼성큼 다가와 오른손 손바닥을 휘둘렀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손바닥이었지만 마냥 경시할 수는 없었다. 팔 척의 거한이 휘두르는 솥뚜껑만한 손바닥이다. 거기에 실린 경력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가소롭다.
허리에 걸린 검을 겁집째 빼어들고 정확히 몸의 정 중앙을 찔러갔다.
“이 새끼가?”
감히 내가 반격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겠지.
장광이 깜짝 놀라 자신의 왼손으로 나의 공격을 막아섰다.
의도한 대로다.
녀석의 신경이 온통 나의 검에 쏠린 지금.
나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던 무방비한 오른팔 곡지혈을 발끝으로 두들겼다. 내 발차기의 위력 자체는 별볼일 없었지만 그래도 곡지혈은 몸의 약점 중 한 곳이다. 녀석의 몸이 움찔했다.
‘뽑을까?’
하지만 역시 타격으로는 답이 없다. 체급, 그리고 내공의 차이가 너무 크다.
잠깐의 고민.
“장광!! 백운호!! 지금 뭐 하는 짓이냐.”
하지만 아쉽게도 그 고민은 그냥 고민으로 끝났다.
다툼의 결과는 사흘의 뒷간 청소와 반성문.
정기 비무회가 성큼 다가왔다.
* * *
“이번 기수의 아이들은 좀 어떻습니까?”
“지난 기수보다 오히려 더 괜찮습니다. 제법 괜찮은 아이들이 많아요.”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무당과 소림에서 절치부심을 하고 있어요. 소문은 들으셨죠? 지금 최연소 태극도인과 나한승이 탄생할거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걱정하지 마십쇼. 준형이가 생각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이제 열세 살에 불과한데 자소단의 약기를 벌써 다 소화했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지난 기수는 물론이거니와 공야찬 그 녀석이 세웠던 기록도 깰 수 있을 겁니다.”
재무각주의 이야기에 화산의 장문인 굉허진인 경원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로군요. 헌데 찬이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 녀석은 여전히 그 모양이랍니까?”
“네, 여전합니다.”
“쯧쯧쯧,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아시잖습니까. 검에 한 번 마음이 홀리면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요. 편한 길에 익숙해지면 정도에서 멀어지는 법이지요. 그보다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번 정기 비무회 한번 직접 참관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요?”
“네, 장문인이 직접 참관해주시면 아이들 사기도 크게 오를 겁니다. 그맘때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관심이 커다란 자극이 되는 법이니까요.”
“흐음, 정기 비무회가 언제였죠?”
“이제 나흘 남았습니다.”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디 한 번 시간을 내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