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7화 (7/288)
  • 7화

    몽원경(6)

    “미안. 하지만 너무 마음이 급해서. 어제 온종일 찾아다녔는데 대체 어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더라.”

    갑작스러운 아현의 사과.

    “아, 어제는 일이 조금 있어서. 근데 미안하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 전에 내가 끼어든 거 말이야.”

    “에이, 그게 뭐가 미안할 일이야. 오히려 내가 고맙지.”

    “이제부터 참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 멧돼지 잡으려던 찰나에 내가 괜히 끼어든 거잖아.”

    “메, 멧돼지라고? 푸흡.”

    평소 나도 그렇게 생각해오긴 했지만, 그래도 아현이 같은 미소녀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파급력이 달랐다.

    잠시 아현이가 말 한번 걸어준 것에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멧돼지를 위해 묵념.

    아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제 그 녀석이라면 몰라도 그 멧돼지 녀석을 두들겨 패는 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 그 녀석 그래 봬도 진무옥 장로님의 대제자인 조사숙이 자기 제자로 찍어둔 녀석이거든.”

    두들겨 팬다고?

    내가 광이를?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마 말하다 혀가 꼬였겠지.

    그보다 진무옥 장로님이면 설매각의 각주로 화산파에서도 실세 중의 실세다. 그런 분의 대제자가 벌써 제자로 찍어뒀다니. 새삼스레 녀석들과 나의 격차가 피부에 와닿았다.

    “그렇구나. 하긴 준형이나 너한테 가려서 그렇지 광이도 보통 자질은 아니니까.”

    “자질은 무슨. 그냥 덩치 좀 큰 멧돼지지. 그보다 하필 왜 지금이야? 설마 이제 더는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거야? 보니까 하루 이틀 수련한 솜씨가 아니던데.”

    “응? 뭐가?”

    숨기다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순수한 나의 질문에 강아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훅 다가왔다. 조금 전부터 풍겨오던 복숭아 향이 한층 진해졌다.

    “여기 지금 너랑 나밖에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숨길 필요 없다고.”

    “수, 숨기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참. 그렇게까지 숨길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너도 알잖아. 우리 홍매당은 딱히 기종(氣宗)에 종속된 게 아니라는 거. 물론 어머니랑 아버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난 검종(劍宗)이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 아니, 지금 화산은 오히려 너무 편협하다고 봐도 무방하지.”

    “기종? 검종?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백운호!! 정말 너 끝까지 모르는 척 잡아뗄 생각이야?”

    강아현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하지만 정말 모르는 것을 대체 뭐라고 답한단 말인가.

    “너, 어제 그 검법들 검종에서 내려오는 수법들이잖아. 이거랑 이거.”

    뒤로 크게 한 걸음 물러선 강아현이 자신의 손을 휙휙 휘저었다. 대강의 움직임이었지만 분명 그것은 증무 태사조님이 보여주셨던 그 응용들이다.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그게 검종이라는 곳에서 내려오는 수법들이라고?”

    “그래!! 설마 그것도 모르고 이 초식들을 그렇게까지 익혔단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보기에는 단순한 납매검의 응용 같지만, 실전에서 그걸 그렇게 제대로 활용한다는 건 하루 이틀 수련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잖아. 그런데 정말 그렇게 계속 잡아뗄 생각이야?”

    검종······.

    그러니까 증무 태사조님이 꿈에서 보여줬던 것들이 모두 검종의 기술이라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대체 검종은 뭐고 기종은 뭐지?

    대충 이름만 들어서는 검(劍)에 근본을 두는 곳과 기(氣)에 근본을 두는 곳······.

    “아······.”

    “아? 설마 정말로 검종을 모르고 그걸 수련했다는 말이야?”

    “잠깐만, 아현아. 그게 그러니까 네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난 정말로 딱히 누군가에게 뭔가를 배운 적이 없어.”

    “그러면 지금 정말로 네가 혼자서 납매검만 가지고 그 안에 숨겨진 검종의 응용법들을 깨우쳤다는 말이야?”

    “어.”

    아현이의 예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실 꿈속에서 사조님이 알려주셨어.’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거야말로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기 딱 좋은 말이다.

    “흥, 좋아.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네가 그만큼이나 대단한 천재라는 소리겠네.”

    “어······, 아니 꼭 그런 말은 아닌데······.”

    “그렇다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겠네?”

    “응?”

    갑작스럽게 뒤로 두 걸음 물러난 강아현이 오른손에 검결지를 맺은 채, 마치 그것을 검처럼 휘둘러 나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평소 강아현이 보여주던 모든 것을 갈라버리겠다는 기세가 아니었다. 이것은······, 그래. 마치 꿈속에서 사조님이 검으로 보여주던 그 ‘질문’을 닮아있었다.

    어렵지 않았다.

    태사조님의 그 질문들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함정을 품고 있었다. 심지어 눈앞에 보이는 함정을 편한 길로 피해간다면 세 수, 혹은 네 수 앞에 피할 수 없는 파멸이 숨어있는 그런 지독한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강아현이 나에게 묻는 것은 너무나도 단편적이다.

    태사조님의 질문이 천하에 다시 없는 국수가 만들어낸 묘수풀이라면 아현이의 질문은 마치 이제 막 바둑돌을 잡은 아이가 만들어낸 문제 같았다.

    이어지는 서너 번의 공방.

    아현이를 상대하는 데는 꿈속에서 태사조님이 보여주셨던 수법까지도 필요 없었다. 고작 이 정도 수준의 ‘질문’이라면 납매검의 기초적인 수법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어려운 것은 강아현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붉게 달아오르려는 얼굴을 감추는 것이 더 어려웠다.

    아현이의 부드러운 손과 내 손이 맞닿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니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사람 몸에서 복숭아 향이 날 수 있는 걸까?

    “이이익!!!!”

    몇 번의 공방을 거듭하던 강아현이 뒤로 한 걸음 크게 물러나 분하다는 듯 강하게 발을 굴렀다.

    “고작 이 정도로는 압박도 안 된단 말이네!! 그래 좋아.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들고 싶지만, 그건 규칙에 어긋나니 참겠어. 그러니 다음 비무회 때 보자. 그땐 꼭 네 밑천을 탈탈 털어서 인정하게 하고 말테니까.”

    “어, 어?”

    기종이 뭔지, 검종이 뭔지 조금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강아현은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마친 채 훌쩍 사라졌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그게 뭐냐고······.”

    * * *

    “광아, 우리 다음 비무회가 언제지?”

    “응? 그야 두 달 보름 전에 비무회가 열렸었으니까 이제 보름 남았지.”

    “그렇구나. 그러면 나 그날 비무회에서 운호를 좀 상대해봐야겠으니까 애들한테 좀 미리 이야기 좀 해줄래?”

    “응? 백운호를? 준형이 네가 그 찌질이를 왜?”

    “아니, 얼마 전에 재철이를 제압했던 게 조금 눈에 걸려서 말이야.”

    “에이, 그거야 하재철 그 멍청이가 제대로 안 해서 그런거고. 게다가 백운호 그 자식은 내가 손봐줄 생각이었단 말이야.”

    “손을 봐준다고?”

    “어, 그 새끼가 요즘 이상하게 나한테 기어오르잖아.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말이야.”

    준형의 시선이 장광을 훑었다.

    확실히 이 녀석이라면 하재철처럼 멍청하게 당하는 일은 없겠지.

    이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재능이라니?”

    “아니, 그러니까 혹시나 제가 검에 진짜 재능이 있나 싶어서요.”

    “글쎄다. 딱히 재능이라고 할 것까진 없는데······.”

    이제는 익숙한 꿈속.

    보자마자 검을 휘두르려는 사조님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드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였다.

    당연하다. 진짜 내가 재능이 있었다면 화산의 다른 사숙이나 사조님들이 뭐라도 반응을 보이셨겠지.

    “그냥 이대로 나한테 무난하게 수련을 받는다면 그럭저럭 천하십대고수 정도는 노려볼 만하겠네.”

    네? 천하십대고수라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