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몽원경(5)
접객당주님이 나에게 성큼 다가와 물었다.
“그거 어디서 배운 거냐.”
“네?”
“그 수법들 어디서 배웠냐는 말이다.”
접객당주님은 고수다. 그것도 무림에 이름난 고수. 올해 예순이 넘은 나이셨지만 그 기세는 대단했다.
그런 분에게
‘꿈에 증무 태사조가 나오셔서 알려주셨습니다.’
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건 뭐랄까? 내가 생각해도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 그게 그러니까. 납매검!! 납매검을 배우면서 제가 생각한 것들입니다.”
“네가 생각해낸 것들이라고?”
“네, 보시다시피 전 자질이 부족하여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구선이 운호의 몸을 살폈다.
작고 왜소하다. 어린 시절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팔다리의 기맥이 너무 얇고 가늘다.
만리우보 공양소 이후로 화산의 무공은 선심후수를 기본으로 한다.
즉 강력한 내공과 그 내공을 발휘할 수 있는 몸이야말로 현대 화산 무학의 근본이다. 아쉽게도 이 아이는 그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구나. 하긴 뭐든 궁하면 통한다고 하였으니 그럴수 있지. 하지만 결국 무학의 뿌리는 내공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장의 기교에 정신이 팔려 무공의 근본에 소홀해서는 대성에 이를 수 없는 법이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겠습니다.”
* * *
“하하하, 참으로 재밌는 이야기네. 선심후수라니. 내가 무당의 말코나 소림의 땡중들이면 몰라도 설마 화산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목운평 태사조님이 크게 웃었다.
어찌나 통쾌하게 웃는지 눈가에 눈물이 맺힐 지경이다.
“하지만 사조님의 말씀도 틀린 건 없지 않습니까. 무공의 기본이 내공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화려한 초식보다 우직하게 쌓아 올린 내공이 결국 고수가 되는 길인 법이죠.”
“그래,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오늘 밤에도 여전히 태사조의 꿈은 이어졌다.
이쯤 되면 확신할 수 있다. 이건 결코 단순한 꿈이 아니다.
“그러니 검을 들어라.”
“네?”
“여기 담소나 나누러 온 건 아니잖느냐.”
“자, 잠깐만요. 하지만 그래도 뭔가 이런 기연 같은 거라면 신공절학을 전수해 주신다든지 숨겨둔 영약 같은 걸 내주시는 뭐 그런 게 정석 아닙니까? 그냥 이렇게 또 대련이라고요?”
“재밌는 이야기로구나. 그런데 애초에 신공절학이라고 해봐야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이 화산의 무공이니 화산의 제자인 너 역시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익히게 될 무공들 아니냐. 그리고 영약이라······.”
-꿀꺽
사실 초식이나 수의 겨룸에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다른 삼대 제자들에게 크게 뒤지는 것은 결국 체격과 체질. 그리고 내공이다.
성장 환경이 다르고, 타고난 것이 달랐으며 수련한 시간과 지원받은 것이 달랐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고작 십 년의 차이였지만 사실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장벽과도 같았다.
하지만 영약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지금와서 내가 영약을 섭취한다고 단번에 이준형처럼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평균 수준의 내공만 갖춰진다면, 그리고 나의 오성이라면 본산에 남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것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나의 시선이 태사조의 입에 못 박혔다.
“너 제정신이냐?”
“네?”
“아니, 상식적으로 그런 게 있으면 내가 먹고 고금제일인이 됐겠지 대체 그걸 왜 숨겨둔단 말이냐.”
아······.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렇다.
“그리고 그런 걸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내준 숙제는 끝내고 하는 이야기냐?”
“그것이 아직······.”
“그래, 뭐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숙제로 내주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허튼소리 그만하고 어서 검이나 들어라.”
태사조와 검으로 나누는 문답은 어제와 비슷했지만, 또 달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쩌면 화산의 사조들이 선심후수를 강조한 것이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움의 정도가 다르다.
꾸준히 내공을 수련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반면 이렇게 검을 주고받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 지루한 것보다는 즐거운 것을 찾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조님들은 그것을 경계하여 선심후수를 강조하셨던 것이 아닐까?
-쾅!!!
그리고 오늘도 마지막은 태사조의 이해할 수 없는 ‘그 검’이었다.
* * *
대체 그것이 어떻게 납매검의 초식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식사를 할 때도, 내공을 활용하는 요령에 관한 강의를 들을 때에도 나의 머리 한구석에는 증무 태사조가 보여줬던 그 일격이 떠나지 않았다.
아니, 단지 그 순간만이 아니었다.
장광 녀석이 이해할 수 없는 트집을 잡는 그 순간에도 나의 머릿속 한켠에는 증무 태사조의 그 검격이 선명히 자리잡고 있었다.
“백운호, 너 미쳤냐?”
“어, 어?”
“왜? 어제 재철이 그렇게 발라주고 나니까 이제 이런 일들 하는 게 귀찮냐? 아주 자신감이 샘솟아? 나랑도 한 번 엉겨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시간에 나도 지객당 청소 당번이니까 그렇지. 준형이 때야 네 말처럼 혼자 하는 청소니까 어떻게든 해냈지만 이건 아니잖아.”
“그거야 네 사정이고. 시발 아쉬우면 네 껀 네가 땜빵을 구해보든지. 어? 내가 네 사정까지 다 고려해줘야 하냐? 이 새끼가 완전 미쳐가지고.”
증무 태사조의 그 검이라면 장광이 녀석의 공격도 파훼할 수 있을까?
녀석과 나의 근력 그리고 내공 차이는 엄청나다. 단번에 뽑아낼 수 있는 힘의 크기라면 장광은 이준형에게도 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증무 태사조의 그 검이 파훼되는 광경은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의 너머에 존재하는 검이다.
“허, 이 새끼 봐라. 지금 너 딴생각 하냐? 진짜 개 미쳤네. 야 안되겠다. 오늘 너 푸닥거리 좀 하자.”
그리고 장광이 녀석이 콧김을 뿜어대며 손을 치켜들려는 바로 그 순간.
“광아,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이야?”
“어······, 어. 아현이? 아, 아니야!! 중요한 이야기는 무슨.”
강아현이 장광에게 말을 걸어왔다.
열세 살.
한참 이성에 관한 관심으로 혈기가 끓어오르는 나이다. 그리고 강아현은 삼대 제자들 가운데서도 단연 손꼽히는 미소녀다. 아마 그녀가 이준형에 필적하는 고수만 아니었다면 그녀에게 찝쩍댈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장광 녀석의 콧구멍이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흐물흐물 풀어졌다.
“그래? 그러면 운호 좀 내가 빌려 갈게. 볼 일이 있어서.”
“어, 어? 네가 이 찐따한테 볼일이 있다고?”
“나쁜 말!! 같은 화산 제자끼리 그런 나쁜 말 쓰면 못 써.”
“아니, 그게 그러니까······. 미안.”
“사과는 내가 아니라 운호한테 해야지.”
장광 녀석의 턱살이 미미하게 떨렸다.
하지만 이 폭급한 멧돼지 같은 녀석도 차마 강아현의 말은 거역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백운호, 내가 미안하다.”
“어, 어? 아니야.”
내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강아현이 환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미소녀인 강아현이다. 폭 패인 보조개가 눈부셨다.
“거봐, 친하게 지내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그러면 운호야. 시간 괜찮으면 잠깐 저기 가서 우리 이야기 좀 하자. 괜찮지?”
“어, 어.”
강아현이 슬며시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바짝 다가온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복숭아향에 주책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으드득
“준형아, 갑자기 왜 그래?”
덕분에 나는 몰랐다.
나를 바라보는 이준형의 시선이 얼마나 사나웠는지를 말이다.